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개 이야기
가브리엘 뱅상 지음 / 별천지(열린책들)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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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352

 


우리 집에 찾아온 손님
― 떠돌이 개 (어느 개 이야기)
 가브리엘 벵상 그림
 열린책들 펴냄, 2003.4.20. (별천지 다시 펴냄, 2009.10.30.)

 


  2014년 2월 첫머리에 우리 집에 개 한 마리가 갑자기 찾아왔습니다. 처음부터 우리 집에 찾아오지는 않았습니다. 우리 마을에 어느 날 갑자기 개 한 마리 나타났습니다. 마을 이곳저곳을 빙빙 돌다가 마을 할매가 지나가면 꼬리를 살랑살랑 치면서 잰걸음으로 좇습니다. 이러다가 나를 보면 나를 좇고, 우리 집 아이들을 보면 아이들을 좇습니다. 마을에 개를 키우는 집은 딱 한 곳 있지만, 아주 덩치 큰 시베리안 허스키인데, 그 집 빼고 개를 아무도 안 키워요. 그 집에서도 토실토실 북슬북슬 개를 키우지 않습니다.


  마을을 이틀째 떠돌던 개는 아이들을 따라 우리 집으로 들어옵니다. 큰아이는 네 살이던 해에 음성 할아버지 댁에 있는 개한테 크게 놀라면서 여러 해 동안 개를 멀리했어요. 아주 조그마한 개만 보아도 울먹이면서 멀리 내빼곤 했습니다. 그런데, 올해 일곱 살이 된 뒤 마을을 떠도는 개를 보고는 내빼지 않습니다. “멍멍아, 이리 와 봐.” 하고 부릅니다. 틀림없이 누군가 키우다가 시골마을에 팽개친 ‘집개’로 보이는 떠돌이는 큰아이가 부르는 소리에 와락 안깁니다. 떠돌이가 되어 배를 한참 곯았구나 싶은 개는 혀를 내밀고 꼬리를 살랑입니다. 마을에 있는 숱한 고양이는 누가 밥을 챙기지 않더라도 이래저래 먹이를 찾습니다. 때로는 마을 할매가 따로 밥을 챙겨서 내밀기도 합니다. 이 개는 어떨까요. 이 개는 여기저기 기웃거리면서 밥이나마 제대로 먹었을까요.


  국을 끓이고 밥을 말고는 소시지를 몇 점 얹어서 개한테 내밉니다. 개는 밥그릇을 보자마자 덮칠듯이 달려듭니다. “쉿, 쉿, 기다려.” 하고 말한 뒤 마당 한쪽에 내려놓습니다. 떠돌이 개는 곧장 밥그릇을 비웁니다. 그렇다고 한 그릇을 더 줄 수 없습니다. 이렇게 허둥지둥 먹는다면 한참 곯았을 테니 갑자기 많이 먹으면 안 좋아요. 더 달라는 눈빛을 모르는 척합니다. 저녁에 아이들 밥을 차린 뒤에 슬그머니 개밥을 한 그릇 덜어서 내놓습니다. 떠돌이 개는 이틀 동안 밥그릇을 내려놓기 무섭게 비웠습니다.

 


  사흘째 되는 날, 떠돌이 개는 이제 배가 좀 부른지, 밥에 얹은 소시지만 훑어먹습니다. “너, 배부르구나? 어쩜 요렇게 먹니?” 하고 볼따구를 두 손으로 잡고 살살 흔듭니다. “골고루 다 먹으라고 주었잖니.” 물끄러미 지켜보니 개는 한 시간쯤 뒤에 밥을 비웁니다. 저녁에도 이렇게 먹습니다. 이튿날에도, 또 이튿날에도, 밥에 얹은 다른 것만 날름 집어먹은 뒤, 한 시간이 지나서야 밥을 삭삭 비웁니다.


  이러구러 보름이 지나니, 떠돌이 개는 아침에 밥그릇 비우고 우리 집에서 나갑니다. 낮에 살짝 들어와서 밥그릇을 들여다보다가 다시 밖으로 나갑니다. 그러고는 해가 떨어진 저녁에 들어와서 섬돌에 올라앉아 웅크리고 잡니다. 늦은 저녁에 들어온 모습을 보고는 밥을 마당에 내려놓으면 자다가 일어나서 밥을 먹습니다. 이렇게 열흘을 지냅니다.


  그러고 나서 그제부터 떠돌이 개는 우리 집으로 돌아오지 않습니다. 이레쯤 앞서 새로운 떠돌이 개를 보았습니다. 우리 집에 눌러앉은 떠돌이 개도 예전에는 집개였다고 느꼈는데, 새로운 떠돌이 개도 집개인 티가 물씬 나는 한편 목줄까지 있습니다. 새로운 떠돌이 개는 우리 집에 먼저 자리를 잡은 떠돌이 개하고 밥을 나누어 먹습니다. 그러고 닷새가 지난 그제, 우리 집 떠돌이 개는 아침에도 낮에도 저녁에도 밤에도 새벽에도 안 보입니다. 사나흘 앞서부터 밤바다 새로운 떠돌이 개가 우리 집 마당으로 와서 자꾸 얼쩡거리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눌러앉은 떠돌이 개 곁에서 함께 자지는 않고 마당을 빙빙 돌기만 했습니다.

 


  무슨 뜻이었을까요. 저하고 다른 곳으로 가서 살자는 뜻이었을까요. 저하고 함께 나그네 되어 새로운 마을로 돌아다니자는 뜻이었을까요. 집개로 지내면서 실컷 뛰지도 못하고 달리지도 못하던 아쉬움을 풀자는 뜻이었을까요.


