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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 (양장) - 개정판 새움 세계문학
알베르 카뮈 지음, 이정서 옮김 / 새움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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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코 남의 번역의 호불호를 말하려는 게 아니다.


나는 독자들과 함께 세계인의 문화적 유산을 제대로 읽고 싶은 것이다. 왜 세계적인 고전들이 우리에겐 따분하거나 혹은 난해하거나, 혹은 유치하게 보이는 것일까? 그것이 정말 문화적, 시대적 차이 때문일까?

내 고민은 거기서 시작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싶어서 힘들게 직역을 하고, 비교해보면 어김없이 잘못되어 있다. 정말 중요하달 수 있는 섬세한 부분들이 번역과정 중에 틀어져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많은 역자들이 이런 식의 번역을 하고 있는 것일까? 실력이 부족해서? 게을러서? 당연히 그런 문제가 아닐 테다.

이건 번역에 대한 기본적인 인식의 문제에서 기인하는 것 같다.

우리는 번역을 절대로 직역만으로는 안 되며, 의역이 불가피하다고 여긴다. 전문가들일수록 더 그렇다. 실제 번역을 해보면 직역과 의역의 문제는 무시로 맞닥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실상 모든 번역가는 직역을 한다. 작가가 쓴 문장 그대로의 의미를 정확히 옮기려 애쓰는 것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 직역이 쉽지 않은 문장을 만나게 된다. 복잡한 문장으로 인해 우리말로 직접 옮기기 힘드니, 아마 이런 뜻일 거야’, ‘이런 말을 하고자 했을 거야지레 짐작하고 원래 문장의 문법을 거스르며 새로운 문장을 만드는 것이다. , 의역하는 것이다.

 

별것 아닌 듯해도, 그러한 것들이 하나 둘 모여 미묘한 부분에서, 캐릭터가 바뀌고, 이야기가 달라지기 시작하는 것인데, (유명한 고전일수록)처음 틀리게 번역된 이미지로 인해 그게 잘못되었다는 것을 잘 알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누군가에게 (직역이) 어려우면, 그건 다른 이에게도 매한가지이다, 그러다보니, 그 잘못된 것이 바로 잡히지 않은 채, 역자마다 약간씩의 차이를 보이며 계속해서 의역인 채로 (잘못된 채로) 남게 되기 때문이다.

 

실상 그런지 아닌지를 확인하는 일도 그닥 어려운 일이 아니다. 번역자 자신이 다시 한 번 냉정하게 원문과 자신의 번역문을 비교해보면 그것이 의역이엇음을 금방 알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정말 직역이 되지 않는 문장이 있을까? 그런 것은 실상 없다고 봐야 한다. 단순한, 그래서 어려운(?) 언어인, 영어와 우리말은 정말 많이 다르기 때문이다(물론 나는 지금 영어와 불어로 한정해 이야기하고 있다).

 

영어로는 직역만으로 절대 바른 번역이 될 수 없다. 아니 바르다’ ‘그르다의 문제가 아니라 원래 작가가 쓴 문장 그대로를 옮기는 게 불가능한 것이다. 실제로 영어권 학자, 번역가들이 번역은 직역과 의역의 조화가 불가피하다고 말하는 것은 그래서이다. 영어가 가진 한계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것인데, 우리 전문가들 역시 똑같은 말을 하는 것이다. 우리말은 영어와 완전히 다름에도 말이다. 원래부터 비문이 아닌 이상, 우리말로 직역 되지 않는 문장은 없다. 비문법적으로 번역해야할 문장은 없다는 것이다.

 

정리하면,

 

역자들은 의역을 하는 그 순간, 자신의 번역이 틀렸을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불가피하다고 여기고 의역하고 넘어가는 것이다. 그런데 바로 그런 불가피성을 느끼는 문장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작품은 원래의 의미에서 멀어질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내가 본 <이방인>이 그랬고, <페스트> <어린왕자> 가 그러했고, <위대한 개츠비> <노인과 바다> <킬리만자로의 눈>이 그랬다. 지금 보는 <1984>가 그렇다.

 

나는 이 문제가 정말 한 개인의 문제로 남지 않길 바라고 또 바란다.

