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나비가 없는 세상 ㅣ 책공장더불어 동물만화 1
김은희 지음 / 책공장더불어 / 2008년 4월
평점 :
만화책 즐겨읽기 531
고양이가 없는 지구별이 되면
― 나비가 없는 세상
김은희 글·그림
책공장더불어 펴냄, 2008.4.12.
지난달에 우리 집 광에서 새로 태어난 고양이는 으레 마당에서 놉니다. 처음에는 광하고 옆밭 사이를 오가며 놀다가, 천천히 마당으로 나오려 하더니, 요즈막에는 새벽 아침 낮 저녁 밤 가리지 않고 틈틈이 마당에서 평상을 오르내리면서 놉니다.
고양이는 낮잠을 많이 자니 하루 내내 마당에서 뛰놀지는 않습니다. 때로는 평상 밑에 기어들어서 자고, 자전거 밑에 모여서 자며, 처마 밑에 짐을 쌓은 곳에 올라가서 잡니다. 자다가 깨면 먹이를 찾고, 먹이를 찾아 배가 부르면 놀아요.
이 고양이는 마을고양이라 할 만하고, 들고양이라 할 수 있는데, 사람 손을 타려고 하지는 않으면서도, 꼭 우리 집 마당을 놀이터요 삶터로 삼아서 함께 지냅니다. 새끼를 낳은 어미도 우리 집 광에서 태어났고, 이 어미를 낳은 어미도 우리 집 광에서 태어났어요. 아마 이 아이들은 아스라히 먼 옛날부터 이 집에서 나고 죽고를 되풀이했으리라 느낍니다.
“나, 네가 하늘 나는 꿈 꿨다. 날개가 반짝반짝하면서 높이 나는 거 봤어.” “정말? 나 멋졌어?” (135쪽)
‘100일 동안 매일 신디와 추새가 천국에 가게 해 달라고 묵주기도를 했다. 물론 비웃을 사람도 있겠지만, 나는 두 아이를 위해 무엇이든 해 주고 싶었다. 그래서였을까. 100일이 지난 며칠 뒤 원고 마감을 하고 깜빡 낮잠이 들었는데, 꿈에 신디가 보였다. 그런데 분명히 신디가 맞는데 눈이 부시게 온몸에서 흰빛이 나는 하얀 고양이 모습을 하고 나타난 것이다.’ (189쪽)
김은희 님이 고양이하고 함께 지내는 이야기를 담은 만화책 《나비가 없는 세상》(책공장더불어,2008)을 읽습니다. 고양이를 한식구로 여겨서 한집살이를 한다는 김은희 님은 늘 지켜보는 고양이를 만화로 담고, 고양이가 어떤 마음으로 어떤 말을 나눌까 하고 생각하면서 만화를 그립니다. 고양이하고 눈을 마주보면서 마음속을 읽으려 하고, 고양이가 보여주는 몸짓을 눈여겨보면서 삶을 헤아리려 합니다.
문득 우리 집 고양이를 떠올립니다. 우리 집에서 함께 지내는 고양이는 쥐를 꽤 잘 잡습니다. 우리 집에 온갖 고양이가 드나들면서 새끼를 낳을 즈음부터, 천장을 가로지르던 쥐가 모조리 사라졌습니다. 우리 식구가 이 시골집에 처음 깃들 무렵만 해도 쥐가 제법 천장을 가로질렀는데, 참말 요 몇 해 사이에는 생쥐 꼬리조차 구경하기 어렵습니다. 그래도 우리 집 고양이들이 잡아서 먹다가 남긴 생쥐 주검은 곧잘 구경합니다. 쥐가 사는 굴을 찾아서 쥐를 잡았을 수 있고, 논둑이나 밭둑에서 쥐를 잡았을 수 있습니다.
“고양이들은 나무나 담을 탈 수 있으니까 웬만해서는 이런 일이 없는데, 이런 경우는 누군가 일부러 몰아 놓고 그러지 않았을까 싶은데요.” “사람이요?” “적어도 눈은 그렇고요.뭔가 막대 같은 걸로 치지 않는 한 이렇게 되지 않아요.” (140∼141쪽)
‘페르캉을 이렇게 만든 사람은 얼씬거리는 고양이 한 마리 혼내 준 거에 불과하겠지만, 그 생명이 얼마나 고통스러워 하는지를 조금이라도 안다면.’ (148쪽)
사람은 고양이처럼 쥐를 잘 잡지 못합니다. 한겨레도 예부터 집에서 고양이를 기른다거나 고양이한테 먹이를 준 집이 꽤 많습니다. 광이나 부엌이나 천장을 가로지르는 쥐를 잡으라고 고양이한테 밥을 주면서 한집살이를 했을 테지요. 쥐를 잡아야 하는 고양이인 만큼 고양이한테는 목줄조차 안 하면서 한집살이를 했겠지요.
고양이는 쥐뿐 아니라 개구리도 잘 잡고, 때로는 지네도 잡습니다. 어느 모로 본다면, 사람이 고양이한테 내주는 밥은 고양이한테는 주전부리일 수 있습니다. 고양이한테는 더 맛난 밥이 따로 있되, 사람이 애써 밥을 주니까 재미 삼아서 먹을 수 있어요. 게다가 고양이는 쥐를 잡아도 곧바로 먹어치우지 않습니다. 잡은 쥐를 먹을 적에도 조금씩 먹습니다.
