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문조사
신문이나 방송을 보지는 않지만 설문조사가 참 자주 나온다. 그렇지만 나한테는 그 흔한 설문조사가 오는 일이 없다시피 하다. 내가 바쁜 줄 뻔히 알기 때문일까? 그런데 전라도 고흥으로 살림을 옮긴 2011년 가을부터 툭하면 ‘자동응답 설문조사’가 집전화로 온다. 하나같이 민주당 사람들 인기도를 서로 높이려고 하는 설문조사이다. 군수와 도지사와 국회의원과 교육감 ……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사람들 인기도 설문조사를 하는데, 참 징하다고 느낀다.
오늘 아침, 전라도 정치꾼들 인기도 설문조사가 아닌, ‘아이 키우는 어버이’한테 묻는 설문조사 전화가 집전화 아닌 손전화로 온다. 응? 내가 아이 도맡는 어버이인 줄 어떻게? 게다가 바뀐 지 보름밖에 안 된 010 전화번호로 어떻게?
그런데, 아이 키우는 어버이한테 하는 설문조사에 내가 대꾸할 만한 항목이 하나도 없다. 모두 도시에서 맞벌이를 하는 젊은 부부한테 물음직한 항목뿐이다. 전일제 유치원을 없애고 반일제로 바꾼다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둥, 시설에 보내지 않으면 10만 원 보조금을 주지만 시설에 보낼 때에는 보조금을 안 주는데, 5만 원 보조금을 주면서 시설 비용을 대면 아이를 시설에 넣겠느냐는 둥, 나로서는 뚱딴지 같은 물음들뿐이다. 듣다가 하도 ‘네’라고 말할 만한 항목이 없어서, “애써 전화하시는데 죄송하지만, 저희로서는 딱히 무어라 말할 만한 사항이 없네요. 아무리 맞벌이라 하더라도 아이를 전일제로 맡기면 아이가 너무 불쌍하지 않을까요? 부모도 아무리 바쁘더라도 아이하고 보내는 나날이 아주 중요할 텐데요.” 하고 설문조사 상담원한테 이야기한다.
참말, 맞벌이라 하더라도 아이를 시설에 하루 내내 맡기는 짓을 어떻게 할 수 있을까. 참말 그렇게 도시에서 맞벌이를 해야만 아이를 돌볼 수 있을까. 맞벌이를 해서 돈을 얼마나 버는가. 아이 양육비와 교육비와 보육비에 돈을 얼마나 대야 하는가. 아이는 돈으로만 자라는가. 아이한테는 돈만 있으면 되는가. 아이가 아침부터 저녁까지 어머니와 아버지 얼굴도 못 보는 채, 낯선 사람하고 하루 내내 지내야 하는가. 이렇게 할 바에는 아이를 왜 낳는가. 아이를 낳으려 한다면, 아이하고 함께 보낼 나날과 아이한테 물려줄 삶을 생각해야 하지 않는가.
보육정책은 틀림없이 제대로 서야 한다.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은 제대로 있어야 한다. 그래, 제대로 있어야 한다. 우리 집 아이들을 보내고 싶은 생각이 들 만큼, 어린이집과 유치원 하루 일과가 알차며 아름답고 사랑스럽도록 제대로 있어야 한다. 4346.12.30.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