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도닷컴> 2015년 3월호에 실은 도서관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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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도서관 풀내음
― 여덟 살 어린이 배움터
우리 집 두 아이한테 시골집은 보금자리이면서 배움터입니다. 여기에 우리 도서관은 책터 구실을 합니다. 두 어버이가 이룬 시골집과 도서관은 아이들한테 보금자리와 배움터와 책터와 놀이터 몫을 톡톡히 합니다. 왜냐하면, 나와 곁님은 우리 네 식구가 아름답게 숲집을 가꾸어 푸른 바람을 마시려 하기 때문입니다.
둘레에서는 여덟 살 큰아이를 보면서 ‘이제 학교에 가겠네’ 하고 말합니다. 면소재지 초등학교에 넣지 않고 집에서 함께 배우며 가르친다고 얘기하면, ‘그래도 의무교육 아니냐’ 하고 묻는 분이 많습니다. ‘학교에서 가르칠 수 있는 것’이 따로 있다고 하십니다. 이러한 말이 틀리지는 않다고 느낍니다. 그런데, 틀리지는 않을 뿐, 아름답거나 사랑스럽지는 않습니다. 오늘날 ‘학교에서 가르칠 수 있는 것’은 거의 모두 시험공부이고 대학입시이니까요.
시골에 있는 학교는 아이들을 모두 도시로 보내요. 도시에 있는 대학교나 공장이나 회사에 넣으려고 하는 시골학교입니다. 시골에 그대로 뿌리를 내려서 흙을 짓거나 삶을 가꾸도록 북돋우려는 시골학교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도시에 있는 대학교에 붙으면 마을마다 걸개천을 큼지막하게 붙입니다. 자랑할 만할 테니까요. 7급 공무원이 되어도 마을에 걸개천이 커다랗게 붙습니다. 박사나 석사 학위를 땄어도 읍내에까지 걸개천이 크게 붙어요. 이와 달리, 시골에서 시골지기가 되는 아이가 있다든지, 바닷가에서 고기잡이가 되는 아이가 있으면, 둘레 어른은 이 아이한테 내내 손가락질을 합니다. ‘뭐 할 것이 없어서 시골에 남느냐’ 하고 다그쳐요.
아이는 도시로 나가서 대학생이 될 수 있고, 도시에서 돈 잘 버는 일자리를 얻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아이는 시골에 뿌리를 내리면서 숲집을 가꾸는 푸른 넋이 될 수 있습니다. 어느 길을 가든 아이가 스스로 씩씩하고 즐겁게 걸어갈 수 있으면 됩니다. 나는 곁님과 함께 우리 아이들한테 이러한 길을 밝히려고 시골에서 도서관을 지키면서 책과 삶을 짓습니다.
《은여우》(학산문화사 펴냄)라는 만화책을 아이와 함께 읽습니다. 새로 나오거나 예전에 나온 만화책은 무척 많지만, 막상 아이와 함께 읽을 만한 만화책을 찾자면 쉽지 않습니다. 사회와 정치에서 어두운 구석을 보여주려 한다면서 전쟁과 폭력과 살곶이를 지나치게 크거나 많이 드러내는 만화책이 있고, ‘학교와 학원을 다니는 겪는’ 이야기만 되풀이하는 만화책이 있으며, ‘가시내는 이쁘장하게 꾸미고 사내는 주먹힘을 뽐내는’ 얼거리에 그치는 만화책이 있습니다. 삶을 사랑하면서 아름다운 숨결로 나아가려는 이야기를 그리는 만화책은 생각보다 퍽 드뭅니다. 따지고 보면, 동화책이나 소설책이나 시집에서도 ‘삶을 사랑하고 아름다운 숨결을 노래하려는 이야기’는 꽤 드물지 싶어요.
만화책 《은여우》 넷째 권을 보면, ‘일본 신사에서 태어난 가시내’가 ‘집안일 잇기’를 꿈꾸는 이야기가 흐릅니다. 만화책에 나오는 아이는 “여자라서 처음에는 남편에게 신사를 맡기고, 저는 무녀를 하려고 했는데, 그것보다는 제 스스로 신직이 되어 신사를 잇고 싶어요(4권 138쪽).” 하고 말합니다. 한국 사회로 친다면 ‘사내한테만 물려주는 집안일’을 ‘사내 아닌 가시내’인 아이가 씩씩하게 물려받아서 새롭게 가꾸려 한다는 꿈입니다.
올해로 여덟 살이 된 큰아이는 이제 시골버스(군내버스)를 탈 적에 따로 찻삯을 냅니다. 읍내마실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으레 ‘어린이 버스표’를 두 장 끊습니다. 여덟 살 큰아이가 스스로 ‘신호 동백 어린이’라 말하도록 이릅니다. 큰아이는 처음에는 몹시 쑥스러워 했지만, 이제는 다부진 목소리로 말합니다. 한 번 하고 두 번 하고 세 번 하면 차츰 익숙할 테지요. 어엿하게 제자리를 찾고 바라보면서 생각할 테지요.
시골버스를 타고 읍내로 마실을 갔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으레 두 아이가 까무룩 곯아떨어집니다. 작은아이는 아버지한테 기댔다가 어느새 누나한테 기댑니다. 큰아이는 창가에 기댔다가 어느새 서로 기댑니다. 두 아이는 서로 아끼고 보살피는 손길을 천천히 온몸으로 느껴서 배웁니다. 우리 마을 어귀에 닿아 버스에서 내릴 즈음 큰아이는 살그마니 눈을 뜨고 혼자서 내립니다. 작은아이는 아버지 어깨에 안겨 잡니다. 큰아이는 가볍거나 작은 짐이라면 하나 거들겠다고 가져갑니다. 대문을 열어 주겠다면서 앞질러 걷습니다.
한겨울에도 물총놀이를 하겠다면서 마당에 놓은 고무그릇에 물을 받아 달라고 조릅니다. 날씨가 폭하고 볕이 좋은 날이면 물을 받아 주고, 두 아이는 손이 빨갛게 얼어도 신나게 물놀이를 누립니다. 곧 이 겨울이 저물고 새로운 봄이 찾아오면 손이 덜 얼면서 신나게 물놀이를 하겠지요. 새봄이 무르익고 온 들과 숲에 푸른 물이 들면, 빨래터에서 함께 빨래를 하면서 놀 테고, 골짜기로 자전거를 몰아 골짝물에서 헤엄치며 놀 테지요.
여덟 살 어린이 배움터를 ‘학교’라고 하는 아주 조그마한 곳에 가둘 마음이 없습니다. 학교는 아이가 삶을 배우는 너른 터전 가운데 아주 작은 곳 가운데 하나라고 느낍니다. 예부터 보금자리가 맨 먼저 배움터이고, 마을이 이 다음 배움터이며, 들과 숲과 바다와 시내와 골짜기가 그 다음 배움터입니다. 보금자리와 마을과 숲을 배움터 자리에서 치우고 오직 학교 한 곳만 배움터 자리에 둔다면, 아이들은 무엇을 보거나 배울는지 궁금합니다. 아이들이 학교를 다니더라도 집에서 사랑과 살림을 늘 지켜보면서 배울 수 있기를 바라요. 아이들이 학교를 오가더라도 마을에서 놀고 숲바람과 바닷내음을 마실 수 있기를 바라요. 온누리 모든 아이가 손수 나무 한 그루 심을 땅을 누리면서 삶내음을 맡는 삶꽃을 피울 수 있기를 바라요. 올봄에 아이들과 심을 씨앗과 나무를 가만히 생각합니다. 4348.2.13.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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