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세 말걸기 육아의 힘
김수연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5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책읽기 삶읽기 210



즐겁게 노래하는 말을 배우고 싶은 아이들

― 0∼5세 말걸기 육아의 힘

 김수연 글

 예담프렌즈 펴냄, 2015.10.8. 13800원



  ‘아기발달연구소’를 열어서 아기가 나이에 따라 어떻게 달라지는가 하는 대목을 차근차근 알려주는 일을 하는 김수연 님이 빚은 《0∼5세 말걸기 육아의 힘》(예담프렌즈,2015)을 읽습니다. 우리 집에는 텔레비전을 들이지 않기에 김수연 님이 세운 연구소도 모르고, 방송에서 김수연 님이 들려주는 이야기도 모릅니다. 텔레비전은 누군가한테는 도움이 되리라 여기지만 우리 집에는 조금도 도움이 될 일이 없다고 여깁니다. 그래서 나는 1995년부터 텔레비전 없는 집에서 살았고(그무렵부터 우리 집에는 텔레비전을 안 두었고), 텔레비전 없는 삶이 번거롭다(불편하다)거나 힘들다고 느끼지 않습니다. 텔레비전이 없기에 아이들이 집에서 심심해 하지도 않습니다. 무엇보다도 텔레비전이 없으니, 나(어버이)와 우리 아이들은 ‘텔레비전이 들려즈는 말’을 안 듣습니다. 나는 우리 아이들이 들려주는 말을 듣고, 우리 아이들은 내가 들려주는 말을 듣습니다.



육아 예능 프로그램이 많아지면서 TV 속 아기들과 자신의 아기를 비교하는 부모들이 있습니다. 특히 방송을 통해서만 아기를 봐 온 초보 부모들은 모든 아기가 빵끗빵끗 웃고 옹알이도 많이 하는 줄 압니다. 자신의 아기도 그럴 것이라고 기대하지요. (61쪽)



  전남 고흥이라는 시골에서 살며 돌아보면, 오늘날에는 이 시골에서도 시골말을 듣기는 쉽지 않습니다. 마을 어르신은 시골말을 쓰십니다만 고흥 사투리로, 또 마을 사투리로 이야기하는 분은 매우 드물어요. 왜냐하면 오늘날에는 집집마다 모두 텔레비전이 있으며, 마을 어르신들은 모두 날마다 텔레비전을 오래도록 보거든요. 시골에서 살더라도 시골말을 텔레비전한테 빼앗기고, 시골에서 일하더라도 시골노래(들노래·일노래)를 대중노래한테 빼앗깁니다.


  그나저나 시골에는 아이가 매우 드뭅니다. 요즈음은 시골말을 늘 들으면서 배우며 자라는 아이는 아주 드뭅니다. 머잖아 한국에서는 고장말을 제대로 알면서 쓸 줄 아는 아이는 사라지리라 느낍니다. 말투나 소리결로는 고장말 티가 조금 남을 테지만, 전라도나 경상도나 강원도 작은 마을에서 쓰던 ‘참다운 사투리’를 알아듣거나 쓸 줄 아는 아이가 모두 사라지겠지요. 텔레비전을 안 보는 사람이 매우 적을 뿐 아니라, 교과서나 신문이나 책을 안 보는 사람도 아주 없다고 할 테니까요.


  이리하여, 오늘날에는 한국사람이 쓰는 말은 하나일 뿐이지 싶습니다. 바로 ‘표준 서울말’입니다. 부산말도 광주말도 없이 표준 서울말입니다. 충청말도 경기말도 없이 오로지 표준 서울말입니다.



