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이역 오감도 - 하늘을 이고 땅을 딛고 바람에 실린 간이역 테마 여행
신명식 지음 / 이지북 / 2010년 4월
평점 :
절판


 

 

찾아 읽는 사진책 155

 


이웃과 함께 즐기는 사진
― 간이역 오감도
 신명식 글·사진
 이지북 펴냄, 2010.4.8.

 


  모든 사진은 이웃과 함께 즐기고 싶어서 찍습니다. 혼자 찍어서 혼자 즐기는 사진도 틀림없이 있으나, 사진을 찍을 적에는 잘 찍었건 못 찍었건 이웃과 나누고 싶은 마음이 뭉게뭉게 피어납니다. 내가 누린 곳에서 담은 아름다운 빛을 이웃한테 사진으로 보여주면서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고 싶습니다.


  철도와 철도역을 사진으로 담는 신명식 님이 빚은 사진책 《간이역 오감도》(이지북,2010)는 신명식 님이 그동안 찍은 사진 가운데 ‘간이역’ 한 가지만 보여줍니다. 철도를 즐기고, 철도역을 다니면서 늘 사진과 함께 지냈다고 해요. 철도를 타는 기쁨을 사진으로 담습니다. 철도역을 오가면서 누린 웃음을 사진으로 옮깁니다. 이러면서, 수많은 철도역 가운데 ‘간이역’을 도드라지게 헤아려 봅니다.


  “기차역에 내리는 것만으로 온전한 여행이 될 수는 없을까(17쪽)?” 하는 마음에서 조그마한 사진책 하나 태어납니다. 다만, 이 조그마한 사진책에서 이 나라 모든 간이역을 보여주지는 못해요. 이 작은 사진책을 바탕으로 앞으로 ‘모든 간이역 삶자락’을 담은 두툼하면서 알찬 사진책을 내놓을 수 있겠지요.


  간이역으로 기차를 타고 갈 수 있기도 하지만, 기차가 서지 않는 간이역이 훨씬 더 많아, 버스나 자가용을 타야 비로소 찾아갈 수 있다고 해요. 신명식 님한테 말미와 기운이 더 있다면, 버스나 자가용 아닌 자전거를 타고 간이역을 다닐 수도 있어요. 천천히 걸어서 다닐 수도 있습니다.


  자전거를 타고 이곳저곳 누비다 보면, 으레 기차역 옆을 지나가곤 해요. 따로 기차역을 생각하며 지나가지 않지만, 자전거는 고속도로나 고속화국도로 다니기 힘들어요. 자전거는 으레 지방국도로 달립니다. 두 다리로 걸을 적에도 지방국도를 걷기 마련이요, 지방국도조차 아닌 시골길을 걷기도 해요. 길이 없는 멧자락을 넘을 수 있습니다.

 

 

  이제 기차가 서지 않는다는 간이역을 보면, 하나같이 시골에 있습니다. 하나같이 시골에 있으면서, 조그마한 면소재지나 읍내 한켠에 있어요. 그러니 이런 간이역은 지방도로나 시골길하고 잘 어울려요. 천천히 다가서는 간이역이요, 천천히 머무는 간이역이며, 천천히 헤어지는 간이역입니다.


  “남해고속도로를 비롯해 2번 국도가 4차선으로 확장되었고, 대전-통영 고속도로까지 개통되어 사람들은 거의 철도를 찾지 않게 되었다. 그 때문에 경전선에는 옛 풍경을 간직한 시골 마을, 때 묻지 않은 자연 풍광을 간직한 간이역이 많이 남아 있다(35쪽).” 하는 말이 아니더라도, 간이역을 찾아 자전거마실이나 걷기마실을 한다면, 간이역을 둘러싼 시골과 마을과 숲과 들과 멧골과 냇물을 모두 누릴 수 있어요. 간이역 하나 서기까지 이 둘레에서 어떤 사람들이 어떤 삶을 일구면서 어떤 사랑을 꽃피웠는가 하는 대목을 읽을 수 있습니다.


