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기말 블루스 창비시선 149
신현림 지음 / 창비 / 199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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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노래하는 시 57

 


내가 사랑하는 그대한테
― 세기말 블루스
 신현림 글
 창작과비평사 펴냄, 1996.6.25. 7000원

 


  봄을 지나 여름이 되고부터 풀벌레 노랫소리를 듣습니다. 여름 내내 개구리와 나란히 노래하는 풀벌레 노랫소리를 들었고, 가을이 무르익으면서 개구리 노랫소리는 거의 사그라듭니다.


  풀벌레는 하루 내내 노래합니다. 새벽에도 아침에도 낮에도 저녁에도 밤에도, 풀노래를 곱게 베풉니다. 나는 아이들과 함께 풀노래로 온몸을 물들입니다. 마루문을 열어도 닫아도 듣는 풀노래입니다. 마당에 서든 마루에 앉든 방바닥에 드러눕든 언제나 듣는 풀노래입니다.


  저녁이면 늘 두 아이를 내 왼쪽과 오른쪽에 하나씩 눕혀 재웁니다. 나는 가만히 드러눕기만 해도 됩니다. 내가 굳이 자장노래 부르지 않아도 풀벌레가 고운 목소리로 맑은 노래 베푸니까, 아이들과 함께 풀노래 누리면 됩니다.


  그러나, 잠자리에서 으레 목청을 가다듬고 나즈막하게 노래를 부릅니다. 풀노래에 내 노래 섞여 한결 보드랍고 따사로운 기운이 우리 보금자리에 넘치기를 바랍니다. 풀노래를 들으며 즐거운 내 마음이 너그럽게 거듭나기를 바랍니다. 아이들은 아버지 노래와 풀노래를 나란히 들으면서 천천히 천천히 꿈나라로 접어듭니다.


.. 왕복 전철비 이백원 / 점심 라면값 이백원 / 커피값 백원 / 대학 때 하루 생활비는 오백원이었다 ..  (오백원 대학생)


  깊은 밤입니다. 코가 막혀 잠자리에서 일어납니다. 코를 풉니다. 코를 풀고 낯을 씻으며 생각합니다. 시골에서 살면서도 철이 바뀌는 이즈음 코가 막히는데, 내가 태어난 도시에서 내처 살았다면 내 코는 어떻게 되었을까 하고.


  지난일 돌이켜봅니다. 새벽부터 밤까지 학교에 갇혀 입시공부를 해야 하던 때, 코가 늘 막혀 몹시 괴로웠습니다. 가만히 있어도 콧물이 흐르고, 코를 풀고 다시 풀어도 코는 또 흘렀습니다. 햇볕을 쬐지도 못하고, 운동장에서 신나게 뛰지도 못하는 채, 오직 참고서와 교과서와 문제집만 들여다보도록 닦달하는 시멘트 교실에 있어야 하니, 코가 쉴 수 없습니다. 따순 햇볕도 맑은 바람도 머금지 못하는 코는 몹시 힘들었으리라 생각합니다.


  대학입시를 마치고 인천을 떠나 서울로 가서 지낼 적에는 코가 더 힘듭니다. 공장 많은 인천에서는 공장 매연에 시달리고, 자동차 많은 서울에서는 자동차 배기가스에 들볶입니다.


  사람은 많으나 숲이 없는 이 나라 도시예요. 촘촘히 아파트와 집은 많지만 나무는 드문 이 나라 도시예요. 사람도 새도 벌레도 살가이 숨을 쉬기 어려운 이 나라 도시예요.


.. 오늘은 컴퓨터 냄새가 싫으니까 / 손으로 쓴 편지로 나를 울게 해봐 // 지금 나무를 심지 않으면 / 내일은 해가 뜨지 않을지도 몰라 ..  (세기말 블루스 1)


  한여름이든 한겨울이든, 마당 평상에 드러눕기를 즐깁니다. 마루에 드러누워도 풀노래를 듣고, 바람노래를 들으며, 꽃노래를 듣습니다. 마당 평상에 드러누우면 한결 또렷하게 풀노래를 들을 뿐 아니라, 풀바람을 쐽니다. 우리 집 후박나무 그늘을 즐기면서, 후박잎과 후박줄기 가만히 바라봅니다.


