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크로소프트 공동 창업자 폴 앨런(Paul G. Allen)은 그의 동료 마크 그리브스(Mark Greaves)와 함께 집필한 「특이점은 가깝지 않다」에서 레이 커즈와일의 특이점 2045년 도래 주장을 여러 논거를 들어 비판한다. 앨런은 특이점이 언젠가는 다가오리라고 볼 수도 있지만 그렇더라도 2045년까지는 어림도 없다고 단언한다. 그 논거로서 다음과 같은 사항들을 든다. (Technology Review, October 12, 2011


① 수확가속의 법칙(The Law of Accelerating Returns)은 물리 법칙(Physical Law)이 아니다. 그것은 과거의 과학기술 발전 속도로 미래의 발전 속도를 예측할 수 있다는 단정적 주장(assertion)일 뿐이다. 과거로부터 미래를 예측하는 시도들이 그러하듯이 그런 주장은 틀리기 직전까지만 적용되는 한시적 법칙일 뿐이다. 특이점과 관련해 더욱더 문제가 되는 점은 그 법칙은 컴퓨터 성능이 계속해서 폭발적으로 향상될 것이라는 가정으로부터 그것의 전부라 할 수 있는 기하급수적 발전 논리를 도출해낸 외삽적 추정(extrapolation)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② 컴퓨터 하드웨어가 수확가속의 법칙이나 무어의 법칙(Moore's Law)대로 발전한다고 인정할 수 있다 해도 소프트웨어는 그런 식으로 발전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특이점 달성에 필요한 수준의 소프트웨어 발전을 이루려면 인간 뇌의 물리적 구조 · 작동 방식 · 의식 · 원초적 생각 등이 무엇이고 어떻게 생겨나는지 과학적으로 완전히 파악해 그걸 소프트웨어 설계의 기본 얼개(architectural guide)로 사용할 수 있어야 하는데, 이 분야 연구는 아직도 갈 길이 너무나 먼 초기 상태에 불과하고, 이런 사실들은 소프트웨어가 (적어도 2045년 안팎까지는) 수확가속의 법칙이나 무어의 법칙을 따라 지수적으로 발전할 수 없다는 것을 말해주기 때문이다. 


③ 인간의 지능 · 인지 · 뇌신경 구조는 깊이 파고들면 들수록 수백만 년에 걸친 진화적 요인과 환경적 요인으로 형성된 고도로 복잡한 기제라는 것이 드러난다. 이것은 규칙적 기억 장치에 내장된 수십억 개의 동일한 트랜지스터들을 CPU와 몇몇 개의 핵심 장치로 통제하는 컴퓨터의 특성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점이다. 바로 이런 사실이 인간의 지능 · 인지 · 뇌신경 구조를 과학적으로 완전히 파악하는 것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지연시킨다. 우리는 이것을 ‘복잡성 브레이크(Complexity Brake)’라 부를 수 있다. 그렇다면 특이점을 달성하는 데 요구되는 과학적 발전 속도를 지배하는 것은 수확가속의 법칙이 아니라 복잡성 브레이크라 할 수 있다. 


④ 인간 지능을 모사하려는 인공지능의 방법론은 인간이 성장하면서 지식을 습득해가는 방식과는 정반대다. 즉 인간은 아기에서 어른으로 커가면서 일반 지식(general knowledge) 습득부터 시작해서 그것을 특수 지식(specific knowledge)으로 증강하고 상세하게 다듬어 나가는 방식을 따른다. 한데 인공지능은 좁은 영역의 깊은 지식(특수 영역의 심층 지식)을 갖춘 시스템을 개발하고 그것들을 결합해 좀더 일반적인 능력을 갖춘 시스템을 만들어가는 방식을 취해왔다. 하지만 이런 역방향 방식은 성공적이지 못했다. 사람의 방식을 채택한 몇몇 인공지능도 제한된 성공만 거두었을 뿐이다. 어느 쪽 방식이든 인공지능은 인간 인지에 특유한 유연성을 부여해주는 복잡한 심리 현상들, 즉 불명확성(uncertainty), 문맥적 민감성(contextual sensitivity), 어림짐작(rules of thumb), 자기성찰(self-reflection, 자기반성), 번득이는 깨달음(the flashes of insight, 순간적 통찰) 등과 같이 고차적 사고에 본질적인 심리 현상들을 모형화하는 이론적 작업을 이제 막 시작했을 뿐이다. 특이점에 도달하기 위해선 경천동지할 만한 발견들 · 노벨상급 이론 · 완전히 새로운 접근법들이 필요하다. 한데 이런 종류의 기초 과학적 발전은 이상적인 지수적 성장 곡선을 따르지 않는다. 즉 복잡성 브레이크가 발전 속도를 늦출 것이고 특이점을 더 먼 미래로 밀어낼 것이다. 


