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과 함께 - 이제부터 찍어요

 


  인천에서 지내는 형네 집에서 하루를 묵고는, 바깥일 하러 전철을 타고 서울로 가는 길에서, 누군가 말을 건다. 사진강좌 나가면서 사진찍기를 배운다면서, 내 가방이며 차림새이며 무언가 ‘사진하는’ 사람 같아 말을 건다고 한다. 이녁은 나라밖 발리섬에서 살다가 한국에 왔다고, 낯선 누군가한테 말을 거는 일이 아무렇지 않다고도 한다. 예전에 발리섬에 살 적에는 사진을 찍을 생각이 없었다가, 사진을 막상 배우고 보니 지난날에 그곳에서 아름다운 모습을 찍지 않은 일이 아쉽다고, 뉘우친다고 한다. 빙그레 웃으면서 이녁한테 이야기한다. “아쉽고 뉘우친다고 하면, 그곳에 다시 가서 찍으면 돼요. 못 간다고 생각하니까 못 가요. 여러 해 돈을 모아서 가도 되고, 그냥 가도 돼요.” 아침에 형네 집에서 나와 전철역까지 걸어오는 사이에 찍은 골목꽃 사진을 보여준다. “무슨 꽃인 줄 알겠어요? 부추꽃이에요. 이 겨울에도 골목집 꽃그릇에 부추꽃이 피었어요. 이 꽃이 씨앗을 맺고 이 둘레에 떨어지면 이듬해에 푸른 부추잎 새로 돋아 신나게 뜯어먹을 수 있어요. 사진이란 다른 것이 아니에요. 이런 하나하나 눈여겨보면서 좋아하고 즐기면 모두 사진이 되어요.”

 

  돈 때문에 못 하는 일이 있을까? 아무래도 돈이 없어 값진 사진장비를 못 갖춘다고도 할 테지만, 돈 때문에 못 하는 일이란 없다고 느낀다. 값진 사진장비를 갖추고 싶으면, 어버이한테서 돈을 빌거나 스스로 여러 해 돈을 모으면 된다. 은행에서 돈을 빌어서라도 값진 사진장비를 갖출 노릇이다. 돈을 핑계로 삼으면 아무것도 못 한다. 나한테 말을 붙인 분도 방을 빼거나 무언가 내다 팔아서 발리섬 찾아갈 돈을 마련하면 된다.


  하고 싶은 일을 해야, 찍고 싶은 모습을 사진으로 찍는다. 사진찍기란 그럴듯한 그림그리기가 아니다. 그림을 그리는 이들도 그럴싸한 모습을 종이에 옮기지 않는다. 스스로 그림을 그리고 싶으니 그림을 그린다. 스스로 글을 쓰고 싶으니 글을 쓴다. 스스로 찍고 싶어야 사진을 찍는다.

 

  무언가 알아보아야 찍는 사진이 아니다. 빛이나 구도나 황금분할 따위 모른대서 사진 못 찍지 않는다. 1회용사진기를 쓴다 한들, 가장 값싼 디지털사진기 쓴다 한들, 무엇이 대수로우랴. 어떤 사진기로도 사진을 찍으면 즐겁다. 사진을 찍겠다고 하든, 글을 쓰겠다고 하든, 그림을 그리겠다고 하든, 먼저 이녁 삶을 스스로 가장 누리고 싶은 하루로 일구어야 한다. 날마다 스스로 가장 즐겁고 아름답게 살아간다면, 내 앞에 드리우는 모든 모습이 ‘사진으로 담아 빛낼 이야기’ 된다. 일본사람 아라키 노부요시 님은 골목길을 한 시간만 걸어다니면 사진책 하나 만들 수 있다 말하는데, 한 시간 아닌 십 분만 걸어도 사진책 하나 묶을 만큼 스스로 즐겁고 아름다우며 사랑스러운 사진을 찍을 수 있다. 왜냐하면, 글쓰기나 그림그리기나 사진찍기나, 모두 마음에 얽힌 일이기 때문이다. 삶을 사랑하는 마음, 삶을 즐기는 마음, 삶을 아름답게 가꾸는 마음, 이 마음으로 글과 그림과 사진을 빚기 때문이다.


  이제부터 찍으면 된다. 이제부터 이곳에서 찍으면 된다. 이렇게 하다 보면, 내가 가고픈 길을 천천히 찾을 수 있고, 내가 누리고픈 삶을 천천히 깨달을 수 있다. 4346.12.5.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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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12-05 09: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추꽃이, 눈꽃같기도 하고 별꽃같기도 합니다!^^
이 부추꽃을 보며 마음이 뭐라 말할 수 없이 참 좋네요~
그런데 이런 부추꽃을 찬찬히 즐겁게 살피며 사진으로 담으신
고운 눈길이 없으셨다면 또 이러한 즐거움도 없었겠지요~*^^*

숲노래 2013-12-05 21:10   좋아요 0 | URL
부추꽃이 얼마나 예쁜지 사람들이 잘 몰라요.
손수 기르더라도 꽃이 피도록 두지 않고
늘 다 먹기만 하시니까요.

그런데, 부추꽃을 한 번 보신 분들은
꽃이 피도록 몇 줄기는 남기셔요.
그러고는 이렇게 9월부터, 자그마치 12월까지도!
흰꽃잔치를 누리시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