똥을 누자

 


  2월 9일부터 2월 14일까지 바깥에서 지낸다. 이제 2월 14일 오늘 고흥 시골집으로 돌아간다. 엿새에 걸쳐 시골집 비우고 음성·일산·인천에서 보내고 보니, 몸이 아주 축 늘어진다. 아이들은 늦도록 잠들지 않으려 하는데, 할머니와 할아버지와 이모와 고모와 외증조할머니와 외증조할아버지와 외삼촌과 큰아버지와 여러 살붙이를 만나며 저희를 귀여워 해 주는 손길을 받으니 더 놀고 싶으리라. 이 아이들도 느끼겠지. 저희 몸이 얼마나 고단한 줄. 그래서, 한 번 잠자리에 누우면 아침이 훤하게 밝을 때까지 오줌 마렵다는 소리조차 없이 깊이 잠들리라고.


  아침부터 밤까지 끝없이 놀다 보니, 아이들이 밤잠을 잘 잔다. 다만, 밥을 먹는다든지 집에 머물 적에, 이 아이들 몸짓은 아주 흐느적흐느적이다. 방바닥에 등판을 붙이며 논다.


  식구들이 아침에 똥을 눈다. 하나 둘 셋, 이렇게 똥을 누는 모습을 느끼며, 속을 확 비워야 바깥마실 하면서 몸이 가볍겠지 하고 생각한다. 그런데 작은아이는 똥이 좀 더디다. 한낮이 되거나 깊은 저녁에 비로소 똥을 눈다. 시골집에서는 하루에 서너 차례 느긋하게 똥을 누는데, 아무래도 바깥마실을 다니기 때문일 텐데, 하루에 한 차례 몰아서 똥을 푸지게 눈다.


  작은아이가 똥을 못 누고 움직이거나 무언가 먹을 적에는 자꾸자꾸 작은아이 배를 쓰다듬으며 ‘똥아 똥아 나와라’ 하고 노래를 부른다. 뽀직뽀직 시원스레 누고 깨끗하게 밑을 씻어 즐겁게 놀자. 큰아이 작은아이 너희 둘이 큰아버지 집에 머물 적에 똥을 누어야, 오늘 인천에서 고흥까지 머나먼 시외버스 타고 홀가분하게 돌아갈 수 있단다. 너희 똥 누는 때에 맞추어 길을 나설 생각이야. 아침에 일어나면 모두들 아랫배 홀쪽하게 속을 비우자. 4346.2.14.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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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사람 서울마실

 


  해는 언제나 뜬다. 달은 언제나 진다. 꽃은 언제나 핀다. 풀은 언제나 푸르다. 시골에서는 아주 마땅해서 딱히 생각해 보지 않던 일인데, 서울에서는 이와 같은 이야기가 너무 멀거나 동떨어지는구나 싶다. 해가 뜨는 줄 헤아리는 사람이 적다. 달이 지는 줄 살피는 사람이 드물다. 꽃이 피는구나 하고 느끼는 사람이 얼마 없다. 풀이 푸른 빛깔인 줄 알아차리는 사람 만나기 힘들다.


  서울에서는 무슨 재미로 살아가나 하고 고개를 갸우뚱해 본다. 그러나, 서울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온갖 곳에서 재미를 찾겠지. 맛난 밥집을 찾고, 예쁜 찻집을 찾으며, 멋진 옷집을 찾다가는, 놀라운 놀이공원이나 문화거리를 돌아다니면서 재미를 누리리라.


  숲이 없으니 밥집을 찾는다. 들이 없으니 찻집을 찾는다. 멧자락 없으니 옷집을 찾는다. 바다가 없으니 놀이공원을 찾는다. 하늘이 없으니 문화거리를 찾는다.


  그렇지만, 귀를 기울이면, 서울에서도 바람내음을 맡고 구름조각을 만지며 별빛으로 몸을 씻을 수 있겠지. 마음을 열고 눈을 뜨면, 서울에 있을 적에도 빗소리를 듣고 눈빛을 헤아리며 이야기꽃 흐드러지는 삶을 깨달을 수 있겠지.


