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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구꽃 봉오리를 보니 눈물이 납니다 - 이오덕과 권정생이 주고받은 아름다운 편지
이오덕.권정생 지음 / 한길사 / 2003년 11월
평점 :
절판
살구꽃 봉오리를 보니 눈물이 납니다
― 이오덕·권정생 편지글 무단출간 열 해
꼭 열 해가 되었습니다. 이오덕 님과 권정생 님이 주고받은 편지를, 한길사 김언호 대표가 아무런 허락도 동의도 받지 않은 채 함부로 내놓아(무단출간) 말썽을 일으킨 지 꼭 열 해가 되었습니다. 한길사 김언호 대표는 《살구꽃 봉오리를 보니 눈물이 납니다》라는 이름을 붙여, 이오덕 님과 권정생 님 두 분이 주고받은 편지를 남몰래 펴내고 엄청나게 광고를 하면서 며칠만에 수천 권을 팔았습니다. 몇 부를 찍었는지 이오덕 님 유족과 권정생 님한테 밝히지 않은 채, 이 책이 말썽이 되고 이레쯤 지나고 나서야 비로소 ‘서점 회수’를 했지만, 고작 돌아온 책은 1200권쯤입니다. 이 책이 말썽이 난 줄 알아차린 서점에서는 ‘다 팔리고 없다’면서 회수를 안 하기도 했다고 들었습니다. 책방에서 사라져야 한 이 책을 어떤 사람은 ‘30만 원’ 값을 붙여 팔기도 합니다.
지난 2003년 11월 10일을 떠올립니다. 나는 그때에 충북 충주 무너미마을에서 이오덕 님 유고와 원고와 책을 한창 갈무리했습니다. 이오덕 님이 흙으로 돌아간 뒤 남은 수많은 글뭉치와 책을 하나하나 살피고 닦고 손질하고 갈래를 지어 나누면서 지냈습니다. 이날도 여느 때처럼 이오덕 님 원고 가운데 묻힌 글을 살피고, 묻힌 글을 한글파일로 옮기는 일을 했어요. 그런데 아침에 어느 분한테서 전화가 왔어요. 이오덕 님 큰아들이요 충주 무너니마을에서 농사를 짓는 이정우 님한테 전화가 왔어요. ‘이번에 나온 (이오덕) 선생님 책 눈물을 흘리면서 읽었다’는 이야기를 했어요. 깜짝 놀랐지요. 이즈음 나온 이오덕 님 새책은 없었으니까요. 그래서, 무슨 일이요, 무슨 책이요, 하면서 전화 거신 분한테 다시 여쭈었고, 이정우 님은 한길사로 전화를 걸어 “무슨 책을 냈느냐?” 하고 물었습니다. 한길사에서는 처음에 책을 안 냈다고 했습니다. 편집부 일꾼도 김언호 대표도, 처음 두 차례 전화통화에서는 책을 낸 일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런가 보다 하고 지나갔으나, 낮에 다른 분한테서 무너미마을로 전화가 왔어요. ‘책 나온 소식을 들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세 번째로 한길사에 전화를 거니, 그제서야 “책을 냈습니다.” 하고 말했습니다. 나중에 김언호 대표는 이정우 님한테 전화를 걸어 “좋은 책 내는데 무슨 문제가 있느냐” 하고 말했습니다. 덧붙여 “이오덕 선생님이 살아 계실 때 이미 허락을 했다”고 말했습니다.
이오덕 님 글과 책을 갈무리하면서, 이 글과 책이 나오도록 하는 일을 맡던 나였기에, 한길사 편집부 강옥순 주간한테 전화를 걸어 “왜 출판계약서도 없이 책을 내셨습니까?” 하고 여쭈었습니다. 강옥순 주간은 “이오덕 선생님은 예전에도 한길사에서 책을 내실 때는 출판계약서를 쓰지 않았어요. 구두로만 계약을 한 뒤 인세가 발생하면 이를 정산해서 지급해 드렸어요. 이렇게 하면 이오덕 선생님이 받아들였어요.” 하고 말합니다. 참말 그런가 하고, 전화를 끊고 나서 이오덕 님이 남긴 서류를 찾아보니, 한길사에서 낸 책들 출판계약서가 있습니다. 이오덕 님은 출판계약서가 없이 한길사에서 책을 내지 않으셨습니다.