⑤ 특이점이 가까이 왔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얽히고설킨 인간 인지의 놀라운 복잡성에 주의해야 한다. 인지에 대한 깊은 과학적 이해 없이는 특이점 도래를 촉진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를 만들어낼 수 없다. 오히려 커즈와일이 예측한 계속적 가속 발전 대신에 복잡성 브레이크가 과학적 이해를 근본적으로 늦추게 될 것이다. 이처럼 인간 인지의 완전한 과학적 이해는 가장 어려운 문제들 가운데 하나다. 해서 이번 세기 끝에 가서도 우리는 여전히 특이점은 가깝지 않다는 사실을 거듭 깨닫게 될 것이다


   


이상 위와 같은 폴 앨런의 강력한 비판에 레이 커즈와일은 발빠르게 반론을 발표한다. 폴 앨런이 2011년 10월 12일 비판글을 발표하고 나서 딱 일주일이 지난 2011년 10월 19일에 《과학기술 평론 Technology Review》에 기고한 「특이점을 과소평가하지 말라 Don't Underestimate the Singularity」가 그것이다. 이 반론은 커즈와일의 2012년 저서 『How to Create a Mind: The Secret of Human Thought Revealed 마음의 탄생 - 알파고는 어떻게 인간의 마음을 훔쳤는가?』, 11장 「Objections 반론 - 불신과 비관적 전망을 넘어서」에 대부분 재수록되었다. 


한데 커즈와일의 반론 가운데 소프트웨어도 하드웨어처럼 기하급수적으로 발전한다며 폴 앨런을 자신 있게 논박하는 부분이 흥미롭다. 커즈와일은 결정적 논박이라고 확신에 차서 구체적 증거와 논거를 들이민다. 그런데 번역판에서 이 부분을 읽다가 결정적 오역을 몇몇 군데 발견했다. 이건 다음에 다루기로 한다. 


[참고 문헌] 


Allen, Paul G. & Mark Greaves (Oct 12, 2011). Paul Allen: The Singularity Isn’t Near. Technology Review. http://www.technologyreview.com/blog/guest/27206/ 


Kurzweil, Ray (Oct 19, 2011). Kurzweil Responds: Don't Underestimate the Singularity. Technology Review. http://www.technologyreview.com/blog/guest/27263/ 


Kurzweil, Ray (Nov 13, 2012). How to Create a Mind: The Secret of Human Thought Revealed. New York: Viking. [xiv + 336 pages, Paperback: Aug 27, 2013] 


• 레이 커즈와일 (2016-07-18).『마음의 탄생 - 알파고는 어떻게 인간의 마음을 훔쳤는가?』. 윤영삼 옮김 · 조성배 감수 · 크레센도. [반양장, 46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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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책 『맥스 테그마크의 유니버스』에서 우리의 물리적인 실체가 전부 수학적일(느슨하게 말해서 정보에 기초를 두고 있을) 가능성을 생각해봤다. 그 경우 실체의 모든 측면이, 심지어 의식도, 과학의 영역 안으로 들어온다. 사실 이 관점에서 보면 의식의 정말 어려운 문제는 수학적인 무언가가 어떻게 실체로 여겨지는지를 이해하는 것과 동일한 문제가 된다. 즉, 수학적인 구조의 일부에 의식이 있다면 그것은 나머지를 외부 물질세계로 경험할 것이다.

 

위 인용문은 『맥스 테그마크의 라이프 3.0 - 인공지능이 열어갈 인류와 생명의 미래』(백우진 옮김, 동아시아) 8장 「의식」에 나오는 부분이다. 388쪽에 있는 각주 전문이다.

 

 

 

한데 위 각주에서 셋째 문장이 도통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만약 셋째 문장 《사실 이 관점에서 보면 의식의 정말 어려운 문제는 수학적인 무언가가 어떻게 실체로 여겨지는지를 이해하는 것과 동일한 문제가 된다》가 무슨 말인지 그 의미를 정확히 설명해주시는 독자분이 있다면, 나는 그분한테 삼계탕을 대접해 드리겠다. 단 위 번역본/번역문만 참고해서 말이다. 무슨 뜻인지 몰라 원문을 참조하는 건 위 번역문 자체의 이해 문제와는 다른 문제다.

