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넋 22. 한국말 살려쓰는 길
― 작은 마음 따사롭게 사랑하기

 


  시인 김명수 님이 쓴 《이육사》(창작과비평사,1985)라는 위인전을 읽다가 112쪽에서 “비록 바지저고리를 입고 홑치마를 두른 촌사람들이었지만”이라는 대목을 봅니다. 아무것 아니라 할 글 한 줄일 수 있지만, 이 대목에 밑줄을 주욱 그었어요. 이 한 줄에서 우리 겨레 오랜 삶을 읽습니다.


  요즈음도 이와 비슷하게 말하는 분이 더러 있지만, 이제는 “치마를 두른다”고 말하는 사람이 퍽 드뭅니다. 예부터 치마는 ‘입는다’보다는 ‘두른다’고 했습니다. 군대에서는 옷을 입는 일을 놓고도 ‘착용’이라는 일본 한자말을 쓰고, 우리 사회에서는 옷입기를 가리키는 낱말이 하나같이 영어예요. ‘옷차림’이나 ‘입성’이나 ‘차림새’나 ‘옷맵시’ 같은 말은 ‘패션’ 한 마디에 줄줄이 밀려요.


  어린이책에만 나오는 “바지저고리와 홑치마” 또는 “바지저고리와 치마저고리”가 아닙니다. 어떤 사람도 우리 겨레가 “한복을 입는다”고 말하지 않아요. 1919년에 만세운동을 하던 이들이 “한복을 입고 만세운동을 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바지저고리와 치마저고리를 입고 만세운동을 했다”고 말합니다.


  바지저고리와 치마저고리를 차린 한겨레는 ‘한옥’에 살지 않아요. 나무로 기둥을 세우고 돌로 바닥을 깔며 흙으로 벽을 바르고 짚으로 지붕을 이은 집에 살아요. 우리 겨례 여느 살림집은 흙집이거나 풀집이거나 나무집이거나 돌집입니다. 한자 쓰기를 즐긴 양반이라면 ‘흙집’이나 ‘풀집’이라 말하지 않고 ‘초가’라 했지만, 시골에서 흙 만지고 풀 베는 사람들은 그저 ‘풀집’이라 말했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날마다 밥을 먹는데, 임금이나 양반은 ‘조석’을 먹습니다. 이와 달리 논밭 일구는 시골지기는 ‘아침저녁’을 먹어요. ‘밥’을 먹지요. 우리 겨레가 예부터 먹은 밥은 그저 ‘밥’이지, 어느 누구도 ‘한식’을 먹지 않아요.


  이제 이 나라에 서양 물결이 넘실거리니, 따로 ‘한복·한옥·한식’ 같은 이름을 붙여서 이야기를 해야 할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우리 겨레 옷과 집과 밥을 제대로 가리키자면, 우리 겨레 글이 ‘한 + 글’이듯, ‘한 + 옷’과 ‘한 + 집’과 ‘한 + 밥’이 되어야 올바릅니다. 우리 겨레 이름 ‘한 + 겨레’처럼 말이에요.


  유소림 님이 쓴 산문책 《퇴곡리 반딧불이》(녹색평론사,2008)를 읽다가 30쪽에서 “돌 틈의 작은이들은 저마다 제일 좋아하는 방식으로 선물을 나누어 주었다.”라 나오는 대목을 봅니다. 국립국어원 맞춤법에 따르자면 ‘작은 이’처럼 띄어야겠지만, 이 책에 나온 그대로 붙여서 ‘작은이’라 쓸 만해요. 작은 사람을 가리킬 수 있고, 작은 목숨을 가리킬 수 있어요. 작은 꽃과 풀과 벌레 모두를 아우를 수 있으며, 작은 새와 물고기도 여기에 넣을 수 있습니다.


  ‘작은이’처럼 ‘고운이’를 쓰고, ‘사랑이’를 쓰며, ‘꿈이’나 ‘착한이’를 써도 재미있어요. 우리 둘레 반가운 님들한테 이렇게 이름 하나 조그맣게 붙이면서 생각을 틔우고 마음을 살찌울 만합니다.


  한국말 살려쓰는 길은 쉽습니다. 즐겁게 살려서 쓰면 됩니다. 작은 마음 따사롭게 헤아리면서 사랑하면 됩니다. 국어학 자료를 꿰거나 온갖 국어사전을 읽어야 하지 않습니다. 대학교 국문학과를 다녀야 하지 않아요. 국어순화 운동을 힘껏 벌여야 하지 않습니다. 하루하루 살면서 가장 즐겁고 사랑스러운 마음이 되면 넉넉합니다. 왜 그러느냐 하면, 우리들이 아름답게 살려서 쓸 말이란, 바로 우리 스스로 아름답게 살아가면서 즐겁게 쓰는 말이에요. 삶을 밝히는 말을 살려서 쓸 노릇이지, 국어사전에서 잠자는 말을 깨워서 쓸 노릇이 아닙니다.


