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말을 죽이는 외마디 한자말
(1359) 분粉 1
항아리에 / 쌀이 담겨 있으면 / 쌀분이 배어 나오고 / 소금이 담겨 있으면 / 소금분이 배어 나와요 / 내 마음 항아리엔 / 어떤 분이 배어 나올까요
《최명란-수박씨》(창비,2008) 77쪽
쌀분 → 쌀가루
소금분 → 소금가루
어떤 분이 → 어떤 가루가
화장품을 가리키는 ‘분’이라면 그대로 써야 할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얼굴에 바른다고 하는 화장품을 ‘분’이라 가리킨 까닭은 ‘가루’였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한테는 그저 ‘가루’일 뿐인데, 화장품을 만든 사람과 이를 퍼뜨린 사람은 한국말 ‘가루’가 아닌 한자 ‘粉’을 빌어서 쓴 셈입니다.
분을 바르다
→ 가루를 바르다
→ 화장가루를 바르다
→ 얼굴가루를 바르다
화장품을 가리키는 가루라 한다면 ‘화장가루’처럼 새 낱말을 빚을 수 있습니다. 화장가루는 얼굴에 바르니 ‘얼굴가루’처럼 적을 만합니다. 그냥 ‘가루’로 써도 됩니다. 얼굴에 무엇을 바를 적에 가루를 ‘가루’라 말하지 못한다면, 앞으로도 ‘粉’이라는 외마디 한자말은 곳곳에 또아리를 틀리라 느낍니다.
이 보기글은 동시입니다. 동시를 쓴 이가 ‘쌀분’이나 ‘소금분’처럼 글을 쓰는데, 이런 말마디를 어린이가 어떻게 알아들을 수 있을까요? 어른은 ‘고추분’이라는 말마디를 쓰기도 합니다. ‘쌀분·소금분’뿐 아니라 ‘고추분’도 아주 뜬금없는 낱말입니다. 왜냐하면, 한국말은 ‘쌀가루·소금가루·고춧가루’이니까요.
밀을 빻으면 ‘밀가루’이고, 콩을 빻으면 ‘콩가루’입니다. 누구나 알아듣도록 쓰지 않는다면 한국말이 아닌데, ‘밀분·콩분’처럼 쓰면, 이런 말을 알아들을 사람도 매우 드물 테지요. 4348.1.13.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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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아리에 / 쌀이 담기면 / 쌀가루가 배어 나오고 / 소금이 담기면 / 소금가루가 배어 나와요 / 내 마음 항아리엔 / 어떤 가루가 배어 나올까요
“담겨 있으면”은 “담기면”으로 바로잡습니다. 이처럼 쓰는 현재진행형 꼴은 한국말이 아닙니다.
분(粉)
1. 얼굴빛을 곱게 하기 위하여 얼굴에 바르는 화장품의 하나
- 분을 바르다 /엷은 분 냄새가 풍겼다
2. = 가루
(최종규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