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9살 외계인, 지구에 오다 일공일삼 58
찰스 레빈스키 지음, 김영진 옮김, 흐리겔 파르너 그림 / 비룡소 / 2009년 12월
평점 :
절판


어린이책 읽는 삶



숲에 길을 내려면 나무한테 물어봐야지

499살 외계인, 지구에 오다

찰스 레빈스키 글

호리겔 파르너 그림

김영진 옮김

비룡소 펴냄, 2009.12.20. 8500원



  《499살 외계인, 지구에 오다》(비룡소,2009)라는 어린이문학을 읽다가 자꾸 웃었습니다. 이 어린이문학에 나오는 외계인이 지구사람한테 들려주는 말이 무척 재미나다고 느껴서 자꾸 웃었습니다.


  이 어린이문학에 나오는 이야기는 글쓴이가 짐짓 꾸몄을 수 있고, 참말로 겪었을 수 있습니다. 어느 쪽이 참이고 거짓인가는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이 책에 나오는 499살을 먹은 외계인은 참말 있다고 할 수 있고, 글쓴이 꿈속에만 있다고 할 수 있어요.


  그나저나 499살을 먹은 외계인은 어떤 사람일까요? 499살 외계인, 지구에 오다》에 나오는 외계인은 어린이 모습이라고 합니다. 지구에 온 외계인은 저희 외계별에서는 누구나 처음에는 어른으로 태어났다가 차츰 자라면서 어린이로 바뀐다고 해요. 더군다나 그 외계별에서 갓 태어난 어른(그러니까 그 별에서는 어린이라고 할 사람)은 너무 철이 없어서 버릇도 없고, 뭐든지 제대로 할 줄 아는 것이 없다고 합니다. 지구에 찾아온 외계인이 사는 외계별에서는 갓 태어난 어른이 차츰 자라서 400살쯤 넘기며 어린이로 몸이 바뀔 즈음(!) 비로소 학교에 들어갈 수 있고, 제대로 삶이나 사회를 배울 수 있다고 합니다. 500살을 앞두고 학교를 마칠 무렵에는 저마다 은하를 누비면서 다른 별로 가서 체험활동을 하고는, 다른 은하 다른 별에서 지낸 이야기를 보고서로 써내는 숙제를 한다고 해요.



"이제 질문에 답을 해 주지. 나는 우리 별에서 왔어. 네가 우리 별에 대해 들어 보지 못한 이유는 지구 사람들이 무식해서야. 세상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잖아." (25쪽)



  아주 뚱딴지 같은 이야기이네 하고 여길 수 있어요. 그런데 지구에 왔다는 499살 외계인이 하는 말은 자꾸자꾸 지구사람(글쓴이) 머릿속을 콕콕 찌릅니다. 시간을 멈추었다가 뒤로 돌릴 수 있는 외계인이요, 하늘을 난다든지 잠을 한숨도 안 자더라도 졸리지 않는다든지 빵을 한꺼번에 수십 덩이를 먹을 수 있다든지 하는 모습을 놓고 본다면, 또 맞은편 마음속을 읽을 줄 알고 나무하고도 이야기할 줄 아는 외계인 모습을 본다면, 이 외계인이 지구사람을 보면서 너희는 무식하다고 하는 말을 하하 하고 웃으면서 받아들일 만하지 싶어요.


  참말 그렇잖아요. 499살을 먹은 외계인은 지구라는 별로 나들이를 와서 지구 체험을 한다지만, 이 지구별에 사는 우리는 다른 어느 별로도 체험을 하러 다녀오지 못해요. 그러니 외계인이 지구사람을 보자면 지구사람은 그야말로 어리석습니다(무식합니다).



"그럼 굉장히 혼란스럽겠는데." "왜? 내가 진짜로 잘 아는 사람은 이름이 달라졌다고 해서 잊어버리거나 못 알아보건 하지 않아." (36쪽)



  499살을 먹은 외계인한테는 이름이 따로 없다고도 해요. 이 외계인은 그때그때 마음에 드는 이름을 늘 새롭게 짓는다고 해요. 다른 외계인도 모두 그처럼 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어느 한 가지로만 이름을 붙여야 한다면 얼마나 따분하느냐고 지구사람한테 되물어요. 여기에 한 마디를 덧붙이면서 지구사람 머릿속에 못을 박기도 하는데요, "내가 진짜로 잘 아는 사람은 이름이 달라졌다고 해서 잊어버리"지 않는다지요.


  이 대목을 읽으면서 아하 하고 무릎을 칩니다. 참으로 그렇습니다. 우리 집 아이들이 이불을 뒤집어쓰며 놀아도 똑같이 우리 집 아이들입니다. 우리 집 아이들한테 재미난 이름(별명)을 붙여 주어도 이 아이들은 언제나 똑같이 우리 집 아이들입니다. 이 아이들이 물놀이를 하든 자전거를 타든 늘 똑같이 우리 집 아이들입니다.


