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오웰 - 동물농장.1984년 e시대의 절대문학 6
조지 오웰 원작, 박경서 지음 / 살림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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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지 오웰을 읽으면서 즐거운 까닭
 [책읽기 삶읽기 67] 박경서, 《조지 오웰 (읽기의 즐거움)》(살림,2005)



 조지 오웰 님 책이 여러 출판사에서 여러 가지 판으로 나옵니다. 예전에도 이러했고 오늘날에도 이러합니다. 조지 오웰 님 책 가운데 《동물농장》과 《1984》가 여러 사람 번역으로 나올 뿐 아니라, 《위건부두로 가는 길》처럼 당신 스스로 밑바닥 삶을 몸소 겪으며 적바림한 이야기도 여러 사람 번역으로 나옵니다.

 중·고등학교에서는 일찍부터 추천·명작도서로 손꼽히는 조지 오웰 님 책입니다. 논술을 헤아리든 독후감 숙제를 써야 하든, 이 나라 푸름이라면 조지 오웰 님 책 한 권쯤 읽고 느낌글을 써 본 적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문득 궁금합니다. 거의 모든 푸름이라 할 만한 이 땅 아이들이 조지 오웰을 읽기는 읽는데, 조지 오웰이 왜 글을 썼고 무슨 글을 썼으며 어떻게 글을 썼는지를 함께 느끼거나 받아들이려나요.

 곰곰이 돌이키면, 조지 오웰뿐 아니라 김동인이든 이효석이든 김유정이든 황순원이든 서정주이든 윤동주이든 한용운이든 이육사이든 신경림이든, 학교에서 읽으라 시키면 읽고, 논술시험 공부를 하라 하면 공부를 하곤 합니다. 모르는 노릇이지만, 푸름이 스스로 조지 오웰을 알아채거나 김유정을 알아내는 일이란 없겠지요. 푸름이 스스로 책방마실을 하며 여러 가지 책을 찬찬히 돌아보다가 조지 오웰에 흠뻑 젖어든다든지, 신동엽이나 김수영한테 살며시 녹아든다든지 하는 일이란 있을까요.


.. 독자들은 작품을 직접 읽어 보지 않고 그런 식으로 내용을 알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그들은 내용을 알고 있다는 이유로 그 소설을 읽어 보았다는 착각에 빠진다 … 오웰은 인간이 인간을 억압하는 모든 형태의 이데올로기나 사회를 거부하고 거기에 과감히 맞선 작가이다 ..  (10∼11쪽)


 번역을 하는 박경서 님은 《조지 오웰 (읽기의 즐거움)》(살림,2005)을 내놓습니다. 조지 오웰 님 책을 한글로 옮기면서 느끼거나 생각하거나 깨달은 이야기를 곰곰이 적바림합니다. 조지 오웰을 더 잘 읽거나 제대로 알아채자는 이야기보다는, 조지 오웰이 어떠한 나라에서 어떻게 살면서 어떠한 글을 어떻게 써서 어떠한 사람한테 어떻게 읽히고 싶었는가를 차근차근 들려줍니다.

 예전에 나온 책을 헌책방에서 찾아내어 읽든, 요즈음 다시 나오는 책을 새책방에서 마주하며 읽든, 조지 오웰 님 글자락을 하나하나 더듬으면, 박경서 님이 《조지 오웰 (읽기의 즐거움)》에서 적바림하듯이 “하층민들의 입장이 되어 그들의 영혼까지 침투해 그들의 삶을 느끼고 싶어” 했습니다. 아마, 예나 이제나 이렇게 밑바닥 사람들하고 뒤엉킨 채 지낸 삶을 글로 쓴 이는 몹시 드물거나 거의 없다 할 만합니다. 으레 ‘밑바닥 사람은 이렇게 살겠거니’ 하고 생각하는 대로 쓰거나 ‘귀동냥으로 들은’ 이야기를 쓰거나 ‘나도 예전에 이처럼 가난해 보았다’고 하는 이야기를 쓰기 일쑤예요. ‘바로 오늘 가난하게 살아가며 힘들게 글을 쓰는’ 오늘날 글쟁이는 거의 없다 할 만합니다.

 그러나 어떤 이는 묻겠지요. 요즈음 글을 쓴다는 사람치고 돈을 많이 버는 이가 몇이나 되느냐고, 요즈음 글을 쓰는 사람이야말로 몸소 가난한 채 글을 쓰는 셈이 아니냐고.

 그렇지만 스스로 얼마나 어떻게 가난한가를 찬찬히 밝히는 ‘글을 쓰는 즐거움’을 나누는 사람은 좀처럼 보이지 않습니다. 더욱이, 가난이 왜 가난이며, 가난한 삶이란 어떠한 삶이요, 이 가난한 삶을 누리는 내 나날이 얼마나 빛나는가를 곰곰이 돌아보며 글을 쓰는 사람은 웬만해서는 나타나지 않습니다. 집에서 일하고 살림하는 나날을 가만히 옮겨적거나 찬찬히 되살리도록 글을 쓰는 사람도 거의 찾아볼 길이 없어요.


