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영어 사전 - 개정판
안정효 지음 / 현암사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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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은 삶 가로막는 영어 불지옥이기에
 [책읽기 삶읽기 68] 안정효, 《가짜 영어사전》(현암사,2000)



 896쪽에 이르는 《가짜 영어사전》(현암사)은 2000년에 처음 나오고, 2006년에 927쪽으로 다시 나옵니다. 영어로 된 책을 한국말로 옮기는 일을 하면서 느끼거나 생각한 이야기를 그러모은 《가짜 영어사전》은 책이름 그대로 한국사람이 옳지 않게 쓰거나 엉터리로 쓰는 영어 이야기를 다룹니다. 첫판이든 고침판이든 더는 찍지 않고 더는 팔지 않으니, 이 책을 찾아서 읽자면 도서관에 가서 빌리거나 헌책방을 뒤져야 합니다. 애써 다리품을 팔면서 이 책을 찾아서 읽을 사람이 얼마나 될까 모르겠습니다만, 이 책이 나오기 앞서이든 이 책이 나오고 나서이든 이 책이 자취를 감추고 나서이든, 한국사람이 영어를 잘못 쓰거나 엉터리로 쓰는 버릇은 나아지거나 달라지지 않습니다. 또한, 한국사람이 한국말을 옳게 쓰거나 바르게 쓰는 버릇이 좀처럼 들지 않아요.


.. 한국인이 외국말을 제대로 할 줄 모른다는 사실은 조금도 흠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평생 외국인과는 대화 몇 마디 나눌 기회가 없는 한국사람들끼리, 우리 말은 내버려 두고 어떤 불량 ‘외래어’를 남용하느냐 하는 현실은 마땅히 걱정해야 할 만한 점이다 … 언어는 의사 소통을 위한 수단이지, 자신을 선전하기 위한 장식품이나 목적이 아닌데도 많은 사람들이 남에게 자신이 화려한 모습으로 보이게 하기 위해 외국어를 즐겨쓰고는 한다 ..  (4∼5쪽)


 한국에서는 초등학교 어린이한테까지 정규 과목으로 영어를 가르칩니다. 한국에서는 초등학생이 아니어도 어릴 적부터 영어 그림책을 읽고 영어 영화를 봅니다. 돈이 좀 있으면 나라밖으로 퍽 오래 다녀오기도 하고 아예 몇 해쯤 살다가 한국으로 오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어릴 적부터 ‘돈을 들여 영어를 익숙하게 하도록 길들이’면, 나중에 ‘돈을 쏠쏠히 벌 일자리를 다른 사람보다 한결 수월히 거머쥘’ 수 있다고 여기니까요.

 나라에서 영어를 가르치려 하는 움직임이든, 여느 살림집에서 영어를 가르치고자 하는 몸부림이든, 서로 매한가지입니다. 나라와 여느 살림집 모두 ‘돈을 더 버는’ 데에 뜻을 둡니다. 아이들이 돈 잘 버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면서 영어를 가르칩니다.

 영어를 배워 영어책을 마음껏 읽는다든지, 영어 쓰는 나라에서 문화와 예술과 과학과 학문을 꽃피운다든지 하는 뜻으로 영어를 일찍부터 날마다 여러 시간 끝없이 가르치지 않아요.

 이런 한국땅인 터라, 아이들이 어린 날부터 배우는 다른 과목이든 무엇이든, ‘나중에 어른이 되어 돈을 더 잘 벌도록 돕는’ 쪽으로 기웁니다. 아이들이 착하게 살아가거나 참다이 어깨동무하거나 곱게 살림을 일구도록 돕는 쪽으로는 아무것도 가르치지 않아요. 아니, 어린이하고 함께 살아가는 어른부터 착하거나 참답거나 고운 길을 걷지 않습니다.

 겉치레하는 삶이기에 겉치레하는 말입니다. 겉치레하는 삶이기에 한국사람이면서 한국말을 옳게 배우지 않을 뿐더러 제대로 살피지 않습니다. 겉치레하는 삶이기에 오직 영어를 내세울 뿐 아니라, 제 삶과 살림과 사랑을 찾는 데에는 젬병이 되고 맙니다.


.. 또다른 이상한 영어인 ‘핸들을 잡다’가 우리 나라에서는 ‘직업이 운전사이다’라는 엉뚱한 뜻이 되듯, 기껏해야 ‘입에 재갈을 물린다’라는 뜻 말고는 서양인의 귀에 아무런 의미도 전달하지 못하는 ‘개그를 한다’가 우리 나라에서는 ‘내 직업은 코미디언이다’라는 놀라운 의미상의 돌연변이를 일으킨다. 그러나 ‘gag를 하다’는 ‘우억우억 게우다’라는 뜻이다 … 길거리에서 ‘핸드폰(물론 이것도 가짜 영어임)’ 따위 제품에 관해서 설명과 선전을 하는 예쁜 아가씨를 ‘나레이터 모델’이라고 부르는 까닭은 필시 그들이 ‘모델처럼 예쁘고 젊으며, 상품에 관한 설명(narration)을 하는 여자’이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그들이 하는 ‘선전’은 영어로 ‘sales pitch’이지, 전혀 ‘narration’이 아니다 ..  (16, 68쪽)


 《가짜 영어사전》을 곁에 두고 여러 해 읽으면서 곰곰이 생각합니다. 이 《가짜 영어사전》을 찬찬히 읽으면 나 스스로 잘못 길들거나 익숙한 영어가 너무 많다고 느낄 만합니다. 스스로 생각꽃을 피우면서 생각밭을 일군다면, 《가짜 영어사전》에 실리는 영어를 쓸 일이 없겠지요. 나는 ‘우리 말글 바로쓰기’라는 일을 하니까 이 《가짜 영어사전》에 실린 영어 가운데 어느 한 마디도 쓰지 않을 뿐더러, 쓸 까닭이 없기도 하지만, 이 땅에서 똑같이 한국사람으로 살아가는 숱한 이웃이나 동무는 《가짜 영어사전》에 실린 영어뿐 아니라 미처 싣지 못한 어마어마하게 많은 영어를 온갖 자리에 마음껏 씁니다.

 《가짜 영어사전》을 읽다 보면 ‘굳이 안 다루어도 될 만’하거나 ‘말풀이가 그닥 시원스럽지 못한’ 대목이 있습니다. 어쩔 수 없는 노릇인데, 안정효 님은 ‘한국사람이 잘못 쓰는 영어를 까밝혀 바로잡으려’는 데에 마음을 쓰지, ‘한국사람이 한국말을 알맞고 바르게 쓰려’는 데에는 마음을 쓰지 못해요. 그러니까, 《가짜 영어사전》은 ‘바른 영어 바른 씀씀이’를 이루자고 이야기합니다. 이 대목에서 더 나아가지 않습니다. 아니, 이 대목에서 더 나아갈 수 없겠지요. 아니, 이 대목만 짚을 수 있어도 고마운 노릇이에요. 왜냐하면, 오늘날 한국사람치고 옳고 바르며 알맞고 아름다이 한국말을 살뜰히 익혀서 알뜰히 쓰려고 마음을 기울이지 않거든요.


.. ‘르뽀’는 영어가 아니라 프랑스어의 ‘reportage’를 일본 글자로 표기한 다음 앞부분을 잘라서 쓰던 말을 한국에서 수입해서 사용하는 반토막 언론 용어이다 … ‘-ment’는 ‘statement’나 ‘comment’ 같은 단어의 꼬리에 붙는 접미사로서 혼자서는 별다른 의미가 없기 때문에 전혀 단어 노릇을 못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에서는 방송국에만 가면 여기저기서 ‘멘트’가 불티나게 팔려 나간다 … 정작 영어 ‘ment’는 ‘말’이라는 단어 가운데 ‘ㄹ’ 받침 정도에 해당한다 … 대한민국에서는 모든 차에 ‘캐비넷’이 달렸다. 서양사람들이 들으면 놀라 자빠질 노릇이지만, 진짜다 ..  (181, 247, 588쪽)


 ‘멘트’라는 영어이든 ‘멘토’라는 영어이든 ‘멘토링’이라는 영어이든 공무원부터 진보 지식인까지 마음껏 쓰는 한국입니다. 진보 지식인이든 보수 지식인이든 수구 지식인이든 누구이든, 한국말을 한국말다이 아끼거나 사랑하지 않습니다. 제도권학교 일꾼이든 대안학교 일꾼이든 이런 영어를 영어로 여기지 않습니다. ‘한국말로 마땅히 쓸 낱말이 없다’고 여기거나 ‘한국말로 사랑스레 나타낼 생각이 없다’고 할 만합니다.