한길사에서는 허락을 안 받은 채 책을 함부로 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한길사에 ‘편지 원고’가 있었을까요? 이오덕 님은 돌아가시기 앞서 편지 원고를 어느 출판사에 맡겨야 할는지를 놓고 몹시 망설였습니다. 어느 출판사도 미덥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한길사 김언호 대표는 이 얘기를 듣고는 이녁이 한번 구경해 보겠다 하면서 여러 차례 부탁해서 편지 원고를 가져갔고, 어느새 편지 원고를 모두 입력해 놓았습니다. 그러고는 이오덕 님을 자꾸 재촉했습니다. 이오덕 님은 ‘이 편지 원고는 나(이오덕)와 권정생 선생이 모두 죽은 뒤에나 나올 수 있다’면서, 함부로 내놓을 책이 아니라 말하며 손사래를 쳤습니다. 그러나, 한길사 김언호 대표는 이오덕 님이 손사래를 쳤어도 여러 해에 걸쳐 이 책이 나올 수 있도록 해 달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이오덕 님은 ‘나(이오덕)와 권정생 선생은 언제 죽을지 모르지만, 두 사람이 죽고 나서 책이 나와야 하고, 내(이오덕)가 죽은 뒤에 아들(이정우)한테 이 책 내는 일을 맡길 테니, 아들하고 이야기하라.’ 하고 말씀했습니다. 권정생 님도 이오덕 님하고 말씀을 맞추셨고, 이녁이 죽은 뒤 서른 해가 지나고 나서 책으로 내기를 바라셨습니다. 이에 이정우 님은 “서른 해는 너무 길고, 열 해 뒤에 내기로 하지요.” 하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래서, 권정생 님도 “내가 죽고 나서 열 해 뒤라면 괜찮다.” 하고 말씀했습니다.
이오덕 님은 2003년에 흙으로 돌아가셨고, 권정생 님은 2007년에 흙으로 돌아가셨습니다. 이오덕 님이 흙으로 돌아가신 지 열 해가 되었습니다. 앞으로 네 해 지나면 권정생 님이 흙으로 돌아가신 지 열 해가 됩니다.
이오덕 님이 남긴 일기를 다섯 권으로 갈무리해서 2013년 봄에 《이오덕 일기》(양철북 펴냄)가 태어났습니다. 열 해가 지난 뒤에 얼마든지 책이 태어날 수 있습니다. 《살구꽃 봉오리를 보니 눈물이 납니다》라는 책이 이 땅에 태어나 사람들한테 아름답게 읽히도록 하자면, 이렇게 열 해를 기다리면 될 노릇이었습니다.
아름다운 책은 아름다운 손길로 엮을 때에 태어납니다. 아름다운 글을 안 아름다운 손길로 엮어서 내놓으면, 이 책을 만날 사람들부터 안 즐겁고 안 반갑습니다. 그냥 지식으로 읽는 책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아름다운 눈빛으로 어루만지면서 아름다운 손빛으로 보살펴야지요.
좋은 책을 읽는대서 좋은 사람이 된다고 느끼지 않아요. 좋은 책을 읽으며 얻은 좋은 넋과 슬기를 스스로 좋은 삶으로 일구면서 나눌 때에 비로소 좋은 마음과 좋은 사랑이 우리 보금자리부터 싹틀 수 있다고 느낍니다.
앞으로 네 해 더 지나 맞이할 2017년에 어떤 책들이 이 땅에 태어날까 궁금합니다. 그즈음에 태어날 새로운 책 가운데 《살구꽃 봉오리를 보니 눈물이 납니다》가 한 자리를 차지할 수 있을는지 궁금합니다. 그즈음에 이오덕 님과 권정생 님이 주고받은 편지가 책으로 태어날 수 있다면, 아무래도 한길사 아닌 다른 출판사에서, 그리고 시골에서 살림을 꾸리는 조그마한 출판사에서, 작은 사랑과 작은 꿈과 작은 빛을 가슴으로 받아안으며 나올 수 있기를 빌어 마지 않습니다.
돈을 바라는 큰 출판사에서 이런 광고 저런 홍보를 하며 팔 만한 책이 아니라고 느낍니다. 사랑을 바라고 꿈을 키우려는 작은 출판사에서 입소문으로 천천히 오래도록 따사로운 손길을 받도록 내놓아 읽힐 책이라고 느낍니다.
(최종규 . 2013)
이 책을 놓고 2003년에 오간 이야기를 다음 주소로 들어가면 찾아 읽을 수 있습니다.
(글 1) http://blog.aladin.co.kr/hbooks/5203761
: 한길사는 이오덕, 권정생 선생님 앞에 사죄해야
(글 2) http://blog.aladin.co.kr/hbooks/5203767
: 기사로 담지 못한 이야기
(글 3) http://blog.aladin.co.kr/hbooks/5203772
: 중앙일간지 후속보도 + ...
(글 4) http://blog.aladin.co.kr/hbooks/5205006
: 주중식 반론 글 + ...
(글 5) http://blog.aladin.co.kr/hbooks/5205010
: 한길사 공식 입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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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부터 열 해가 흘렀는데,
2013년 오늘까지도 한길사 김언호 대표는
사과 한 번 하지 않았습니다.
사과를 하려 했다면 벌써 했을 테니,
아마 앞으로도 사과를 하지 않으리라 느낍니다.
몇 가지 자료사진을 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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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여, 이런 자료들도 있습니다.
참 슬픈 일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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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사는 이 내용증명을 받고도
두 가지 책을 몇 만 권 더 찍어서 몰래 팔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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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오덕 선생님은 출판사들이 판매부수를 자꾸 속이니
모든 책에 인지를 붙이셨는데,
이렇게 인지 안 붙인 책을,
이오덕 님이 돌아가신 뒤에도 버젓이 유통시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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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무엇을 배울까요.
사람들은 무엇을 가르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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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길사 무단출간 열 해가 된 오늘...
가슴이 너무 찌릿찌릿 저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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