 

이것이 나 혼자만의 주장이나 능력으로 될 일이 아니라는 것을 매일 절감한다.

 

(여전히 인터넷 서점의 내 번역서 밑에 별 하나를 달며 조롱하고, 이야기의 본질을 흐리는 이들이 있다. 그들은 내 번역의 무엇이 어떻게 틀렸다고는 한마디도 하지 않는다. 그냥 사기 번역이라는 것이다. 누구를 위해서, 무엇을 위해서 그러는 것일까? 뭐하는 사람일까, 정말 순수한 독자일까? 싶어서 들어가 보면 역시 정체를 알 수가 없다. 오직 내 번역서를 조롱하기 위해 만들어진 얼굴 없는 새 계정인 것이다. 물론 과정 중에 내 서투름도 많았고, 여전히 많을 테다. 완벽한 번역은 있을 수 없는 것이니 말이다. 따라서 나만 맞다?’ 그런 말을 하려는 게 절대 아니다. 최대한 오류를 줄여보자는 것이다).

 

마음을 열고 역자 분들이 다시 한 번 우리의 고전 번역을 들여다보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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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 (반양장)
알베르 카뮈 지음, 이정서 옮김 / 새움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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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뉴스’, 혹은 악플과 실체의 상관관계

카뮈 <이방인>이 이제 입소문을 통해, 우리 사회에 새롭게 뿌리를 내려가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계속해서 올라오는 제대로 된 리뷰들과 교보문고를 중심으로 전 서점에서 골고루 판매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그것을 확인할 수 있다.

알라딘 한 서점만 두고 보았을 때는, 역자노트를 뺀 페이퍼 백 <이방인>을 낸 6월 이후 꾸준히 판매가 늘어, 지난 주 고전소설 주간 2위에까지 올라왔었다. 그런데, 기존 가장 많이 읽히던 <이방인>의 판매를 넘어서고, 내가 다시 카뮈의 <페스트> 연재를 시작하는 것에 위기감을 느낀 때문인지(^^;), 갑자기 이런 악플이 또 하나 올라왔다.

*
이런 괴상한 번역 읽고 기성 권력에 대항하는 지적 레지스탕스가 된 양 행세하지 맙시다. 유사번역
가지볶음 ㅣ 2018-09-21 l 공감(0) ㅣ 댓글(0)

리뷰는 길게 쓸 필요도 없다. 이런 이들의 목적은 별점 하나를 주면서 기존 것을 까 내리는 것으로 족한 터이니. 실제로 9점대이던 별점은 7점대로 내려앉았고, 책 내용을 보러 들어온 독자 눈에는 가장 맨 위에 올라와 있는 저 글만 보일 수밖에 없다. 내가 독자라도 저런 악플이 달린 책을 굳이 사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을 것이다. (실제로 책판매는 급감했고, 오늘보니 순위가 15위다)

저런 이들의 공통점은 저 주소가 급조된 유령의 것이라는 것인데, 문제는 이런 악플 하나 하나가 별게 아닌 듯해도 실제로는 통한다는 사실일 테다. 우리 어르신들의 인식을 갉아먹는 북한에 대한 저 수많은 가짜뉴스들처럼 말이다. 그러니 저들은 멈추지 않는 것이다.

좀더 근원적인 부분을 들여다보면, 저런 일을 별 죄의식 없이 벌일 수 있는 이의 인성에 대한 것이다.
그들은 결코 책을 읽지 않는다. 가짜 뉴스든 악플이든, 사람들이 진정으로 공감하는 책은 읽지 않는다. 그냥 주워들은 것을 짜깁기해서 제 나름으로 정리해 사고하는 것이다. 저렇듯 제법 그럴싸한 수사를 사용해.