  옆지기랑 아이들하고 서울(도시)로 마실을 나오니, 마음껏 돌아다니지 못한다. 아이들은 이리로 뛰어도 안 되고 저기에서 소리를 질러도 안 된다. 아이들은 이렇게 달리거나 저렇게 노래해도 안 된다. 안 되는 것투성이, 만져서는 안 되는 것 잔뜩, 나긋나긋 즐거이 얼크러질 만한 자리 없고, 아이도 어른도 느긋이 앉거나 눕거나 서며 까르르 웃기가 수월하지 않다. 4346.2.13.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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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드러운 목소리

 


  부드러이 부는 바람이 볼을 간질인다. 부드러이 내려앉는 햇살이 온몸에 따사로운 기운 나누어 준다. 부드러이 흐르는 냇물이 맑은 소리 들려준다. 부드러이 피어나는 꽃송이가 밝은 웃음 보여준다. 부드러이 짓는 밥을 고소하게 먹는다. 부드러이 지은 집에서 부드러이 살림 꾸린다.


  사랑은 부드럽다. 삶은 부드럽다. 부드럽지 않으면 사랑이 아니고, 부드럽지 않을 때에는 삶을 누리지 못한다. 부드러운 손길로 아이들을 어루만질 수 있다. 부드러운 몸짓으로 이야기 한 자락 엮을 수 있다. 부드러운 손가락으로 글을 쓰고 책을 넘기며 책시렁 짤 수 있다.


  시골집에서는 풀 잔뜩 차린 밥상으로 아이들과 밥을 나누지만, 할머니 댁에 오면 아이들한테 풀을 먹이기 만만하지 않다. 시외버스 타고 움직이는 길에, 할머니 댁에, 아이 손이 쉬 닿는 과자꾸러미가 많다. 이 아이도 저 아이도 밥보다 과자에 손이 가고, 밥 한 술 떠서 먹이자면 한참 애먹어야 한다. 할머니 댁에는 마루 한복판에 텔레비전이 있다. 아니, 어느 집에 가더라도 가장 너른 마루에 가장 큰 텔레비전이 버틴다. 아이들한테 만화영화를 보여주더라도 이것저것 가려서 보여줄 수 없고, 온갖 광고까지 눈이 아프도록 보아야 한다.


  먼길 나들이를 해서 할머니 댁에 왔는데, 밥은 안 쳐다보고 텔레비전하고 과자에 눈길이 사로잡힌 아이들을 바라보며 괜히 슬퍼, 부드러운 목소리가 좀처럼 안 나온다. 졸리지만 졸음 참고 더 놀려 하는 작은아이를 품에 안고 자장노래를 부를 적에는 스스로 다짐하고 생각하며 부드러운 목소리가 나오지만, 자꾸자꾸 떼를 부리며 안 자려 하는 큰아이한테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이야기를 하지 못한다.


  내 어린 날을 돌이켜본다. 잠 한 숨 멀리하며 조금이라도 더 놀고 조금이라도 할머니 곁에 더 달라붙으려 하는 마음을 느낀다.히유. 어른이 된 마음으로만 아이를 다그칠 수 없다.


  한숨이 흐른다. 더 여러 날 더 느긋이 지낸다면 내 목소리도 내 마음도 부드러이 누그러질 수 있을까. 너덧새쯤, 예닐곱 날쯤, 넉넉히 머물며 이야기꽃 피울 수 있으면, 아이들도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며 밥 맛나게 먹고 놀이 신나게 즐기는 삶을 누릴 수 있을까. 4346.2.11.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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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아이 재우는 시외버스

 


  옆지기는 작은아이를 맡고, 나는 큰아이를 맡는다. 두멧시골집에서 택시를 타고 읍내로 나와, 고흥읍내에서 순천 버스역까지 시외버스를 타고, 순천 버스역에서 청주 버스역으로 시외버스를 타며, 청주 버스역에서 음성 버스역으로 시외버스를 탄다. 시외버스에 시달리는 아이들은 스스로 몸부림을 치면서 온갖 놀이를 하고 싶다. 갑갑한 몸을 풀고 싶어 이래저래 비틀고 꼬물꼬물 노닥거린다. 너희가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어떻게 견딜 수 있겠니.