 ‘캐비넷’이든 ‘핸드폰’이든 엇비슷한 모양새입니다. 영어를 영어다이 배우지 않거나 못하니까 《가짜 영어사전》을 써서 다룰 만큼 한국사람 스스로 엉터리 말을 자꾸 씁니다. 잘 살필 수 있다면, 《가짜 영어사전》에 실린 ‘가짜 영어’는 ‘거짓 영어’나 ‘콩글리쉬’가 아닙니다. ‘엉터리 말’입니다. 잘못 쓰고 아무렇게나 쓰는 ‘엉터리 말’일 뿐입니다.

 그러니까, 한국사람이 엉터리로 쓰는 말마디 가운데 ‘영어 꼴인 말마디’를 그러모았다 할 수 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 ‘알파벳으로 적는 엉터리 말’을 다루는 《가짜 영어사전》이에요.

 안정효 님은 ‘한국사람이 영어를 쓸 때에 알맞고 바르게 영어를 쓰기’를 바랍니다. 애써 영어를 쓰지 않아도 될 자리에 영어를 쓰는 모습까지 꾸짖지 않습니다. 영어를 얼토당토않게 쓴 자리를 ‘올바르며 사랑스럽고 알맞게 가다듬을 한국말’이 무엇인가를 돌아보지 않습니다. 드문드문 다루기는 하지만, 한국말을 깊이 생각하거나 톺아보지는 않아요.

 첫판이든 고침판이든, 어쩌면 앞으로 다시 나올는지 모르는 새판이든, 《가짜 영어사전》이 한국말답게 쓰는 한국말을 더 헤아릴 수 있어야 비로소 이 뜻있는 책이 뜻있게 읽히면서 사람들 말매무새와 말씀씀이를 추스르는 도움책으로 자리잡으리라 봅니다.


.. 우리 나라에서 널리 유행하는 가짜 영어의 생태 가운데 하나가 용법의 한계와 경계를 넘어서는 ‘크로스오버’이고, ‘투 톱’의 경우도 마찬가지여서, 스포츠에서만 머물지 않고 정치계로까지 진출했다 … ‘프로포즈’는 동사이고, 흔히 사용하는 ‘프로포즈하다’라는 표현은 ‘청혼하다하다’라는 소리가 된다. 정확히 말하려면 ‘프로포잘하다’가 되어야 한다 … 〈이소라의 프로포즈〉도 ‘이소라의 프로포잘하다’라는 이상한 뜻이 담긴 제목이다 … ‘egg fry’를 제대로 된 영어로 고치면 ‘fried egg’이다 ..  (678, 751∼752, 873쪽)


 영어에 미친 사람들 밑뿌리를 생각해 봅니다. 영어에 미친 사람들은 영어에만 미쳤다기보다 돈에 미치고 도시에 굶주리며 미국에 목매달지 않느냐 싶습니다. 내 이웃을 더 사랑하려고 영어를 배우지는 않으며, 지구별 모든 이웃을 아끼려고 영어를 익히거나 즐겨쓰거나 껴안는 한국사람이라고는 느끼기 어렵습니다.

 영어에 눈멀기 앞서 참삶을 바라보지 못합니다. 영어에 목매달기 앞서 참사랑을 보듬지 않습니다. 영어에 사로잡히기 앞서 참사람이 되려 힘쓰지 않습니다.

 영어를 몰라도 좋은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어요. 영어를 제대로 못해도 착한 사람으로 지낼 수 있어요. 영어를 안 배워도 고운 사람으로 어깨동무하며 활짝 웃을 수 있어요. (4344.7.16.흙.ㅎㄲㅅㄱ)


― 가짜 영어사전 (안정효 씀,현암사 펴냄,2000 첫판,2006 고침판/2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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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오웰 - 동물농장.1984년 e시대의 절대문학 6
조지 오웰 원작, 박경서 지음 / 살림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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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지 오웰을 읽으면서 즐거운 까닭
 [책읽기 삶읽기 67] 박경서, 《조지 오웰 (읽기의 즐거움)》(살림,2005)



 조지 오웰 님 책이 여러 출판사에서 여러 가지 판으로 나옵니다. 예전에도 이러했고 오늘날에도 이러합니다. 조지 오웰 님 책 가운데 《동물농장》과 《1984》가 여러 사람 번역으로 나올 뿐 아니라, 《위건부두로 가는 길》처럼 당신 스스로 밑바닥 삶을 몸소 겪으며 적바림한 이야기도 여러 사람 번역으로 나옵니다.

 중·고등학교에서는 일찍부터 추천·명작도서로 손꼽히는 조지 오웰 님 책입니다. 논술을 헤아리든 독후감 숙제를 써야 하든, 이 나라 푸름이라면 조지 오웰 님 책 한 권쯤 읽고 느낌글을 써 본 적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문득 궁금합니다. 거의 모든 푸름이라 할 만한 이 땅 아이들이 조지 오웰을 읽기는 읽는데, 조지 오웰이 왜 글을 썼고 무슨 글을 썼으며 어떻게 글을 썼는지를 함께 느끼거나 받아들이려나요.

 곰곰이 돌이키면, 조지 오웰뿐 아니라 김동인이든 이효석이든 김유정이든 황순원이든 서정주이든 윤동주이든 한용운이든 이육사이든 신경림이든, 학교에서 읽으라 시키면 읽고, 논술시험 공부를 하라 하면 공부를 하곤 합니다. 모르는 노릇이지만, 푸름이 스스로 조지 오웰을 알아채거나 김유정을 알아내는 일이란 없겠지요. 푸름이 스스로 책방마실을 하며 여러 가지 책을 찬찬히 돌아보다가 조지 오웰에 흠뻑 젖어든다든지, 신동엽이나 김수영한테 살며시 녹아든다든지 하는 일이란 있을까요.


.. 독자들은 작품을 직접 읽어 보지 않고 그런 식으로 내용을 알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그들은 내용을 알고 있다는 이유로 그 소설을 읽어 보았다는 착각에 빠진다 … 오웰은 인간이 인간을 억압하는 모든 형태의 이데올로기나 사회를 거부하고 거기에 과감히 맞선 작가이다 ..  (10∼11쪽)


 번역을 하는 박경서 님은 《조지 오웰 (읽기의 즐거움)》(살림,2005)을 내놓습니다. 조지 오웰 님 책을 한글로 옮기면서 느끼거나 생각하거나 깨달은 이야기를 곰곰이 적바림합니다. 조지 오웰을 더 잘 읽거나 제대로 알아채자는 이야기보다는, 조지 오웰이 어떠한 나라에서 어떻게 살면서 어떠한 글을 어떻게 써서 어떠한 사람한테 어떻게 읽히고 싶었는가를 차근차근 들려줍니다.

 예전에 나온 책을 헌책방에서 찾아내어 읽든, 요즈음 다시 나오는 책을 새책방에서 마주하며 읽든, 조지 오웰 님 글자락을 하나하나 더듬으면, 박경서 님이 《조지 오웰 (읽기의 즐거움)》에서 적바림하듯이 “하층민들의 입장이 되어 그들의 영혼까지 침투해 그들의 삶을 느끼고 싶어” 했습니다. 아마, 예나 이제나 이렇게 밑바닥 사람들하고 뒤엉킨 채 지낸 삶을 글로 쓴 이는 몹시 드물거나 거의 없다 할 만합니다. 으레 ‘밑바닥 사람은 이렇게 살겠거니’ 하고 생각하는 대로 쓰거나 ‘귀동냥으로 들은’ 이야기를 쓰거나 ‘나도 예전에 이처럼 가난해 보았다’고 하는 이야기를 쓰기 일쑤예요. ‘바로 오늘 가난하게 살아가며 힘들게 글을 쓰는’ 오늘날 글쟁이는 거의 없다 할 만합니다.