한 걸음 더 나아가, 나는 많은 독서가 꼭 좋은 것만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유 없는 베스트셀러나 엉터리 책들은 오히려 개인의 인성을 망쳐버리기 때문이다. 우리는 무조건 많은 책을 읽으면 좋다는 말을 듣고 자랐고, 하고 있지만, 나는 경험적으로 그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외곬의 독서는 오히려 책을 읽는 이들에게 바른 인식을 키우기보다는 아집을 키워주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방송이나 언론을 통해 책을 추천하고 권하는 이는 정말 중요하고 신중해야 한다.
한 권의 책이 그야말로 한 사람의 인생을 바꾸어 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평생 책을 사보지 않다가, 유명인이 정말 좋은 책, 재미있는 책이라고 해서 큰맘먹고 사서 읽었는데, 정말 좋은지도, 재미있는지도 모르겠다면, 그 사람이 다시 책을 사볼 생각이 들기 까지는 다시 수십 년이 걸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좋은 책으로 인성이 함양된 이에게는 결코 ‘가짜뉴스’나 유령이 쓴 ‘악플’ 따위가 통할 리 없다. 사람들에게 통하지 않는 가짜 뉴스나 악플이 횡행할 이유가 없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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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의 정석
이정서 지음 / 새움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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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종’에게

‘번역의 정석’이 #알라딘 서점에서 판매를 떠나, 조롱을 받고 있다는 소식에 들러보니, 아니나 다를까 아주 익숙한 아이디 하나가 눈에 띈다. ‘#현종’.

초기에 <이방인>이 출간되었을 때, 출판사 블로그에 상주하다시피 하며 악플을 달아대던 몇몇이 있었다. 그 수준에 미루어볼 때 적어도 정통으로 불문학을 공부한 사람들 같았는데, 그 가운데 한 사람이다. 출판사 관계자인지, 대학 교수인지 그건 알길이 없다. 이분에 대해 내가 기억하는 것은 그때, 이분은 내용 속에 등장하는 ‘아랍인’과 ‘무어인’ 개념을 동일시 하면서(아랍인 사내와 무어여자가 친남매라는 주장), 카뮈가 그렇게 달리 쓴 것은 동어반복을 피하기 위해서였다고 제법 그럴 듯한(?) 주장을 줄기차게 해댔기 때문이다. 결국 그는 그 증거라며 카뮈의 창작노트 내용까지 증거로 제시했다가 그조차 오역에 오인한 것으로 밝혀져 망신을 당하고 한동안 모습을 보이지 않았었다. 그리고 이제 3년이 지나 갑자기 나타나, 이방인 밑에는 못 달겠던지 <번역의 정석>밑에 나를 비난하는 아주 긴 장문의 글을 달아두었다. 거의 박사 논문 수준이다. 물론 그때 당시의 자기 주장은 싹 빼고, 역시 당시에 온갖 잡다한 자료들을 끌어다 잘난 척하던 “indifference”라는 자(그들 세계에선 거의 레전드인 듯, 모두 그의 블로그 글을 인용한다. 어디 교수쯤으로 추측된다)의 글을 가져다 다시 그럴듯하게 논리를 펼치고 있다.

일단 3년 전 <이방인> 사태 당시 오고 간 그 숱한 논쟁들을 여기에 다시 옮길 수는 없다. 너무나 길고 많기 때문이다. 중요한 건 지금 이자가 펼치고 있는 저 주장들은 이미 그때 다 깨어졌던 것들이다. 별수없이 당시 글 하나를 링크 할 수밖에 없다(다시 김모 교수님, 존함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게 됨을 진심으로 죄송스럽게 생각합니다. 이분들이 나서지 않는다면 내가 먼저 그 일로 교수님을 호출하는 일은 절대 없을 것입니다).
,http://saeumbook.tistory.com/451?category=471278)

이분이 주장하는 것 가운데 대표적인 것 한 가지만 확인해 두고 가기로 한다. (자신의 글을 카피해갈 수 없게 해두어 불가피하게 내 의견만 달아둔다).

뫼르소의 ‘정당방위론’은 이분 말대로 결코 나 혼자의 ‘괴이한’ 주장이 아니다. 오히려 외국에선 기본적인 사항인 것이다.

그럼에도 논쟁 당시, ‘현종’을 비롯한 저이들은 역으로 뫼르소의 행위는 ‘정당방위가 될 수 없다’는 증거라며 ‘프랑스 형법학자가 정당방위가 아니라는 논지의 글을 쓴 게 있다’고 원문의 일부를 인용하며 설명했다.