  고흥읍에서 순천 버스역으로 가는 길, 순천에 거의 닿을 무렵 두 아이가 스르르 잠든다. 순천에서 청주로 가는 길, 세 시간 달리는 버스에서 한 시간 반쯤 되자 두 아이가 사르르 잠든다. 처음에는 두 아이가 따로 앉았으나, 작은아이를 달래려고 나와 큰아이 사이에 앉히고 사진기를 손에 쥐어 주었는데, 이십 분쯤 사진기 들여다보다가 큰아이가 “나 이제 안 볼래. 보라 혼자 보라고 해.” 하더니 아버지 허벅지에 머리를 대고 눕는다. 작은아이를 왼허벅지에 앉힌다. 큰아이가 잘 자도록 자장노래를 부른다. 두 가락쯤 불렀을까, 사진기 손에 쥔 작은아이가 꾸벅꾸벅 졸다가 폭 고개를 떨군다. 깊이 잠들어 느긋하게 쉴 수 있기를 빌며 자장노래를 열 가락 남짓 더 부른다. 내 허벅지 둘은 두 아이 눕히는 베개가 된다. 옆지기가 작은아이를 넘기라 말하지만, 옆지기가 한갓지게 쉴 수 있기를 빌며 내가 둘 다 안는다. 한 시간 남짓 두 아이를 허벅지에 앉히고 누여 재운다. 호젓한 길을 널널한 시외버스가 달린다. 나도 눈을 감는다. 가만히 생각에 잠긴다. 아이들과 살아가는 날을 되짚는다. 내 어버이가 나와 형을 어떻게 보살피며 하루를 누렸을까 헤아린다. 이 아이들은 나와 옆지기 지난날을 돌아보는 거울이요, 내 어버이가 살아온 한때를 짚는 발자국이면서, 스스로 씩씩하고 맑은 숨결일 테지. 자는 아이 둘 끌어안고 시외버스를 달리지만, 몸이 힘들거나 허벅지가 저리거나 팔이 아프지 않다. 음성 할머니 할아버지 댁으로 간다. 4346.2.10.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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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쉬움, 서운함

 


  음성 할머니 할아버지가 음성 멧골집이 너무 추우니 아이들 걱정스럽다며 설에 오지 말라 전화를 하셨다. 곰곰이 생각하다가, 설 즈음 해서 고흥 시골집도 추위에 걱정스러울 수 있겠다 싶어, 음성 가는 기차표를 취소했다. 이듬날 아침, 음성 할머니가 전화해서 마중 나오신다고 언제쯤 음성으로 오느냐고 물으신다. 그렇지만 너무 추워 오지 말라 하셔서 기차표를 취소하고 말았는걸요.


  고흥 시골집 물이 얼건 말건 그냥 가야 했을까. 어차피 여러 날 길게 비우면 물이 얼다가 다시 녹을 수 있으니 그냥 가도 되었을까. 2월 8일 고흥 시골집 온도는 올들어 가장 낮게 떨어진다. 밥 끓이는 가스불도 얼어 잘 안 켜진다. 아이들 태우고 면사무소로 자전거를 달리는데 자전거 멈추개까지 얼어붙는다. 따스한 고흥까지 추위를 느낀다면 다른 곳은 얼마나 춥다는 소리일까.


  그러나 자꾸자꾸 아쉽고 서운하다는 생각이 든다. 얼든 말든 그냥 가면 한결 나았으리라 생각한다. 그렇다고 달리 어찌할 길은 없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조용히 기다리자. 설과 함께 추위가 물러가기를 가만히 기다리자. 올 설에는 고흥 시골집에서 마을회관 합동세배를 구경하면서 설 언저리 시골마을 삶자락을 누려 보자. 4346.2.8.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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