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일어서겠다는 글을 쓰는가
오른무릎이 다쳐서 서거나 걷지 못하는 지 엿새째이다. 나는 오늘쯤 씩씩하게 서서 마당쯤은 거뜬히 걸어다니겠노라 하고 다짐했으나 아직 이렇게 하지 못한다. 그렇지만 오른무릎 고름은 거의 빠졌고, 몸살 기운이 크게 몰아치다가 가라앉다가 한다. 아침에 두 아이 밥을 차려 주고 나서 또 한 시간 동안 넋을 잃은 채 어디인지 모를 늪인지 꿈을 헤매다가 문득 눈을 떴다. 다시 조금 기어다닐 기운을 얻었다. 그리고 나는 내가 꼭 해야 할 일만 참말 꼭 해야 한다는 생각을 굳게 한다. 꼭 해야 할 만하지 않으면 할 까닭이 없다. 이를테면, 바보짓이라 하더라도 꼭 해야 한다면 해야 한다. 아무리 몸이 아파도 아이들한테 노래를 불러 주고 싶기 때문에 지난 닷새 동안 ‘노래하기’에 마음을 모았고, 어젯밤에 한 시간 남짓 노래를 불러 줄 수 있었다. 다리를 오롯이 쓸 수 있던 때에는 아이들하고 손을 맞잡고 춤을 춘다든지, 두 다리에 아이들 배를 얹어서 하늘로 띄운다든지, 스스로 하고 싶은 일을 한다. 풀을 베고 싶으면 베고 안 베고 싶으면 안 벤다. 모기에 물릴 만하면 물리고, 모기가 물든 말든 내 일을 해야 하면 내 일을 할 뿐이다. 하루에 모기한테 얼추 서른 번쯤 물리는구나 싶지만, 모기한테 물린 자리가 십 분 넘게 붓는 일이 없이 이내 사라진다. 간지럽지도 않다. 그런 데에는 내 마음이 터럭만큼도 안 가니까.
일어서겠다는 글을 쓴다면, 아직 일어서지 못했다는 뜻이다. 그리고, 어느 무엇보다도 꼭 일어서서 ‘두 다리로 짓는 삶’으로 나아가겠다는 뜻이다.
나는 반드시 일어서고야 말리라. 그리고 다가오는 9월 11일에 서울 〈신촌서당〉이라는 곳에서 ‘이오덕 선생님 삶 이야기하는 조촐한 자리’가 있고, 이곳에서 강사로 이야기를 들려주기로 했다. 시외버스를 달려 서울로 가고, 그 자리에도 기운차게 가려고 한다. 꼭 가고야 만다. 4348.9.7.달.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삶과 글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