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톱을 깎다가

 


  여섯 살 큰아이는 다섯 살 때부터였나 혼자서 손발톱을 깎을 줄 안다. 그 뒤로 큰아이 손발톱은 큰아이 스스로 때를 맞추어 조용히 잘 깎는다. 작은아이는 아직 혼자서 양말을 꿰지 않고 신도 스스로 꿰려 하지 않으며 단추마저 스스로 꿰려 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작은아이는 모든 대목에서 아주 더디다. 누나가 잘 해 주니 더 늦기도 하다. 큰아이는 무엇이든 스스로 해내려 하면서 삶을 즐긴다면, 작은아이는 응석을 퍽 부리면서 삶을 즐기려 하나 싶기도 하다.


  이레쯤 앞서 작은아이 손발톱을 깎으면서 내 손발톱도 되게 긴데, 하고 느끼면서 막상 닷새 동안 내 손발톱은 못 깎는다. 손발톱 깎을까 싶을 때면 어김없이 이런 일 저런 일 찾아든다. 그래도 이럭저럭 손톱을 깎고, 또 다른 일 하다가 왼발톱은 깎는데, 오른발톱 깎을 겨를을 못 낸 채 여러 날 보낸다. 이러다가 부산으로 마실을 오고, 여관에 묵고 고단한 잠을 두어 시간 눈 붙이다가 깨어나서 비로소 오른발톱 마저 깎는다. 그런데, 내 큰 베낭에 늘 건사하는 작은 손톱깎이로는 내 오른발톱 커다란 뭉치를 건드리지 못한다. 집에 있는 큰 손톱깎이로라야 겨우 깎을 듯하다.


  만만하지 않네. 아이들은 지난밤 잘 자고 오늘 새 하루 맞이하겠지. 아버지는 바깥일 잘 마치고 오늘 웃으면서 시골집으로 돌아가마. 4346.5.31.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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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밥이 가장 맛있다

 


  밖에서 아무리 비싸거나 놀랍다 싶은 밥을 얻어먹는다 하더라도, 내가 집에서 손수 차린 밥보다 맛나지 않다. 이제는 내 어머니 밥상보다 내가 차린 밥상이 내 몸에 훨씬 더 잘 맞는다. 내 어머니뿐 아니라 옆지기 어머님 밥차림 아주 반갑고 고마우며 좋다. 그런데, 내 몸에는 그리 맞지 않는다. 기름기 있는 반찬은 거의 안 하고, 풀이랑 국만 올리기 일쑤인 밥상인데, 이런 밥상을 내 몸이 가장 좋아한다.


  우리 아이들은 어떻게 느낄까. 아이들도 반가이 여길까. 아이들은 안 좋아할까. 모르는 노릇이다. 다만, 아이들이 집밥을 먹고 난 뒤랑 바깥밥 먹고 난 뒤 모습을 살필 때에, 시골집에서 시골밥 먹으며 뛰노는 모습이 가장 해맑고 상큼하며 빛난다고 느낀다. 우리 집에서 아버지 밥을 먹는 아이들은 배앓이 없고 몸앓이 없다. 바깥밥 먹을 때에 배앓이나 몸앓이가 있다.


  한 해에 한 차례 할까 말까 하던 카레를 올들어 두 차례째 한다. 언젠가 옆지기가 말했다. 카레를 먹는 까닭은 몸속에 생기는 벌레를 잡으려 하기 때문이라고. 우리 식구들은 날푸성귀를 늘 먹으니 카레를 곧잘 먹을 만하다고. 그러고 보니 그렇기도 해서, 한 달에 한 차례쯤은 카레를 끓여서 먹을까 하고 생각해 본다.


  내 밥차림을 손수 사진으로 찍으며 한 번 더 생각한다. 오늘과 같은 밥차림을 이루기까지 얼추 마흔 해를 살았구나. 우리 아이들은 앞으로 몇 살쯤 될 무렵, 스스로 아이들 몸에 가장 맞고 좋을 밥차림을 이룰 수 있을까. 4346.5.30.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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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한테 고기를 먹여야 할까

 


  아이한테 굳이 고기를 먹여야 한다고는 느끼지 않으면서 여섯 해 밥차림을 꾸린다. 바깥일을 많이 하면서 몸이 고단할 적에는 국수를 끓여 밥상에 올리곤 하는데, 우리 집에는 밑반찬이 따로 없다. 이제 두부도 거의 안 먹으며, 만두조차 아이들이 썩 좋아하지 않는다. 예전에는 탕수육을 곧잘 먹기도 했지만, 아이들은 그리 즐겨먹지 않는다. 어른(할머니나 할아버지)들은 아이한테 고기를 먹여야 잘 큰다고 말씀하지만, 세 살 작은아이는 어금니 오롯이 나지 않아 고기를 못 씹고 다 뱉으며, 여섯 살 큰아이는 고기를 못마땅해 하는 눈치이다.