 그러나 어떤 이는 묻겠지요. 요즈음 글을 쓴다는 사람치고 돈을 많이 버는 이가 몇이나 되느냐고, 요즈음 글을 쓰는 사람이야말로 몸소 가난한 채 글을 쓰는 셈이 아니냐고.

 그렇지만 스스로 얼마나 어떻게 가난한가를 찬찬히 밝히는 ‘글을 쓰는 즐거움’을 나누는 사람은 좀처럼 보이지 않습니다. 더욱이, 가난이 왜 가난이며, 가난한 삶이란 어떠한 삶이요, 이 가난한 삶을 누리는 내 나날이 얼마나 빛나는가를 곰곰이 돌아보며 글을 쓰는 사람은 웬만해서는 나타나지 않습니다. 집에서 일하고 살림하는 나날을 가만히 옮겨적거나 찬찬히 되살리도록 글을 쓰는 사람도 거의 찾아볼 길이 없어요.


.. 그의 이런 행동은 문학 활동을 염두에 둔 것이기도 했지만, 가난한 사람들의 실제 삶 속에 들어가 봄으로써 그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진정 알고 싶었으며, 그들의 고통과 경험을 함께 나누고 싶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 그는 그들이 겪는 고통을 함께 나누고 싶었고, 또 그것을 세상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었다 … 제국주의가 식민지 사람들을 노예로 만드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그가 배운 더 큰 교훈은 그 제도가 주인들마저도 끝없이 노예화시킨다는 사실이었다 … 그는 중산층으로서 어떤 우월감을 지니고 한 걸음 떨어져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하층민들의 입장이 되어 그들의 영혼까지 침투해 그들의 삶을 느끼고 싶어했고, 나아가 그러한 사실을 사람들에게 전달하고자 했다 ..  (29∼30, 40, 44쪽)


 조지 오웰 님은 ‘밑바닥으로 몸소 내려가서’ 글을 썼습니다. 그런데 잘 모르겠어요. 조지 오웰 님 책을 한글로 옮기는 분들도 조지 오웰 님처럼 ‘밑바닥으로 몸소 내려가서’ 번역 일을 할까요. 조지 오웰 님 책을 읽는 사람도 조지 오웰 님처럼 ‘밑바닥으로 몸소 내려가서’ 책을 읽을는지요.

 밑바닥 사람들 밑바닥 삶자락 이야기를 책으로 읽는다면서 정작 나 스스로 밑바닥 아닌 하늘 높은 구름에 앉아서 내려다보는 듯하는 매무새는 아닐까 궁금합니다. 삶과 책과 앎과 함이 한동아리로 이어지는 일이란 거의 없는 오늘날이 아닌가 궁금합니다. 책은 많이 읽고 책을 즐겁게 읽는다지만, ‘읽기로 끝’이고 ‘읽은 책을 곰삭여 내 삶을 거듭나도록 이끄는 길 찾기’는 안 하는 노릇 아닌가 궁금합니다.

 조지 오웰 님한테는 ‘내려가야 할 밑바닥’이 있습니다. 밑바닥에 있는 사람한테도 ‘더 내려갈 밑바닥’이 있을는지 모르나, 밑바닥에 있는 사람한테 조지 오웰 님은 ‘위에서 살짝 찾아와 한동안 머물다가 다시 위로 올라갈’ 사람입니다.

 오늘날 이 땅에 처음부터 밑바닥이면서 앞으로도 밑바닥이요 언제까지나 밑바닥인 채 살림을 꾸리고 글을 쓰며 사람을 사귀는 글쟁이나 지식인은 얼마쯤 될까요.


.. 오웰을 제외한 20세기 전반기의 영국 소설가들은 대부분은 인간의 소외와 내면세계의 탐구를 주된 연구대상으로 삼았을 뿐, 당대 사회와 정치에 대한 관심은 거의 없었다 … 오웰이 그의 정치적 글쓰기에서 보여준 중심 사상은 ‘문학이란 경험을 기록함으로써 인간의 역사적 발전에 한몫을 하고, 진리는 반드시 믿어져야 하며, 작가는 진리인 것을 신뢰성·정확성 및 신념을 가지고 독자들에게 말해야 한다는 것으로 요약될 수 있다 … 특혀 현대 전쟁의 본질에 대해 상세히 적혀 있는데, 현대 전쟁이란 영토의 정복이나 그 방어를 위한 것이 아니고, 자체의 사회구조를 공고하게 유지시키기 위한 것이다 ..  (70, 77, 124쪽)


 조지 오웰을 좋아하면 조지 오웰을 읽으면 됩니다. 사람들이 많이 읽기에 읽을 까닭은 없습니다. 노신이든 루쉰이든 좋아한다면 노신이든 루쉰을 읽으면 됩니다. 사람들이 널리 사랑하니까 읽을 까닭은 없어요. 서정주를 읽든 한비야를 읽든 법정을 읽든 박완서를 읽든 대수롭지 않습니다. 이원수를 읽든 권정생을 읽든 이오덕을 읽든 임길택을 읽든 대단하지 않습니다. 어느 분 어느 책을 읽더라도 내 삶으로 파고드는 이야기 속살을 잡아채어 내 삶이 아름다이 꽃피울 참답고 착한 길을 잘 느끼며 몸소 슬기롭게 일굴 수 있으면 넉넉합니다.

 조지 오웰을 읽으며 즐겁다면, 조지 오웰이 살아가며 글을 쓰던 매무새가 무엇을 하려는 몸짓이었나를 깨달으면서 내 하루를 더 알차게 사랑하는 길을 찾겠다는 뜻입니다. 《삼국지》를 읽으면서 가슴이 벅찼으면 벅찬 가슴 그대로 내 삶길을 사랑하면 돼요.

 책은 어디에서든 책이고, 꿈은 어디에서도 꿈입니다. 내가 발을 디딘 터전을 옳게 읽으면서 내 이웃과 동무가 몸을 바치는 보금자리를 바르게 어깨동무할 수 있으면 즐겁습니다. 책을 읽는 까닭은 나와 이웃을 참답게 사랑할 길을 찾고 싶기 때문입니다. 동무를 사귀며 날마다 밥을 먹고 똥을 누는 까닭은 한 번 선물받은 고마운 목숨을 착하게 사랑하면서 누리는 길을 서로 나누고 싶기 때문입니다.

 더 좋은 삶은 없고, 더 나은 책 또한 없습니다. 내 좋은 삶이 있고, 내 좋은 이웃과 동무가 있습니다. (4344.7.13.물.ㅎㄲㅅㄱ)


― 조지 오웰 (박경서 글,살림 펴냄,2005.6.30./79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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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멈춰선 파리의 고서점 - 셰익스피어 & 컴퍼니
제레미 머서 지음, 조동섭 옮김 / 시공사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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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은 어디에서든 삶
 [책읽기 삶읽기 65] 제레미 머서, 《시간이 멈춰선 파리의 고서점》(시공사,2008)


 프랑스 파리에 있다고 하는 헌책방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에서 보낸 나날을 돌이키면서 적바림한 이야기책 《시간이 멈춰선 파리의 고서점》(시공사,2008)을 읽으면서 생각합니다. 책에서는 ‘고서점’이라는 낱말을 쓰지만, ‘고서(古書)’와 ‘헌책’은 다르지 않습니다. ‘헌책’을 한자말로 옮기면 ‘古書’가 될 뿐입니다. 때로는 ‘옛책’이라 할 만할 텐데, 수백 해를 묵은 오래된 책, 말 그대로 옛책을 사고파는 일은 퍽 드물고, 퍽 가까운 요즈음 책을 사고팔 터이니 ‘헌책방’이라는 이름을 써야 걸맞습니다.

 한국사람은 헌책방을 헌책방이라는 이름 그대로 쓸 줄 모릅니다. ‘헌-’이라는 앞가지를 붙이면 어딘가 께름하다고 여깁니다. ‘헌것’이나 ‘헌옷’이라 할 때에는 이제 못 입을 만큼 지저분한 옷이라고 여기고 맙니다. ‘헌-’이라는 낱말은 “오래되어 처음 모습 같지 않은”을 가리킬 뿐이지, “오래되었기에 너덜너덜하거나 못 쓰게 된”을 가리키지 않습니다. 낱말뜻부터 올바르게 헤아리지 않아요.