아기가 가장 편안함을 느끼는 소리는 엄마 배 속에서 들었던 ‘쉬쉬’ 하는 혈류 소리와 맥박 소리입니다. (23쪽)


아기가 울 때는 가능한 한 엄마 배 속과 같은 환경을 제공해 주는 것이 좋습니다. (30쪽)



  《0∼5세 말걸기 육아의 힘》을 읽을 분이라면 아무래도 ‘아이 어머니’가 되리라 느낍니다. 이 같은 책을 찬찬히 읽을 ‘아이 아버지’는 드물리라 느낍니다. 한국 사회는 아직 성평등도 남녀평등도 아닌 터라, 아이를 맡아서 가르치거나 이끄는 몫은 거의 다 어머니(여자)한테 짐을 얹지요. 아이 아버지는 으레 새벽부터 밤까지 회사에 머물거나 바깥사람하고 어울립니다. 맞벌이를 하는 집이라면 하루 내내 아이를 다른 사람 손에 맡길 텐데, ‘다른 사람 손’도 거의 다 ‘여자’예요. 어린이집 교사로 일하는 사내는 얼마 안 되고, 아이를 사랑하면서 돌보는 일에 온삶을 바치려는 사내는 그야말로 아주 드물어요.


  그러니까, 아이들은 가시내이든 사내이든 모두 ‘어머니(여자)’한테서 말을 배운다고 하겠습니다. 나중에 아이가 많이 자라서 초등학교에도 가고 학원에도 간다면, 다른 아이나 어른한테서 말을 배우기도 할 테지만, 이 나라 거의 모든 아이들은 초등학교에 들기 앞서까지 늘 ‘어머니 말을 듣고 배우면’서 자란다고 할 만합니다.



생후 5개월 정도가 되면 고개를 양옆으로 흔들면서 거부 의사를 표현하지요. 아기는 분명히 몸으로 ‘싫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는데 부모는 대부분 ‘아이가 왜 이래?’ 하면서 아이의 메시지를 무시합니다. (51쪽)


아직 말을 트지 못한 아이를 둔 부모들은 혹여나 아이가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할까 걱정합니다. 하지만 이 시기 또래 집단의 상호작용은 말보다 행동으로 이루어지므로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의 집단 활동에서 큰 어려움을 겪지 않습니다. (149쪽)



  집에서 아기한테 젖을 물리거나 아이를 보살피는 어머니는 어떤 말을 쓸까요? 어머니는 어머니로 살기 앞서까지 늘 듣고 배운 말을 쓰겠지요. ‘아이가 쓰는 말’은 모두 ‘어머니가 쓰는 말’이요, ‘아이가 배우는 말’은 모두 ‘어머니가 여느 때에 쓰는 말’입니다.


  아이는 ‘전문 용어’를 배우지 않아요. 아이는 언제나 ‘생활 말’을 배웁니다. 그래서, 아기를 낳을 어버이라면 여느 때에 어떤 말을 쓰는가 하는 대목을 제대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여느 때에 늘 텔레비전을 본다면, 아이는 ‘텔레비전에 흐르는 말’을 배우는 셈입니다. 비록 어머니 입을 거치더라도 ‘텔레비전 말’을 배웁니다. 어머니가 책을 많이 읽는다면 아이는 ‘책에 적힌 글말’을 배울 테지요.


  아이를 낳는 사람은 어머니 혼자가 아니기에, 어머니뿐 아니라 아버지도 말을 늘 새롭게 가다듬을 수 있어야 합니다. 아이만 말을 배워야 하지 않아요. 어른도 말을 새로 배워야 합니다. 아이를 낳기 앞서까지 ‘아무 말이나 그냥 썼다’면, 이제부터는 ‘아이 앞에서 여느 때에 쓸 말’을 새롭게 배우고 살펴서 가다듬어야 합니다. 아이들은 ‘어버이가 여느 때에 툭툭 뱉는 말’을 모조리 빨아먹기 때문입니다.



