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가 짚고 알려주니 얼마나 고마운가 (이방인 번역)



  외국책이 한 가지 번역만 있으라는 법이 없다. 한국사람이 쓴 한국문학이라면 한 가지 책만 있을 테지만, 외국사람이 쓴 외국문학은 여러 가지 판이 나올 수밖에 없다. 《모비딕》 번역이 한 권만 있을 수 있을까? 《앤》 번역이 한 가지만 있을 수 있을까? 《창가의 토토》 번역이 한 권만 있을 수 있을까? 어린이 그림책인 《생쥐와 고래》조차 ㄷ출판사 판과 ㅅ출판사 판 번역이 다르다. 러시아 옛이야기를 다룬 《장갑》이라는 그림책도 두 가지 번역책이 있다. 번역하는 사람 삶과 넋뿐 아니라, 번역하는 사람이 어린이를 마주하는 매무새에 따라 번역이 달라진다. 한 가지 번역만 있어야 한다면 《삼국지》나 《수호지》는 앞으로 아무도 번역해서는 안 된다. 한글 아닌 한문으로 글을 쓴 옛사람 책도 한 사람만 번역하고 더는 번역해서는 안 된다.


  지난날에 한글 아닌 한문으로 글을 쓴 그분들이 되살아나서 한문 아닌 한글로 글을 다시 쓰지 않는다면, 한국사람이 빚은 책과 문학조차 여러 가지 번역이 나올 수밖에 없다. 글쓴이 넋은 글쓴이가 오롯하게 알지, 다른 사람은 오롯이 알 수 없다. 번역하는 말씨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글맛이 아주 달라져, 린드그렌 님이 쓴 문학도 어떤 사람이 옮겼느냐에 따라 이야기마저 다르게 느끼곤 한다. 《사자왕 형제 모험》 같은 작품은 번역판이 너덧 가지 있고, 너덧 가지마다 글맛이 다르다. 그렇다고 어느 한 가지 책만 읽으라고 이야기할 수 없다.


  이정서라는 분이 새로 옮긴 《이방인》을 놓고 참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한다. 게다가 이정서라는 분이 새로 옮긴 《이방인》에서 드러나는 잘잘못을 여러 사람이 찬찬히 짚어서 꼼꼼하게 알려준다. 그리고 이정서라는 분을 비롯해 《이방인》을 펴낸 출판사에서는 이 번역책에서 드러나는 잘잘못을 독자가 짚거나 알려주거나 밝혀도 그리 반기지 않을 뿐더러, 고맙게 여기지 않는다.


  독자는 어떤 사람일까. 출판사에서 책을 내면 독자는 고스란히 믿고 따르기만 할 사람인가? 번역자와 출판사 대표는 어떤 사람일까. 독자가 짚거나 알려주거나 밝히는 잘잘못을 모두 내팽개치면서 거친 말을 퍼붓는 사람인가?


  가만히 보면 처음부터 모든 이야기는 ‘끝’이 있다. 《이방인》이라는 책을 새로 번역한 새움출판사는 독자와 즐겁게 이야기를 나눌 생각이 없다. “우리가 읽은 이방인은 카뮈의 이방인이 아니다”라는 말이라든지 “25년을 속아 온 번역의 비밀”이라는 광고 글월이 모든 것을 말한다. 번역자와 출판사 대표와 직원 모두, 독자는 ‘출판사가 내놓은 책을 받아먹기’만 해야 한다고 여길 뿐이다. 이정서와 새움출판사는 모두 ‘25년 동안 속으며 살아온 독자가 바보’라는 생각을 처음부터 품었다. 그러지 않고서야 다른 번역자를 함부로 깎아내릴 뿐 아니라, 독자가 알려주는 잘잘못을 놓고 온갖 핑계와 막말을 일삼을 수 없는 노릇이다.


  이정서와 새움출판사한테는 한 마디 말을 들려줄밖에 없다. 오직 한 마디뿐이다. “이 책은 카뮈의 이방인이 아니라 새움출판사의 이방인이다. 카뮈가 쓴 이방인이 아니라 새움출판사가 쓴 이방인이다.”


  이정서와 새움출판사가 독자 앞에서 제대로 뉘우치지 않는다면, 나로서는 앞으로 새움출판사가 하는 일과 이곳에서 펴내는 책을 하나도 믿을 수 없다. 독자는 바보가 아니니까. 독자는 책을 사랑하고 문학을 아끼는 사람이니까. 4347.5.7.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책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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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서 2014-07-13 07:08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최종규님, 이정서입니다.
블로그에 올리신 글들을 보면 세상을 따뜻하게 바라보고 사시는분 같은데 왜 유독 <이방인>에만 이렇듯 섬뜩한 적의를 품는지 안타깝습니다. 초기에도 아마 제가 선입관을 갖지 말아주셨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드렸던 것 같습니다. 아무튼 독자님들 같은 분들의 오해를 영원히 가지고 갈 수 없기에 제나름 최선을 다해볼 생각입니다. 오해를 풀 수 있었으면 정말 좋겠습니다.


<연재를 시작하며>



안녕하세요, ㅇㅇㅇ입니다.

어제 이십년이 넘도록 의문을 갖고 있었던 이방인을 오랫만에 읽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저는 대학에서 프랑스언어학을 전공한 사람으로, 문학전공자가 아닌 까닭에 이방인의 소설적 가치를 미처 느끼지 못하는 것인가 생각했었습니다.

세상을 바꿨다는 소설에 왜 나는 감동을 느끼지 못하는 걸까, 죄책감마저 생길 정도였어요. 번역본이라 이해가 잘 안 되는 걸까 생각하며 대학원에 진학해서는 원서완독에 도전했습니다만, 그땐 어려서였는지 해석은 되지만 그렇다해도 뫼르소와 주변인물의 캐릭터를 완벽히 이해하기는 어려웠습니다. 번역서와 원서를 같이 두고 읽어보기도 했죠. 아무리 생각해도 의역이다 싶었지만, 번역도 일종의 문학장르니까 그럴수 있구나 했습니다. 이정서 선생님의 번역본을 읽으면서 깨달았어요. 그때 선생님처럼 분노했어야했다는 걸요...그가 맞겠지, 내가 몇년 공부했다고...라며 아 역시 난 문학체질은 아닌가봐 했던 게 후회됩니다. ^^



요점은, 이방인이 엄청난 재미를 주는 소설이자 진짜 세상을 바꾼 책이 맞다는 걸 2014년에라도 알려주셔서 감사하단 거예요.

책의 뒷장에 장승일 선생님께서 쓰신 글에 완전공감합니다.

이방인이 좀 더 일찍 제모습을 드러냈다면 전국 대학에서 불어불문학과가 덜 없어졌을 수도 있었을텐데, 아쉽습니다. ^^

이방인을 주변에 널리 알리고 있습니다.

남편도 곧 읽을 거예요.

감사합니다.





얼마 전 한 독자로부터 받은 메일입니다.

제가 포기하려할 때면 날아들었던 이런 격려글 들이 곧, ‘카뮈로부터 보내 온’ 편지가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믿음을 주신 분들을 위해서도 제가 무너져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 그래서 연재는 다시 시작되었고, 끝까지 가보려 합니다.

독자님들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이정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