  우리는 서로서로 겉모습으로만 마주하지 않아요. 아니, 우리도 서로서로 마주할 적에는 겉모습보다는 마음으로 사귀어요. 마음으로 맞는 이웃이기에 기쁘게 어우러지지요. 겉모습이 이쁘장하다기에 어우러지지 않아요. 마음이 곱고 착하며 참답기에 서로 좋아하고 사랑하고 아끼는 사이가 됩니다.



"사람이라고? 도로를 숲에다 만든다면서, 너희 별에선 사람들한테 거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는단 말이야?" "그럼, 사람들한테 묻지, 아님 누구한테 물어?" "당연히 나무들한테 물어봐야지. 나무들은 베이는 게 싫을지도 모르잖아." (50쪽)



  499살을 먹은 외계인은 지구사람이 너무 바보스러워 보인다고 말합니다. 게다가 너무 엉뚱한 짓을 한다고도 말합니다. 숲을 밀고 길을 닦는다면서 왜 숲에 있는 나무한테는 물어보지 않느냐고 지구사람한테 물어요. 이때에 지구사람은 할 말을 잊습니다. 어떻게 나무한테 물어보느냐고 되물으려다가 그만 멍하니 입만 벌리지요. 지구사람으로서는 나무한테 물어보아야겠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고 보면 우리도 이와 비슷해요. 숲을 밀거나 갯벌을 메우려는 엄청난 토목공사를 벌이면서 숲이나 갯벌한테 묻는 건설업자나 공무원은 찾아볼 길이 없습니다. 나라에서 4대강사업을 밀어붙일 적에도 냇물이나 도룡뇽이나 물고기나 새나 들꽃한테 물어본 건설업자나 공무원은 없다고 할 수 있어요.


  여러모로 뜻깊고 재미나게 이야기를 풀어내는 499살 외계인, 지구에 오다》를 덮으면서 곰곰이 생각을 기울여 봅니다. 어느 날 어떤 육상 코치는 499살을 먹은 외계인이 달리기를 대단히 잘하는 줄 알아채고는 육상 선수가 되어 보라고 끌어당깁니다. 그런데 이 외계인은 육상 대회에 나가서 아주 천천히 트랙을 돌아요. 육상 코치는 외계인더러 "게임을 즐기라"고 말했고, 외계인은 그 말 그대로 빙긋빙긋 웃으면서 14분도 넘게 아주 천천히 트랙을 거닐면서 "게임을 즐겼다"고 합니다. 이러면서 하는 말이란, 즐거운 나들이였기에 아주 느긋하게 즐겼다고 하지요. 즐겁지 않다면 후다닥 해치웠을 테지만, 즐거웠기에 아주 천천히 걸었다고 해요.



"다른 선수들은 왜 빨리 뛰어야 하고 넌 왜 빨리 뛸 필요가 없는데?" "그 선수들은 즐겁지 않았으니까요. 즐겁지 않은 일은 빨리 끝내면 끝낼수록 좋잖아요. 저도 다른 선수들처럼 그렇게 다리가 아팠으면 아주 빨리 뛰었을 거예요. 얼른 끝내 버리려고요." (144쪽)



  외계인은 이상한 사람일까요? 아니면 지구사람이 이상한 사람일까요? 아니면 둘은 그저 서로 다른 사회에서 서로 다르게 사는 사람일까요?


  우리는 무엇을 바라보면서 달리기를 할까요? 경제성장이나 사회발전이나 문화예술이란 무엇일까요? 어른으로서 아이한테 무엇을 가르칠 때에 즐거울까요? 어른은 어떠한 사람으로 우뚝 설 적에 슬기로운 마음을 아이들한테 물려줄 만할까요? 지구사람인 우리는 나무나 풀이나 새나 벌레나 바람이나 구름한테 말을 걸면서 저마다 어떤 마음이거나 생각인가를 읽는 날을 맞이할 수 있을까요? 2016.6.10.쇠.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어린이문학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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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6-06-11 08: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이 책 아주 재미있게 읽은 기억이 나네요. 우리 나라 작가들도 이렇게 틀에 박히지 않은,`뚱딴지 같은 생각`을 소재로 한 책을 많이 내었으면 좋겠어요.

숲노래 2016-06-11 15:42   좋아요 0 | URL
벌써 읽으셨군요!
벌써 읽지 않으셨다면...
벌써 절판된 책이니 ㅠ.ㅜ

저는 절판된 이 책을 문득 찾아내어서 즐겁게 읽었어요.`
비룡소쯤 되는 출판사라면
이 같은 책은 절판시키지 말고
잘 다루어 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생각해 보기도 했어요.

hnine님 말씀처럼
한국 작가도 이렇게
새롭고 재미난 이야기를 쓸 수 있으면 참 좋겠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