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드회사 전화 안 받기
카드를 긁어서 썼으면 돈을 내야 하니, 카드회사에서 재촉 전화를 걸 만하다. 그런데, 카드값을 꼬박꼬박 낼 적에는 ‘고맙습니다. 다 내셨군요!’ 하고 축하 전화(?)를 거는 적이 없다. 카드값을 내는 날짜에서 하루만 지나가도 하루 내내 전화기가 불이 난다. 전화값이나 전기값 내는 일을 깜빡 잊어 두 달이나 석 달치를 한꺼번에 내더라도 이들은 우수리를 붙일 뿐인데, 카드회사는 며칠 늦든 깜빡 잊든 100원이라도 돈이 모자라면 하루 내내 전화로 들볶는다.
카드회사에서 전화가 오면 안 받기로 한다. 카드회사 사람도 답답할까? 답답하면 우수리를 물리고 기다리면 된다. 어차피 우수리를 다 받으면서 무엇이 답답할까?
이달에 전기값을 두 달째 안 내서 재촉 고지서가 왔기에 깜짝 놀랐다. 그런데, 재촉 고지서를 등기로 갖다 주면서 도장을 받는 우체국 일꾼 손에는 ‘우리 마을 집집마다 돌려야 하는 재촉 고지서’가 한 뭉치이다. 아마 우리 마을 이웃집 할매나 할배도 하나같이 날짜를 잊으신 듯하다. 시골에서 가을은 얼마나 바쁜가. 새벽부터 밤까지 아주 바쁘게 일하는 가을철이니 우리 마을뿐 아니라 이웃 여러 마을 할매와 할배는 가을마다 전기값 내러 우체국이나 농협에 가는 일을 깜빡 잊으실 만하다.
시골 할매나 할배더러 ‘자동이체’ 왜 안 하느냐고 물을 수 있을 테지만, 은행에 가려고 모처럼 마실을 하시니, 마실하는 재미를 자동이체한테 빼앗길 수 없다. 나는 아이들과 자전거를 타고 설렁설렁 들마실을 하며 우체국에 가는 재미를 자동이체한테 빼앗기고 싶지 않다.
다만, 카드값은 돈이 없어서 미룬다. 미루고 미루어 드디어 돈이 들어오면 말끔히 한 달치를 갚는다. 그리고, 두 달쯤 앞서 ‘카드값 결재 보름 미루기’를 했더니 카드회사에서는 나를 신용불량자로 올려서 카드정지뿐 아니라 앞으로 새 카드도 안 내준다고 한다.
어쩌면, 나는 돈이 없다는 말은 핑계이고, 이 괘씸한 카드회사 사람들더러 ‘너희도 답답해 보라’는 뜻으로 전화를 안 받는달 수 있다. 두 군데 카드회사에 십육만 원과 구만 원씩 이달과 다음달에 치르면 드디어 카드빚이 끝나는데, 이달과 다음달을 손꼽으며 기다린다. 밀린 카드값 오십만 원이 끝나면 카드회사인 은행(이 은행은 시골에 지점이 없어 순천이나 서울까지 가야 한다)에 가서 카드를 가위로 잘라 은행계좌를 없앨 생각이다. 4347.11.29.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