  사진은 무엇을 찍을까요? 멋진 모습을 찍는가요? 사진으로 찍어서 무엇을 하나요? 예술품이나 창작품이라고 내걸면서 비싸게 팔아야 하는가요?

 


  사진을 찍는 까닭은 내가 찍는 사진 하나에 내 삶과 이야기가 깃들기 때문입니다. 내가 마주한 이웃들 삶과 이야기가 감돌기 때문입니다.


  “1930년대부터 철길과 함께해 온 간이역의 세월을 가늠하기란 쉽지 않다. 오랫동안 마을과 자연과 기찻길이 함께 어우러져 숙성되었으니 어디 하나 소홀히 버릴 것이 없다(83쪽).” 하는 말처럼, 간이역을 ‘재개발 건축물’로 바라볼 수 없습니다. 낡은 건물을 하루아침에 허물고는 새 건물로 번듯하게 올려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사람과 삶과 이야기가 없다면, 오래된 건물이건 새 건물이건 우리한테 아무 뜻이 없어요.


  그러니까, “평은역은 최후를 눈앞에 두고 있다. 다름아닌 4대강사업 때문이다. 바로 옆을 흐르는 내성천 하류 쪽에 영주댐이 생기면서 역뿐만 아니라 마을 전체가 수몰될 예정이다(109쪽).”와 같은 말처럼, 중앙정부나 지역정부가 함부로 밀어붙이는 토목개발은 참다운 ‘개발’이 못 됩니다. 오직 돈을 앞세워 마을을 없애고 숲을 없애며 간이역을 없애는 일은 개발이 아니고, 문명이나 문화도 아니며, 경제나 발전도 아닙니다. 그저 막공사일 뿐입니다.


  이야기는 돈으로 사고팔지 못해요. 사람이 태어나 자라고 사랑한 삶은 돈으로 사고팔지 못해요. 서로 아끼고 어깨동무하면서 살아온 오랜 이야기 서린 마을살이는 돈으로 사고팔지 못해요.


  값나가는 사진장비를 써야 간이역을 잘 찍지 않습니다. 편의점에서 파는 1회용사진기를 쓰기에 간이역을 못 찍지 않습니다.

 

 

 


  간이역이 선 마을에서 살아온 사람과 살아갈 사람들 눈빛과 마음빛과 삶빛과 사랑빛을 고루 헤아리면서 보듬을 수 있을 때에 비로소 간이역을 사진으로 찍습니다. 간이역이 서며 오늘까지 흘러온 발자국과 나날을 고이 돌아볼 수 있을 적에 바야흐로 간이역을 사진으로 옮깁니다.


  “현실주의자들의 말처럼 여유와 낭만이 밥을 먹여주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현재의 경춘선이 여유와 낭만을 포기한다면 너무 많은 것을 잃게 되는 것이 아닐까(137쪽).” 하는 말을 생각합니다. 즐겁게 타는 기차가 아니라면, 기차란 무엇일까요. 그저 빨리만 달려야 하는 고속철도라면 고속철도란 무엇일까요. 그저 빨리만 달려야 하는 자가용이라면, 이런 자가용에 아이들을 태우고 어디를 돌아다닐 만한가요.


  아이들하고 여행을 떠나는 까닭은 무엇일까요? 사랑하는 곁님이나 짝꿍하고 만나서 어디론가 나들이를 다니는 까닭은 무엇일까요? 값진 밥을 차린 레스토랑에서 후다닥 배를 채우고는 비싼값을 치르는 호텔에서 후다닥 잠을 자야 만남이나 연애나 사랑이 될까요?


  몇몇 대학교 졸업장이 젊음을 말할 만할까요? 대입시험 점수가 푸른 나날을 말할 만할까요? 은행계좌가 온삶 바친 정년퇴직자 이야기를 들려줄 만할까요? 대학교는 왜 가야 하고, 회사는 왜 다녀야 하나요. 아이들은 왜 학교에 보내야 하고, 아이들한테 입시공부를 시키는 까닭은 무엇인가요. 여덟 살 아이는 여덟 살 나이를 어떻게 누릴 때에 즐거울까요. 열여덟 살 푸름이는 열여덟 살 나이에 무엇을 할 적에 아름다울까요. 서른여덟 살 아저씨나 아줌마는 이때에 무엇을 해야 사랑스러울까요.