 생각해 보면, 오래된 책이 아니더라도 한 번 사람 손길을 타면 “처음 모습 같지 않”습니다. 손자국이 묻거나 손때를 타니까요. 모든 책은 헌책이 돼요.

 옷은 ‘헌옷’입니다. 굳이 한자말로 ‘구제(舊製)’라 적거나 영어로 ‘빈티지(vintage)’라 적어야 멋이 나지 않습니다. 게다가 ‘빈티지’는 포도술을 가리키는 영어입니다. 껍데기를 씌운대서 빛이 나지 않는 말이요 옷이며 책입니다. 겉치레를 해야 남다르거나 돋보이거나 훌륭한 사람이 아닙니다. 있는 그대로 사랑스러울 속살이거나 알맹이여야 합니다. 꾸밈없이 아름다운 넋이거나 얼이어야 해요.


.. 유럽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올라탐으로써 신체적인 위협은 피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아직 풀어야 할 매듭들이 남은 채였다. 우선 돈이었다. 신문사의 급여는 후했고 부수입으로 범죄 실화 책을 써서 들어오는 인세도 있었다. 그런데 어찌하다 보니 그 돈을 다 써 버렸다. 매일 밤 술과 음식으로 흥청거렸고, 햇살 좋은 섬으로 겨울 휴가를 갔으며, 꼭 필요하지도 않은 독일산 자동차를 몰았고, 전자 제품을 말도 안 되게 사들였다. 거의 틀지 않는 CD가 장식장 몇 개를 차지했다. 어느 해에는 설거지하는 게 귀찮아서 일회용 접시와 포크, 컵을 잔뜩 사들이기도 했다 ..  (22쪽)


 이야기책 《시간이 멈춰선 파리의 고서점》을 쓴 제레미 머서 님은 캐나다에서 신문기자로 일할 때에는 한껏 껍데기와 겉치레로 둘러싸인 채 지냈습니다. 아니, 껍데기만 볼 줄 알고 겉치레만 할 줄 알았습니다. 글쓴이 둘레에는 글쓴이와 매한가지라 할 만한 사람들만 있었고, 서로서로 얼마나 껍데기요 겉치레인가를 깨닫지 못할 뿐 아니라, 아주 마땅하며 즐겁고 넉넉한 삶이라고 여기기까지 합니다.

 잘 된 일인지 안 된 일인지 알 수 없으나, 글쓴이는 캐나다에서 흥청망청 누리던 삶을 더 이을 수 없습니다. 얼른 몸을 빼내어 멀리멀리 내빼야 합니다.

 신문사에 사표를 내고 빈털터리인 채 비행기에 올라타고 프랑스 파리로 갑니다. (그런데 빈털터리가 되었다면서 어떻게 프랑스 파리로 가서 떨꺼둥이가 될 생각을 했다지?) 스스로 겉멋을 버리지 못했으니 프랑스 파리로 갔을 테지요. 스스로 겉멋이나 껍데기를 벗을 줄 알았다면, 글쓴이는 캐나다 깊은 숲속이나 두메나 멧골로 들어갔으리라 생각합니다.

 프랑스 파리로 건너가서 센 강가를 거닐다가 헌책방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를 만났기에, 이곳에서 여러 해 지낸 삶을 돌이키면서 《시간이 멈춰선 파리의 고서점》을 씁니다. 모르는 노릇이지만, 캐나다 깊은 숲속에 깃들면서 너른 자연이 베푸는 따사로운 품을 받아들일 수 있었으면 ‘새로운 윌든’이나 ‘새로운 초원의 집’을 썼을 수 있겠지요.


.. 열심히 공부하는 아블리미트가 사라지자 서점은 더욱 가벼워진 듯했다. 그리고 이후 며칠 동안 나는 서점이 정말 확실히 가벼워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유럽과 북미의 대학에서 여름방학이 시작되었고, 열차를 가득 메운 배낭 여행객들이 파리에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했다.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는 여행 안내서마다 실려 있었으므로, 필히 보아야 할 관광 목록에 서점을 넣고 30초 만에 서점을 휙 둘러보는 관광객들이 끊이질 않았다 ..  (284∼285쪽)


 삶은 어디에서든 삶입니다. 역사가 깊은 책방 한 곳에서도 삶이고, 역사가 짧은 책방 한 곳에서도 삶입니다. 프랑스 파리에 있다는 이름난 헌책방도 삶이며, 제주섬이나 춘천히 한켠에 곱게 자리한 헌책방도 삶이에요. 제레미 머서 님이라면, 프랑스 파리에서뿐 아니라 진주시나 청주시에 깃든 헌책방에서 일꾼으로 여러 해를 보냈더라도 《시간이 멈춰선 파리의 고서점》을 썼으리라 생각합니다. 아니, “하루하루 살아숨쉬는 헌책방”을 썼을는지 모릅니다.

 시간은 멈출 수 없거든요. 시간은 고일 수 없거든요. 시간은 제자리걸음을 하지 않거든요.

 시간은 흘러요. 시간은 달라져요. 시간은 언제나 새롭습니다. 백 해 앞서 누군가 만든 책이라 하더라도 백 해 앞선 때를 살던 사람이 이 책을 읽을 때하고, 백 해가 흐른 오늘날 내가 이 책을 읽을 때에는 맛과 멋과 깊이와 느낌이 아주 다릅니다. 책이 책 그대로가 아니라 삶이기 때문입니다.


.. 지난 1월 비 오는 일요일에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를 발견한 게 얼마나 행운이었는지 모른다고 말했다. 조지는 내가 더는 말을 못하게 막았다. “있잖은가, 내가 항상 이곳에 대해 꿈꾸는 게 있어. 저 건너 노트르담을 보면, 이 서점이 저 교회의 별관이라는 생각이 들곤 하거든. 저곳에 맞지 않는 사람들을 위한 별관.” ..  (313쪽)


 헌책방이기에 더 훌륭하지 않습니다. 도서관이라서 더 아름답지 않습니다. 새책방도 좋고 책쉼터도 좋으며 북카페도 좋습니다. 책으로 삶을 꾸리는 책삶인 책꾼이라면 어떠한 책터가 되더라도 좋아요.

 내가 쉬고 내가 살며 내가 일할 곳에 무엇이 있는지 돌아보면 됩니다. 내가 놀며 내가 어울리고 내가 발을 디딘 곳에 무엇을 놓을는지 생각하면 됩니다. (4344.7.4.달.ㅎㄲㅅㄱ)


― 시간이 멈춰선 파리의 고서점 (제레미 머서 글,조동섭 옮김,시공사 펴냄,2008.1.21./1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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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수컷은 필요 없어 지식여행자 5
요네하라 마리 지음, 김윤수 옮김 / 마음산책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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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 수컷’은 키울 값어치가 없을까
 [책읽기 삶읽기 43] 요네하라 마리, 《인간 수컷은 필요 없어》



 일본에서 나온 책이름은 “사람 수컷은 안 키우나?”였다는데, 한국에서 나오는 책이름은 “인간 수컷은 필요 없어”가 되고 만, 요네하라 마리 님 산문책을 읽으며 생각한다. 책을 다 읽고 나서도 책이름이 자꾸만 마음에 걸린다.

 “사람 수컷은 안 키우나?”하고 “인간 수컷은 필요 없어”는 아주 다르다. 뜻과 느낌과 마음과 생각과 매무새가 모두 다르다. 살아가는 결과 어우러지는 무늬가 다르다.

 요네하라 마리 님 책에 이런 이름을 붙여야 어울린다고 생각했을까. 요네하라 마리 님 같은 사람한테 이런 책이름을 달아야 알맞다고 여겼을까. ‘수컷인 사람’을 키울 겨를이 없이 통역 일과 글쓰기로 바쁜 요네하라 마리 님이니, 집에서 ‘수컷인 사람을 키울’ 수 없을 텐데, 이러한 대목을 제대로 살피지 못한 채 붙인 이름이라고 느낀다.

