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쓰기를 어려워하는 학생들을 위한 지침서.

독후감과 서평은 다르다는 것.
서평이 보다 전문적이고 냉정하고 분석적인 영역이라는 것. 나의 감수성과 감동과 경험보다는 보편적인 공유의 지점이 언급되고 제시되어야 한다는 것.  - P32

그보다는 책 전체에 대한 의의 부여가 훨씬 중요하다. 잊지 말자. 지적하기를 위한 단점 찾기는 비평의 원래 목적을 헷갈리게 만들고 칭찬을 위한 장점 찾기는 비평의 날카로움을 무디게 만든다. - P36

예를 들자면, 우리 서평러들이 서평에서 해야 할 일은1. 왜 ‘마음이 먹먹한가‘의 원인을 분석하고,
2. 이 책이 왜 이렇게 ‘좋았을까‘의 근거를 찾아내 드러내는 것이다.
3. 그리고 분석과 근거를 바탕으로 다른 사람들이 책을 읽고 싶도록(혹은 전혀 읽고 싶지 않도록, 혹은 읽을 필요가 없도록) - P51

이 책은 ‘왜 불편할까‘, 이 책은 ‘어떻게 불편해졌을까‘도가능하다. 때로는 이 책은 ‘왜 슬플까‘ ‘어떻게 슬픔을 드러냈을까/어떻게 효과적으로 슬퍼졌을까‘도 가능하다. 혹은 이 책은 ‘시대에 뒤떨어졌다‘, ‘어떻게 구시대적인 사고방식이 되었을까‘도 물론 가능하다. - P52

그래도 책만 한 선생은 없다는 옛 말씀은 여전히 옳다. 우리는평생을 걸쳐 교과서 시대보다 더 넓고 자유롭게 배울 필요가 있는데, 검색창과 인터넷에만 빠져들면 지나치게 떠다닐 위험이있다. 투자의 안전자산이 금인 것처럼 책은 공부의 최대 안전자산이다. 그래서 일평생 사람은 공부해야 산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우선 책 읽기의 세계에 빠질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오늘날의 책 읽기가 ‘암기‘라는 전통적인 공부 방식과 ‘검색‘이라는현대적인 공부 방식을 중도적으로 활용하면서 동시에 비판과창의와 교양과 지성에 접근할 수 있는, 제3의 공부 방식이기 때문이다. - P66

손이 빠른 학생들은 간략한 책 소개를 적어도 500자 정도 쓸 수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안 책은 여러분을 스쳐 지나간다.
중요한 의미가 되지 못하고, 영향도 미치지 못하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아는 것이 아는 것이 아니고 직접 읽어보아야 한다.
읽고나서 ‘정말 싫다, 혹은 반대한다, 혹은 이해할 수 없다‘는 결론을 얻는다고 해도, 그 독서는 검색을 통해 줄거리와 주제를 넘겨받는 것보다는 더 좋은 영향을 미친 것이다.
영향력이니, 영혼에의 스며듦이니 이런 소리를 하지 않아도‘책은 읽어야 한다. 왜냐하면 책을 읽음으로써 우리는 배우게된다. 책에는 사람들의 의견, 생각, 숨소리, 웃음소리, 고통, 신음,
비판, 미움, 용서, 사랑, 분노, 잘못, 후회, 질책 등이 담겨 있으므로, 우리는 이것들을 책으로써 학습하게 된다. 읽으면서 더 많은암기의 대상을 만날 뿐만 아니라, 더 많은 숙고의 문제들, 더 많은 알아야 했으나 숨겨져 있던 진실들, 생각하는 방식과 생각해야 할 방식에 대해서 배우게 된다. - P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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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와이스
미치 앨봄 지음, 유혜인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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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오랜 세월 마법으로 과거를 돌이키며 살던 나였지만 처음으로 그 순간 만큼은 아무것도 바꾸지 않고 그대로 뒀어. 진정한 사랑에는 또 하나의 진실이 있었기 때문이지. 사랑이 충만할 때는 아무것도 바꾸고 싶지 않다는 진실 말이야.     -208쪽-


살면서 시간을 되돌리고 싶을 때가 얼마나 많은지. 

민망한 실수를 했던 순간에, 신중하지 못한 언사로 상대의 기분을 상하게 했을 때, 원치 않는 갈등의 순간에......다시 돌아갈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이불 속에선 다시, 다시, 다시 그 상황과 순간을 돌이켜 보기도 한다.


<트와이스>는 처음부터 흥미진진했다. 주인공 알피가 카지노에서 불법으로 거액의 돈을 땄다는 혐의로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그의 능력이 그가 기록한 노트에 의해 하나씩 드러날 때. 뒷부분이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나의 경험에 한정되어 두 번을 살 수 있다니. 도덕적으로 양심에 거리끼는 일만 아니라면 얼마든지 원하는 상황으로 돌이킬 수 있다. 주인공 알피가 풀어 놓는 어린 시절의 이야기, 어머니의 죽음 앞에서, 아버지의 재혼 앞에서, 또는 치기 어린 사랑의 순간에, 방황하며 일부러 몸을 던지는 죽음의 순간에서 그저 '다시'라고 하면 원하는 시점으로 돌아가 다시 그 순간부터 살아낸다. 경험하고 싶은 것을 충분히 누리고 '다시'만 외치면 된다니. 

