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여우 5
오치아이 사요리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4년 11월
평점 :
절판





만화책 즐겨읽기 469



이 길을 가면서 보는 한 가지

― 은여우 5

 오치아이 사요리 글·그림

 강동욱 옮김

 대원씨아이 펴냄, 2014.11.30.



  귀를 기울이면 온갖 소리가 내 귀로 스며듭니다. 어느 소리는 높고 어느 소리는 낮습니다. 어느 소리는 고요하구나 싶고, 어느 소리는 우렁차구나 싶습니다. 이 소리를 좋게 받아들이거나 나쁘게 여길 수 있을 테지요. 가만히 귀를 기울이다가 생각합니다. 어느 소리가 좋다면 왜 좋고, 어느 소리가 나쁘다면 왜 나쁠까요. 어느 소리가 반갑다면 왜 반갑고, 어느 소리가 거슬리다면 왜 거슬릴까요.


  모든 소리는 노래입니다. 소리는 그대로 소리이면서 노래입니다. 모든 소리가 노래인 까닭은 모든 소리에는 이야기가 깃들기 때문입니다. 모든 이야기는 우리가 저마다 살면서 누리는 온갖 꿈과 사랑이 서립니다.


  시골에서 아침마다 듣는 멧새 노랫소리도 노래요, 보일러가 돌아가는 소리도 노래이며, 아이들이 길게 하품을 하면서 일어나는 소리도 노래입니다. 노래가 아닌 소리가 없기에, 어떠한 소리이든 노래로 듣지 못한다면, 나한테는 노래가 없다는 뜻입니다.



- “역시 제일 먼저 오면 기분이 좋다니까!” (13쪽)

- “하아, 모처럼 사토루의 멋진 무대인데 응원하러 갈 수가 없다니.” “아니, 출전한다뿐이지, 이길지 질지도 모르는데요.” “그렇지 않아! 출전하는 것만으로도 대단한걸!” “승패는 상관없어!” (27쪽)





  어두운 밤에 촛불 한 자루를 켭니다. 촛불 한 자루를 물끄러미 바라봅니다. 한참 촛불을 바라보노라면, 촛불이 어느새 둘로 갈립니다. 왜 둘로 갈릴까 하고 갸우뚱하게 여기면서 눈을 끔뻑이지만, 촛불은 늘 둘로 갈립니다. 살그마니 눈을 돌려 다른 것을 쳐다봅니다. 다른 것은 둘로 안 갈립니다. 오직 촛불만 둘로 갈립니다.


  가까이에서 촛불을 바라보든 멀리 떨어져 촛불을 바라보든, 촛불은 늘 둘로 갈립니다. 이리하여, 촛불을 곰곰이 지켜보기로 합니다. 둘로 갈라져 보이는 촛불은 나한테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는지 지켜보고 받아들이기로 합니다. 둘로 갈라져서 춤을 추는 촛불은 나한테 어떤 노래를 들려줄까 하고 마주하면서 기쁘게 맞아들이기로 합니다.


  촛불은 불꽃입니다. 촛불은 불춤입니다. 촛불은 불노래입니다. 촛불을 바라보면서 내 마음이 스르르 녹고, 촛불을 지켜보면서 내 생각이 새롭게 깨어납니다. 오늘 하루를 여는 내 마음이 새롭게 거듭나도록 이끌고, 오늘 하루를 닫는 내 마음이 고요히 잠들도록 돕습니다.