 

요컨대 맥스 테그마크의 의식에 관한 위 얘기가 무슨 얘기인 줄 모르겠다는 것이 아니다. 위 번역문 자체가 문맥상 영 이해가 안 된다는 것이다. 잘못 번역한 것 같다는 얘기다.

 

[덧붙임(07. 29. 월. 16:42) : 문제의 위 번역문은 맥스 테그마크의 ‘의식의 정말 어려운 문제’ 개념에 비춰볼 때 앞뒤 문맥과 전혀 연결이 되지 않는다. 해서 독자들은 무슨 뜻인지 몰라 헤매거나, 어렴풋이 추상적으로 넘겨짚고 넘어간 것을 이해했다고 착각할 가능성이 크다. 명확한 이해가 아닌 이런 불분명한 이해를 저 번역문이 유발하기 때문에 나는 도통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고 한 것이다. 정말로 말씀드리지만 저 번역문이 도대체 무슨 의미인지 정확히 아시는 분은 설명 좀 해주셨으면 좋겠다. 삼계탕을 대접해 드리든 어떻게든 보답해 드리고 싶다.]

 

번역문은 원문을 전혀 참조하지 않아도 쉽게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번역의 첫째 존재 이유다. [원문 자체가 워낙에 난해한 경우나, 원작자가 일부러 중의적 · 초현실주의적 기법을 부렸거나, 말장난(pun) 따위를 친 특수한 경우는 예외일 수도 있다. 하지만 논리적으로 엄밀하고 명확한 과학적 · 철학적 원문을 애매모호하게 번역하는 건 전혀 경우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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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일즈 2020-03-24 12: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원문을 보셨는지 모르겠지만,원문에서는 ‘수학적인 무언가‘가 주어역할을 해서 (물리적인) 실체를 느끼는 역할인데, 번역문에서는 느껴지는 대상으로 역할이 주어져 ‘실체로 여겨지는‘ 무언가로 번역되어서 혼란을 줍니다.
암묵적으로 물리적인 실체, 실체, 그리고 의식 사이에 어떤 관계를 설정해놓고 하는 얘기 같습니다. 그러니까 의식을 실체로 보고, 그 의식의 일부가 수학적인 무언가가 되고, 이 수학적인 무언가가 나머지 물리적인 실체를 느낀다는 얘기 같습니다.

qualia 2020-03-28 09:50   좋아요 0 | URL
마일즈 님, 댓글 주셔서 감사합니다. 위에서 제가 문제를 제기한 번역판의 부정확한 번역에 대해서는 조만간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지금 현재 모든 도서관이 코로나19 바이러스 전염병 때문에 휴관이죠. 해서 위 책 『맥스 테그마크의 라이프 3.0 - 인공지능이 열어갈 인류와 생명의 미래』를 빌려올 수가 없습니다. 위 부정확한 번역을 분석하고 비판하려면 책을 빌려와 앞뒤 문맥을 정확히 파악해야 하는데요. 그리고 해당 원서 『Life 3.0: Being Human in the Age of Artificial Intelligence』도 입수해 해당 원문을 찾아서 번역판과 비교 · 대조해 읽어봐야 하는데요. 코로나19 바이러스 때문에 제 답변이 늦어질 것 같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아무튼 이렇게 의식에 관한 논의 댓글을 올려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다음에 꼭 답변드리겠습니다. 어서 빨리 코로나19(COVID19)가 싹 물러가줬으면 좋겠습니다. 마일즈 님께서도 항상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수전 슈나이더(Susan Schneider, 수전 쉬나이더)는 2019년 10월 01일 발행될 새 책 『인공적인 당신 - 인공지능과 당신 마음의 미래 Artificial You: AI and the Future of Your Mind』에서 인공지능이 수십 년 안에 인간 수준의 지능을 뛰어넘어 새로운 방향/차원으로 지능을 발전시켜 나가리라고 예측한다. 즉 안으로는 우리의 뇌를 재형성하고 밖으로는 기계 마음을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한데 우리 호모 사피엔스가 마음의 설계자를 자임하면서도 자아(the self, 자기), 마음(the mind), 의식(consciousness)이란 대상들에 관해 완전히 파악하지 못한 상태에서 그것들을 도구(“tools”) 삼아 인공지능과 뇌 향상 기술에 응용한다면 의식적 존재들(conscious beings)의 멸종이나 재난을 불러올지도 모른다고 경고한다. 그러지 않고 우리가 계속 번영하려면 알고리듬 이면에 숨어 있는 철학적 논제들을 반드시 밝혀내 파악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요컨대 슈나이더의 핵심적 탐구 주제는 ‘AI가 진짜로 이룩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것이다. 로봇은 과연 진짜로 의식을 지니게 될까? 일론 머스크나 레이 커즈와일 같은 과학기술 선도자들이 예측하듯이 우리는 인공지능과 융합될 수 있을까? 마음은 단지 프로그램에 지나지 않는 것일까? 슈나이더는 이런 논제들을 면밀히 분석하면서 기계 의식(machine consciousness)을 검증할 수 있는 테스트 방법을 제안하고, 의식이 과연 정교한 지능에서 필연적으로 생겨나는 부산물(unavoidable byproduct)인지 의문을 제기하고, 기계 마음(machine minds)을 만들어냄으로써 생기는 수많은 위험들을 고찰한다. [여기까지는 아마존에 올라온 책 소개 요약입니다.]

