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정가제 호들갑
2014년 11월 21일에 새로운 도서정가제대로 책을 다루어야 한단다. 앞으로 이레 남는다. 그러면, 도서정가제가 있고 없고에 따라 무엇이 달라질까. 여느 동네책방이나 헌책방은 이러한 제도가 있거나 없거나 대수롭지 않다. 그저 ‘책’을 다루기 때문이다. 그런데, 몇몇 곳에서는 이 제도 때문에 흔들릴 만하다. 왜냐하면, 몇몇 출판사는 ‘인터넷 입고율’을 따져서 책값을 뻥튀기로 붙인 다음 ‘큰 에누리’와 ‘적립금’과 ‘덤으로 끼우는 선물’로 사람들을 홀리면서 장사를 했기 때문이고, 여러 누리책방도 몇몇 출판사와 손을 잡고서 ‘큰 에누리’와 ‘적립금’과 ‘덤으로 선물 끼우기’를 마치 ‘거저로 주는 듯’ 빙그레 웃으면서 책을 팔았기 때문이다.
도서정가제 때문에 ‘책 읽는 사람’이 고단하거나 힘들 일이란 없다. 왜냐하면, ‘책 읽는 사람’은 ‘싸구려 떨이 물건’을 ‘책’으로 잘못 알고 사들이는 일이란 없을 테니까. 책을 읽는 사람은 그저 ‘책’을 찬찬히 살펴서 읽을 뿐이다. 만 원 값을 붙인 책을 천 원에 후려쳐서 파니까 살 만한가? 이만 원 값을 붙인 책을 만 원에 깎아서 파니까 살 만한가?
우리가 읽을 만한 책이라면, 이만 원 값이 붙은 책은 이만 원을 치르고 살 만해야 옳다. 우리가 읽어서 마음을 살찌울 책이라면, 만 원 값이 붙은 책은 만 원을 치르고 살 만해야 알맞다. 이렇게 될 때에, 책을 쓴 사람과 책을 만든 사람과 책을 파는 사람 모두 즐겁게 ‘돈을 벌어’서 새로운 작품을 쓸 수 있고 새로운 책을 엮을 수 있으며 새로운 책을 다루어 팔 수 있는 힘을 얻는다.
아주 마땅한 노릇이다. 책을 아주 헐값에 후려쳐서 팔면 누구한테 좋을까? 아무한테도 안 좋다. 만 원짜리 새책을 오천 원에 후려쳐서 팔면, 이 책을 쓴 사람은 글삯(인세)을 어떻게 받나? 이 책을 만든 출판사는 다음 책을 내놓을 돈을 어떻게 모으나? 책을 다루는 책방은 흙 파먹고 사나?
만 원짜리 책은 만 원에 사고팔 수 있어야 옳다. 이만 원짜리 책은 이만 원에 사고팔 수 있어야 알맞다. 그런데, 한국 사회는 이러한 얼거리를 ‘큰 출판사’와 ‘돈에 눈먼 출판사’ 두 곳이 앞장서서 깨뜨렸고, 여러 누리책방과 큰 새책방이 서로 손을 맞잡고 허물었다. 그리고, ‘책 즐김이’가 아닌 ‘책 사재기꾼’이 되고 만 우리 스스로 이러한 얼거리를 망가뜨렸다.
도서정가제가 들어선다고 해서 ‘거품 책’이 사라지거나 ‘거품 출판사’가 하루아침에 자취를 감추리라고는 느끼지 않는다. 왜냐하면, 책에 붙인 제값대로 책을 사고파는 제도가 아니기 때문이다.
책을 읽는 사람은 이러한 때에 생각을 슬기롭게 밝혀야 한다. 깎는 값이 아니라 옹근 값으로 살 만한 책인지 아닌지 살펴야 한다. 깎아 주어야 살 만한 책이라면, 이러한 책은 처음부터 안 살 만한 책인 줄 알아채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책은 안 사야 한다. 출판사와 누리책방이 짝짜꿍이 되어 ‘거품 값을 붙인 뒤 후려치기 해서 우리 눈을 홀리려는 책’은 처음부터 안 사야 한다. 이런 책이 안 팔리고 안 읽히도록 해야 한다.
도서정가제라고 하는, 터무니없는 제도가 태어난 까닭은, 우리 스스로 ‘책 즐김이’가 아니라 ‘책 사재기꾼’으로 나뒹굴기 때문이다. 반값으로 후려치는 책이라든지 자그마치 90%를 깎아내리는 책은 쳐다보지 말 노릇이다. 숲에서 벤 나무로 지은 책다운 숨결이 깃들지 않은 ‘싸구려 떨이’는 손에 쥐지 말 노릇이다. 책다운 책을 살피도록 눈길을 키울 노릇이다. 스스로 ‘책 즐김이’가 되지 못한다면, 정치 우두머리가 엉뚱한 짓을 일삼아도 무엇이 엉뚱한지 알아채는 눈썰미가 없기 마련이다. 제대로 된 ‘책 즐김이’가 될 때에, 스스로 삶을 지을 수 있고 생각을 가꿀 수 있다. 거품은 걷어내야 한다. 맛난 국을 먹어야지, 어떻게 거품을 먹겠는가. 부질없는 거품은 땅에 뿌리고, 맑고 구수하며 맛난 국을 먹자. 참된 국을 먹자. 참된 책을 읽자. 참된 삶을 일구자. 참된 사람이 되자. 4347.11.14.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책 언저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