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알통
서홍관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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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말하는 시 86



어버이는 아이와 함께

― 어머니 알통

 서홍관 글

 문학동네 펴냄, 2010.3.30.



  새근새근 잠든 아이를 안고 밤오줌을 누입니다. 네 살 작은아이가 엊저녁에 퍽 일찍 곯아떨어졌습니다. 낮잠을 거르고 신나게 뛰놀다가 저녁밥조차 못 먹고 곯아떨어졌습니다. 배고픔과 졸음 사이에서 오락가락하다가 졸음이 먼저라면서 잠듭니다. 이러다 보니 밤에 쉬를 누러 혼자 일어나지 못하겠구나 싶어서, 잠든 지 여섯 시간쯤 지난 뒤 잠자리에서 크게 몸을 뒤척일 때에 귓속말로 살짝 “보라야, 쉬하러 가자. 쉬.” 하고 속삭인 뒤 살포시 안습니다.


  잠든 아이를 그냥 안으면 깜짝 놀라서 으앙 하고 웁니다. 잘 자다가 움직여야 하니까요. 잠든 아이를 안을 적에는 반드시 먼저 귀에 대고 소근소근 이야기해야 합니다. 이렇게 하면 아이는 어버이가 들려주는 말을 듣고 느긋하게 몸을 맡깁니다.



.. 입관을 하는데 / 어머니는 뼈만 남은 몸으로 말없이 누워 계시고 / 관에 못질을 하기 전에 나는 어머니 얼굴을 감싸쥐었다 / 차가워진 어머니의 볼을 내 손으로 따스하게 해드리고 싶었다 ..  (어머니, 하관하던 날)



  밤오줌을 누이고 나서 다시 아이를 안으면, 아이는 으레 한손으로 내 어깨나 등 언저리를 톡톡 칩니다. 고개를 다시 가누어 폭 기댑니다. 자면서도 할 짓은 다 합니다. 아니, 어쩌면, 밤오줌을 누여 주어 고맙다는 뜻일 수 있습니다.


  한손으로는 아이를 안고, 다른 한손으로는 오줌그릇을 비웁니다. 큰아이가 밤오줌을 누러 나오면 오줌그릇이 찰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줌그릇을 비우면서 하늘바라기를 합니다. 별이 얼마나 돋았는지 헤아리고, 구름이 어느 만큼 있는지 살핍니다. 별빛과 달빛과 구름을 모두 보면서 이튿날 날씨와 바람을 몸으로 가누어 봅니다.



.. 중학교 친구한테서 / 전화가 왔다. // 아버님이 돌아가셨는데 / 영안실을 못 잡았다고, / 너희 병원 영안실은 비어 있느냐고 ..  (영안실)



  어버이는 아이와 함께 자랍니다. 어버이는 아이를 낳아 돌보면서 날마다 새롭게 자랍니다. 아이는 어버이와 함께 큽니다. 아이는 어버이한테서 사랑을 받고 꿈을 물려받으면서 새롭게 큽니다.


  아이와 함께 먹을 밥을 짓는 어버이는 밥솜씨가 찬찬히 늡니다. 어버이와 함께 밥을 먹는 아이는 수저질이 찬찬히 나아집니다. 아이와 함께 살림을 꾸리는 어버이는 일 매무새가 차츰 늡니다. 어버이 곁에서 살림을 지켜보는 아이는 몸과 마음이 튼튼하게 큽니다.


  아이 앞에서 할 만한 일을 하자고 다짐하는 어버이입니다. 어버이 곁에서 일을 배우고 놀이를 즐기는 아이입니다. 두 사람은 서로 돕고 가르치고 배우고 기대면서 하루하루 삽니다. 두 사람은 서로 사랑하고 아끼고 좋아하면서 삶을 짓습니다.