  평상에 드러눕다가 뒹굴 굴러 모로 눕습니다. 후박나무 둘레에서 자라는 여러 풀을 바라봅니다. 우리 식구가 날마다 뜯어먹는 풀을 바라보고, 굳이 안 뜯어먹는 풀을 바라봅니다. 풀밭에서 풀을 뜯거나 쉬를 할 적에, 풀개구리 한두 마리 폴짝폴짝 뜁니다. 집 한켠에 기대어 놓는 자전거를 마당에 내려놓을 때마다, 자전거 어딘가에서 다리쉼을 하던 참개구리가 펄쩍펄쩍 뜁니다.


  며칠 앞서 내린 가을비를 맞고 쓰러진 키 높이 자란 풀을 바라봅니다. 바로 이 자리에 봄에는 유채꽃과 갓꽃이 한창이었는데, 이제는 아무 티가 안 납니다. 유채와 갓이 우리 집 마당 한쪽에서 잔뜩 자란 줄 느끼려면 가을 지나고 겨울 거쳐 봄이 새롭게 찾아와야 합니다.


.. 너는 어디에나 있었다 해질녘 풍경과 비와 눈보라, / 바라보는 곳곳마다 귀신처럼 일렁거렸다 / 온몸 휘감던 칡넝쿨의 사랑 / 그래, 널 여태 집착한 거야 ..  (이별한 자가 아는 진실)


  해마다 풀맛이 새롭습니다. 들이나 숲으로 나가 풀을 뜯을 수 있지만, 우리 집 풀밭에서 이 풀 저 풀 뜯어서 먹는 맛이 새롭습니다. 해가 갈수록 식구들 즐기는 풀 가짓수가 늘어납니다. 새해를 맞이할 적마다 아이들이 먹는 풀이 늘어납니다. 앞으로 아이들이 나이를 더 먹으면, 아버지 손을 빌지 않고 아이들 스스로 풀을 뜯으리라 생각합니다. 아직까지는 아버지가 밥 차리고 풀 뜯고 모든 일을 도맡지만, 머잖아 아이들이 하나씩 집일 나누어 맡으면서 살림을 같이 일굴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나는 여섯 살 큰아이한테 집일을 굳이 안 시킵니다. 큰아이가 어지런 책과 놀잇감을 예쁘게 치워야지 하고 말하기는 하지만, 걸레질 하라거나 빨래 하라거나 옷 개라거나 설거지 하라고 시키지 않아요. 그런데, 큰아이는 곧잘 “내가 설거지 할래. 설거지 해도 돼요?” 하고 묻습니다. 여섯 살 아이 설거지는 얼마나 미더울까 아리송하지만, “그래, 하고 싶으면 해.” 하고 말합니다. “나는 작은 것을 설거지 할 테니까, 아버지는 큰 것을 설거지 해요.” “작은 것은 내가 설거지 할 테니까, 아버지는 큰 것만 설거지 해요.” 설거지를 하는 아버지 곁에서 큰아이는 종알종알 말이 많습니다. 큰아이가 스스로 설거지를 하겠다고 나서면서도 이것저것 말이 많습니다.


  큰아이는 날마다 설거지를 하지는 않습니다. 무언가 생각이 난다 싶을 적에 합니다. 처음 설거지 하겠다고 나선 반해쯤 앞서는 영 서툴다 싶더니, 오늘 낮 설거지는 제법 깔끔합니다. 여섯 살 아이라 하더라도, 하고 또 하고 또 하면서 스스로 솜씨가 늘어나네 하고 깨닫습니다.


.. 여기 한 여자가 무너지다 / 사랑한 애인이 울린 여자 / 모든 시간이 버린 여자 / 그의 삶을 가볍게 해줘 / 자선냄비처럼 기쁘게 해줘 ..  (뜻깊은 인생이라고 속삭여줘)


  설거지를 마친 큰아이는 걸레질까지 합니다. “벼리야, 걸레는 물을 잘 짜고 했니? 물을 제대로 안 짜고 걸레질을 하면 방바닥이 온통 물바다가 돼.” 저번에 아버지한테 말 않고 걸레질 하던 어느 날, 마루며 방바닥이 온통 물바다가 되도록 걸레질을 했기에, 오늘 슬며시 한 마디 합니다. 방바닥을 살짝 만집니다. 물기가 이렁저렁 많지만, 저번처럼 물바다는 아닙니다. 그래, 이만 하면 곧 마르겠지, 하고 큰아이 걸레질을 물끄러미 구경합니다.