  큰아이와 작은아이 어릴 적에 풀물을 갈아 참 오래 먹이고 함께 먹었다. 겨울에는 당근물을 갈아 참 오래 먹이면서 함께 먹었다. 아이들이 풀물을 잘 안 먹으려 하기는 했지만, 단것 함께 타거나 당근 함께 갈면 아주 잘 먹었다. 당근물은 그야말로 꿀떡꿀떡 잘 먹었다. 또 하나, 우리 식구는 모두 예방주사를 하나도 안 맞는다.


  옆지기와 내가 풀을 으레 먹고, 밥상에도 언제나 집 둘레에서 뜯은 풀을 올려서 함께 먹는다. 큰아이는 어머니 아버지와 함께 풀먹기가 익숙하다. 말랑말랑한 곤약을 즐겨먹는다. 작은아이 어금니 오롯이 나지는 않았지만, 가끔 풀 작게 잘라서 입에 넣어 본다. 아직 많이 먹지는 못하나, 조금씩 주면 잘 씹어서 넘긴다고 느낀다.


  가끔 바닷물고기 몇 마리 장만해서 밥상에 올리기도 한다. 아이들은 스스로 바닷물고기에 손을 뻗지 않는다. 나와 옆지기가 살을 발라 아이들 밥그릇에 얹는다. 제법 잘 먹지만 많이 먹지는 않는다. 어느 만큼 먹으면 더 안 먹겠다 한다. 더 가끔 오징어를 데쳐서 밥상에 올리면 꽤 손을 뻗어 먹으려 들지만, 오징어도 어느 만큼 먹으면 더 손을 뻗지 않는다.


  그러면 무엇을 먹느냐 궁금해 하는 사람이 있을 텐데, 웬만한 어느 것이나 잘 받아서 먹는다. 맵지 않고 시지 않으면 잘 받아서 먹는다. 옆지기가 굽는 빵도 잘 먹고, 아버지가 끓이는 국수와 국도 잘 먹는다. 푹 끓인 무도 잘 먹고, 날무도 잘 먹는다.


  ‘아이한테 고기를 먹여야 한다’는 생각이 언제부터 퍼졌을까. 이런 생각은 누가 퍼뜨렸을까. 그리 오래지 않은 지난날 사람들은 거의 풀과 곡식과 열매만 먹었다. 참 많은 사람들이 풀과 곡식과 열매만으로 수천 수만 수십만 수백만 해를 살아왔다. 짐승을 사냥해서 고기를 얻으며 살아온 한겨레는 아니다. 풀과 나무가 몸을 살찌우고 마음을 북돋아 준 한겨레이다.


  곰곰이 생각한다. 시골에서 흙 만지며 살아가는 할매와 할배는 고기를 굳이 챙겨서 먹지 않는다. 제사를 올리거나 마을잔치 있을 때에 고기를 먹는다. 도시에서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은 바깥밥을 사다 먹든 집에서 차려서 먹든 도시락을 싸서 먹든, 으레 고기 반찬 깃든다. 회사나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은 저녁에 고기를 구우며 술 한잔 걸치기를 무척 즐긴다. 아니, 도시사람이 술 마실 적에 고기 안주 빠지는 자리가 없다.


  그래, ‘아이한테 고기를 먹여야 한다’는 생각이란, 바로 ‘시골살이 무너뜨리고 도시살이 일으켜세운’ 권력자와 기득권자가 사람들한테 시나브로 퍼뜨린 생각이 아닌가 싶다.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스스로 땅을 일구어 풀과 나무를 돌보면서 풀·곡식·열매만으로 밥살림 꾸리기 어렵다. 아니, 이렇게 밥살림 꾸리자면 시골사람보다 품을 훨씬 많이 들여야 하며, 품을 훨씬 많이 들이더라도 제철에 제 풀과 곡식과 열매 먹기란 만만하지 않으며, 돈이 퍽 든다고 할 만하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도시살이에 길들면서 도시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하려고, 사람들이 도시를 떠나 시골에서 스스로 살림 꾸리며 ‘홀로서기’를 하지 못하게 하려고, 사람들이 도시 문명과 물질을 잔뜩 누리면서 중앙정치와 중앙행정 틀에서 못 벗어나게 하려고, 사람들이 크고 넓으며 아름다운 삶을 바라보지 못하도록 가로막으려고, 사람들이 도시에서 ‘돈만 버는 삶을 쳇바퀴 돌듯 얽매이도록 내몰려’고, 아이한테 고기를 먹여야 한다는 생각을 심으면서 어른부터 스스로 고기에 길들고 고기에 젖어들며 고기에 물드는 삶을 뿌리내리도록 하는구나 싶다.


