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 아저씨 강의

 


  아침에 녹동고등학교 ㅈ선생님 전화를 받는다. 수능시험 끝난 고3 아이들한테 ‘삶이야기’ 들려주면 좋겠다고 한다. 그래서 한 시간 강의를 가기로 한다. 날은 아직 안 잡았지만, 아마 이주에 가리라 생각한다.


  전화를 끊고 아침을 바지런히 차린다. 밥은 거의 다 끓었고, 국은 곧 끓일 테며, 그제 장만한 꽁치 두 마리를 구워야지. 오늘 아침은 단출하게 먹자. 세발나물이랑 무채랑 오이랑 김이랑 풀버무리, 이렇게 차리자. 한참 밥을 차리며 생각해 본다. 도시에서라면 ‘시골 아저씨’한테서 이야기를 들을 일이 없으리라. 도시에서는 ‘시골 떠나 도시로 온 사람’한테서 이야기를 듣겠다고 하지 않으리라. 시골에서는 ‘시골 떠나 도시로 간 사람’한테서도 이야기를 들을 테지만, 요즈음은 ‘도시 떠나 시골로 온 사람’한테서 이야기를 함께 듣는다.


  시골에서 나고 자란 시골 아이들은 도시 아이들한테는 없는 아주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빛이 있다. 바로 시골빛이다. 앞으로 도시에 뿌리내리고 시골은 안 쳐다보더라도 이녁 마음속에는 시골빛이 있다. 이 시골빛은 언제라도 천천히 깨어날 수 있다.


  시골바람, 시골냇물, 시골바다, 시골숲, 시골들, 시골마을, …… 이 모두가 고소한 거름이 되어 시골 아이들이 자란다고 느낀다. 비록 요즈음 시골학교도 도시학교와 똑같이 교과서만 가르치고 시멘트교실에서만 수업을 하며 다른 데에는 눈을 못 돌리게 하지만, 집과 학교 사이를 오가면서 봄과 여름과 가을과 겨울이 어떻게 달라지는가를 온몸으로 맡고 누릴 수 있다.


  도시에서 수능시험 마친 아이들 가운데 ‘시골 아저씨 강의’를 한 시간이든 두 시간이든 들으면서 새롭게 마음을 틔울 수 있도록 다리를 놓을 만한 어른이 얼마나 있을까 궁금하다. 4346.11.25.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3)

 


댓글(2)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appletreeje 2013-11-25 11:46   좋아요 0 | URL
시골 아저씨 강의, 듣기만 해도 참 정답고 좋습니다.
정말 도시에서도 그렇게 '시골 아저씨 강의'를 수능 끝난 아이들에게 듣게 해 준다면
참 값지고 좋은 삶빛을...선물해 주는 일이 될텐데요.
어디에서 태어나고 살든지, 사람마음에는 누구에게나 근원의 '시골빛'이 있을 것 같아요..

숲노래 2013-11-25 11:47   좋아요 0 | URL
시골에서도 도시에서도
'흙 만지는 사람'과 '집일 하는 살림꾼(거의 아줌마일 텐데)'을 모셔서
조곤조곤 이야기를 듣는 자리가 있기를 빌어요.

여느 수수한 어머니들을 학교에 모셔서
이녁 살아온 이야기를 듣도록 해도 좋을 테고요.

가만히 보면, 아이들은 어머니 아버지 살아온 이야기조차
제대로 못 듣는 채 입시에만 매달리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