  작은아이는 누나가 무언가 하면 저도 따라하려 합니다. 세 살 어린이인 만큼, 누나처럼 퍽 꼼꼼히 설거지를 할 수 없을 뿐더러 걸레질을 할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네 살 되고 다섯 살 되면, 누나 못지않게 씩씩하고 야무지게 집일을 거드는 멋쟁이 되리라 생각해요.


  그러고 보면, 나도 내 어머니가 시켜서 하는 일이 있었지만, 내 어머니가 시키지 않아도 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척 보아도 어머니 혼자 떠맡는 집일이 많다고 느껴, 이모저모 조용히 거듭니다. 이모저모 조용히 거들다 보면, 뜻밖에 마음이 매우 즐겁습니다. 차분한 마음이 되고, 홀가분한 마음이 됩니다. 내 삶과 보금자리를 새삼스레 다시 바라볼 수 있습니다.


.. 삶이란 자신을 망치는 것과 싸우는 일이다 // 망가지지 않기 위해 일을 한다 / 지상에서 남은 나날을 사랑하기 위해 / 외로움이 지나쳐 / 괴로움이 되는 모든 것 / 마음을 폐가로 만드는 모든 것과 싸운다 ..  (나의 싸움)


  하루가 지나 새 하루 찾아옵니다. 아이들은 날마다 새롭게 자랍니다. 아이들과 살아가는 어버이는 날마다 새로운 눈썰미를 키웁니다. 아이들 키와 몸은 날마다 자라고, 어버이 마음은 날마다 큽니다.


  아이들은 날마다 무럭무럭 자라기에, 나이를 하루 한 달 한 살 먹을 적마다 몸무게와 몸피가 늘어, 안거나 업기 살짝 벅차다고 느낍니다. 아이들을 안거나 업기 살짝 벅차다고 느낄 무렵, 아이들은 굳이 안기거나 업히지 않습니다. 스스로 두 다리에 힘을 주고 걷습니다. 스스로 두 발로 서서 씩씩하게 달립니다. 스스로 어깨를 펴고 바람을 맞습니다.


  까무잡잡하게 자라는 아이들 곁에 까무잡잡하게 일하는 어버이 있습니다. 땀흘리며 노는 아이들 옆에 땀흘리며 일하는 어버이 있습니다. 사랑스레 노래하는 아이들 둘레에 사랑스레 노래하는 어버이 있습니다.


.. 나의 시는 / 오르는 물가를 잠재우지 못하고 / 병든 자의 위로도 못 되고 / 뜨거운 희망을 일깨우는 망치소리도 못 되고 / 네 상처의 주름살도 지우지 못하고 / 그래, 아무 힘도 못 되지 // 그래도 날 여류시인이라 부르진 마 / 여류가 뭐야? 이쑤시개야, 악세사리야? / 여류는 화류란 말의 사촌 같으니 / 여자라는 울타리에 가두지 마 폄하하지 마 ..  (나의 시)


  사랑은 사랑을 낳습니다. 사랑은 미움이나 전쟁을 안 낳습니다. 미움은 미움을 낳고, 전쟁은 전쟁을 낳습니다. 미움이나 전쟁은 사랑을 안 낳습니다. 곧, 사랑을 누리는 아름다운 삶터 바란다면, 사랑을 생각하며 살아야지요. 사랑이 피어나는 나라와 정치와 경제와 교육과 문화를 바란다면, 다른 어느 곳보다 내 마음밭에 사랑 어린 씨앗을 심을 일입니다.


