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쪽지 2013.12.22.
 : 한겨울 맨발 자전거

 


- 며칠 매섭게 된바람 불다가 문득 바람이 수그러든다 싶어, 우체국 다녀오는 마실을을 맨발 자전거로 달려 본다. 오늘은 장갑도 끼지 않는다. 양말도 따로 안 신는다. 아이들은 마당에서 맨발로 놀기도 한다. 이 아이들을 말릴 수 없다. 신을 꿸 적보다 맨발로 뛰놀 적에 더 즐겁다 하는데 어쩌겠는가.

 

- 고흥이니까 한겨울에도 가끔 맨발 자전거를 달릴 만하리라 생각한다. 다른 고장이라면 엄두조차 못 내리라 느낀다. 두툼한 양말에 털신을 꿰고도 발가락이 얼지 않겠는가. 두꺼운 장갑을 끼고 목도리에 귀도리까지 하더라도 다른 고장에서는 얼굴과 귀와 손이 꽁꽁 얼어붙을 테지. 겨울은 겨울다운 추위가 있어야 제빛일 텐데, 겨울 추위 살며시 수그러들 적에 포근한 날씨 흐르면서 기지개를 켜는구나 싶다. 천천히 천천히 달린다. 겨울바람을 쐬고 겨울하늘 꽁꽁 얼어붙은 차가운 파랑을 누리면서 천천히 달린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살짝 에둘러 들 한복판을 지난다. 경관사업으로 유채씨 뿌린 논 옆에 선다. 볕이 아주 잘 드는 논은 벌써 유채잎 제법 돋았다. 맨땅에 비닐을 안 씌워도 유채풀은 이렇게 잘 돋는다. 시금치도 고흥에서는 비닐 안 씌워도 잘 돋는다. 겨울에는 그야말로 농약 칠 일조차 없다. 보리나 밀도 이렇게 잘 자랐겠지. 생각해 보면, 시골마을 경관사업을 하더라도 어디나 똑같이 유채씨만 뿌리지 말고, 자운영씨도 뿌리고, 보리씨와 밀씨도 심어, 저마다 다른 빛과 냄새와 무늬로 어우러지도록 할 수 있다. 꼭 봄에 노란 물결이 일렁여야 고운 빛 되지 않는다. 어느 논자락은 냉이밭 될 수 있고, 어느 논자락은 민들레밭 될 수 있다. 꽃다지와 꽃마리가 앙증맞도록 작은 꽃송이 올리며 한들거리는 논자락이어도 무척 곱다.

 

- 한참 유채논에서 서성거리며 겨울 풀내음 맡는데, 군내버스가 저 앞 마을길로 지나간다. 누렇게 조용한 논 사이로 달리는 군내버스이다. 군내버스를 모는 일꾼은 이 겨울에 겨울빛 한껏 누리면서 달리겠지. 자, 나도 집으로 얼른 돌아가서 저녁을 차리자.

 

(최종규 . 2013 - 시골에서 자전거와 함께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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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시경 2013-12-24 08:15   좋아요 0 | URL
맨발...듣기만 해도 오싹오싹 추운데요~남쪽은 정말 겨울도 따뜻해요,,,전 요즘 너무 추워서 마구 웅크리고 있어요~^^

숲노래 2013-12-24 09:46   좋아요 0 | URL
웬만해서는 0도 밑으로 내려갈 일이 없거든요 ^^;
겨울에도 맨발과 맨손으로 자전거를 탈 수 있으니
참 아늑한 시골입니다~

드림모노로그 2013-12-24 09:40   좋아요 0 | URL
희한하게 전라도와는 별 인연없이 산 것 같아요 ~
고흥, 고즈넉하니 시골 내음 물씬 나는 곳임이 이름에서부터^^ 느껴지네요 ~
제가 사는 곳도 시골이지만 어쩜 이렇게 차이가 나는지 ,
저희는 크리스마스 축제라고 로타리를 중심으로 번쩍번쩍 합니다 ~ 무척 화려하게 꾸며놓았어요 ~(이 화려함 때문에 군수님 욕 좀 드셨지만 ㅋㅋ)
겨울에 타는 자전거, 왠지 청량감이 느껴지는데요 ~ 글에서 나는 청량감 때문인지도 *^^*
함께 살기님도 메리 크리스마스 !!

숲노래 2013-12-24 09:47   좋아요 0 | URL
읍내에 그런 나무를 군수님께서 박으셨나요?
돈 좀 쓰셨겠네요.
그러다가 다음해 군수 선거에서 떨어지실 텐데요 ㅋㅋㅋㅋㅋ

드림모노로그 님도 겨울에 한두 시간쯤
두 다리로 걸어서 마실을 해 보시거나 자전거를 타 보셔요.
다만, 한낮에~
그러면 아주 시원하고 상큼하답니다 ^^

하늘바람 2013-12-24 11:33   좋아요 0 | URL
보기만해도 마음에 창하나 생긴듯 시원한 느낌이네요

숲노래 2013-12-24 12:33   좋아요 0 | URL
아무리 추워도 자전거를 타고 나와
들에서 하늘과 들을 바라보면
참으로 가슴이 시원하게 뚫려요.

하늘바람 님도 아이들과
주말에 가끔
시원한 겨울들과 겨울숲 누리는
나들이 즐겨 보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