 ‘사람 수컷’은 손이 좀 많이 가는가. ‘어른인 사람 수컷’은 ‘아이인 사람 수컷’과 견주어 손에 얼마나 많이 가는가. 아이는 어버이가 차린 밥을 고맙게 받아먹고, 아기는 어머니가 물리는 젖을 즐거이 빨아먹는다. 어른인 사람 수컷은 요 투정 저 투덜로 골을 부리기 일쑤이다. 어른인 사람 수컷 가운데 스스로 밥과 옷을 챙기거나 집안을 쓸고 닦거나 치우는 이는 얼마나 될까. 스스로 제 삶을 건사하는 ‘사람다운 사람 수컷’을 찾자면 얼마나 힘을 들이고 품을 들여야 할까. 애써 애먼 품을 들였다가 나중에 빈 껍데기인 줄 알아채면 얼마나 기운이 빠질까.

 글쓴이 요네하라 마리 님한테 ‘사람 수컷이 쓸모없을’ 까닭이 없다. 굳이 ‘사람 수컷은 안 키우며 즐거이 누리는’ 삶이다.


.. “그 어떤 보석도 이보다 아름답지는 못해.” 너무 흔해빠진 비유에 나 스스로도 부끄러웠다. 이런 눈동자가 바라보는데 거역할 자가 그 어디에 있을 것인가 ..  (47쪽)


 고양이나 개 아닌 사람한테서 ‘맑은 눈빛과 밝은 눈망울’을 느낀다면, 요네하라 마리 님은 틀림없이 ‘사람 수컷도 참 좋구나’ 하고 받아들이리라 본다. 다만, 이렇게 느낄 일이 거의 없었으니 사람 수컷은 안 키웠겠지.

 생각해 볼 노릇이다. 사람 수컷은 집일이나 집살림에 눈길을 안 둔다. 집안에 사람 수컷을 들이면, 이때부터 사람 암컷은 집일과 집살림에다가 사람 수컷을 건사하는 몫을 맡고, 나중에 아이를 낳을 때면 집일과 집살림에다가 사람 수컷이랑 아이 돌보기까지 도맡아야 한다. 일본이든 한국이든 미국이든 크게 다르지 않다고 느낀다. 사람 수컷이 회사일을 그만두고 집에서 아이를 도맡아 돌본다든지 집일과 집살림을 힘껏 보살피려고 하는 일이 얼마나 될까. 1억 연봉을 집어치우고 집에서 아이를 사랑하는 길을 걸으려는 사람 수컷이 있기나 있을까.


.. “그래서 중성화수술, 즉 에리는 4개월쯤에 피임수술, 우리는 6개월쯤에 거세수술을 하는 편이 좋겠네요.” “뭐라고요?” “마리 씨, 피임과 거세를 한자로 어떻게 쓰는지 아세요?” “아아, 네.” “피임은 임신을 피하다, 거세는 생식력을 없애는 거죠.” “하지만 선생님, 좀 가여운데요. 조금은 경험하게 해 주고 싶다고 할까…….” “흠, 경험하게 해 주고 싶다라. 무슨 말씀이신지 잘 알죠. 저 역시 이 녀석들 몸에 칼을 대고 싶지 않거든요.” “바로 그거예요. 자연스러운 게 좋다고 생각하거든요. 태어나면 키울 각오는 하고 있어요.” “자연스러운 거요. 네, 좋습니다. 그러면 그렇게 하시죠. 단, 녀석들은 암수니까 1년에 2∼3차례, 4∼6마리씩 낳겠죠. 태어난 새끼 고양이들이 각각 또 낳고 그 새끼들이 다시 낳으니까, 뭐, 1년 후에는 대략 64마리 정도 될까요. 다음해에도 계속 늘어나겠죠. 그 정도 키울 각오가 있으시면 저는 전혀 말리지 않습니다.” ..  (68쪽)


 《인간 수컷은 필요 없어》(마음산책,2008)라는 책은 책이름을 옳게 바로잡아야 한다고 느낀다. 책이름부터 옳게 바로잡으면서 이 책이 우리들한테 들려주려는 이야기를 곱게 아로새기도록 도와야 한다고 느낀다.

 사람 수컷이 없으면 사람 암컷도 새로 태어나지 않는다. 사람 수컷이 쓸모없거나 도움이 안 된다는 이야기책이 아니라, 맑지 않고 밝지 않을 뿐더러 사랑스럽지 않은 길을 자꾸자꾸 걷는 숱한 사람 수컷이 바보스러운 굴레를 벗어던지기를 바라는 이야기책이라고 여긴다면, 출판사에서는 책이름부터 얼른 바로잡아야 한다고 느낀다.

 사람 수컷만 돌보지 않을 뿐, 맑은 목숨과 밝은 목숨과 사랑스러운 목숨을 사랑하던 삶을 찬찬히 적바림하는 《인간 수컷은 필요 없어》이기에, 이 책이름은 이 책을 가까이하려는 사람한테 너무도 높은 울타리를 세우고 만다(‘발칙한 도발’ 같은 책이름이 될 수 없다. 요네하라 마리 님은 ‘발칙한 도발’ 같은 이름을 붙이며 글을 쓰지 않았다). 집짐승 돌보기를 즐기는 사람한테뿐 아니라, 고운 목숨을 아낄 줄 아는 사람한테 예쁘게 다가설 이야기책이 되도록 하자면, 더 보드라이 마주하고 더 살가이 어깨동무할 수 있게끔, 책이름부터 하루빨리 제자리를 찾도록 해야지 싶다.


.. “잘 몰랐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일부러 오셔서 말씀해 주시니 정말 감사합니다. 이렇게 오셨으니 좀 여쭤 보고 싶은 게 있습니다만.” 하타나카 씨가 지나칠 정도로 저자세로 나가자 남자는 그다지 싫지는 않은 얼굴이었다. “뭐든 물어 보시오.” “‘먹이’라는 통역이 적절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하면 될까요?” “‘푸드’라고 하시오, 푸드.” “네, 알겠습니다.” 하타나카 씨를 따라서 통역사 여섯 명이 넙죽 인사를 하자 남자는 만족한 모습으로 돌아갔다 ..  (132쪽)


 “만족한 모습으로 돌아갔다”는 이는 ‘사람 수컷’이다. 통역 일을 하면서 만나야 하는 숱한 ‘사람 수컷’ 가운데 아름다운 이도 어김없이 있을 테지만, 아름답지 못할 뿐 아니라 바보스러워 슬픈 이가 훨씬 많으리라 본다. 짐승한테 ‘먹이’를 주지 ‘푸드’를 주는 사람이 어디 있는가. 그렇지만 사람 수컷은 짐승한테 먹이 아닌 푸드를 주라고 이야기한다.

 오늘날 한국에서도 사람 수컷은 ‘비즈니스 프렌들리’나 ‘뉴라이트’를 이야기한다. 몇몇 정치꾼 사람 수컷뿐 아니라, 문화나 예술을 한다는 사람 수컷 또한 ‘라이팅’을 이야기하고 ‘북마케팅’이나 ‘북쇼’를 이야기한다. ‘버라이어티 쇼’란 무엇일까. 이런 말을 하는 사람 수컷은 무엇을 생각할까. 아니, 생각하는 머리가 있기는 있을까. ‘뉴타운’이 엉터리라고 여긴다면 ‘에코페미니즘’이건 ‘그린마켓’이건 집어치울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만, 한국땅 사람 수컷은 그리 사랑스럽지 못하다. 그닥 맑지 못하다.