그에 대해 한 블로거가 저들의 말을 확인해보고는 이런 댓글을 달았다. (당시 그분의 말을 그대로 카피해둔다.)

-
“일단 프랑스 형법학자가 아니라 미국 로스쿨 교수입니다.

본인의 주장을 위해 논문의 일반적 정의까지 바꾸진 맙시다. 논문은 어떤 문제에 대해 학술적 의견을 개진하는 글이지 “대개 일반적으로 인정하는 어떤 사실에 대해 다른 의견을 주장하고 그 증거와 논리를 펼치는 거"” 아닙니다. 물론 그런 논문들도 있습니다만 그게 논문의 일반적 정의는 아니라는 겁니다. 그리고 그런 논문들은 서론이든 어디든 자기 글이 기존 연구들을 비판적으로 검토한다는 점을 명시해줍니다(그게 바로 연구 성과니까요). 제가 링크를 건 저 논문에는 기존의 정당방위 주장을 비판한다는 등의 말이 전혀 없습니다(너무나 당연한 걸 비판하고 말고 할 것도 없는 것이지요).

....

2. indifference 님. 왜 거짓말을 하십니까? 시카고대학 로스쿨 교수의 페이퍼까지 봤으면

전 세계적으로 뫼르소의 살인이 정당방위로 이해되고 폭넓게 논의되고 있다는 사실도 분명히 아셨을 텐데

왜 그게 아니라고 하셨습니까? 구글 들어가서 ‘Meursault, self-defense’ 쳐보세요. 너무 많아 셀 수가 없네요.

심지어 님이 제시하신 조너선 머서마저도 기본적으로 ‘자기 방어(self defense)’ 관점에서 논의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의 논문을 제대로 읽기나 하셨습니까? 그는 분명 전지적 관점에 선 독자와 달리 판사와 배심원들은 뫼르소가 살인 이전에 처한 상황에 대해 전혀 모르기 때문에 유죄 판결을 내렸지만, 독자들은 그게 정당하지 않을 거라 생각하지 않습니까?

영리하게도 그는 문학작품의 특수성과 일반적인 법리까지도 구분하고 있죠. (우리가 다루는 게 ‘문학작품’임은 잊지 않으셨죠?)
이 정도면 정당방위가 “세계적으로 독창적인 견해”라는 님의 빈정거리심이 얼마나 엉터리이셨는지 아시겠죠?

....

다시 말씀드리지만, 이건 내가 한 말이 아니다. 이분 역시 그때 이후, 저 현종이나, indifference처럼 사라져 버려 무엇을 하는, 어떤 분인지 알 수는 없다. 이분 역시 어느 대학의 교수쯤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저들처럼 대놓고 나설 수는 없었을 것이다. 왜? 이분 역시 내부 고발의 성격이 짙은 글들이었으니...

현종님께 정중히 부탁드린다. 이제 그 정도 하셨으면 되지 않았을까?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는 없는 것이다. 순수한 독자 리뷰들을 보시라. 이제 새로운 <이방인>을 읽고 진정으로 카뮈와 뫼르스를 이해하게 되었다는 독자들이 하루가 다르게 늘고 있다.
당신들 말에 속은 독자 가운데 누구는 나보고 <이방인> 번역을 잘한 게 아니라, 내가 임의로 창작을 해서 쉽게 읽히게 만들었다는 주장까지 펼친다. 그럼 내가 카뮈보다 소설을 더 잘 썼다는 이야기가 되는 것인데, 너무 기가 막힌 주장 아닌가? 당신들은 <이방인>이 난해한 소설이라는 자신들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그런 비상식적인 주장조차 부끄러운지 모르고 펼치고 있는 셈이다.

그때도 그렇지만 지금도, 당신들은 불어에 대한 기득권이라도 가진 양, 학자연하면서 말도 안 되는 자료들을 끌어와(여기서도 장정일씨의 발언까지 인용하는데, 그것이 얼마나 엉터리인지도 이전에 몇 번이나 밝힌 바 있다. 자꾸 나를 한소리 또하고, 또하게 만드는, 지루한 사람, 나쁜 사람으로 만들지 마시라) 순수한 독자들을 바보로 만들려고 하고 있다. 그렇게 해서 당신들이 얻는 게 무언가? 당신이 김 모 교수 본인도 아닐 터인데,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도대체 뭔가?

