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책 읽는 마음가짐

 


  번역이 어찌 되건 즐겁게 읽습니다. 번역책 가운데에는 제대로 번역하지 않았구나 싶은 책이 있고, 직역만 하고 손질을 안 한 채 내놓은 책이 있으며, 번역자와 편집자가 알뜰히 가다듬고 추스른 책이 있습니다. 어느 책이든, 내가 손수 한국말로 옮겨서 읽는 책이 아닌 만큼, 고맙게 읽습니다.


  번역글을 읽으면서 이렇게 한글로 옮긴 이 이야기를 쓴 분이 이녁 나라에서 어떤 마음으로 이녁 말로 조곤조곤 생각과 마음을 밝혔을까 하고 곰곰이 헤아립니다. 저 먼 나라 글쓴이 마음을 살피면서 번역글을 읽습니다.


  번역이 어설플 수 있습니다. 번역이 훌륭할 수 있습니다. 어설프면 어설픈 대로 곰곰이 생각합니다. 훌륭하면 훌륭한 대로 이와 같은 새 문학이 태어나는구나 하고 생각합니다. 여러모로 어설픈 번역이라고 해서 자꾸 ‘어설프네’ 하고 생각하면, 그만 어설픈 글줄에 마음이 갇히고 말아, 그야말로 어설픈 대목만 보이고 말아요. 처음부터 ‘이야기 읽어야지’ 하고 생각하면, 번역글이 어설프건 훌륭하건, 글에 깃든 이야기가 새록새록 드러납니다.


  한글로 쓴 글이라 하더라도 엉성하게 쓴 글이 많습니다. 한글로 쓴 한국말이라 하지만, 번역 말투와 일본 말투에다가 중국한자말과 일본한자말, 여기에 영어까지 어지럽게 뒤섞은 알쏭달쏭한 글이 참으로 많습니다. 시에서도 소설에서도 수필에서도 한국글다운 한국글 쓰는 분을 만나기 몹시 어렵습니다. 그러나, 한글로 된 한국책을 읽으며 ‘엉성한 글’을 생각할 수 없습니다.


  나는 ‘엉성한 글’을 알아보려고 책을 읽지 않아요. ‘이야기’를 읽고, 이야기에서 ‘삶’을 느끼며, 삶에서 ‘사랑’을 만나고 싶어서 책을 읽습니다. 비록 글이며 글투며 글빛이며 모조리 엉성하다 하더라도, 이러한 글로 무슨 이야기를 들려주려 했을까 하고 가만히 헤아려 봅니다. 그러면, 이야기가 마음으로 들어와요. 그저 즐겁게 읽으면 다 아름다운 책이 됩니다. 4346.11.7.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책 언저리)


댓글(8)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oren 2013-11-07 12:41   좋아요 0 | URL
번역된 책이든 한글로 쓰여진 책이든 책을 읽을 때는 글쓴이의 마음 속까지 깊숙히 침투해 들어가 보려고 애쓰는 일이 정말 중요하다는 생각을 거듭 하게 됩니다. 그런 노력 없이 소소한 번역의 문제 때문에 돌부리에 채여 자주 넘어지는 일은 어느 정도는 책을 읽는 사람들의 '자세'로부터 기인하는 문제가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듭니다.

* * *

판단의 책임은 내게 있는 것이므로, 나는 내 이해력이 그 속까지 침투해 보지 못해서 피상적으로 머무르거나 또는 가짜 광채에 현혹된 것이라고 자기를 책망한다. 내 판단력은 다만 동요와 혼란에 빠지지 않는 것으로 만족한다. 그 이해력이 박약한 바는 기꺼이 인정하며 고백한다. 내 판단력은 그것이 파악한 개념이 그 자체에 지시하는 겉모습에 정확한 해석을 내린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해석은 허약하고 불완전하다.

이솝 우화는 대부분이 여러 가지 의미와 해석을 지니고 있다. 그것을 도덕적으로 해석하는 자들은, 그 이야기와 격이 맞는 어떠한 모습을 골라낸다.

