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알맞게 기울이면서
살뜰히 돌볼 수 있으면
말 또한 아름답게 거듭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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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746) 색의 4 : 검은색과 흰색의 가로 무늬
어깨 깃은 검은색이지만 등과 허리는 검은색과 흰색의 가로 무늬가 있다
《함광복-DMZ는 국경이 아니다》(문학동네,1995) 27쪽
“어깨 깃은 검은색(-色)이지만”은 “어깨 깃은 검지만”으로 손봅니다. 생각해 보면, “꽃이 빨간색이네.”가 아니라 “꽃이 빨갛네.” 하고 말하는 우리들입니다. 검고 희고 빨갛고 노랗고 하다는 이야기는 바로 ‘빛깔’이 어떻다 하고 말하는 일이기 때문에, 굳이 ‘-빛’이든 ‘-色’이든 안 붙여도 됩니다. 아니, 안 붙여야 매끄럽습니다. ‘흰빛·검은빛·빨간빛·파란빛’으로 쓸 때가 있지만, ‘하양·검정·빨강·파랑’을 훨씬 즐겨쓰는 우리 삶이요 말넋입니다.
검은색과 흰색의 가로 무늬
→ 검고 흰 가로 무늬
→ 희고 검은 가로 무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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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쓰는 모든 말에는 우리 삶과 넋이 고스란히 담깁니다. 우리가 아름답게 살아간다면, 아름다운 빛이 아름다운 말이 되어 나타납니다. 우리가 즐겁게 노래한다면, 즐거운 얼이 아름다운 글이 되어 드러납니다.
속을 알차게 차리면서 가꾸는 우리 삶이라면, 우리 넋과 말 또한 속을 알차게 차리면서 가꾸는 흐름으로 나아갑니다. 알맹이를 튼튼하게 다스리면서 뿌리를 굳게 내리는 우리 삶이라면, 우리 얼과 글 또한 알맹이를 튼튼하게 다스리면서 뿌리를 굳게 내리는 모습으로 거듭나요.
왜가리를 보며 “흰색의 새다!” 하고 말하는 사람을 아직까지 못 봤습니다. 그렇지만 오래지 않아 아이들이 “야, 저기 봐. 흰색의 새다!” 하고 말할는지 모릅니다. 우리 어른들이 말삶을 아름답게 가꾸지 않으면, 어른들뿐 아니라 아이들 말씨까지 흔들리거나 무너집니다. 4339.9.29.쇠/4346.12.26.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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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깨 깃은 검지만 등과 허리는 검고 흰 가로 무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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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863) 색의 5 : 짙푸른 색의 그늘
이 감나무도 하루가 다르게 반들반들 짙푸른 색의 그늘을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추둘란-콩깍지 사랑》(소나무,2003) 24쪽
‘신록(新綠)’이나 ‘진초록(津草綠)’ 같은 말을 안 쓰고 ‘짙푸르다’를 쓰니 반갑습니다. 그런데 그늘은 ‘드리운다’고 해야 알맞지 않을까요. 감나무가 무럭무럭 자라면서 그늘을 ‘새로 만든다’는 뜻으로 썼다고 볼 수도 있지만, 글쎄, 좀 어설픈데요.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는 “만듭니다”로 손질해야 올바르지만, “드리웁니다”로 다시 고쳐야 알맞으리라 느낍니다.
짙푸른 색의 그늘을
→ 짙푸른 그늘을
→ 짙푸르게 그늘을
→ 그늘을 짙푸르게
…
어쨌든. 아무튼. 어쨌거나. ‘짙푸르다’를 잘 살려써서 반갑지만, 바로 뒤에 ‘색 + 의’를 붙이니 아쉽습니다. ‘짙푸른’만 넣어도 빛깔이 무엇인지 나타내거든요. 꼭 ‘색(色)’이라는 말을 넣고 싶다면 “짙푸른 색 그늘을 드리워”처럼 쓸 수 있겠지요. 그러나 굳이 이렇게 쓰기보다는, 단출하게 “짙푸른 그늘을 드리워”라 할 때에 가장 넉넉하구나 싶어요. 4339.12.26.불/4346.12.26.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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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감나무도 하루가 다르게 반들반들 짙푸른 그늘을 드리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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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2114) 색의 6 : 노란색의 꽃
삼지구엽초는 5월 무렵에 연한 노란색의 꽃이 피고 두세 달 뒤에는 조그만 꼬투리에 씨가 맺힙니다
《유상준,박소영-풀꽃 편지》(그물코,2013) 88쪽
‘연(軟)한’는 ‘옅은’이나 ‘맑은’이나 ‘산뜻한’으로 손봅니다. “이삼(二三) 개월(個月) 후(後)”라 하지 않고 “두세 달 뒤”라 적은 대목은 반갑습니다.
연한 노란색의 꽃이 피고
→ 옅고 노란 꽃이 피고
→ 맑고 노란 꽃이 피고
→ 노랗고 산뜻한 빛이 피고
…
하늘에 걸리는 무지개를 보면서 ‘무지개빛’이라 말하는 분이 있지만, ‘무지개色’이라 말하는 분이 더 많다고 느낍니다. 교과서에서나 책에서나 신문에서나 방송에서나 으레 ‘빛’이 아닌 ‘色’을 자주 씁니다. 이리하여 사람들 입이나 귀나 눈에 ‘빛’이 익숙하지 않구나 싶어요.
그러나, 달빛이요 별빛이고 물빛입니다. 햇빛이요 풀빛이며 꿈빛입니다. 소리빛이고 사랑빛이자 마음빛입니다. 우리 겨레가 먼먼 옛날부터 우리 둘레를 살피면서 헤아린 ‘빛’이 무엇인가 하고 돌아볼 수 있기를 빌어요. 우리들이 쓰는 말은 어떤 말빛일 적에 가장 고우면서 환할까 하고 깨닫기를 빌어요. 말빛을 밝히면서 글빛을 가꿉니다. 책에는 책빛이 서리고, 삶에는 삶빛이 감돕니다. 아름다운 빛이 아름다운 말에 드리우도록 저마다 힘을 쏟고 마음을 기울일 수 있기를 빕니다. 4346.12.26.나무.ㅎㄲㅅㄱ
* 삼지구엽초는 5월 무렵에 옅고 노란 꽃이 피고 두세 달 뒤에는 조그만 꼬투리에 씨가 맺힙니다
(최종규 . 2013 - 우리 말 살려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