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을 지새우며 쓴 시

 

 

  밤을 지새우며 시를 쓴다. 신안으로 마실을 와서 압해다리 건너 목포에 있는 여관에서 묵는 지난밤, 도무지 잠을 이루지 못한다. 내 마음을 건드리는 빛은 무엇인가 가만히 드러누워 생각에 잠긴다. 지나온 마흔 해 삶이란 무엇이었을까 하고 곰곰이 돌아본다. 어제 낮 문득 한 가지를 생각했다. 나는 지난 마흔 해에 걸쳐 이것저것 마음밭에 담는 배움길을 걸었구나 싶다. 앞으로도 이 배움길은 씩씩하게 걸어가리라 생각한다. 그리고, 앞으로 걸어갈 배움길은 배움길로만 그치지 말고, 내 이웃과 동무한테 꿈과 사랑을 속삭이는 이야기길로도 꾸릴 수 있어야겠다고 느낀다. 이야기길이요 책길이요 노래길이 되어야 아름답겠지.

 

  간밤에 시를 두 꼭지 쓴다. 시는 언제나 저절로 샘솟는다. 원고지를 붙잡는대서 시가 태어나지 않는다. 하루하루 즐겁게 누리며 아름답게 밝힌 이야기가 있으면, 어느 날 문득 소나기처럼 퍼붓기도 하고 보슬비처럼 눈가를 적시기도 하며 안개처럼 하얗고 포근하게 감싸기도 한다.

 

  새날이 밝는다. 날밤을 지새운 적이 마흔 해 삶 가운데 거의 하루조차 없는데, 이렇게 밤에 잠들지 못하고 지새운 적은 처음이 아닌가 싶다. 굳이 떠올린다면, 스물두 살 적이던가, 강원도 양구에서 군인으로 있어야 하던 데, 강릉 앞바다에 잠수함을 타고 나타났다던 북녘 군인을 잡아야 한다면서 깊은 숲속에서 이레 동안 잠을 못 자면서 매복을 해야 한 적 있다. 스무 살 적, 갓 군인이 되어 이등병을 달고 자대에 가서 하루만에 뛰어야 하던 한겨울 훈련에서 열여덟 시간 동안 1초조차 못 쉬고 숲길을 걸으며 밤을 꼴딱 새운 적 있다.

 

  누가 억지로 시켜서 밤을 새운 두 차례 빼놓고, 나 스스로 잠을 못 이룬 날은 오늘이 처음인가. 아니다. 아니로구나. 큰아이를 낳고 세이레가 되기까지 고작 두 시간밖에 못 잤는걸. 큰아이가 백날을 맞이할 때까지 마흔여덟 시간밖에 못 잤는걸. 그렇구나. 밤을 지새운 적이 아예 없지 않구나. 아무튼, 지난밤에 홀가분한 넋으로 시를 썼다. 4347.4.2.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글쓰기 삶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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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림모노로그 2014-04-02 15:09   좋아요 0 | URL
마흔을 넘어가는 나이는
앞으로 살아갈 날에 대한 희망보다는
살아온 날을 곱씹어보는 나이인가 봅니다...그래서 불혹이겠지요.
과거를 통해 세상살이에 혹하지 않을 때, 어른이 되는 나이말이지요 ...
글을 읽고 나니 괜시리 마음이 쓸쓸해집니다..^^

숲노래 2014-04-03 05:53   좋아요 0 | URL
가끔은 쓸쓸하게 홀로 생각에 잠기면서
삶과 하루를 아름답게 돌아보면서
다시금 즐겁게 기운을 낼 수 있지 싶어요.

드림모노로그 님 하루에 언제나
고운 빛이 드리우기를 빌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