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한테 고기를 먹여야 할까

 


  아이한테 굳이 고기를 먹여야 한다고는 느끼지 않으면서 여섯 해 밥차림을 꾸린다. 바깥일을 많이 하면서 몸이 고단할 적에는 국수를 끓여 밥상에 올리곤 하는데, 우리 집에는 밑반찬이 따로 없다. 이제 두부도 거의 안 먹으며, 만두조차 아이들이 썩 좋아하지 않는다. 예전에는 탕수육을 곧잘 먹기도 했지만, 아이들은 그리 즐겨먹지 않는다. 어른(할머니나 할아버지)들은 아이한테 고기를 먹여야 잘 큰다고 말씀하지만, 세 살 작은아이는 어금니 오롯이 나지 않아 고기를 못 씹고 다 뱉으며, 여섯 살 큰아이는 고기를 못마땅해 하는 눈치이다.


  큰아이와 작은아이 어릴 적에 풀물을 갈아 참 오래 먹이고 함께 먹었다. 겨울에는 당근물을 갈아 참 오래 먹이면서 함께 먹었다. 아이들이 풀물을 잘 안 먹으려 하기는 했지만, 단것 함께 타거나 당근 함께 갈면 아주 잘 먹었다. 당근물은 그야말로 꿀떡꿀떡 잘 먹었다. 또 하나, 우리 식구는 모두 예방주사를 하나도 안 맞는다.


  옆지기와 내가 풀을 으레 먹고, 밥상에도 언제나 집 둘레에서 뜯은 풀을 올려서 함께 먹는다. 큰아이는 어머니 아버지와 함께 풀먹기가 익숙하다. 말랑말랑한 곤약을 즐겨먹는다. 작은아이 어금니 오롯이 나지는 않았지만, 가끔 풀 작게 잘라서 입에 넣어 본다. 아직 많이 먹지는 못하나, 조금씩 주면 잘 씹어서 넘긴다고 느낀다.


  가끔 바닷물고기 몇 마리 장만해서 밥상에 올리기도 한다. 아이들은 스스로 바닷물고기에 손을 뻗지 않는다. 나와 옆지기가 살을 발라 아이들 밥그릇에 얹는다. 제법 잘 먹지만 많이 먹지는 않는다. 어느 만큼 먹으면 더 안 먹겠다 한다. 더 가끔 오징어를 데쳐서 밥상에 올리면 꽤 손을 뻗어 먹으려 들지만, 오징어도 어느 만큼 먹으면 더 손을 뻗지 않는다.


  그러면 무엇을 먹느냐 궁금해 하는 사람이 있을 텐데, 웬만한 어느 것이나 잘 받아서 먹는다. 맵지 않고 시지 않으면 잘 받아서 먹는다. 옆지기가 굽는 빵도 잘 먹고, 아버지가 끓이는 국수와 국도 잘 먹는다. 푹 끓인 무도 잘 먹고, 날무도 잘 먹는다.


  ‘아이한테 고기를 먹여야 한다’는 생각이 언제부터 퍼졌을까. 이런 생각은 누가 퍼뜨렸을까. 그리 오래지 않은 지난날 사람들은 거의 풀과 곡식과 열매만 먹었다. 참 많은 사람들이 풀과 곡식과 열매만으로 수천 수만 수십만 수백만 해를 살아왔다. 짐승을 사냥해서 고기를 얻으며 살아온 한겨레는 아니다. 풀과 나무가 몸을 살찌우고 마음을 북돋아 준 한겨레이다.


  곰곰이 생각한다. 시골에서 흙 만지며 살아가는 할매와 할배는 고기를 굳이 챙겨서 먹지 않는다. 제사를 올리거나 마을잔치 있을 때에 고기를 먹는다. 도시에서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은 바깥밥을 사다 먹든 집에서 차려서 먹든 도시락을 싸서 먹든, 으레 고기 반찬 깃든다. 회사나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은 저녁에 고기를 구우며 술 한잔 걸치기를 무척 즐긴다. 아니, 도시사람이 술 마실 적에 고기 안주 빠지는 자리가 없다.


  그래, ‘아이한테 고기를 먹여야 한다’는 생각이란, 바로 ‘시골살이 무너뜨리고 도시살이 일으켜세운’ 권력자와 기득권자가 사람들한테 시나브로 퍼뜨린 생각이 아닌가 싶다.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스스로 땅을 일구어 풀과 나무를 돌보면서 풀·곡식·열매만으로 밥살림 꾸리기 어렵다. 아니, 이렇게 밥살림 꾸리자면 시골사람보다 품을 훨씬 많이 들여야 하며, 품을 훨씬 많이 들이더라도 제철에 제 풀과 곡식과 열매 먹기란 만만하지 않으며, 돈이 퍽 든다고 할 만하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도시살이에 길들면서 도시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하려고, 사람들이 도시를 떠나 시골에서 스스로 살림 꾸리며 ‘홀로서기’를 하지 못하게 하려고, 사람들이 도시 문명과 물질을 잔뜩 누리면서 중앙정치와 중앙행정 틀에서 못 벗어나게 하려고, 사람들이 크고 넓으며 아름다운 삶을 바라보지 못하도록 가로막으려고, 사람들이 도시에서 ‘돈만 버는 삶을 쳇바퀴 돌듯 얽매이도록 내몰려’고, 아이한테 고기를 먹여야 한다는 생각을 심으면서 어른부터 스스로 고기에 길들고 고기에 젖어들며 고기에 물드는 삶을 뿌리내리도록 하는구나 싶다.


  시골사람은 어쩌다 한 번 닭 잡아서 먹어도 배가 부르다. 시골에서 어쩌다 한 번 잡는 닭 한 마리로 여러 식구 이틀쯤 먹을 수 있다. 4346.5.27.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아빠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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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05-27 10:56   좋아요 0 | URL
밥상이 절로 몸과 마음에 생기를 흠뻑 돋을 듯 합니다. ^^
이모저모 골고루 밥 한 그릇, 뚝딱 비우고 싶군요.
함께살기님 글을 읽으니
소재가 아주 극단적이긴 하나 결국은 체제에 길들여 진다는 것이 얼마나
끔찍한 일인가를 정말 끔찍하게 보여준,
마르틴 하르니체크의 <고기>,가 생각납니다.

숲노래 2013-05-27 11:01   좋아요 0 | URL
음... appletreeje 님이 말씀하신 그 책을 찾아보니...
무척 상징 짙은 작품이라고 느끼면서도
쉽사리 읽기 어렵겠구나 싶기도 하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