3년 전 내가 도저히 안 되겠어서 ‘더 이상 답하지 않겠다며, 마지막으로 했던 말을 기억하시려는지 모르겠다. 그때 나는, ’모든 걸 시간이 해결해줄 것‘이라고 했다. 나는 이제 어느 정도 그 시기에 이르렀다고 믿었었는데, 결코 그렇지도 않은 모양이다. 아직 그 시간이 조금은 더 필요할지 모르겠다. 내가 서둘 일은 없는 것이다.
그때까지 더욱 건강하시라.

PS.
지금 당신이 다시 끄집어낸, 그 케케묵은 논쟁거리 말고도 <이방인>에 대한 논쟁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시간이 있으시면 들러보시라.
https://www.facebook.com/camus2014y/posts/2116202828666750
#이방인 #알라딘서점 리뷰 #현종 #번역의정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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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실격 새움 세계문학전집
다자이 오사무 지음, 장현주 옮김 / 새움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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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에 있어서의 주.

 

번역을 하다 보면 피치 못하게 주를 달게 되는 경우가 있다. 그럴 때의 주는 정말 중요한 것이다. 그 주를 어떻게 달아주었는지만 봐도 역자의 능력이나 정성이 가늠된다.

<인간실격>의 주 몇 개를 보고 나는 짐짓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 가운데 하나가 헤헤노노모헤지(へへののもへじ)”에 대해서다.

영광이네요. 많이 드세요.”

이 사람 빨리 안 가나, 편지라니, 속이 빤히 들여다보이는군. 헤헤노노모헤지(へへののもへじ)*라도 그리고 있는 게 분명합니다.

_<인간실격> 새움출판사, 장현주 역, 본문 p.63

 

역자는 직역의 원칙에 따라 원문을 살리면서 각주로,

<히라가나의 ヘヘ(눈썹)’ ‘のの()’ ‘()’ ‘()’ ‘(얼굴 윤곽)’의 일곱 글자로 사람의 얼굴을 그리는 놀이.>라고 설명을 붙였다. 다소 서툴지만 귀여운 그림과 함께.

헤헤노노모헤지(へへののもへじ)는 히라가나를 배울 때 외우기 쉽게 글자로 얼굴을 그리는 놀이라고 하니, 일본어를 공부한 사람이라면 대개 알 듯한데, 다른 역자들은 이것을 어떻게 처리했을까 궁금해서 살펴보았다.

 

이렇게 되어 있다.

 

그런 분하고 있다니 영광이네요. 우유 많이 드세요.”

이 사람 좀 빨리 안 가주나. 편지라니 속이 빤히 들여다보이게. 틀림없이 가갸거겨 따위를 긁적거리고 있을 게 뻔합니다.

_M,<인간실격> 2004년 초판 출간, 20062, pp. 56-57

, 영광이네요. 많이 드세요.”

이 여자, 어서 좀 내려가줬으면. 편지 쓴다는 핑계를 대다니, 그 속이 훤히 보인다. 분명 가나다라만 줄줄이 쓰고 있을걸.

_S, <인간실격> 20186, p.61

 

과연 이 두 역자 분은 헤헤노노모헤지를 정말 몰랐을까?

당연히 알았지만 의역을 한 것이어도 문제고, 몰랐다면 더 문제인 것이다. 독자들만 바보로 만들고 있는 셈이니까.

번역은 정말로 중요한 것이다. 각주 하나까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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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의 정석
이정서 지음 / 새움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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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로운 번역서를 출간하면 여지없이 올라오기 시작하는 악성 댓글들…….

0개 주는 법은 없나? 매번 자기 번역이 짱이라는데 초벌 번역보다 못한 수준

도저히 읽을 수 없는 구글 번역체로 가득한 책. 정말 번역이 중요하다는 걸 깨닫게 만든다.”

.

.

서점에 책도 나가기 전부터 바지런하게 번역서 밑에 글을 다는 저분들의 마음은 도대체 무엇일까?