 

  

 

여기서 나는 수전 슈나이더의 물음 가운데 《로봇은 과연 진짜로 의식을 지니게 될까?》에 대한 의견을 간략히 제시해본다. 나는 인공지능이나 로봇이 의식을 지니리라는 건 필연적이라고 본다(의식적 인공지능이나 로봇이 출현할 ‘미래 시점을 정확히 예측하는 것’도 철학적 · 과학적 논증 작업의 중요한 부분이다. 개나 소나 다 할 수 있는 예측, 즉 구체적 로드맵이나 발전과 진화의 단계별 이정표를 전혀 제시하지 못하는/않는 막연한 예측은 그 가치나 의미가 현저히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여기선 이 논건은 생략한다). 하지만 인공 의식이나 기계 의식, 로봇 의식은 인간의 의식과는 다른 종의 의식일 것이다. 나는 이걸 잠정적으로 유사 의식(pseudo-consciousness or quasi-consciousness)이라고 부르고 싶다. 이런 주장에 반론하는 분들한테는 먼저 실리콘(과 그에 준하는 다른 소재들) 기반의 반도체로 이루어진 인공지능의 전뇌나 로봇의 전뇌를 생각해보라고 말하고 싶다.

 

인공지능과 로봇의 전자뇌와 인간의 생체뇌가 근본적으로 다른 점은 무엇일까? 많은 점이 있지만 대표적으로 ① 디지털적(+양자적) 계산 뇌와 디지털적+아날로그적+α적 계산 뇌라는 차이와 ② 무기체의 마른 뇌(dry brain, dryware)와 유기체의 젖은 뇌(wet brain, wetware)라는 차이를 들 수 있다. 전자뇌는 젖으면 고장 나거나 전혀 작동하지 못한다. 즉 전자뇌한테 수분은 치명적이어서 반드시 침투를 막아야 한다(방열과 냉각 장치에 쓰이는 물은 완전 방수된 물이고 전혀 다른 별개의 문제다). 반면에 생체뇌는 수분이 말라 없어지면 전혀 작동하지 못한다. 즉 생체뇌한테 수분은 필수불가결한 조건이고 요소다. 내 생각에 이건 전자뇌의 의식 소유 여부 논쟁에서 옹호 논증을 펴는 계산론자(계산주의자)들 일파와 기능론자(기능주의자)들 일파를 논박하는 데 결정적인 논거가 될 수 있는 조건이다. 대략 이것이 수전 슈나이더의 물음 《로봇은 과연 진짜로 의식을 지니게 될까?》에 대한 내 나름의 대답의 서두라 할 수 있다. 상세한 후속 논증과 나머지 물음들에 대한 대답은 책이 출간되고 난 다음에 제시해보도록 해야겠다. 아무튼 수전 슈나이더 교수님의 신작 저서 『인공적인 당신 - 인공지능과 당신 마음의 미래 Artificial You: AI and the Future of Your Mind』 무척이나 기대된다. 

 

https://www.facebook.com/qualia2/posts/721314041634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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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랫글은 성현석 님이 집필 계획 중이라는 『한국인의 콤플렉스』의 일부 글감으로 제시한 「인간은 평등하다...」에 올라온 권오성 님의 댓글에 제가 07월 13일 저녁 6시 46분에 달았던 댓글입니다.