시골에서 사는 고양이는 숲바람을 쐬고 나무 밑에서 낮잠을 잡니다. 돌 울타리에 올라앉아서 해바라기를 하다가 꾸벅꾸벅 졸고, 나무 열매를 따먹으려고 멧새가 찾아들면 번쩍 눈을 떠서 새를 잡을 수 있나 하고 쳐다보다가 다시 꾸벅꾸벅 좁니다. 경운기나 짐차가 지나가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습니다. 새가 지저귀는 소리라든지 사람이 다가서는 발소리가 아니라면 도무지 잠에서 깰 생각을 안 합니다.
‘노래를 부르자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 일어났다. 히스테릭한 상태였던 신디와 추새가 눈에 띄게 안정적이 되었다. 물론 페르캉도 통증과 답답함 때문에 불안정했던 모습이 놀랄 만큼 얌전해졌다.’ (151쪽)
‘마당에 나가 한없이 나무나 풀을 들여다보고 있는 추새를 보노라면 구도자처럼 보인다. 친구들은 야생 상태였다면 추새는 분명 도태되었을 거라고 한다. 느린 걸음에 도무지 고양이라 생각되지 않는 온화한 성격. 벌레 한 마리 죽이지 못하는 선량함.’ (182∼183쪽)
만화책 《나비가 없는 세상》을 보면, 누군가 고양이를 몰아붙여서 때리거나 차거나 괴롭히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사람들은 들고양이나 골목고양이를 괴롭히기도 하고, 따로 밥접시를 놓으면서 보살피기도 합니다. 사람들은 이웃사람을 아끼거나 사랑하기도 하고, 이웃사람을 괴롭히거나 따돌리기도 합니다. 학교에서 아이들은 동무를 살뜰히 보듬는 너른 사랑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동무를 괴롭히거나 따돌리는 짓을 일삼기도 합니다.
말을 못 하는 짐승을 괴롭히고, 말을 하는 이웃을 괴롭힙니다. 말을 못 하는 짐승을 아끼고, 말을 하는 이웃을 아낍니다. 두 가지 모습입니다. 남이 저를 괴롭히거나 따돌리면 슬프거나 고단할 텐데, 왜 여리거나 아픈 남(짐승하고 사람 모두)을 괴롭혀야 할까요. 길에서 사는 고양이한테 돌을 던질들 재미있을까요? 누가 나한테 돌을 던지면 재미있을까요? 내가 들고양이한테 돌을 던진다면, 바로 내가 나한테 스스로 돌을 던지는 셈입니다.
‘함께 살던 동생이 둘째 아기 연생이를 낳았다. 방에 재워둔 연생이가 잠에서 깨 울지도 않고 뒤척이면 우리는 몰라도 페르캉은 알았다. 더 놀라운 건 연생이가 젖을 먹고 싶어하는 것도 귀신같이 알아내는 것이다 … 아기가 태어나 처음 한 말은 ‘야옹이’였다.’ (197쪽)
‘엄마 말대로 사람이 동물들이 갖고 있는 만큼의 믿음만 갖고 있다면, 신뢰만 갖고 있다면, 아마도 사랑은 멀리 있지 않을 것이다.’ (199쪽)
먹이를 먼저 얻으려고 다른 고양이를 밀치는 고양이라면, 이 고양이는 한결 잘 살아남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다른 고양이한테 밀리는 고양이라면, 이 고양이는 들에서 살아남기 어렵다고 할 수 있습니다. 내 몫을 챙기려고 다른 사람을 밀치는 사람이라면, 이 사람은 한결 잘 살아남는다고 할 만합니다. 다른 사람한테 밀리는 사람이라면, 이 사람은 사회에서 살아남기 어렵다고 할 만합니다.
오늘날 사회에서 경쟁이나 실적을 따지고 경제성장에 목을 매다는 모습이란, 바로 다른 사람을 밀쳐서 내 몫을 챙기려는 몸짓하고 같다고 할 만합니다. 밥 한 그릇을 얻었으면 함께 먹을 만한데, 함께 나누지 않고 혼자 먹는다고 한다면, 그야말로 혼자 잘 살아남을 테지만, 마음은 몹시 가난하겠지요. 다른 사람을 이웃으로 여기지 못하고 밀치는 삶이라면, 이러한 삶에 사랑이 싹트기란 어렵겠지요.
이 지구별에 고양이가 사라지면 어떻게 될까 하고 헤아려 봅니다. 아마 쥐가 들끓을 테지요. 이 지구별에서 여리거나 자그마한 사람들이 밀리고 밀려서 모조리 사라지면 어떻게 될까 하고 어림해 봅니다. 아마 온누리에 더 무시무시하게 치고받는 싸움이 불거질 테지요. 남을 밀치는 사람만 살아남으면, 남을 밀치는 사람끼리 더 모질거나 매몰차게 밀치려 할 테니까, 싸움밖에 안 남습니다. 남을 밀치지 않고 그저 밀리면서 조용히 있는 사람은, 남이 아닌 이웃을 생각하면서 함께 살아갈 길을 사랑으로 살핍니다.
따스한 마음이 되어 하루를 열기를 빕니다. 오늘도 우리 집 마당에서 새벽부터 신나게 뛰노는 들고양이 네 마리를 물끄러미 지켜보면서 마음을 가다듬습니다. 오직 따사로운 사랑을 마음에 담아 하루를 열자고 생각합니다. 내 마음자리부터 즐거운 노래가 흐를 수 있도록 삶을 짓자고 생각합니다. 4348.7.18.흙.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에서 만화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