그러나 그것은 대부분 유치하고 피상적인 모습에 지나지 않는다. 그 속에는 더 살아 있고 본질적이며 내면적인 의미가 있으나 거기까지는 뚫어보지 못한다. 나 역시 그 꼴로 읽는다.(몽테뉴)

숲노래 2013-11-07 13:40   좋아요 0 | URL
즐겁게 두루 읽으면
마음속에 즐거운 빛이 골고루 스며들어
넋과 삶과 말이 새롭게 자라는구나 싶어요

무지개모모 2013-11-07 16:03   좋아요 0 | URL
그동안 번역 맘에 안 들면 엄청 툴툴거리던 저를 되돌아보게 되네요.
하긴 따지려 들다 보면 한도 끝도 없더라구요.

숲노래 2013-11-07 17:20   좋아요 0 | URL
번역하시는 분들도
이녁 스스로 번역이 마음에 안 들는지 몰라요 ^^;;;;

qualia 2013-11-07 17:01   좋아요 0 | URL

그럼에도 꼬치꼬치 캐묻고 따지고 드는 비판정신은 소중합니다.

남들에게 눈엣가시로 낙인 찍힌다는 것 압니다.

세상 “피곤하게” 산다는 비아냥과 힐난도 많이 받습니다.

무골호인처럼 좌우 양쪽으로부터 환영 받고, 인품 넉넉한 대인배 대접도 때론 받고 싶죠.

그러나 저런 유불리를 떠나 진정한 비판가는 엄밀 · 엄정 · 엄격합니다.

잘잘못의 비판에는 크고 작음이 없습니다.

나/너/우리라는 경계와 패가 없습니다.

겉보기에 삐딱한, 그런 삐딱한 비판가가 없다면

우리 사회는 바로 설 수 없습니다.


숲노래 2013-11-07 17:24   좋아요 0 | URL
비판정신은 제대로 읽는 눈길에서 태어난다고 느껴요.
제대로 읽지 않고 겉말에만 얽매여 속알맹이를 들여다보지 못하면
겉만 보는 꼬리잡기나 헐뜯기만 이루어지지 싶어요.
옷차림을 두고 사람을 꼬리잡으면 얼마나 겉돌기가 될까요.
옷차림이 아닌, 옷 안쪽에 있는 사람을 봐야겠지요.

그래서, 번역책을 읽든 여느 창작책을 읽든
맨 먼저 속알맹이가 되는 삶을 헤아리고서,
나중에 겉말을 하나하나 짚어야지 싶습니다.

올바른 비판정신은 삐딱이가 아니라 '올바름이'라고 느껴요.
올바르지 못하기에 '삐딱하게 되는구나' 싶어요.


올바름이는 왼쪽에서도 오른쪽에서도 섣불리 건드리지 못하겠지요.
환영을 하거나 거부를 하는 흐름이 아닌,
두 쪽 모두 스스로 얼마나 외곬로 치달으며 바보스러운가를 느끼게 해 줄 때에
비로소 올바른 비판정신 된다고 느껴요.

비판과 대인배는 많이 다른 대목이 될 테지요.
그리고, 올바로 읽을 수 있으면
남들이 무어라 하든, 눈엣가시로 여기든 대수로울 것 없어요.
왜냐하면, 올바르게 걷는 길은 즐겁고 아름다우며 사랑스러우니까요.

qualia 2013-11-08 16:59   좋아요 0 | URL


함께살기 님, 생각 깊은 답글 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숲노래 2013-11-08 17:53   좋아요 0 | URL
qualia 님이 댓글을 써 주셨기에
저도 생각을 한 번 더 깊게 할 수 있었어요.

qualia 님 말씀처럼 우리 사회에는
'삐딱한 비판가'가 설 자리가 없어요.

스스로 진보라 하는 쪽에서도
보수라 하는 쪽에서도
다양성도 개성도 공존도 평화도 찾아보기 어려워요.
모두들 입으로는 큰소리를 내지만
정작 모두들 몸으로는 안 움직여요.

이러저러 하다 보니 저는 도시를 아주 떠나 시골에서 살아가는데,
모든 것을 내려놓고 조용히 살아가는 길에서
무언가 삶을 찾지 않으면 아무것도 안 이루어지는구나 싶어요.

..

그냥 그렇지요.
집안일 도맡고 아이키우기도 맡겠다 하면서
바깥일(사회 활동) 그만두고 집에 머무는
'진보 남자 지식인'이란 몇이나 있을까요... 이 나라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