따라가다 보면, 짐작되는 바는 있다.

구글에 이정서검색해 보세요. 이 출판사가 소위 이방인 번역 논쟁 때도 노이즈 마케팅으로 비판을 많이 받으셨던 것으로 아는데요.”

어떤 목적을 지니고 본질은 팽개쳐 둔 채 선동하고 왜곡시키는 자들로 인해 겪는 피해는, 당해 보지 않은 사람은 사실 모른다. 어떤 대응도 사실 무의미하다. 오히려 말이 말을 부를 뿐이다. 어떤 사안에 대해 처음부터 끝까지 따라 읽는 이들은 거의 없다. 어떤 사실이 개인에게 전달될 때쯤에는 이미 많은 부분이 생략되고 왜곡되고 굴절되어 있을 수밖에 없다. 누군가 마음먹고 한 사람을 죽이고자 마음먹는다면 법적인 방법이 아니고서야 그걸 막아 낼 길은 없다. 선거철이면 흔히 등장하는 댓글을 통한 여론 조작과 같은 맥락이다. 내가 정치인 이재명을 보면 안타까운 것도 그런 이유...

독자나 순진한 시민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섣불리 누군가의 선동에 현혹된다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자신에게 돌아온다. 헛정보를 읽는 데 시간을 낭비한 것은 둘째치고 사회에 대해 깊은 불신감을 키우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는 필요악이 되어 버린 SNS 시대, 독자들이, 주권자들이 정말 정신 바짝 차려야 하는 사회에 우리는 살고 있다.

...

아주 오래 전 쓴 글로 <번역의 정석> 책에 실려 있기까지 한 글인데, 여전히 조금도 변함없이, 내용 형식까지 똑같이 올라오는 글들. 경쟁상품에 별 하나 주고 악담하기. 이제 이런 자들은 버젓이 책을 읽었다고까지 하고 나선다.

우리 사회와 출판이 살려면 이런 자들부터 솎아내야 하는데, 방법이 없다.

정체를 숨기기 위해서인지 훨씬 교묘해졌다.

 

*

실제 관련기사 하나

 

번역의 정석

분명하게 쓰는 사람에게는 독자가 따른다. 난해하게 쓰는 사람에게는 주석자가 따르고.”

 

알베르 카뮈는 이런 신념으로 작품마다 문장을 명료하게 썼다. 그러나 그의 명저들은 한국에서 오역투성이로 번역돼 출간됐다. 가령 이방인에서 주인공 뫼르소가 아랍인을 죽인 이유가 단지 햇볕 때문이라는 것도 오역에 기인한다. 문맥을 살펴보면 뫼르소의 살인은 정당방위였다. 한 신진 번역가는 이 같은 주장으로 2014년 문단에 논란을 일으켰다.

 

신간 번역의 정석은 당시 논란의 당사자인 저자가 한국 번역문화의 문제점을 질타하고 바른길을 모색하자는 취지로 쓴 책이다. 저자는 작가가 쓴 문장은 하나라며 번역은 그 하나의 의미를 찾아가는 지난한 과정이라고 강조한다. 번역에도 수학처럼 답이 있다는 얘기다.

번역가는 작가가 고뇌하면서 쓴 문장은 가능한 한 그대로 옮겨야 한다. 그러자면 작가가 쓴 부사, 형용사, 쉼표, 마침표, 접속사 등도 함께 옮겨야 한다. 직역이 번역의 정석이다. 의역은 직역이 잘 안 될 때 역자들이 쓰는 쉬운 타협 수단이라는 것이다. 문장이 윤문될 때 소설의 맛은 죽는다. 의역마저 오역일 때 독자는 틀린 내용을 읽고 잘못 이해하게 된다. 저자는 불멸의 고전 노인과 바다》 《어린 왕자》 《위대한 개츠비등의 오역을 바로잡아보면서 적확한 번역의 길을 제시한다. 외국어에 대한 연구가 깊어지면서 국내 번역계도 성찰을 통해 한 단계 도약할 전기로 삼을 수 있는 책이다.(이정서 지음, 새움, 352, 15000) 2018.8.9. 서울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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