 

성현석 님의 페이스북 글 「인간은 평등하다...」
https://www.facebook.com/mendrami/posts/452480128666411

 

성현석 님의 글은 친일 행위와 친일파들의 심리 유형을 간략하게 비판적으로 다루고 있고, 권오성 님의 댓글은 일본국 사람들의 한국에 대한 현재의 정서가 어떠한 것인지 비유적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제 댓글은 ‘일본국 사람들의 정서’에 대한 권오성 님의 비유적 인식 배후에 깔려 있을지도 모를 착각 혹은 오류를 밝혀내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일본 아베 정권의 반도체 · 디스플레이 핵심 소재 한국 수출 금지 조치를 두고 오히려 우리 한국 내에서 불거지고 있는 자기분열 양상을 지적하고, 우리 한국인들 사이에 동족대결 · 동족포식의 기제가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지 아주 간략히 분석하고 있습니다. 이런 한국 내의 내분과 자중지란 한편에는 소위 성찰적 지성인인 양 자처하는 일부 지식인과 교수들의 해괴한 논리가 똬리를 틀고 있다고 봅니다. 자국민의 일본에 대한 항의 표시(예컨대 일본 제품 불매 운동)를 비난하고 조롱해대는 그들의 행태는 일본 아베 정권과 극우 세력에 결과적으로 부역하는 21세기판 친일 행위라고 봅니다(모르고 하는 멍청한 친일, 의도를 숨기고 하는 간교하고 은밀한 친일, 대놓고 하는 본토왜구와 다름없는 친일, 간교한 논리에 속아 친일파들의 친일이 친일인 줄도 모르고 부화뇌동하는 친일 등등 아주 다양합니다).

 

·························································

 

Qualia Mind 권오성 님 댓글 : 그냥 장난스런 생각으로, 20년 후 베트남이 1인당 GDP 한국 턱밑까지 따라잡고 베트남 대중문화가 핫 해지는 날 한국사람들이 베트남에 대해 갖게 될 정서가 지금 일본국 사람들의 정서가 아닐까 망상해 봅니다.. ㅋ

 

→ 그냥 장난스런 생각이고 망상이라고 하셨습니다만, 권오성 님의 윗글 맥락에는 우리 한국의 대중문화나 그것을 포함한 전반적 역량이 일본에 근접했다고 보는 생각이 은연중 깔려 있는 듯합니다. 혹은 바다 건너편의 일본이 우리 한국의 역량을 그렇게 판단해 경계하고 있고, 한국이 치고 올라오는 걸 눈꼴시게 바라보고 있다고 지레 판단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여기서 “눈꼴시게 바라본다”는 성현석 님의 윗글에 나오는 “각성하는 꼴, 도저히 눈 뜨고 못 본다”란 표현의 문맥적 변형판입니다.]

 

한데 저는 생각이 다릅니다. 만약 우리가 저렇게 생각한다면 그건 착각에 지나지 않는다고 봅니다. 일본의 경계 의식, 눈꼴 시려워하는 모습이 아주 없지는 않겠지만, 일본(인들)의 근본적 · 기본적 생각은 ‘한국은 아직 멀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한국(인들)이 전혀 각성했거나 각성하고 있다거나 심지어 각성할 가능성이 있다고도 보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들은 우리를 아직도 자기들보다 한두 수 아래로 보고 있고 자기들이 부리던 식민지 노예를 바라보듯 바라보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건 적어도 임진왜란 전후부터 구한말, 일제 강점기를 거쳐 21세기인 오늘날까지 면면히 이어져온 일본(인들)의 기본적 대한관이라고 봅니다. 이건 우리 측에서 보면 분개할 만한 일이지만, 일본인들은 한일 양국 간의 (과장을 보태자면) 하늘과 땅만큼 차이나는 각 부문별 객관적 지표에 근거해서 그렇게 보는 것이기 때문에 그런 부분에서만큼은 부인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습니다. 이런 측면에서 일본은 한국을 경쟁상대론 보지 않는다는 겁니다. 정명가도 때의 그때처럼 일본에게 한국은 그저 밟고 지나가야 할 정복의 한 루트일 뿐입니다. 일본(인들)의 이런 뿌리깊은 대한관의 정체를 우리 한국(인들)이 간파해내고 자각하는 것의 중요성 · 시급함과는 별개로 앞서 말한 한일간 객관적 지표들에 대한 객관적 파악과 냉철한 인식 또한 너무나 중요합니다. 이런 객관적 지표들의 세목을 소상히 알고 난다면 위 댓글에서처럼 “일본국 사람들의 정서” 운운하는 대목에 깔린 은연중의 착각이 얼마나 한가로운 동시에 심각한 것인지 드러난다고 봅니다.