.. 남산타워에 올라가서 / 벨기에 방향표시와 국기를 보면서 기뻐하는 앤느가 / 벨기에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 그러나 그것만은 아니었던가. / 동대문시장에서 / 고운 녹색 한복 한 벌 사서 맞춰입고는 / 빙글빙글 돌면서 얼마나 좋아하던지 ..  (앤느)



  서홍관 님이 쓴 시를 그러모은 《어머니 알통》(문학동네,2010)을 읽습니다. 아버지가 이 시집을 읽으니 일곱 살 큰아이가 문득 이 책을 들여다보면서 책이름 다섯 글자를 읽습니다. 빙그레 웃습니다. “어머니 알통? 어머니 알통이 뭐야?” 큰아이는 무언가 재미난 이야기가 있으리라 여기면서 조그마한 시집이 궁금합니다. 아버지한테서 조그마한 시집을 건네받은 아이는 시집을 조금 읽다가 어딘가 어려운지 내려놓습니다. 그렇지만 책겉에 적힌 다섯 글자를 네 살 동생한테 가르칩니다. 동생더러 책겉을 보라고 부르면서 한 글자씩 차근차근 짚으면서 읽어 줍니다.



.. 누런 밀밭과 / 키 큰 포플러들이 / 바람 따라 길게 뻗은 시골길. // 버스를 잘못 내려 / 갑자기 걷게 된 / 서양의 작은 마을. / 방울새가 나를 안내한다 ..  (방울새가 없는 풍경)



  어머니 알통은 아이가 물려받습니다. 아이는 무럭무럭 자라 어른이 됩니다. 어른이 된 아이는 씩씩하고 튼튼한 알통을 키워 새롭게 아이를 낳습니다. 새롭게 낳은 아이가 자라면서 알통을 물려받습니다. 새롭게 자라 어른이 된 아이는 다시 새로운 어른이 되고, 새로운 어른이 된 아이는 새삼스럽도록 새롭게 아이를 낳습니다.


  어머니 알통이란 어머니 사랑입니다. 어머니 사랑이란 어머니 삶입니다. 어머니 삶이란 어머니 노래입니다. 어머니 노래란 어머니 숨결입니다.



.. 고문과 학살과 일인독재의 시대가 / 태평성대였다고 / 박정희 기념관을 만들겠다고 / 여기저기서 떠들어대니 // 일기장 구석에 이십구 년째 숨어 있던 표어들을 꺼내어 / 광화문 네거리에 / 플래카드로 다시 걸어놓아야겠네. // 국회를 대통령이 맘대로 해산하고 / 국회의원 삼분의 일을 대통령이 임명하고 / 이게 싫다고 말하면 / 고문하고 구타하고, 감옥에 처넣던 시절이 / 그렇게 좋았더냐고 ..  (10월 유신)



  서홍관 님은 어머니한테서 물려받은 사랑을 조곤조곤 노래합니다. 슬프며 바보스러운 사회 얼거리를 안타까이 바라보기도 합니다. 시집을 읽으며 곰곰이 생각합니다. 바보스럽고 슬픈 독재자를 바라보는 서홍관 님 눈길은, 어쩌면, 이 또한, 어머니 사랑과 같지 않을까 하고.


  어머니한테는 안 아픈 손가락이 없습니다. 열 손가락 깨물면 열 손가락이 모두 아픕니다. 바보스럽고 우악스럽던 독재자조차 ‘누군가한테는 사랑스러운 아이’입니다. 아니, 바보스럽고 우악스러운 독재자로 끔찍한 나날을 보낸 그이도 어릴 적에 어머니 사랑을 받아 태어났고, 어머니 사랑으로 젖을 물었으며, 어머니 사랑으로 밥을 먹었습니다.


  어른이 되어도 ‘어릴 적에 어머니한테서 받은 사랑’을 새록새록 되새긴다면 바보짓을 할 수 없습니다. 어른이 되어도 ‘어릴 적에 어머니가 물려준 사랑’을 한결같이 되돌아본다면 바보짓이 아니라 사랑노래를 부르면서 살아갑니다. 4347.11.30.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시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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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4-11-30 08:31   좋아요 0 | URL
어머니 알통이란 제목도 예쁘고 조각보의 고운 빛같은 표지도 예쁘네요~
거기다 함께살기님의 느낌글을 살포시 읽으니 미처 읽기도 전에 즐겁습니다.^^
감사히 담아갑니다~~

숲노래 2014-11-30 09:56   좋아요 0 | URL
이 시집을 사 놓고 몇 해째 잊고 지냈더군요 ^^;;
며칠 앞서 집안 책꽂이를 치우다가
비로소 알아보고는
바지런히 읽었습니다 ^^;;

예쁜 마음이 찬찬히 흐르는 노래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