 어쩌면, 한국이라는 나라에서는 사람 수컷이 쓸모없는지 모를 노릇이다. 전쟁을 일으키는 이는 사람 수컷이요, 전쟁터에서 사람을 죽이는 이 또한 사람 수컷이며, 전쟁무기를 만들고 전쟁무기를 좋아하는 이마저 사람 수컷이다. 전쟁을 기리는데다가 전쟁기념관이나 전쟁박물관까지 만드는 이는 바로 사람 수컷이다. 기리거나 섬겨야 할 것이 그렇게 없어서 전쟁을 기리거나 섬겨야 할까. 기리거나 섬겨야 한다면, 이토록 바보스러운 터전에서도 맑고 밝게 새로 태어나는 목숨들이다. ‘들꽃 기념관’이나 ‘아기 박물관’이나 ‘나무 기념관’이나 ‘흙 박물관’을 세울 줄 모르는 사람 수컷은 그야말로 부질없고 덧없으며 값없는지 모른다. (4344.6.26.해.ㅎㄲㅅㄱ)


― 인간 수컷은 필요 없어 (요네하라 마리 글,김윤수 옮김,마음산책 펴냄,2008.8.5./1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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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인간은 전쟁을 하는가
히로세 다카시 지음, 위정훈 옮김 / 프로메테우스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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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보가 일으키는 전쟁에 바보가 휩쓸린다
 [따뜻한 삶읽기, 인문책 41] 히로세 다카시, 《왜 인간은 전쟁을 하는가》



- 책이름 : 왜 인간은 전쟁을 하는가
- 글쓴이 : 히로세 다카시
- 옮긴이 : 위정훈
- 펴낸곳 : 프로메테우스출판사 (2011.3.28.)
- 책값 : 18000원



 (1) 흙을 일구던 사람한테는


 조선이나 고려나 백제나 부여나 발해 같은 나라가 이 땅에 섰을 때에 태어났다면 무슨 일을 하며 어떻게 어디에서 살았을까 하고 곱씹어 봅니다. 일본이 이 나라로 쳐들어온 조선 무렵이라면, 그무렵에는 무슨 일을 하며 살았고, 피비린내 나는 싸움터에서 어떻게 살아남거나 죽었을까 궁금합니다. 자그마한 땅에서 고구려와 백제와 신라와 가야가 나뉘어 치고박으며 다투던 무렵에는 싸움터 병졸로 끌려가서 ‘수만 병사’라는 이름에 묻혀 주검이 되었을는지, 깊은 두메에 숨어 흙을 일구며 목숨을 이었을는지 궁금합니다.

 학교에서 배우는 역사를 들여다보면 온통 싸우고 피가 튀기던 나날입니다. 나라땅이 얼마만한 넓이였나를 살피는 역사책이라고만 느낍니다. 임금님 이름이 어떠하고, 임금님을 모시는 이름난 신하가 누구이며, 이들이 어떤 정책을 내세웠는가 하는 이야기에서 벗어나지 않는 역사책이며 역사학자입니다.

 한 나라를 버티거나 받치는 수많은 사람들 목소리나 모습은 찾아볼 수 없는 역사책인데, 이는 오늘날이라 해서 다르지 않습니다. 2010년대 여느 한국사람 살림살이를 보여주거나 담는 인문책이 있을는지요. 아니, 수많은 사람 가운데 누구를 ‘여느 수수한 삶’이라 일컬을 만한지요.

 조용히 흙을 일구던 사람들한테 싸움이란 무슨 뜻이었을까 궁금합니다. 말없이 바다와 마주하며 고기를 낚던 사람들한테 다툼이란 무슨 소리가 될는지 궁금합니다.

 고구려는 왜 백제를 넘보고, 신라는 왜 고구려를 넘보았을까요. 저마다 제 터전에서 예쁘게 살아가면 될 노릇이 아닐까요. 고대국가라느니 근대국가라느니 하지만, 이러한 나라이든 저러한 나라이든 ‘갖춘 무기’만 다를 뿐, ‘여느 수수한 흙일꾼’을 불러들여 총이나 칼이나 창을 쥐도록 한 다음, 뜻없고 값없이 죽도록 내몰았다고 느낍니다. 천리장성을 쌓느니 만리장성을 쌓느니 하지만, 무기를 갖추거나 무기를 앞세우기 앞서, 서로서로 제 보금자리를 알뜰히 사랑할 노릇이 아닌가 싶어요.


.. (베트남전정 때) 마을이 완전히 불타 버리자, 미군은 언덕 주변에 구덩이를 파고서 아직 숨이 붙어 있는 그녀를 구덩이 바닥으로 집어던지고 두 아이를 구덩이 앞에 세웠다. 그러고는 아이의 얼굴이 거의 형체가 없어질 때까지 총탄을 쏘아 벌집을 만든 뒤, 손발이 너덜너덜한 고깃덩어리가 되어 구덩이로 떨어지는 것을 지켜보았다. 곧바로 구덩이 속에서 여자의 격렬한 비명이 들려왔다. 미군은 얼른 총을 삽으로 바꿔 쥐고서 그대로 흙을 덮어 구덩이를 완전히 메우고 발로 밟다 다진 다음, 살아남은 3명의 남자를 포로로 잡아 행군을 계속하였다. 저 멀리 수풀 속에서 아기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그 아기는 오늘 밤 정글 속 맹수의 먹이가 되어 이 세상에서 사라질 것이다. 그날 석양이 질 무렵, 행군하던 부대는 도중에 미군 헬리콥터를 만나자 포로를 끌고 가라면서 마을 남자들을 넘겼다. 헬리콥터는 포로들을 태우고 하늘 높이 날아올랐지만, 잠시 후 상공에서 날카로운 비명이 사방으로 울려퍼졌다. 소리를 따라 올려다보자 헬리콥터에서 사람의 몸뚱이가 아래로 우르르 떨어지고 있었다. 그 세 구의 몸뚱이는 커다란 바위에 부딪혔고, 그 중에 하나는 머리가 잘려서 멀찌감치 튕겨 날아갔다.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같은 상황이 반복되었다 … 1975년의 인도네시아 침공 이래 격렬한 무차별 공격을 받아 온 동티모르에서는 고문과 강간이 일상다반사가 되었고, 모든 생활이 파괴된 채로 전쟁 상태가 계속됐는데, 사망자 수가 25만 명에 이른다고 전해졌다. 하지만, 이 사건은 대부분의 사람이 모르는 전쟁이다. 모두의 무관심 속에 25만 명의 사람이 살해되었지만, 동티모르가 도대체 어디 붙어 있는지 최근까지도 많은 사람들이 알지 못했다 ..  (22∼23, 139쪽)


 인문책 《왜 인간은 전쟁을 하는가》(프로메테우스출판사,2011)를 읽으며 생각에 잠깁니다. 현대전쟁이든 근대전쟁이든 고대전쟁이든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일입니다. 서로서로 죽이는 짓입니다. 그러나, ‘여느 수수한 남자 어른’이 스스로 나서서 싸움터에 나간다거나 싸움을 일으키지 않습니다. 언제나 ‘임금님’이나 ‘가장 꼭대기에 앉은 권력자’가 싸움을 일으킵니다.

 베트남이 일으킨 베트남전쟁이 아닙니다. 베트남을 식민지로 삼던 프랑스가 먼저 전쟁을 일으켰고, 프랑스 식민지에서 벗어난 베트남을 프랑스한테서 이어받아 식민지로 삼으려 하던 미국이 새삼스레 전쟁을 일으켰습니다.

 전쟁을 일으키면서 한 나라가 ‘두 갈래 믿음’을 품어 서로 쪼개지도록 내모는 힘세고 무기 많이 갖춘 큰 나라입니다. 남녘과 북녘도 매한가지예요. 한 나라 안쪽에서도 군국주의와 평화주의가 부딪히도록 내몰고, 두 나라 사이에서는 서로 무슨 주의인가에 따라 맞서도록 내몹니다.

 그런데, 자본주의라 하건 공산주의라 하건, 자유주의라 하건 사회주의라 하건, 서로서로 싸울 까닭이 없습니다. 서로서로 다른 삶이라면 서로서로 다른 삶을 사랑하고 아끼면서 보듬을 노릇입니다.

 똑같은 사람이 없습니다. 똑같은 삶이 없습니다. 다 다른 사람은 저마다 다 다른 모습과 이야기와 꿈을 사랑하거나 아껴야 합니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다르고, 여자와 남자는 다릅니다. 어른과 어린이는 다르며, 할머니와 아주머니는 다릅니다. 바닷가에서 흙을 일구는 사람이랑 들판에서 흙을 일구는 사람이랑 멧자락에서 흙을 일구는 사람은 사뭇 달라요. 다른 사람들은 다른 삶을 스스럼없이 어깨동무하면서 서로를 보살필 노릇입니다.