  우리 집에 눌러앉으며 한 달을 함께 지낸 떠돌이 개는 처음에는 달리지 못했습니다. 걸음도 되게 느렸습니다. 우리 집 두 아이를 태운 자전거를 몰고 논둑길을 달릴라치면 어정어정거리면서 가까스로 따라오다가 저 뒤로 한참 처졌어요. 그런데, 스무 날쯤 될 무렵부터 달리더군요. 우리 마을에 깃든 지 스무 날쯤부터 이장님네 짐차 꽁무니를 좇아 제법 잘 달립니다. 아하, 네가 아침에 밥을 먹고 이렇게 하루 내내 이곳저곳 뛰고 달리면서 돌아다니는구나.


  우리 집 아이들은 떠돌이 개가 우리 집에 그대로 눌러앉지 않아서 못내 서운합니다. 그렇지만 아쉽게 여기지는 않습니다. “개는 왜 밖에서 살아?” “개는 처음부터 밖에서 사는 짐승이야. 고양이도 밖에서 살지. 제비도 딱새도 까치도 밖에서 살아.” “사람은?” “사람도 처음에는 숲에서 살았어. 그러다가 이렇게 집을 지어서 집에서 살지만, 집보다 들과 바깥에서 움직이며 일하지.”

 


  지난 한 달은 떠돌이 개가 홀로서기를 하는 기운을 모으는 때였으리라 느낍니다. 한 달 동안 알맞게 밥을 먹으면서 기운을 되찾는 한편, 시골을 두루 누빌 다리힘을 찬찬히 붙이는 때였으리라 느낍니다. 이 개가 십일월이나 십이월이 아닌 이월에 우리 마을에 와서 그나마 낫구나 하고 생각합니다. 겨울이 끝나는 달에 와서 새봄이 막 열리는 달에 홀로서기를 하는 셈인가 하고 생각합니다. 들마다 풀이 돋고 딸기꽃이 피면 떠돌이 개도 한결 느긋하게 이 땅을 누빌 수 있겠지요. 퍽 늙은 개였는데, 봄과 여름과 가을까지 즐겁게 지낼 수 있겠지요. 다시 겨울이 찾아오고 힘들면, 그때에 또 우리 집으로 찾아오기를 빌어요. 겨울에는 따순 밥과 잠자리를 누린 뒤, 또다시 찾아올 봄에 홀가분하게 골골샅샅 누빌 수 있기를 빌어요. 들개가 되고 숲개가 되며 시골새가 되어 온몸에 푸른 숨결 새록새록 받아들일 수 있기를 빌어요. 떠돌이 개 두 마리는 서로 아끼며 잘 지내리라 믿습니다.


  가브리엘 벵상 님이 빚은 그림책 《떠돌이 개》를 새삼스레 들여다보면서 생각에 잠깁니다. 떠돌이 개는 처음부터 떠돌이 개는 아니었습니다. 사랑받는 개였고, 사람과 함께 살아가던 개였습니다. 어여쁜 개였으며, 착한 개였습니다. 이 개는 왜 버림받아야 했을까요. 이 개를 버린 사람은 어떤 마음이요 어떤 삶일까요.


  개는 떠돌이가 되었지만, 천천히 천천히 아주 천천히, 스스로를 돌아봅니다. 집개도 떠돌이도 아닌 들개라는 숨결을 깨닫습니다. 들에서 살고 들바람을 마시면서 들빛으로 고운 숨결인 줄 느낍니다. 그림책 《떠돌이 개》에서는, 개와 똑같이 떠돌이로 지내는 아이를 만나요. 우리 집에 찾아온 손님은 다른 손님을 만납니다. 마음으로 아끼고 마음을 읽으며 마음을 나누는 벗이 있기에 삶이 맑게 빛나는구나 싶습니다. 4347.3.4.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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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슬비 2014-03-09 22:49   좋아요 0 | URL
새로운 이름 지어주며 알콩달콩 살줄알았는데, 또 다른 친구 사귀며 다른곳으로 떠났군요.
부디 함께살기님 말씀대로 큰 어려움없이 둘이 친구가 되어 상처받지 말고 자유롭게 살면 좋겠어요.

숲노래 2014-03-10 05:56   좋아요 0 | URL
이렇게 마음을 써 주시는 보슬비 님 같은 분이 있으니,
그 개 두 마리는 서로 아끼면서
새로운 삶 가꾸면서 하뤃루
즐겁게 뛰놀고 노래하리라 믿습니다..

hnine 2014-03-10 07:30   좋아요 0 | URL
'처음부터 떠돌이개는 아니었습니다'
마음을 울리고 가는 말이네요. '떠'돌이라는 우리 말의 의미도 다시 생각해보게 되고요.

이분 원작의 영화가 얼마전에 극장에 개봉했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깜박 잊고 있다가 생각났습니다. 아직 끝나지 않았는지 알아봐야겠어요. <어네스트와 셀레스틴>인가? 아마 제목이 그랬던것 같아요.

숲노래 2014-03-11 01:34   좋아요 0 | URL
셀레스틴느 이야기가 영화로 나왔다고 하더라구요.
'어린이'와 '인형'과 '개'를 놓고서,
아름다운 이야기를 두루 빚은 분인데,
한국에서는 아직 널리 사랑받지 못하지만,
다른 나라에서는 알뜰히 사랑받지 싶어요.

그림책 <떠돌이 개>뿐 아니라 <작은 인형>이든 <곰인형의 행복>이든
모두 '외톨이가 된 숨결'이 스스로 삶을 찾거나 사랑스러운 빛을 찾는
줄거리를 보여주어요. 다른 이가 보기에는 '떠돌이'일는지 모르지만,
저마다 스스로 아름다운 넋이라고 밝혀 준다고 할까요.

참으로 예쁜 그림책들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