단, 누군가의 '죽음'은 되돌릴 수 없다. 친구의 죽음을 막아보려 했지만 상황만 달라졌을 뿐 정확히 그 시간에 죽음을 맞이한다. 태어남과 죽음 만큼은 신의 영역. 그래도 얼마나 가슴 떨리는 능력인가. 

나도 원하는 게 있고 너도 원하는 게 있겠지. 하지만 하느님은 그분의 뜻대로 하신단다. -196쪽-

하지만 이야기는 그 능력이 결코 그에게 축복이 아니었음을 보여주며 전개된다. 내 마음이 변했을 때, 정말로 사랑하는 사람과의 시간을 되돌리면 그 사람은 다시 나를 사랑하지는 않게 된다는 사실. 알피는 진실로 사랑하는 자이나와의 우여곡절 사랑과 관계를 되돌리기 위해 몇 번의 '다시'를 사용하지만 결국 그에게 남은 건 수없이 얽힌 순간들의 파편들이 가로막은 그녀와의 어그러진 관계 뿐이었다. 그는 모든 것에 회의를 느끼고 떠난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수십 년을 죽은 듯이 지낸다. 


이야기는 결국 자이나의 사랑을 받는 것을 포기하는 대신 무한정 사랑을 줄 수 있는 관계를 선택하는 알피의 이야기로 전개가 된다. '진정한 사랑'이 항상 쌍방향이어야 한다고 무의식적으로 믿는 나에게는 굉장히 신선한 반전이었다. 결국 상대가 나를 사랑하고 나도 그를 사랑해야 한다는 그 욕심이 어쩌면 우리의 모든 것을 어그러뜨리지는 않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이 뭐기에, 사랑은 또 뭐기에 붉게 타올랐던 열정을 희끄무레한 익숙함으로 퇴색시키는 걸까? -219쪽-


어쩌면 시간은 흘러가는 것이고, 사랑은 퇴색하는 것을 받아들이면서 사는 것이 인생 아닐까 싶다. 그것을 견디고 받아들이지 못했던 알피는 순간을 되돌려 시간을 사고, 사랑을 지속하려 노력하는 어리석음을 오랜 시간 되풀이하지 않았을까. 그는 어느 순간, 그 모든 것이 의미가 없음을 깨닫는다. 


현재 시제로 사는 삶은 확실히 다르더군. 사소한 것도 놓치지 않으려 주의를 기울이게 되었지. 감사하는 마음과 포용력도 커지고.  -214쪽-

전혀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사랑을 이룬 결말. 책을 덮으며, 처음 가졌던 생각. 나도 '다시' 돌아가고 싶은 수많았던 순간들은 어느새 머릿속에서 많이 사라졌다.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오히려 배울 수 없었던 수많은 것들이 있다고 했다. 정말 맞는 말이다. 사람은 실수를 통해 배우고, 부끄러운 순간을 통해 겸손해 진다. 한 번만 살 수 있기에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하는 거겠지.


수 백 년 전 고전 소설들만 읽다가 오랜만에 읽은 현대 소설이었는데, 깊이 몰입해서 매우 재미있게 읽었다. 요새 많이 나오는 설정인 타임 슬립 이야기인 것 같지만 본인이 선택할 수 있다는 점에서 더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주인공의 선택이 가져오는 결과가 흥미진진했다. 

또, 내게 주어진 한 번의 시간, 되돌릴 수 없기에 더없이 소중한 내 삶과 시간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소중히 여겨야지. 최선을 다해야지. 하지만 실수한다 해도 받아들여야지...하는 그런 마음들. 


혹시 지금 시간을 되돌려 현재를 모면하고 싶은 분들이 있다면, 잠시 알피와 지아나의 이야기 <트와이스>를 읽어보면 좋겠다. 


모든 걸 바꾸려고 애쓰지는 마. 알았지? 실수를 전부 바로잡을 필요는 없어. -3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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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보니 그곳이 천국이었네 - 탄자니아 ㅣ 여행그림책
나태주 지음 / 달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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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사람이기를 잘 했다

내가 오늘도 숨쉬는

사람이기를 잘했다

  내가 여기 오기를 잘했다

  내가 너를 다시

만나기를 참 잘했다

다 잘했다.



80세가 되신 나태주 시인이 월드비전을 통해 후원하던 탄자니아 소녀를 만나러 21시간의 긴 여정을 시작하는 그 시점에서부터 이 시집은 시작한다. 내용을 전혀 몰랐기 때문에 책을 펼친 후 나도 함께 그 여정을 떠난 듯 몰입할 수 있었다. 밤 늦은 인천 공항에서부터 낯선 탄자니아 마을까지.


