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을 씻으면서 빨래



  인천에 온다. 큰아버지 댁에서 하룻밤 잔다. 아이들은 새근새근 잔다. 나는 문득 네 시에 잠을 깬다. 어제 하루 내 몸이 퍽 고단했구나 하고 새삼스레 돌아본다. 굳이 더 눕지 않아도 되는구나 싶어서 조용히 일어난다. 큰아버지 곁에 누워서 잠든 아이들 이불깃을 여민다. 씻는방에 들어가서 머리를 감고 몸을 씻은 다음, 빨래를 천천히 한다. 두 아이가 허물을 벗은 옷을 빨고, 세 사람 양말과 내 바지를 한 벌 빤다. 내 웃옷도 마저 빨아야 하는데, 이따 아이들을 씻기면서 나올 새 빨랫감과 함께 빨자고 생각한다.


  빨래를 마치고 나서 옷걸이에 꿰어 넌다. 내가 내 어버이와 함께 살던 무렵에는 빨래기계가 옷을 빨아 주었다. 그무렵에는 ‘몸을 씻으며 흐르는 물’에 옷가지를 적셔서 곧바로 손빨래를 한다는 생각을 못 했다. 제금을 나서 혼자 살림을 꾸리던 때부터 저절로 이렇게 씻고 빨래를 한다. 누구나 제금을 나서 홀로 지낼 적에는 이러한 몸짓이 될까. 먼 옛날부터 사람들 몸에 밴 버릇이나 삶일까. 곧 동이 트겠구나. 겨울이 거의 저문다. 4348.2.6.쇠.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빨래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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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들레처럼 2015-02-07 23:36   좋아요 0 | URL
`제금을 나서`는 무슨 뜻인가요? 그리고 손빨래를 하는 이유가 궁금해요? ^^

숲노래 2015-02-08 04:12   좋아요 1 | URL
아이가 자라 어른이 되는 길에 살림을 따로 나는 일이 `제금`입니다.

빨래는 옛날부터 누구나 손으로 했을 뿐이에요. 그뿐입니다. 삶을 손으로 짓듯이 빨래도 손으로 하지요~

민들레처럼 2015-02-08 10:00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시집 장가를 가다와 비슷한 말이네요. 자꾸 몸이 편해지려고만 하는 삶을 돌아보게 됩니다.^^

숲노래 2015-02-09 18:38   좋아요 1 | URL
시집 장가를 간다고 할 적에는 `그냥 그렇게 짝을 만난다`이고,
`제금`을 난다고 할 적에는,
나이와 얽매이지 않고
`홀로서기`를 하도록 스스로 일어선다는 뜻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