- “다른 녀석들은 네가 걱정하는 것만큼 신경 안 써. 그리고 세상도 전혀 달라지지 않아. 스스로 제일 만족할 수 있도록 하면 돼.” (29쪽)

- “신의 도움으로 이기면 뭐 하겠어. 할 수 있는 일은 다 했으니까, 나머지는 순리대로 되겠지. 그저 전부 쏟아낼 뿐이야. 그러면 앞으로도 계속 전진할 수 있을 것 같거든.” (41∼42쪽)





  오치아이 사요리 님이 빚은 만화책 《은여우》(학산문화사,2014) 다섯째 권을 읽습니다. 《은여우》 다섯째 권에서는 이 만화를 이루는 여러 아이들 가운데 ‘사내 아이’가 홀가분하게 일어서서 웃으면서 걸어가는 길을 보여줍니다. 처음으로 홀가분하게 서려 하는 만큼 이리 흔들리거나 저리 설레기도 하지만, 떨기도 하고 두렵기도 합니다. 이때에 이 아이를 둘러싼 이웃과 동무와 님은 웃음과 노래로 이야기를 건네요. 모든 삶은 ‘즐거움’이니, 이 즐거움을 기꺼이 받아들이면서 함께 웃고 노래하자고 이야기를 건넵니다.



- “내가 아직 못 미더울지도 모르지만, 그때까지 걱정하지 말고. 지켜봐 줘.” (55∼56쪽)

- “신사는 신을 만나러 오는 곳이지만,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장소이기도 하단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오시는 분도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어.” (79쪽)

- “우리는 우연히 이런 형태로 지상에 머물렀어. 신안을 가진 인간이 우리와 이어지듯, 신의 사자도 신과 인간을 이어주기 위해서 말이야. 역할을 마치면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갈 뿐이지. 모두 어떤 형태로든 이곳에 있는 똑같은 영혼이니까. 그 이후에는 신이 있는 똑같은 세계. 또 다시 어떤 형태로 변할지도 모르고 아닐지도 몰라. 하지만 그 앞에도 ‘즐거움’은 있다고 생각해.” (158쪽)





  잘 되면 잘 되는 대로 내 삶입니다. 안 되면 안 되는 대로 내 삶입니다. 그런데, 삶에서는 잘 되거나 안 되는 일이 없습니다. 모두 ‘그대로 될’ 뿐입니다. 이를 곰곰이 바라봅니다. 높이 뛸 수 있고, 높이 안 뛸 수 있습니다. 밥을 지을 수 있고, 밥을 태울 수 있습니다. 국이 싱거울 수 있고, 국이 짤 수 있습니다. 언제나 기쁘게 맞이하는 하루요 삶이며 살림입니다.


  처음 글씨를 쓰는 아이들 손놀림은 익숙하지 않습니다. 하루하루 흐르고 이레가 흐르며 달포가 흐르고 몇 해가 흐르는 사이, 아이들 손놀림은 야무지고 단단합니다. 나도 아이들과 함께 글놀이와 그림놀이를 하면서 내 손놀림은 다부지고 든든합니다.


  함께 짓는 하루이고, 함께 가꾸는 삶입니다. 함께 웃고, 함께 노래하는 하루입니다. 함께 꿈꾸고, 함께 사랑하는 살림입니다.



- ‘엄마나, 긴타로, 모두 그 이후가 똑같다면, 그, 훨씬 나중에라도, 또 언젠가, 긴타로를 만날 수 있을까?’ (160∼161쪽)

- “우리가 지금 이렇게 생명을 이어가기 위한 시간을 받았다는 것이, 기적일지도 몰라.”



  이 지구별에서 우리가 걷는 길은 서로 어깨동무를 하면서 누리는 기쁨입니다. 내가 스스로 짓는 기쁨입니다. 어떤 길이 따로 있지 않습니다. 내가 걸어가면 바로 길이 됩니다. 내가 걸어가지 않으면 언제나 길이 없습니다. 걸으면 길이요, 걷지 않으면 길이 아닙니다.


  할 수 없는 일이란 없습니다. 하지 않는 일만 있습니다. 할 수 있는 일이란, 바로 내가 기쁘게 손수 하는 일입니다. 만화책 《은여우》에 나오는 젊고 푸른 아이들이 스스로 짓고 스스로 노래하는 새로운 길을 나도 기쁘게 지켜보면서 함께 웃고 노래합니다. 바야흐로 겨울이 저물면서 새로운 봄이 우리 곁에 찾아옵니다. 아침볕이 곱고, 아침바람이 포근합니다. 4348.2.24.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5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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