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살이 일기 83] 늘 바라보는 대로
― 하루를 여는 생각
늘 바라보는 대로 하루를 엽니다. 늘 생각하는 대로 모든 것을 바라봅니다. 늘 꿈꾸는 대로 생각을 짓습니다. 내가 보고 싶은 것은 내가 손수 생각으로 짓습니다. 자동차 물결이든 매캐한 잿빛 하늘이든 쳇바퀴처럼 도는 일터이든, 모두 내가 손수 생각으로 짓습니다. 싸워서 얻어야 한다면 싸움을 내가 손수 짓고, 어깨동무하면서 오붓한 두레를 이룬다면 살가운 두레를 내가 손수 짓습니다. 즐겁게 살고 싶으니 즐거움을 짓고, 고단하게 살고 싶으니 고단함을 짓습니다. 좋고 나쁨을 떠나서, 내가 손수 겪고 싶은 일을 생각으로 지어서 손수 겪는구나 싶어요.
나는 늘 작은 멧새를 생각합니다. 작은 멧새는 늘 내 둘레로 찾아옵니다. 시골집에서든, 볼일을 보러 바깥마실을 가는 도시에서든, 참말 작은 멧새가 어디에서나 내 눈에 뜨입니다. 봄을 지나 여름이 되면 내 마음속에는 온통 풀벌레와 개구리입니다. 시골집에서뿐 아니라 도시에서도 풀벌레 노랫소리가 흐르는 곳으로 저절로 발길이 가고, 풀벌레가 있을는지 없을는지 모르는 곳에서까지 풀벌레 노랫소리를 듣습니다.
그리고 작은 들꽃을 늘 생각합니다. 시골집에서는 한겨울에도 작은 들꽃을 누리고, 다른 마을이나 도시로 마실을 다녀올 적에도 곳곳에서 작은 들꽃을 반갑게 만납니다.
아름다운 이웃을 만나고 싶기에 나부터 아름다운 사람이 되자고 생각합니다. 나한테 찾아오는 이웃한테 내가 아름다운 사람이 되고, 내가 찾아가고 싶은 이웃한테 내가 반가운 길손이 되자고 생각합니다. 다만, 손님은 많이 받아야 하지 않습니다. 이웃은 수십 수백 사람이어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누구나 손님이자 이웃일 수 있고, 언제 어디에서나 사이좋게 손님이자 이웃이 될 만하다고 느낍니다.
마을 어귀 빨래터는 여름에 아이들이 물놀이를 하기에 꼭 어울립니다. 겨울에는 물가에서 다른 놀이를 하기에 걸맞습니다. 꼭 물장구만 쳐야 하지 않습니다. 샘터에 깃든 다슬기와 여러 작은 목숨을 바라보아도 즐겁고, 물 한 모금 쪼려고 내려앉는 딱새나 박새를 바라보아도 즐겁습니다. 아이들은 날마다 무럭무럭 자라니, 종이와 연필을 챙겨 그림을 그리며 놀 수 있고, 볕이 잘 드는 자리에서 씩씩하게 올라오는 제비꽃을 가만히 들여다볼 수 있습니다. 이 겨울에 미꾸라지는 어디에 깃드는가 살펴볼 수 있습니다. 늘 바라보는 대로 하루가 흐릅니다. 4347.12.29.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