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가운 상말
 618 : 줄탁동기

 

‘줄탁동기(啐啄同機)’라는 말을 들어 본 적 있니? 어려운 말이라고? 그래, 좀 낯설긴 하지. 뜻을 한번 들어 봐
《이운진-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워질 너에게》(창비,2012) 188쪽

 

  어려운 말을 써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아름답고 사랑스러우며 좋은 말이 많은데, 굳이 어려운 말을 만들어서 써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말이 어렵다면 왜 어려울까요. 우리가 쓰는 말이 아니기 때문에 어렵습니다. 한국사람은 한국말을 하는 사람이지, 한문이나 한자를 쓰는 사람이 아닙니다. 한문이나 한자를 쓰던 한겨레는 임금을 둘러싼 몇몇 지식인뿐입니다. 고작 1%조차 안 되는 지식인이 쓰던 한문이나 한자는, 시골에서 흙을 만지며 살아가던 99%가 넘는 여느 한겨레한테는 어렵고 딱딱하며, 어떻게 보면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라 할 만한 말입니다.

 

 줄탁동기
→ 병아리 알깨기
→ 병아리 깨기
→ 알깨기
 …

 

  아이들 앞에 서는 교사라면, 아이들이 알아들을 만한 말을 할 노릇입니다. 아이들이 못 알아들을 말을 들먹이면서 무언가 가르치려 하는 일은 덧없습니다. 아직 아이들이 모르는 풀이름과 벌레이름과 나무이름과 짐승이름을 알려주는 일은 좋아요. 그러나, 우리를 둘러싼 삶자락 이야기 아닌, 권력자 둘레에서 쓰던 바깥말을 들추려는 말이라면 더할 나위 없이 부질없습니다.


  아이들 앞에서 ‘똘레랑스’를 말하면서 가르쳐야 하지 않아요. 아이들한테는 ‘너그러움’이나 ‘넉넉함’을 말해야지요. 너그럽게 마음을 다스리라고 가르쳐야지요. 그러니까, 아이들 앞에서는 ‘줄탁동기’ 아닌 ‘병아리 알깨기’를 말해야 합니다. 한자를 밝혀서 적어도 알아들을 수 없는 엉뚱한 바깥말 아닌, 누구나 쉽게 받아들여 알아들으며 나눌 말을 할 때에 비로소 어른이요 교사입니다. 한국사람이 한국땅에서 가장 슬기롭게 주고받으며 꽃피울 한국말을 살찌울 때에 아름다운 어른이고 사랑스러운 교사입니다. 4346.11.30.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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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en 2013-11-30 13:13   좋아요 0 | URL
졸탁동기 또는 졸탁동시는 송나라의 선승이었던 원오극근이 쓴 《벽암록》이라는 책에 나오는 말이더라구요. 오래 전에 저도 '졸탁동기'라는 말 때문에 그 책을 몇 번 펼쳐 본 적이 있었는데, 워낙 어려운 책이어서 도저히 읽어나갈 수가 없더라구요. '병아리 알깨기'처럼 쉬운 우리말로 간단히 해결될 말이긴 하지만 '알깨기'는 새 생명의 탄생과 그 아픔을 말하는 듯하고, 졸탁동기는 '동기'를 강조하는 말이어서 느낌은 조금 다르지 않을까 싶기도 해요.

숲노래 2013-11-30 13:21   좋아요 0 | URL
이 말을 1:1로 옮길 낱말은 없으리라 생각하지만, 송나라 그분이 책을 쓰며 스스로 '새 말을 지었'듯이, 우리도 병아리가 알을 깨고 나오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아름답고 뜻있는 말을 새로 지을 수 있으리라 생각해요. 바로 그렇게 할 때에 말이 태어나고 생각이 자라며 문화가 꽃을 피우겠지요!

꼬마요정 2013-11-30 21:50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함께살기님께서 일러주신대로 국립국어원을 찾았는데.. 너무 어렵네요..ㅎㅎ 그래도 나름대로 우리말을 잘 쓰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더 노력해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고맙습니다.^^

외국 지명이나 고유명사, 이름 등을 읽을 때, 영어 중심으로 읽잖아요.. 국제적으로도 그런 걸 규정하는 규칙이나 그런 게 있나요? 국제음성기호를 찾아봐도 그런 말이 없고 요즘 다들 영어로 읽으니까 영어 중심주의 혹은 미국의 자국어 중심주의인가.. 싶어서요. 미국인들이 일부러 영어식으로 다 읽는건가 싶기도 하구요.

숲노래 2013-11-30 21:51   좋아요 0 | URL
다른 나라는 으레 '그 나라 말투'대로 읽어요. 영어 투대로 읽는 나라는
일본과 한국, 이 두 나라가 대표라 할 텐데,
그나마 일본사람은 '일본영어(재패니쉬)'로 읽고,
이런 재패니쉬를 한국에서 다시 콩글리쉬로 쓰기 일쑤이기도 하답니다 ^^;;;;

꼬마요정 2013-11-30 22:06   좋아요 0 | URL
오~ 고맙습니다. 정말 궁금했거든요~

그렇다면 미국인들도 그 나라 발음으로 읽는거에요? 그럼 한국인들은.. 왜 영어 투대로 읽는 걸까요? 저는 미국 따라하는 건 줄 알았어요ㅠㅠ


숲노래 2013-11-30 22:29   좋아요 0 | URL
한국사람은, 거의 미국한테 문화식민지이거든요. 그래서 학자들이 미국말대로(영어라지만 영국 영어 아닌 미국 영어로) 쓰기를 즐기고, 또 오늘날 학자한테 스승 되는 이들은 일본책으로 일본말 익히며 배운 버릇 때문에 일본식 영어를 아주 많이 끌어들였어요. 이래저래 한국 지식인은 '마음에 아무 줏대가 없'어서 영어를 아주 많이 쓰고, 다른 여러 나라를 그 나라 말이나 문화 아닌 영어로 바라보는 엉뚱한 눈꺼풀을 뒤집어썼다고 할 수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