.. 핵무기는 대체 여태껏 무엇을 미연에 방지해 왔다는 것인가? 놀랍게도 “핵무기는 핵전쟁을 미연에 방지해 왔다.”라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 핵무기가 없으면 당연히 핵전쟁은 일어나지 않는다 … 제2차 세계대전 후부터 1983년까지 6개국이 총 약 1300개의 원수폭을 이 세상에서 실험적으로 폭발시켰고, 그 사이에 300회의 전투를 치렀지만 원수폭은 단 1개도 전장에서 폭발하지 않았다. 전장과 폭발 지점이 일치하지 않는 무기, 그것이 바로 핵무기이다. 세계의 수많은 정치가들과 군인들은 그런 효율이 0인 무기에 막대한 돈을 쏟아부었고 연구자를 투입했다 … 이만큼의 핵무기가 생산되려면 막대한 돈이 필요하다. 돈줄은 국민이 지불해야 하는 세금이다 … 거액의 돈이 미사일 제조 관련 회사로 흘러들어갈 것은 불 보듯 뻔한데, 그렇다면 국민은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  (160∼162쪽)


 먼 옛날 중국 이야기를 빌지 않고 한국 이야기를 빌어도 알 만한데, ‘멧골에 들어서면 범한테 잡아먹힌다’지만 ‘세금이 더 무서웁기에 범한테 잡아먹히더라도 멧골에 들어간다’던 옛이야기가 있습니다. 조선 때에는, 고려 때에는, 신라 때에는 어떠했을까요. 스스로 살림을 일구지 않으며 나라일을 돌본다는 임금과 신하와 심부름꾼을 거느린 정부는 세금을 거두어야 합니다. 오늘날 정부와 공공기관도 우리한테서 거둔 세금으로 정책을 펼칩니다. 여기에다가 군대를 두어야 하니 세금을 더 거두어야 하고, 군대를 더 키워야 한다니까 세금뿐 아니라 사람까지 끌려가야 합니다.


.. 1952년 3월, 마침내 벨기에의 브뤼셀에 본부를 둔 국제민주법률가협회가 이 소문을 듣고 조사단을 한국에 급파했다. 오스트리아 그라츠대학교의 교수 하인리히 브란츠바이너가 단장을 맡았고, 로마 대법원 변호사 이외에 영국·프랑스·벨기에·중국·폴란드 등 각국의 전문가들이 조사단에 동참했다. 그들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급성 콜레라·페스트·티푸스·이질 등 다수의 전염병균이 공중 낙하물에서 검출되었고, 그 낙하물은 쥐·파리·빈대·거미·투구벌레·조개·식물류 등 다양했다. 게다가 독가스탄도 잇따라 발견되었다. 조사단은 이 모든 것들이 미군의 비행기에서 떨어졌다는 걸 알고 있었으며, 1952년만이 아니라, 그 전년도에도 수 차례 사건이 발생했음을 확인한 증거를 갖고 돌아갔다 … 한국전쟁에 임한 미군은 옛 관동군 이시이 시로와 옛 나치군 발터 슈라이버의 자료를 이미 수중에 넣고 있었다 … 미국 군부가 범죄를 전범까지 통째로 사들여 세균무기 기술을 손에 넣고 있었다 … 제2차 세계대전 후에 경험한 학살사엔 한국전쟁에서 사용된 미국의 세균과 독가스 외에도 베트남 전쟁에서 미국의 고엽제 다이옥신과 독가스, 알제리 전쟁에서 프랑스의 고엽제와 독가스, 아프리카 각지의 독립전쟁에서 포르투갈의 고엽제, 앙골라 분쟁에서 남아공의 독가스 사용이 악명 높다 ..  (167∼169, 174쪽)


 전쟁은 돈 때문에 터집니다. 일본이 한국으로 쳐들어오든, 미국이 이라크로 쳐들어가든, 고구려가 중국으로 땅을 넓히려 하든, 돈을 더 거머쥐려고 전쟁을 일으킵니다. 돈을 더 거머쥐려는 전쟁은 사람들을 죽이고 죽습니다. 사람들 핏값이 모이는 자리에서 돈을 그러모읍니다. 전쟁을 일으키기 앞서 돈(세금)을 긁어모읍니다. 전쟁을 일으키는 동안 무기를 만들거나 사고팔면서 돈이 흘러넘칩니다. 전쟁을 일으켜 숱한 사람이 죽고 쓰러지면서 돈이 쌓입니다.

 나라를 지킨다고 목소리를 높이지만, 애국이요 충성이요 크게 외치지만, ‘사랑한다는 나라’에서 ‘수수한 여느 사람’이 다 죽거나 다치거나 쓰러진다면, 무엇을 사랑하고 무엇을 지키며 무엇을 돌볼 수 있을까 모르겠습니다.

 총을 든 사람 앞에서 총을 들어야 내 몸을 지킬 수 있지 않습니다. 총을 든 앞사람이든 총을 든 나라 하든 밥을 먹어야 나를 지키고 내 살림을 꾸립니다. 밥을 먹으려면 흙을 일구어야 합니다. 흙을 안 일구고 총을 만들거나 총을 쥔다 해서 밥을 먹을 수 있지 않아요. 총을 들며 ‘적한테서 나를 지킨다’고 하자면, 누군가 ‘총을 든 나와 적군 몫’으로 흙을 일구면서 밥을 마련해 주어야 합니다.

 평화는 평화로 지키거나 사랑할 뿐입니다. 군대가 생기거나 10만 병력을 일으킨다 해서 나라사랑이나 나라지킴이 되지 않습니다. 세금 짐을 덜거나 없애야 나라사랑이나 나라지킴이 됩니다. 이웃나라가 배를 곯다가 쳐들어오기 앞서, 내 터전에서 내 땅을 사랑하며 일군 곡식을 기꺼이 나누면 됩니다. 밥 열 술 뜰 그릇에서 한 술이나 두 술을 덜어 나누면 돼요. 함께 살아가고 나란히 사랑할 길을 찾아야 즐거워요.


 (2) 한국땅에서 살아갈 아이한테는


 우리 집에 찾아온 둘째 아이는 사내입니다. 병원에 가서 옆지기 몸을 살핀 적이 없기 때문에 사내가 태어날는지 계집이 태어날는지 몰랐습니다. 그저 사내보다 계집이면 좋겠다고 여겼습니다. 왜냐하면, 사내로 태어날 때에는 한국에서 벗어날 수 없는 ‘군대에 끌려가는 일’ 때문에 걱정스럽거든요.

 군대를 다녀와야 남자가 되지 않습니다. 군대를 다녀와야 자랑이 되지 않습니다. 군대를 다녀오는 일은 ‘나라사랑 의무’가 아닙니다.

 우리 집안이 도시에서 살아간다면, 스무 살 푸르디푸른 젊은이한테 ‘세 해 동안 꼼짝 말고 시골에서 논밭을 일구거나 바다에서 고기를 낚으며 살아라’ 하는 일은 아주 좋으면서 반가운 ‘나라사랑 의무’라고 생각합니다. 이와 같은 나라사랑일 때에는 우리 둘째를 얼마든지 스무 살 젊은 나이에 푸른 논밭과 파란 바다로 보내겠어요. 세 해를 지낸대서 흙일이나 바다일을 알 수 없으니 다섯 해쯤은 지내야 하리라 생각합니다. ‘우리 식구가 도시에서 살아간다’ 할 때에, 아이만 시골로 보내 흙일이나 바다일을 시키기보다 함께 시골로 갈 때에 훨씬 좋을 테니, 아쉬움 없이 시골살이를 하러 집을 옮기리라 생각합니다.


.. 제2차 세계대전 이후는 흔히들 말하는 ‘전후 상태’가 결코 아니다. 지구는 몇 십 일에 한 번씩 전쟁을 한 게 아니라, 제2차 세계대전 후로 ‘하루도 쉬지 않고’전쟁을 계속해 왔기 때문이다 … 한 달 전의 전쟁조차도 다음에 일어날 전쟁의 흥분 때문에 빛이 바래고, 사람들의 뇌리에서 점차 사라져 간다. 우리가 눈여겨보고 있는 것은 오늘 낮에 일어난 잔학한 사건뿐이고, 이러한 사건이 쉼 없이 잇따라 일어나는 바람에 그 연속성을 알아차릴 수조차 없는 게 현실이다 ..  (136, 140쪽)


 군대라는 곳은 군인을 키워 거느립니다. 군인이란 총이나 칼이나 대포를 다루는 재주에 길들어진 사람입니다. 총이나 칼이나 대포란 사람을 죽이려고 만듭니다. 곧, 군대란 사람을 죽이려고 만든 곳입니다.

