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할 일, ‘여덟 살 첫 한국말사전’



  한국말사전을 새롭게 쓰는 사람으로서 ‘아직 아이가 없던 때’부터 “초등 국어사전” 편집자 노릇을 했다. “초등 국어사전” 편집자 노릇을 할 적에 ‘나도 언젠가 아이를 낳을까?’ 하는 생각은 했으나, 정작 아이를 낳아 돌볼 줄은 알지 못했다. 그무렵에는 아직 나한테 아이가 없었으니, ‘어린이가 곁에 두고 읽을 한국말사전’을 어떻게 엮으면 좋을는지 더 깊이 생각하지는 않았다.


  어느덧 해는 흐르고 흘러 큰아이가 여덟 살을 씩씩하게 누빈다. 열 살 어린이가 읽을 ‘숲말 이야기책’은 한 권 썼고 열여섯 살 푸름이가 읽을 ‘한국말 이야기책’도 한 권 썼는데, 정작 여덟 살 어린이한테 선물로 물려줄 ‘첫 한국말사전’은 미처 엮지 못했다. 어젯밤 잠자리에서 생각에 잠기는데, 다른 어느 일보다 이 일을 먼저 했어야 했는데 못 했구나 하고 깨닫는다.


  새벽 동이 트기 앞서 잠자리에서 일어나 아이들 이불깃을 여미어 주며 꿈을 새롭게 한 가지를 그린다. 그래, 큰아이한테 ‘첫 한국말사전’을 선물로 물려주지 못했지만, 큰아이하고 함께 ‘일고여덟 살 어린이가 읽을 첫 한국말사전’을 지으면 된다. 이리하여, 다섯 살 작은아이가 앞으로 여덟 살이 되기 앞서 ‘첫 한국말사전’을 마무리지으면 되지.


  두 아이를 낮잠을 재우고 나서 방을 치운다. 한쪽 벽을 아주 말끔하게까지는 아니나, 벽을 통째로 쓸 수 있을 만큼 비운다. 방바닥을 새롭게 훔친다. 이러는 동안 작은아이부터 낮잠을 깬다. 저녁을 차리는 동안 마루를 치워 주렴 하고 바란다. 아이들은 고맙게 마루를 치워 준다. 저녁밥을 다 지어서 밥상을 차린 뒤, ‘방 치우기’를 마무리짓는다.


  자, 이제부터 큰아이하고 벽에다 흰종이를 붙인 뒤 ‘ㄱㄴㄷ’에 따라서 한 쪽씩 ‘어린이가 삶을 사랑하면서 익힐 말’을 하나씩 적으려 한다. 말풀이하고 보기글은 큰아이하고 함께 새롭게 지을 생각이다. 이리하여, 아마 한국에서는 처음이고, 다른 나라에서도 없었지 싶은데, ‘여덟 살 어린이’가 ‘사전 편집자’ 노릇을 함께 하는 책을 오늘부터 쓰기로 한다. 4348.8.24.달.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삶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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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다이제스터 2015-08-24 21:51   좋아요 0 | URL
언제나 첫째보다 둘째가 더 큰 혜택 보는 거 같습니다. ^^

숲노래 2015-08-24 21:59   좋아요 0 | URL
꼭 그렇다고 볼 수는 없어요.
큰아이한테는 그야말로
입에 침이 다 마르도록 날마다 몇 시간씩 책을 읽어 주었는데,
작은아이는 큰아이가 읽어 주는 목소리를 듣거든요 ^^;;;;;;

저마다 다른 사랑을 받고
저도 저마다 다른 사랑을 새롭게 지을 수 있어서
늘 고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