  평화가 평화를 낳습니다. 전쟁은 평화를 안 낳습니다. 전쟁무기는 전쟁무기와 전쟁을 낳지, 전쟁무기가 평화를 낳지 않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평화는 평화를 낳을 뿐, 평화는 전쟁이나 전쟁무기를 안 낳습니다. 평화를 바란다면, 평화로울 노릇이에요. 평화를 꿈꾼다면, 전쟁과 전쟁무기 모두 걷어치울 노릇이에요. 전쟁무기 잔뜩 쌓아 놓고서 ‘전쟁무기 있어야 평화를 지킨다’고 거짓말을 하지 말 일입니다.


  군대가 있는 나라에 평화란 없어요. 전쟁무기 사들이는 데에 어마어마하게 돈을 쓰는 나라에 평화도 문화도 예술도 삶도 없어요. 전쟁무기 엄청나게 갖추고 군대 커다랗게 꾸리는 나라에 꿈이나 사랑이나 이야기란 없어요.


.. 매일 파산만 하고 돌아온 아버지 / 다시 해를 가지러 떠났고 / 홀로 감자알 같은 자식을 다스리는 어머니 / 노을 지는 강이 되고 ..  (가족)


  스스로 생각해야 합니다. 먼먼 옛날부터 아이들이 즐긴 옛이야기는 ‘호미와 낫과 쟁기’로 흙을 만지던 여느 시골마을 여느 어머니와 아버지가 지었습니다. 옛이야기, 지식인들 한자말로 하자면 전래동화는, 시골에서 숲을 누리며 흙을 만지던 여느 사람들이 삶을 사랑하면서 지었습니다. 총이나 칼을 든 사람은 어느 누구도 옛이야기를 못 지었어요. 임금님이나 신하 가운데 옛이야기 지은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일하며 부르던 숱한 노래 또한 시골마을 여느 사람들이 지었어요. 모를 심으면서, 나락을 베면서, 곡식을 털면서, 지붕을 이으면서, 새끼를 꼬면서, 바느질을 하면서, 베틀을 밟으면서, 절구질을 하면서, 아기를 재우면서, 아이들이 저마다 놀면서, 노래와 이야기가 새록새록 태어납니다.


  컴퓨터 자판을 두들기는 자리에서는 노래나 이야기가 태어나지 않습니다. 삶을 누리는 자리에서 비로소 노래와 이야기가 태어나요. 즐겁게 일하고 신나게 노는 자리에서 노래와 이야기가 자라요. 아름답게 일하고 사랑스레 노는 자리에서 노래와 이야기가 빛나요.


.. 태백산맥을 고속도로를 타고 달렸다 / 날이 어두워지자 창밖의 / 산은 엄청난 호랑이였다 / 엎드려 잠든 호랑이 숨소리가 / 하늘을 흔들어 눈을 내리게 하고 / 도로를 흔들어 버스가 빨리 달리게 했다 / 너무 경이로워 나는 두려웠다 // 저 산이 있기 때문에 / 해가 뜨고 새가 우는 거야 / 저 산이 있기 때문에 밤하늘이 장엄하고 / 바다도 비로소 바다다워 보이지 ..  (저 산이 있기 때문에)


  신현림 님이 1996년에 내놓은 시집 《세기말 블루스》(창작과비평사)를 2013년 가을에 읽습니다. 2013년은 세기말도 뭣도 아니라 할 만한 때인데, 그러거나 말거나 즐겁게 《세기말 블루스》를 읽습니다. 아이들한테 밥을 차려 주면서 시를 읽습니다. 밥과 국이 보글보글 끓는 소리를 들으며 한 꼭지 읽습니다. 밥을 다 먹이고 설거지를 하기 앞서 손에 물기 없는 틈을 타서 한 꼭지 읽습니다. 두 아이 재우기 앞서 한 꼭지 읽고 불을 끕니다. 새벽에 먼동 트는 푸르스름한 빛을 느끼며 한 꼭지 읽습니다. 뒷간에 똥 누러 다녀오면서 마당에 서서 해바라기하면서 한 꼭지 읽습니다.


  차근차근 읽습니다. 차근차근 마음에 새깁니다. 산들산들 피어나는 이야기 한 자락 몽실몽실 느끼며 읽습니다.