  우리 겨레가 쓰던 말을 생각할 수 있으면 돼요. 한국말이란 먼먼 옛날부터 시골에서 흙을 만지고 일구며 가꾸던 이들이 쓰던 말이에요. 임금이나 학자나 양반이 쓰던 중국말은 우리 겨레 말이 아닙니다. 조그마한 시골마을에서 조그마한 시골사람이 흙과 풀과 꽃과 나무를 아끼고 사랑하면서 쓰던 말이 우리 겨레 삶빛 흐르는 말입니다.


  시골말 살릴 때에 한국말이 살아요. 시골마을 살릴 때에 이 나라가 살지요. 시골사람 살아날 때에 우리 삶과 문화가 시나브로 살아날 수 있어요. 시골을 잊거나 잃는다면 한국말을 잃는 셈이에요. 시골하고 등지거나 시골빛을 놓친다면 한국말 살찌우는 길하고 멀어져요. 학문으로 살릴 말이 아닌 삶으로 살릴 말이니까요. ‘국어순화 운동’은 그야말로 운동에서 그치기에, ‘삶을 가꾸는 말’로 나아가야 아름다우면서 즐겁습니다.


  삶을 가꾸면 저절로 말을 가꾸기 마련이에요. 삶을 가꾸는 사람은 마음과 사랑을 가꿉니다. 마음과 사랑을 가꾸니, 허튼 말이나 못된 말이나 얄궂은 말이나 뒤틀린 말을 안 써요. 마음과 사랑을 가꿀 만한 넉넉하고 따사로운 말을 쓰기 마련이에요. 이런 말을 써야 맞고 저런 말을 쓰니 틀리다 할 수 없어요. 삶을 가꾸지 않고 말만 가꾸지 못해요. 삶을 일으키면서 말을 일으킬 수 있지, 말만 번듯하게 세우고 삶을 튼튼히 세우지 못한다면, 도로 무너져요.


  이오덕 님이 쓴 《내가 무슨 선생 노릇을 했다고》(삼인,2005) 101쪽을 읽으면 “농어민들은 자랑스러운 겨레말을 모두 어렸을 때 부모들한테서 듣고 배워, 다시 그 아들딸들한테 건네고, 이래서 배달말은 지금까지 이어 왔습니다. 그러니까 일하면서 살아온 모든 부모들은 겨레말을 그 자식들에게 가르치는 훌륭한 교육자였다고 하겠습니다.” 하는 이야기가 흐릅니다. 학교에서 가르치는 말이 아니에요. 집에서 가르치는 말이에요. 학교에서 가르치는 삶이 아니라, 집에서 어버이가 가르치는 삶이에요. 날마다 즐겁게 일구는 삶을 아이들한테 고스란히 이어요. 하루하루 사랑스레 보듬는 삶을 아이들한테 차근차근 이어요. 아이와 늘 함께 살아가니, 아이 앞에서 어른으로서 삶을 어떻게 다스릴 때에 아름다운가를 스스로 깨닫겠지요. 아이들만 말을 배우지 않아요. 어른들도 스스로 말을 배워요. 어른들은 스스로 삶과 넋과 말을 꾸준히 새로 배우면서 아이들한테 삶밥과 넋밥과 말밥을 물려주는 빛을 드리웁니다. 4346.12.3.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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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en 2013-12-14 12:22   좋아요 0 | URL
'풀집'이라는 말을 참 오랜만에 들어보네요.

어릴 때 시골에서 자랄 땐 온통 풀밭에서 뛰놀고, 풀빛을 보며 자라고, 풀잎을 베어 지게에 담아 소에게 여물을 주고, 늦여름이면 어른들이 온통 풀베기에 나서서 밭에 쓸 '퇴비'를 만들었고, 가을걷이가 끝나면 짚으로 지붕을 새로 얹었던 기억이 새롭네요. 그렇게 흙집과 풀집에서 살던 우리네 삶이 '우리 시대에 이르러' 잠깐 동안에 참 너무 많이 바뀌었단 생각이 드네요.

숲노래 2013-12-14 12:45   좋아요 0 | URL
풀하고 멀어지면서 '풀말'을 잊고, '풀삶'하고 동떨어지는 한편, 풀처럼 푸르고 맑은 마음과 사랑과 빛도 모조리 잃는구나 싶곤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