  시골사람은 어쩌다 한 번 닭 잡아서 먹어도 배가 부르다. 시골에서 어쩌다 한 번 잡는 닭 한 마리로 여러 식구 이틀쯤 먹을 수 있다. 4346.5.27.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아빠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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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05-27 10:56   좋아요 0 | URL
밥상이 절로 몸과 마음에 생기를 흠뻑 돋을 듯 합니다. ^^
이모저모 골고루 밥 한 그릇, 뚝딱 비우고 싶군요.
함께살기님 글을 읽으니
소재가 아주 극단적이긴 하나 결국은 체제에 길들여 진다는 것이 얼마나
끔찍한 일인가를 정말 끔찍하게 보여준,
마르틴 하르니체크의 <고기>,가 생각납니다.

숲노래 2013-05-27 11:01   좋아요 0 | URL
음... appletreeje 님이 말씀하신 그 책을 찾아보니...
무척 상징 짙은 작품이라고 느끼면서도
쉽사리 읽기 어렵겠구나 싶기도 하네요.
@.@
 

나무와 함께 있으면

 


  아이들과 무엇을 할 때에 가장 즐겁고 신날까 하고 돌아본다. 바다에 갈 적에, 마을 빨래터에서 물놀이 할 적에, 들길을 거닐 적에, 마당에서 함께 놀 적에, 피아노를 칠 적에, 나란히 엎드려 그림을 그릴 적에, …… 참 좋다. 옆지기는 숲에 깃들어 숲바람 마실 적에 아주 좋다고 한다. 그러면 나는? 곰곰이 생각하니, 나는 아이들과 우람한 나무 곁에 서서 나무내음 맡고 나무살결 어루만지면서 함께 있으면 아주 좋다. 나무그늘에 드러누워 한잠 자도 좋고, 아이들이 나무를 타며 노는 모습 지켜보아도 좋다.


  문득 생각한다. 우리 아이 때문이 아니라, 나부터 어릴 적에 나무타기 몹시 좋아했다. 어디까지 올라갈 수 있을까 어림하며 되게 높이 올라간 적 있다. 되게 높이 올라간 다음 어떻게 내려와야 좋을는지 몰라 한참 애먹기도 했고, 미끄러지듯 떨어지며 땅바닥에 쿵 하고 엉덩방아 찧은 적도 있다. 올라갈 때에는 몰랐지만, 내려올 때에는 붙잡을 것이 거의 없더라. 어쩌면 나는 내가 어릴 적 나무를 타며 놀던 모습을 내 아이한테서 새롭게 읽으면서 사진으로 한 장 두 장 담는다 할는지 모른다. 스스로 누린 아름다운 삶을 아이들이 누리는 아름다운 삶에 비추어서 사진을 찍는다고 할까.


  옆지기는 어린 나날 숲에서 놀던 일이 오래도록 가슴에 아로새겨지면서 숲마실을 아주 좋아하리라 느낀다. 나는 숲 없는 도시 한복판에서 태어나 자란 터라, 골목동네에서 우람한 나무 만나 나무를 만지고 나무를 타면서 논 일이 오래오래 깊이깊이 아로새겨졌다고 느낀다. 나무를 보면 설레고, 나무를 쓰다듬으면 따스하며, 나무를 떠올리면 온몸이 즐겁다. 4346.5.26.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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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05-26 22:58   좋아요 0 | URL
샤름벼리가 어른이 되었을 때,
이 사진들을 보며 얼마나 행복해할지..절로 아름답습니다. ^^

숲노래 2013-05-26 23:26   좋아요 0 | URL
어린이인 오늘도 즐겁게 놀아야지요~
날마다 어여쁜 사진
적어도 한 장씩은 찍자고 하는 마음으로
하루하루 살아간답니다 @.@
 

지켜보기

 


  큰아이가 작은아이를 지켜본다. 나는 큰아이와 작은아이를 옆지기와 나란히 지켜본다. 서로서로 지켜본다. 즐겁게 놀자면서 지켜보고, 즐겁게 놀라며 지켜본다. 함께 살아가는 사이 되고, 함께 크며 튼튼하게 어깨를 겯는 동무 된다. 4346.5.24.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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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05-24 11:19   좋아요 0 | URL
서로서로 사랑의 눈길로 살뜰하게 지켜보며 사는 일은,
언제나 참 아름다워요..^^

숲노래 2013-05-24 11:48   좋아요 0 | URL
더 따스하고 더 즐겁게 마주보면서 하루하루 누릴 때에
사랑이 되는구나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