  《간이역 오감도》 끝자락에 “오래된 역은 사람의 흔적을 담아내는데, 지나친 보수 작업으로 인해 세월의 흔적이 모두 사라지는 것 같아 안타깝다. 말쑥한 역사는 주위와 어울리지 못하지만, 주변의 풍경은 여전히 아름답다(277쪽).”와 같은 이야기가 흐릅니다. 사라지고 만 간이역을 애틋하게 여깁니다. 옛 간이역 건물이 사라졌어도 간이역이 선 마을 둘레 모습은 아름답다고 말합니다. 그래요. 간이역이 사라졌어도 간이역이 선 마을에서 살아가는 할매와 할배는 오늘도 아름답습니다. 할매와 할배가 흙으로 돌아가더라도 이 시골은 언제나 아름답습니다. 시골마을에 늙은 어르신 모두 흙으로 돌아가서 빈집만 휑뎅그렁하다 하더라도, 들과 숲은 아름답습니다. 꽃과 풀과 나무는 아름답습니다. 풀벌레와 멧새와 나비와 잠자리와 개구리는 모두 아름답습니다. 일구는 사람 없어 텅 빈 논밭이 되어도, 이 논밭에는 바람 따라 흩날리는 풀씨와 나무씨와 꽃씨가 내려앉아 새로운 숲으로 거듭납니다.


  오가는 사람이나 찾는 사람 없는 조용한 간이역이라 하지만, 풀씨가 산들산들 바람을 타고 내려앉습니다. 꽃씨도 하늘하늘 눈송이처럼 드리웁니다. 사람 발길은 없으나 푸른 꽃내음이 흐릅니다. 사람 소리는 없으나 멧새와 풀벌레가 노래합니다.


  사진기를 쥔 누군가 간이역으로 찾아와 고즈넉한 빛을 담습니다. 사진기도 없고 아무것도 없는 누군가 간이역을 흘낏 스치듯 지나갑니다. 누군가 간이역을 사진으로 찍어 주어, 이곳을 잊거나 잃은 사람들이 따순 마음 되어 웃습니다. 누군가 간이역을 사진으로 찍지 않더라도, 이곳을 오래오래 한결같이 가슴으로 품은 사람들이 고운 마음 되어 이야기씨앗 심습니다. 사진 하나는 어여쁜 이야기씨앗 되어 이 땅에 뿌리를 내립니다. 4347.1.10.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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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en 2014-01-11 10: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간이역을 담은 사진과 글들을 보니 절로 따뜻한 가슴이 열리는 듯합니다.

중앙선 평은역은 제가 아주 어릴 때 처음으로 '안동역'까지 나와서 문수역 근처 마을에 사는 '작은 할배네 집'으로 놀러 갈 때 지나쳤던 역이에요. 제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로 진학하면서 '중앙선'을 자주 탔는데, 가끔씩 기차삯을 아끼느라 완행열차를 탈 때면 '평은역'에서도 기차가 섰다가 지나가곤 했었지요.

지금도 가끔씩 서울에서 시골 고향으로 내려가는 길에 봉화의 춘양역을 비롯해서 그 인근의 이름모를 간이역들을 흘끔흘끔 쳐다보면서 지나치는데, 언젠가는 한번 카메라를 둘러메고 '기차와 도보로' 꼭 여행하고 싶은 마음이 그때마다 새록새록 돋아난답니다.

숲노래 2014-01-11 02:24   좋아요 0 | URL
oren 님이 작은 역들을 찬찬히 거닐며 사진으로 담으면
아주 새로우면서 사랑스러운 빛이
새록새록 스미겠어요.

철마다 다 다른 빛을 누리면서
즐겁게 마실하실 수 있기를 빌어요.

마음속에 있는 이야기들을 한 올 두 올
사진으로 곱게 풀어내시리라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