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훑기와 속읽기

 


  겉만 따로 읽을 수 있습니다. 옷차림을 읽을 수 있고 얼굴빛을 읽을 수 있습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을 찬찬히 읽을 수 있어요. 이와 달리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속을 따로 읽을 수 있습니다. 마음을 읽거나 생각을 읽습니다. 사랑을 읽고 꿈을 읽습니다. 겉으로는 알 수 없는 이야기를 곰곰이 읽습니다.


  겉읽기라서 어리숙하지 않습니다. 속읽기라서 훌륭하지 않습니다. 겉은 겉대로 알뜰히 읽고, 속은 속대로 살뜰히 읽으면 됩니다. 겉읽기와 속읽기를 알뜰살뜰 할 때에는 오롯이 삶읽기 이루어집니다.


  흔히 말하는 ‘비판정신’이란 제대로 읽는 눈길에서 태어난다고 느껴요. 제대로 읽지 않고 겉말에만 얽매여 속알맹이를 들여다보지 못하면 겉만 보는 꼬리잡기나 헐뜯기만 이루어지지 싶어요. 옷차림을 두고 사람을 꼬리잡으면 얼마나 겉돌기가 될까요. 옷차림이 아닌, 옷 안쪽에 있는 사람을 봐야겠지요.


  그러니까, 우리들은 ‘읽기’를 할 노릇입니다. 겉이든 속이든 읽기를 할 일입니다. 이렇게 읽기를 하지 못한다면 ‘훑기’만 하고 맙니다. 이를테면 ‘겉훑기’이지요. 겉으로 드러난 몇 가지 모습으로 어떤 사람이나 일을 놓고 속내까지 아무렇게나 말하는 모습이 바로 ‘겉훑기’입니다.


  겉읽기는 겉읽기일 뿐입니다. 겉을 읽는다고 해서 어느 한 사람 속까지 읽는다고 할 수 없습니다. 겉을 읽었기에 속을 함부로 따지거나 재거나 금긋기를 할 수 없습니다. 현상학, 미시, 거시, 이런 어려운 말은 굳이 안 써도 돼요. 우리 말로 쉽게 겉과 속을 헤아리면 돼요.


  누구나 맨 먼저 속알맹이가 되는 삶을 헤아리고는, 이 다음에 겉모습이나 겉말을 하나하나 짚어야지 싶습니다. 어떤 마음이요 생각인가를 읽고, 어떤 사랑이요 꿈인가를 읽으면서, 어떤 말과 몸짓과 눈빛과 손길이 밖으로 드러나는가를 읽을 때에, 사람과 삶과 사회를 올바르게 헤아릴 수 있으리라 봅니다.


  ‘비판정신’에 앞서 ‘올바로 읽는 눈’이 있어야 한다고 느낍니다. 올바로 읽는 눈일 때에 ‘올바로 말하는 입’이 됩니다. 올바로 말하는 입일 때에 ‘올바로 듣는 귀’가 됩니다. 눈과 입과 귀는 언제나 올바를 수 있어야 합니다.


  올바른 몸가짐은 딱딱하거나 메마르지 않습니다. 올바르지 못한 몸가짐이 딱딱하고 메마릅니다. 올바른 몸가짐은 슬기롭습니다. 슬기로운 몸가짐은 아름답습니다. 아름다운 몸가짐은 사랑스럽습니다. 사랑스러운 몸가짐은 착합니다. 착한 몸가짐은 참답습니다. 참다운 몸가짐은 다 다른 사람 다 다른 빛이기에 ‘나답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올바른 사람 앞에서는 왼쪽도 오른쪽도 따로 없습니다. 왼쪽에서든 오른쪽에서든 올바른 사람을 함부로 못 건드리고 어설피 해코지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올바르기 때문입니다. 왼쪽에 서거나 오른쪽에 서는 사람은 모두 외곬입니다. 왼쪽이든 오른쪽이든 스스로 놓치는 대목과 빛과 삶이 있습니다. 우리들은 어느 한쪽에 설 사람이 아닙니다. 아름다운 넋을 아름다운 글로 밝힌 어떤 분 말씀마따나 두 날개로 날아갈 새와 같은 사람입니다. 두 손으로 일하고 두 다리로 서며 두 눈으로 바라볼 사람입니다. 두 귀로 듣고 두 코로 숨을 쉬며 웃니 아랫니 두 이빨 부딪혀 목소리를 내고 밥을 먹을 사람입니다.


  위와 아래는 높낮이나 계급이 아닙니다. 왼쪽과 오른쪽은 금긋기나 파벌이 아닙니다. 그저 위와 아래일 뿐이고 왼쪽과 오른쪽일 뿐이에요. 자리에 앉아 보셔요. 누워 보셔요. 물구나무를 서 보셔요. 위와 아래란 무엇입니까. 왼쪽과 오른쪽이란 무엇인가요. 인천과 강릉을 생각해 보셔요. 인천에서 서울은, 또 강릉에서 서울은 무엇인가요.


  올바로 읽을 수 있으면, 남들이 무어라 하든, 눈엣가시로 여기거나 말거나, 하나도 대수롭지 않아요. 왜냐하면, 올바르게 걷는 길은 즐겁고 아름다우며 사랑스러우니까요. 올바르게 일구는 삶은 즐겁고 아름다우며 사랑스레 빛나니까요. 올바르게 꿈꾸는 사랑은 즐겁고 아름다우며 사랑스러운 이야기꽃으로 태어나니까요. 4346.11.9.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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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en 2013-11-10 15:43   좋아요 0 | URL
참 좋은 글입니다. 함께살기 님의 글을 읽으니 몽테뉴가 인용했던 '목욕과 공부는 때를 씻어 내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던 철학자의 말이 떠오릅니다.
* * *
철학 강의를 들어 보라. 착상과 웅변과 지당한 말은 당장에 그대에게 깊은 인상을 주며, 그대를 감동시킨다. 그대의 양심을 건드리거나 자극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들은 양심에 말하는 것이 아니다. 사실 아닌가? 그래서 이리스톤은 "목욕이나 공부는 몸을 닦아서 때를 씻어 내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고 하였다. 껍데기에 구애되는 것은 좋지마는, 그것은 속의 골수를 뽑아 낸 다음이라야 한다. 마치 아름다운 잔에 가득한 좋은 술을 마시고 나서, 판에 새겨진 그림을 감상하는 격으로 말이다.

숲노래 2013-11-10 16:30   좋아요 0 | URL
이 글은, 알라딘서재에서 아름다운 이웃 분이 남겨 준 댓글 때문에
저 스스로 더 깊이 생각해 보면서 쓸 수 있었어요.
그분이 댓글을 달아 주지 않으셨으면
'겉훍기'와 '속읽기'가 무엇인가 하는 대목을
저 스스로도 오랫동안 생각할 일 없지 않았을까 하고 느껴요.

참말 oren님은 훌륭한 고전을 두루 꿰면서
좋은 말씀을 알맞게 잘 들려주시는
엄청난 힘이 있으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