.. 그의 이런 행동은 문학 활동을 염두에 둔 것이기도 했지만, 가난한 사람들의 실제 삶 속에 들어가 봄으로써 그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진정 알고 싶었으며, 그들의 고통과 경험을 함께 나누고 싶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 그는 그들이 겪는 고통을 함께 나누고 싶었고, 또 그것을 세상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었다 … 제국주의가 식민지 사람들을 노예로 만드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그가 배운 더 큰 교훈은 그 제도가 주인들마저도 끝없이 노예화시킨다는 사실이었다 … 그는 중산층으로서 어떤 우월감을 지니고 한 걸음 떨어져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하층민들의 입장이 되어 그들의 영혼까지 침투해 그들의 삶을 느끼고 싶어했고, 나아가 그러한 사실을 사람들에게 전달하고자 했다 ..  (29∼30, 40, 44쪽)


 조지 오웰 님은 ‘밑바닥으로 몸소 내려가서’ 글을 썼습니다. 그런데 잘 모르겠어요. 조지 오웰 님 책을 한글로 옮기는 분들도 조지 오웰 님처럼 ‘밑바닥으로 몸소 내려가서’ 번역 일을 할까요. 조지 오웰 님 책을 읽는 사람도 조지 오웰 님처럼 ‘밑바닥으로 몸소 내려가서’ 책을 읽을는지요.

 밑바닥 사람들 밑바닥 삶자락 이야기를 책으로 읽는다면서 정작 나 스스로 밑바닥 아닌 하늘 높은 구름에 앉아서 내려다보는 듯하는 매무새는 아닐까 궁금합니다. 삶과 책과 앎과 함이 한동아리로 이어지는 일이란 거의 없는 오늘날이 아닌가 궁금합니다. 책은 많이 읽고 책을 즐겁게 읽는다지만, ‘읽기로 끝’이고 ‘읽은 책을 곰삭여 내 삶을 거듭나도록 이끄는 길 찾기’는 안 하는 노릇 아닌가 궁금합니다.

 조지 오웰 님한테는 ‘내려가야 할 밑바닥’이 있습니다. 밑바닥에 있는 사람한테도 ‘더 내려갈 밑바닥’이 있을는지 모르나, 밑바닥에 있는 사람한테 조지 오웰 님은 ‘위에서 살짝 찾아와 한동안 머물다가 다시 위로 올라갈’ 사람입니다.

 오늘날 이 땅에 처음부터 밑바닥이면서 앞으로도 밑바닥이요 언제까지나 밑바닥인 채 살림을 꾸리고 글을 쓰며 사람을 사귀는 글쟁이나 지식인은 얼마쯤 될까요.


.. 오웰을 제외한 20세기 전반기의 영국 소설가들은 대부분은 인간의 소외와 내면세계의 탐구를 주된 연구대상으로 삼았을 뿐, 당대 사회와 정치에 대한 관심은 거의 없었다 … 오웰이 그의 정치적 글쓰기에서 보여준 중심 사상은 ‘문학이란 경험을 기록함으로써 인간의 역사적 발전에 한몫을 하고, 진리는 반드시 믿어져야 하며, 작가는 진리인 것을 신뢰성·정확성 및 신념을 가지고 독자들에게 말해야 한다는 것으로 요약될 수 있다 … 특혀 현대 전쟁의 본질에 대해 상세히 적혀 있는데, 현대 전쟁이란 영토의 정복이나 그 방어를 위한 것이 아니고, 자체의 사회구조를 공고하게 유지시키기 위한 것이다 ..  (70, 77, 124쪽)


 조지 오웰을 좋아하면 조지 오웰을 읽으면 됩니다. 사람들이 많이 읽기에 읽을 까닭은 없습니다. 노신이든 루쉰이든 좋아한다면 노신이든 루쉰을 읽으면 됩니다. 사람들이 널리 사랑하니까 읽을 까닭은 없어요. 서정주를 읽든 한비야를 읽든 법정을 읽든 박완서를 읽든 대수롭지 않습니다. 이원수를 읽든 권정생을 읽든 이오덕을 읽든 임길택을 읽든 대단하지 않습니다. 어느 분 어느 책을 읽더라도 내 삶으로 파고드는 이야기 속살을 잡아채어 내 삶이 아름다이 꽃피울 참답고 착한 길을 잘 느끼며 몸소 슬기롭게 일굴 수 있으면 넉넉합니다.

 조지 오웰을 읽으며 즐겁다면, 조지 오웰이 살아가며 글을 쓰던 매무새가 무엇을 하려는 몸짓이었나를 깨달으면서 내 하루를 더 알차게 사랑하는 길을 찾겠다는 뜻입니다. 《삼국지》를 읽으면서 가슴이 벅찼으면 벅찬 가슴 그대로 내 삶길을 사랑하면 돼요.

 책은 어디에서든 책이고, 꿈은 어디에서도 꿈입니다. 내가 발을 디딘 터전을 옳게 읽으면서 내 이웃과 동무가 몸을 바치는 보금자리를 바르게 어깨동무할 수 있으면 즐겁습니다. 책을 읽는 까닭은 나와 이웃을 참답게 사랑할 길을 찾고 싶기 때문입니다. 동무를 사귀며 날마다 밥을 먹고 똥을 누는 까닭은 한 번 선물받은 고마운 목숨을 착하게 사랑하면서 누리는 길을 서로 나누고 싶기 때문입니다.

 더 좋은 삶은 없고, 더 나은 책 또한 없습니다. 내 좋은 삶이 있고, 내 좋은 이웃과 동무가 있습니다. (4344.7.13.물.ㅎㄲㅅㄱ)


― 조지 오웰 (박경서 글,살림 펴냄,2005.6.30./79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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