.. 아이는 신문배달부 자전거를 미는 새벽의 힘이라구 / 아이 얼굴에서 하얀 성에가 번지는 창문이 보일 거야 ..  (우린 한때 미혼모가 되고 싶었다)


  신현림 님은 어떤 그대한테 어떤 사랑을 속삭이려는 마음으로 이 노래를 불렀을까 하고 헤아립니다. 1996년부터 열일곱 해 지난 요즈음, 신현림 님은 어떤 삶을 일굴 수 있으며, 어떤 노래를 부를 수 있는가 하고 돌아봅니다. 신현림 님은 이제 “신문배달부 자전거를 미는 새벽의 힘”을 날마다 누리면서 살아갈까요? 왜냐하면, 신현림 님은 이녁 딸아이하고 예쁘게 살아가니까요. 신현림 님 딸아이는 천천히 자라고 자라 앞으로 이녁 어머니가 쓴 〈우린 한때 미혼모가 되고 싶었다〉를 해사하게 웃음꽃 피우며 읽을 수 있을까요?


.. 이 남자 저 남자 아니어도 / 착한 목동의 손을 가진 남자와 지냈으면 ..  (꿈꾸는 누드)


  삶을 사랑하기에 노래를 부릅니다. 삶을 사랑하면서 노래를 남깁니다. 삶을 사랑하는 동안 노래가 흐릅니다. 삶을 사랑하는 마음씨가 어느새 뿌리를 내리고 줄기를 올려 어여쁜 꽃으로 거듭나다가는 새로운 ‘사랑씨’를 이 땅에 떨어뜨립니다.


  어제 낮 아이들과 읍내마실을 다녀오다가, 읍내 한쪽에서 구백 해 가까이 살아온 우람한 느티나무 옆에서 한참 놀았습니다. 우람한 느티나무 둘레에는 손가락보다 조그마한 어린 느티나무가 씩씩하게 자랍니다. 아스팔트 찻길에 떨어진 느티씨는 자동차 바퀴와 사람들 발길에 밟혀 터지고 깨지며 짜부라집니다. 가까스로 흙땅을 찾아 떨어진 느티씨는 제힘으로 씩씩하게 뿌리를 내려 잎사귀 내놓습니다.


  구백 살 즈음 되는 우람한 느티나무도 맨 처음에는 아주 조그마한 씨앗 한 톨에서 비롯했겠지요. 어미 느티나무가 내놓은 조그마한 씨앗 한 톨로 톡 떨어져 뿌리를 내리면서 푸른 꿈을 꾸었겠지요.


.. 혁명이 일어나면 / 그들 설움이 뒤집어질까 / 사라질까 바다안개로 무너질까 ..  (사랑다운 사랑을)


  나무 한 그루는 혁명이요 사랑입니다. 풀 한 포기는 혁명이자 사랑입니다. 아이들은 혁명이면서 사랑이에요. 곧, 어른인 우리들 누구나 혁명인 한편 사랑입니다. 왜냐하면, 어른인 우리들 누구나 어머니와 아버지 사랑으로 태어난 아름다운 숨결이니까요.


  삶을 빛내면 언제나 혁명입니다. 삶을 밝히면 언제나 사랑입니다. 정치나 법으로는 혁명도 사랑도 이루지 못합니다. 경제나 교육으로는 혁명이나 사랑하고 가까이 다가서지 못합니다. 문화나 예술은 혁명하고 사랑을 사귀지 않습니다.


  오직 삶일 때에 혁명이면서 사랑입니다. 나무 한 그루로, 풀 한 포기로, 아이들 웃음꽃 하나로 혁명을 이루고 사랑을 맺습니다. 따사로운 이야기와 너그러운 춤사위를 싯노래 한 가락으로 만납니다. 4346.9.8.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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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09-08 07:51   좋아요 0 | URL
오래전에 저도 이 <세기말 블루스>를 즐겁게 읽었는데,
오늘 또 함께살기님의 아름다운 느낌글과 함께 만나니 더욱 좋습니다.
신현림님의 시와 함께살기님의 글로 하루를 여는 좋은 일요일 아침입니다~*^^*

숲노래 2013-09-08 10:15   좋아요 0 | URL
두고두고 되새겨 읽으며
새로운 이야기를 얻는구나 하고 생각해요.

앞으로 신현림 님이 '할머니'가 될 무렵
이 시집을 다시 꺼내어 읽으면
또 그 맛은 새로우리라 느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