바닥을 구르거나 장난감을 던지면서 울거나 엄마를 때리는 등의 모든 행동은 ‘싫다’는 아기의 마음을 보여주는 방법일 뿐입니다. 이러한 아기의 행동은 만 5세 전후로 사라집니다. 이 시기의 아기가 행동으로 자신의 마음을 말하는데 부모도 똑같이 소리를 지르거나 때리면 아기의 공격적인 표현이 더 오래 지속될 수 있습니다. (78쪽)



  《0∼5세 말걸기 육아의 힘》이라는 책에서 흐르는 이야기는 대단하지 않습니다. 먼먼 옛날부터 누구나 모두 알던 이야기입니다. 어버이는 아기한테 어떤 말을 걸까요? 오직 사랑으로 말을 걸지요. 아기는 어버이한테서 어떤 말을 듣고 싶을까요? 아기는 어버이한테서 오직 사랑스러운 말을 듣고 싶지요.


  아기는 때가 되면 스스로 말문을 터뜨립니다. 한두 살부터 말문을 터뜨리는 아이가 있고, 다섯 살에 말문을 터뜨리는 아이가 있으며, 열 살쯤 되어서야 비로소 말문을 터뜨리는 아이가 있어요.


  어버이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어버이는 오직 한 가지만 할 뿐입니다. 언제나 아이를 사랑으로 지켜보면서 사랑으로 보살피고 사랑으로 기다립니다. 달리 할 일이 없습니다. 그저 사랑 하나면 되는 어버이입니다.


  다만, 사랑이 무엇인지는 제대로 알아야겠지요. 사랑이 무엇인지 제대로 모르는 채 입으로만 ‘사랑해’ 하고 말한들 덧없습니다. 사랑은 집착이 아니고 강요가 아닙니다. 사랑은 훈육이 아니며 길들이기가 아닙니다. 사랑은 언제나 사랑일 뿐입니다. 사랑은 사탕발림이나 선물꾸러미가 아니에요. 사랑은 그저 따사로운 손길과 너그러운 품입니다.



물론 기저귀를 가는 일은 부모에게도 썩 유쾌한 일입니다. 당연히 기저귀를 가는 도중에 “참아!”라며 강하게 말하게 될 때도 있습니다. (31쪽)



  나는 우리 집 두 아이를 거의 혼자 도맡아서 돌보며 살아오는 동안 ‘똥오줌 기저귀’ 가는 일이 ‘안 유쾌하다’고 느낀 적이 없습니다. 두 아이를 오직 천기저귀만 대면서 날마다 마흔일곱 장을 빨아야 하던 날에도 씩씩하게 웃고 노래하면서 손빨래를 하고, 해바라기를 시켜서 말린 뒤, 다림질을 하여 곱게 갰어요. 아이가 오 분 만에 쉬를 찔끔찔끔 지리더라도 새 기저귀로 갈아 주면서 ‘요 녀석, 네 아버지가 더 기운내라고 하는구나’ 하면서 궁둥이랑 볼을 살살 쓰다듬었습니다.


  그렇지만, 가만히 돌아보면 나는 어릴 적부터 ‘아이키우기’를 제대로 배운 적이 없습니다. 곁님이 여러모로 미리 살펴서 차근차근 알려주지 않았으면 하나도 제대로 못 했으리라 느낍니다. 한국 사회에서는 초·중·고등학교 어디에서도 ‘육아 교육’조차 하지 않고, ‘성교육’조차 슬기롭게 하지 않아요. 나라에서는 젊은 부부더러 아기를 낳으라고는 하지만, 정작 아기를 어떻게 낳아서 돌볼 때에 아름다운 사랑과 삶이 되는가 하는 대목은 들려주지 못합니다.


  김수연 님이 쓴 《0∼5세 말걸기 육아의 힘》은 재미있습니다. 이제 우리 집 큰아이는 여덟 살이고 작은아이는 다섯 살입니다. 다섯 살 막바지를 지나가는 작은아이를 헤아리며 이 책을 읽으니, ‘아이를 키우는 힘’이나 ‘아이한테 말을 걸며 키우는 힘’은 딱히 없습니다. 그저 어버이로서 내가 스스로 즐겁게 노래하는 하루가 되면 됩니다. 아이한테 말을 입으로도 걸지만 마음으로도 걸지요. 아이한테 들려주는 노래는 ‘유치한 동요’가 아니라 ‘어버이인 내 마음을 함께 달래며 보듬는 사랑노래’입니다. 나는 우리 아이들한테 네 시간 동안 쉬지 않고 다 다른 노래를 불러 줄 수 있습니다. 아이들하고 하루 내내 붙어서 여덟 해를 살고 보니, 그야말로 스스로 노래꾼이 되고 춤꾼이 됩니다. 새삼스레 이야기꾼도 됩니다.