그의 여정을 함께 하며 들었던 생각은, 참 한결같이 따뜻하고 한결같이 넉넉한 시선으로 자신이 처한 곳곳을 살펴본다는 것이다. 사소한 눈빛, 사소한 몸짓 하나도 자신의 언어로 다시 기록으로 남기는 노시인의 그 순수함과 열정과 꾸준함이 나 자신을 겸손하게 만든다.


나태주 시인의 언어는 화려하지 않고 투박하고 소박하다. 그것은 그가 방문한 탄자니아와 닮았고 그곳 사람들과 닮았다. 그래서 더 그 여정과 그의 언어는 잘 어울린다는 생각을 했다. 시인의 호기심어린 질문이, 안타까운 마음이 곧 한 문장이 되고 시를 이룬다. 나태주 시인의 시는 그래서 우리의 질문과 생각을 그대로 노래로 옮겨 놓는다.


일정 내내 함께 한 동행분들을 관찰하고, 오래도록 후원한 한 소녀를 관찰하고, 흙먼지 날리는 탄자니아 마을의 검고 깊은 눈동자의 사람들을 살핀다. 그리고 그들 안에서 참 예쁜 마음과 눈빛을 길어내어 칭찬하고 격려하고 꼭 끌어안는다. 그의 시는 그런 느낌이다. 어렵지 않게 마음을 전달하고 있는 그대로의 감정을 느끼게 한다.

  

시집의 후반부는 <새벅잠 깨어>, <저녁기도>, <핑계> 등의 제목에서 볼 수 있듯 일상의 상념과 관찰을 담은 시로 채워져 있다. 이 두툼한 시집은 어느 쪽을 들고 펼쳐도 삶을 돌아보고 그 앞에 겸손하고 싶은 시인의 마음이 느껴진다. 그리고 종종 삶을 아이의 시선으로 보는 시인의 마음을 만날 수 있다. 마침 진지하게 읽다가 훗 하고 소리내어 웃게했던 시 한 편을 옮겨 본다.


<그런 숙제>


중학생 딸을 둔 어느 엄마의 말이다


자기 딸은 학교에 지각을 곧잘 하는데

딸아이 담임 선생님은

지각하는 학생들에게 벌칙으로

시 한 편씩을 외워오라고 숙제를 낸다고 한다

그런데 주로 나태주의 시를 외워오라고

숙제를 낸다고 한다


그런 숙제라면 더 많이 내주면 좋겠고

그 딸아이 더 여러 차례 지각하는

아이가 되었으면 좋겠다

  

실제로 내가 아는 나태주 시인은 참 따뜻하면서도 위트가 넘치고 호기심 많은 아이같은 분이시다. 언젠가 공주에 있는 그의 '풀꽃 문학관'을 방문했을 때, 마침 마주쳤던 시인의 모습이 이 시와 닮았다. 그곳의 작은 방에 있던 정말 예스런 풍금을 직접 쳐 주시며 동요를 불러 주셨었는데 그 모습이 참 진지하면서도 재미있게 느껴져 내내 미소 지었던 생각이 난다.

모든 시인들은 한편으론 어린 아이와 같겠지만 나태주 시인은 정말 그러하다. 공주 시내를 자전거 타고 다니시는 모습을 오래도록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의 따스한 시를 오래도록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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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가 진실을 말하는 한 어떤 알지 못할 방법으로 진실의 연속성은 깨지지 않는다. 인류 유산을 지속시키는 일은 누군가에게 말을 해서가 아니라 온전한 정신을 유지함으로써 가능하다. 다시 탁자로 돌아간 그는 펜을 잉크에 담근 후 이렇게 썼다.
미래에게, 또는 과거에게. 생각이 자유로운 시대에게, 사람들이저마다 다르고 외롭게 살지 않는 시대에게. 그리고 진실이 존재하고 한 번 일어난 일이 없었던 일로 되지 않는 시대에게:획일적인 시대로부터, 고독의 시대, 빅 브라더의 시대, 이중사고의 시대로부터 인사를 보낸다! - P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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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한 번의 삶
김영하 지음 / 복복서가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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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와 내가 추던 기대와 실망의 왈츠는 그때 비로소 끝이났던 것 같다.
아버지의 유언 아닌 유언은 반만 지켜졌다. 유골은 망자의뜻에 반해(실은 엄마의 강력한 의지에 따라) 대전 현충원에묻혔고, 나라가 이름을 새겨 비석을 세웠다. 제사 지내지않는다. 대신 나는 내 방식대로 아버지를 기억한다. 나는글을 쓴다. 망자가 내게 남긴 것들에 대하여. 물론 아버지는좋아하지 않았을 것이다. - P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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