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책으로 담는 마음
글을 쓰면서 덜 떨어지는 글이나 버금에 이르는 글을 쓴다고 여기지 않습니다. 원고지 석 줄짜리 글을 쓰든, 원고지로 삼백 장짜리 글을 쓰든 언제나 똑같은 마음이 되지 않으면 글이 샘솟지 않습니다. 책으로 엮기 앞서, 또는 책으로 태어나지 않더라도, 어느 자리에 어떻게 쓰는 글이든 아무렇게나 쓸 수 없어요. 손전화로 보내는 쪽글도 늘 내 마음을 담아서 띄우는 이야기가 되어야 스스로 즐거우며 마음이 느긋할 수 있다고 느껴요. 때때로 아이들한테 골을 부리곤 하지만, 바보스러운 골부림을 가라앉히면서 차근차근 따사로운 말을 들려줄 적에도, 얼렁뚱땅 들려주는 말이 아니라, 내 마음 깊은 곳에서 끌어올리는 가장 사랑스러운 한 마디가 되어야 한다고 느껴요.
아이들과 읽을 그림책에 적힌 글을 모조리 손질해요. 책에 대놓고 줄을 죽죽 긋고 새 말을 적어 넣어요. 이렇게 하는 까닭도, 아이들이 가장 사랑스러우면서 아름다운 빛을 글과 그림으로 누릴 수 있기를 바라기 때문이에요. ‘우리 글 바로쓰기’나 ‘우리 말 살려쓰기’는 그다지 대수롭지 않아요. 삶을 살찌우고 사랑을 빛낼 수 있으면 저절로 말과 글을 바로쓰거나 살려쓸 수 있으니, 껍데기인 겉모습 아닌 알맹이는 속내를 살필 노릇이라고 느껴요.
글을 마무리지으면서 더는 손댈 곳 없다 여긴다 하더라도, 이렇게 마무리지은 글을 책으로 엮으려고 하면 새삼스레 다시 읽고 돌아보면서, 글을 처음 쓰던 때보다 훨씬 오래 손질하고 새삼스레 고쳐쓰곤 합니다. 그리고, 책으로 한 번 나온 글이라 하더라도, 하루가 지나면 곧 스스로 못마땅하다고 느껴 좀처럼 다시 읽지 못해요. 하루만 지나도 새로 배우는 삶이 있으니 예전 글이 마음에 차지 않거든요. 자꾸 새롭게 글을 쓰고, 새로 쓴 글을 거듭 부끄럽게 여기면서, 또 새로 글을 쓰지요. 날마다 거듭나지 못한다면 산 넋이 아니라고 느끼고, 언제나 다시 태어나지 않는다면 글을 만질 수 없구나 싶어요.
풀잎을 봐요. 날마다 뜯고 또 뜯어도 새로 돋아요. 씩씩하게 자라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고 씨를 뿌린 뒤에 시들지만, 시들어 죽고 나서 새로운 씨앗이 흙을 품으며 싱싱하게 다시 자라요. 사람도 풀과 같아 언제나 새로 돋고 다시 태어날 때에 비로소 산 목숨이지 싶어요. 언제나 푸른 넋으로 살고, 한결같이 맑은 바람 되어 삶빛을 글빛으로 영글 수 있어야지 싶어요. 4346.12.15.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삶과 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