부모가 기분이 좋을 때는 아이가 조리에 맞지 않는 말을 하더라도 끝까지 잘 들어줄 수 있습니다. 부모가 피곤하지 않을 때는 친절하다가 피곤할 때 갑자기 화를 심하게 내면, 아이도 부모와 똑같이 기분이 좋을 때만 말을 하고 기분이 좋지 않을 때는 아예 말을 하지 않거나 화를 내게 됩니다. (179쪽)



  아이를 천재나 영재로 키우려고 하면 아이도 어버이도 고단합니다. 나한테 온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아이를 기뻐하면서 함께 놀고 어우러지면서 심부름도 차근차근 시키는 삶이 된다면, 아이는 어버이가 들려주는 말을 기쁨과 즐거움으로 받아먹습니다.


  아이한테는 대단한 말을 들려주지 않아도 됩니다. 아이한테는 사랑스러운 마음으로 노래하듯이 말을 들려주면 됩니다. 아이한테 더 일찍 영어를 가르쳐야 하지도 않아요. 아이하고 멋지거나 훌륭하거나 재미난 외국 영화를 ‘그냥 영어로 자막 없이’ 함께 보면 됩니다. 영어를 가르치려고 보는 외국 영화가 아니라, ‘아름다운 영화’이기 때문에 외국말을 말투와 말결까지 그대로 느껴 보면서 함께 봅니다.


  아기한테 그저 사랑으로 말을 걸어요. 그러면 됩니다. 아기하고 그저 사랑으로 함께 놀아요. 그러면 돼요. 아기하고 보내는 0살∼5살은 그야말로 하늘이 내린 어마어마한 선물입니다. 아기가 다섯 살이 될 때까지 어버이로서 ‘회사 일은 그만두’더라도 ‘아이키우기는 그만둘 수 없다’고 느낍니다. 그리고, 아이가 열 살이 될 때까지도 ‘회사 일은 안 하’더라도 ‘아이와 함께 놀고 배우기를 멈출 수 없다’고 느껴요.


  어버이부터 즐거운 마음이어야 합니다. 어버이가 바로 기쁜 넋이어야 합니다. 즐겁게 꿈꾸고 기쁘게 노래하는 삶이 되기를 빌어요. 이 땅 모든 어버이가 아이하고 아름다운 하루를 누릴 수 있기를 빕니다. 4348.10.22.나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에서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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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ca 2015-10-22 23:04   좋아요 0 | URL
저한테 너무 많은 도움이 되는 글이네요. 때로 아이 둘을 돌보는 게 지친다고 느낄 때면 다시 숲노래님의 글을 읽어야겠어요.

숲노래 2015-10-22 23:21   좋아요 0 | URL
저는... 아이 둘을 돌보다가 지치면...
그냥 누워서 잡니다 ^^;;;;

제 몸이 지치면 아이들한테 아무것도 못해 주면서
뭔가 트집을 잡아서 꾸지람만 하려고 드는구나 하고 느껴서
몸을 한 시간 즈음 푹 쉬어 주면
다시 새 기운이 돋아서 씩씩하게 함께 놀 수 있어요.

아이들도 마당에서건 방에서건 마음껏 놀면서
스스로 재미있고요.

어른들은 좀 쉴 때가 있어야 합니다.
눈치 보지 말고 쉬어야겠더군요.

저는 마흔 살이 될 무렵까지 `눈치가 보여서 제대로 못 쉬었`는데
이제는 그래서는 안 되는구나 하고 뼈저리게 느낍니다 ^^
내 몸이 무거우면 그야말로 아무것도 못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