 

이런 측면에서 요즘 일본 아베 정권의 반도체 · 디스플레이 핵심 소재 한국 수출 금지 조치로 촉발된 한국(인들)의 적전 분열과 일부 지식인들의 해괴한 자국민 비난과 조롱, 예컨대 일본 상품 불매 운동을 쓸데없는 헛짓거리라고 까면서 자기 스마트폰을 분해해 일본산 부품을 적출하고 파괴해 보이면 그 애국심을 인정해주겠다는 투로 자국민을 노골적으로 조롱하는 일부 지식인 · 교수들의 행태 따위들은 그걸 바라보는 일본(인들)의 기본적 대한관을 더욱 굳건하게 굳혀주는 근거로 작용한다는 것입니다. 해서 사리분별 능력이 정상이라면 그리고 쓸개가 제자리에 붙어 있는 (가짜가 아닌) ‘진짜’ 한국인이라면, 이 민감한 시기에 여러 가지 방식으로 일본에 대한 항의와 대항적 의미의 운동이나 시위를 하는 분들을 비난하고 조롱까지 하는 건 전혀 경우가 아니지 않느냐 하는 생각입니다. 그건 조롱 당사자들의 정확한 정체와 그들의 진짜 의도가 무엇인지는 몰라도 결과론적으로 일본 아베 정권에 부역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조롱 당사자들의 비난글의 논리가 그렇게 돌아가고 있고 그렇게 귀결되고 있기 때문에, 그런 글을 써놓고 나중에 별별 사후 합리화 논리를 갖다 대도 최소한 논리적 오류는 결코 피할 수 없다고 봅니다). 해서 소위 저 지식인 · 교수라고 하는 분들의 자국민 비난 논리는 일종의 신종 친일 부역 행위라 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저들의 논리는 한일 강제합병을 전후해 반민족적 친일파들이 전개했던 논리와 놀랄 만큼 빼닮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요컨대 결론은 우리의 이런 적전 자기분열, 자기배반, 동족갈등, 동족포식의 속성과 그 발생 기제를 우리보다 먼저 날카롭게 검출해내고 그걸 근거로 한국(인들)에 대한 자신들의 기본적 시각을 거듭거듭 재확인하고 정당화 · 합리화하는 게 바로 일본(인들), 좀 더 범위를 좁히자면 일본 민족을 이끄는 정치적 주동 세력이나 극우 세력이라는 것입니다. 역으로 우리 한국(인들)이 이런 식으로 엮여 돌아가는 한일 국민 · 민족 간의 특수 논리를 꿰뚫어보지 못하고 자각하지 못한다면 제 판단엔 임진왜란 · 을사늑약 · 강제합병 · 동족상잔 전쟁 때의 치욕과 비극을 또 다시 되풀이하게 되는 건 필연이라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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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아베 정권이 노리는 것은 무엇일까? 단순히 반도체 · 디스플레이 핵심 소재 수출 규제로써 한국 경제에 타격을 주려는 것만이 아니다. 일본은 임진왜란 · 을사늑약 · 강제합병 등으로 한국의 자주독립권을 침탈해오면서 한민족의 약점을 꿰뚫고 어떻게 하면 한국에 대한 침략과 통치를 효과적으로 할 수 있을까를 거듭거듭 확인하고 통달하게 되었다. 그건 한민족 최대의 약점인 내부 분열적 기질을 이용하고 노예적 기질을 공략하는 것이다. 일본은 전략적으로 한민족의 분열적 성향을 이용해 영호남/남북한을 이간질하고 노예적 기질을 이용해 토착왜구의 준동을 부추기고 있다는 것이다.

 

일본은 한국 정치판의 생리와 정당들의 정치적 정체성 등을 꿰뚫고 있다. 어떤 정당이 더 민족적·자주독립적인지 아니면 더 외세의존적·반자주적인지 정확히 파악하고 있고, 해서 한국의 어떤 정당이 정권을 잡아야 자신들한테 유리한지, 한민족의 자주독립권과 남북통일 의지를 약화시킬 수 있는지 완전 파악하고 있다. 일본은 표면적으론 한국을 자주독립국으로 대하고 있으나 그건 의례적인 것이고 속내는 여전히 한국을 자신들의 식민지나 하수인 국가로 보고 있다. 거듭되는 독도 도발과 초계기 근접 비행 도발 등은 그걸 거듭 확인해주는 일부 사례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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