 오직 사람을 죽입니다. 첫째도 둘째도 막째도 사람을 죽입니다. 다른 뜻이 없습니다. 군대에서는 사람을 잘 죽여야 칭찬을 받습니다. 아니, 군대에서 군인이란 사람을 잘 죽이지 못하면 바보요 멍청이요 얼간이 소리를 듣습니다. 군대에서 총칼을 잘 휘두르지 못하거나 주먹질을 잘 해내지 못하면 ‘고문관’ 딱지가 붙이면서 푸대접과 따돌림에 시달려야 합니다.

 군대라는 곳은 언제나 적군을 만듭니다. 군대에 평화란 없습니다. ‘유사시’라는 이름을 내걸어 삼백예순닷새 전쟁만 생각합니다. 전쟁만 생각하며 전쟁하듯 살아갑니다. 전쟁이 일어나지 않으면 따분해 할 뿐 아니라 ‘애써 익히거나 길들’인 ‘사람 죽이는 재주’를 써먹을 데가 없다고 여겨, 끝없이 훈련을 거듭합니다.

 비무장지대라는 ‘무장 아주 잘된 군사분계선’ 둘레에서는 훈련을 하지 않습니다. 이곳 비무장지대에서는 삼백예순닷새 내내 실탄과 총칼을 들며 북녘 군인하고 맞서니까 굳이 훈련을 할 까닭이 없습니다. 비무장지대 뒤쪽 부대는 삼백예순닷새 내내 훈련을 합니다. 비상훈련을 하고 ‘훈련을 앞둔 훈련’을 하며, 대대·연대·사단·군단에 따라 훈련을 잇습니다. ‘훈련을 앞둔 훈련’이란 무엇이냐 하면, 혹한기훈력이나 혹서기훈련을 앞두고 ‘미리 겪는 훈련’이에요. 한 주에 걸쳐 벌이는 끔찍한 훈련을 앞두고 ‘체력단련’을 시킨다면서 한 달에 걸쳐 ‘훈련을 앞둔 훈련’을 합니다.


.. 인간으로서 오감을 자극하는 무기야말로 그들의 성에 차는 것이다. 고전적인 훈련, 고전적인 전투, 고전적인 무기, 그것이야말로 군인의 전통성을 지키고 자신들의 주도권을 발휘할 수 있는 세계라고 많은 장교가 그렇게 말하고 있다 … 아마도 600만 명이라는 절대적인 숫자보다, 한창 일할 인간의 지혜가 국방에 박탈되고 만다는 게 소련 문화에 미치는 훨씬 심각한 문제였을 것이다 … 클라우제비츠의 《전쟁론》은 진리가 아니라, 거기에 쓰인 주장대로 정치가와 군인이 행동함으로써 지구가 온통 학살의 피로 뒤덮인 게 맞다. 지금껏 수많은 정치가와 군인의 개인적인 의지에 따른 결과물이 학살·전쟁사였다는 뜻이다 ..  (164, 260, 278쪽)


 나는 우리 둘째가 ‘사람 죽이는 재주’에 길들어야 하는 군대에서 가장 젊으며 푸른 나이에 바보가 되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나는 우리 둘째가 ‘사람 사랑하는 손길’로 둘레 숱한 이웃하고 착하게 어깨동무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흙을 사랑하는 아이가 되고, 흙을 일구는 아이로 살며, 흙으로 조용히 돌아가 곱게 숨을 다하는 아이로 스며들기를 꿈꿉니다.

 자가용을 몰기보다 자전거를 모는 아이로 살아가고, 돈을 더 벌기보다 사랑을 더 나누는 아이로 지내기를 비손합니다. 딸로 태어난 첫째 아이도 마찬가지입니다. 두 아이가 이 땅에서 사랑꽃과 믿음나무를 일구는 아름다운 삶이어야 어버이로서 흐뭇하지, 이 아이들이 어설프거나 섣부른 나라사랑에 휘둘린다면 하나도 기쁘지 않아요. 두 아이 어버이는 가장 젊으며 빛나던 때에 비무장 아닌 비무장지대에서 스물여섯 달을 살인병기가 되어 살아야 했기 때문에, 두 아이 앞날에 이렇게 끔찍한 살인병기 군대 굴레가 들씌워지지 않도록 보살피면서 함께 살아가고 싶습니다.


.. 1년 간의 군사비 지출은 지구 전체로 이미 200조 엔을 훌쩍 넘어섰으니, 이 세상 모든 사람이 해마다 1인당 약 4만 엔을 내온 셈이다. 이 돈에 매해 학살용 무기 사용에 지출되고 있다 … 모든 무기는 원래부터 사용될 운명에 있다. 무기를 갖고서 평화가 유지되고 있는 나라가 있다면, 그것은 군사력이 전쟁을 억지하고 있는 게 아니라 평화를 지향하는 정신이 아슬아슬하게 군사력의 폭주를 억누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나라에서는 반드시 군국주의와 평화주의의 격렬한 갈등이 확인된다 … 세계는 사랑만으로 구할 수 없다. 우리가 국방예산에 쏟아붓고 있는 돈이 군인사업을 살찌우고 죽음의 상인을 배불리고 있는 한, 아무리 모금을 해 봤자 의미가 없다 … 군국주의는 하나의 사업이다. 사업이므로 유대인이 옛 나치와 손을 잡아도 전혀 이상할 게 없다. 또한 사업이라면 CIA가 다양한 공작을 하고, 그 모든 것이 자유주의를 지킨다는 목적에서 실행했다면 실패로 돌아간 역사마저도 설명이 가능해진다. 그들은 전쟁을 만들어 냄으로써 멋지게 사업을 성공해 왔던 것이다. 쉬지 않고 긴장 상태를 만들어 군인이 생계를 잃지 않도록 유지해 가는 게 사업의 목적이라면, 오늘날까지 계속된 전 세계 군인의 사업은 참으로 번창해 온 것이다 ..  (183, 189, 190, 228쪽)


 히로세 다카시 님이 쓴 《왜 인간은 전쟁을 하는가》를 덮습니다. 히로세 다카시 님은 왜 《왜 인간은 전쟁을 하는가》라는 책을 썼는지 가만히 돌아봅니다. 전쟁이 터지는 까닭을 캐내거나 밝히려고 이 책을 썼을까요. 권력자와 부자가 전쟁산업으로 떼돈을 벌어들이는 못난 짓이 얼마나 엉터리인가를 보여주려고 이 책을 썼을까요.

 글쎄, 모르는 노릇입니다. 바보스러운 전쟁 권력자를 나무라는 뜻이 아예 없다 할 수 없는 《왜 인간은 전쟁을 하는가》라는 책입니다만, 두 아이 어버이로서 《왜 인간은 전쟁을 하는가》를 읽으면서 꼭 한 가지만을 생각했습니다. 참말 우리 두 아이부터 전쟁놀이·전쟁놀음·전쟁무기·전쟁준비·전쟁군대·전쟁세금 따위를 사르르 녹이면서 착하고 참다우며 어여쁜 삶길을 걸어갈 씩씩한 아이로 꿈꾸도록 손을 맞잡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사람들은 왜 싸움을 일으킬까? 돈을 더 거머쥐려고 하지요. 사람들은 왜 돈을 더 거머쥐려고 할까? 바보라서 그렇지요. 사랑을 모르고 꿈이 없으며 삶을 잊은 바보라서 그렇지요. (4344.6.5.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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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w0607 2011-06-07 10: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목이 의미심장하군요... "바보가 일으키는 전쟁에 바보가 휩쓸린다..."

숲노래 2011-06-07 16:18   좋아요 0 | URL
더도 덜도 아니거든요.

전쟁은 바보가 일으키고
전쟁에 바보가 휩쓸려요.

입시지옥은 바보가 만들고
입시지옥에 바보가 휩쓸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