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 있는 자리
똑같은 책인데, 도서관에 있으면 ‘도서관 장서’라는 이름이 붙는다. 새책방에 있으면 조금 헐거나 다쳤어도 그냥 ‘새책’이라는 이름이 붙는다. 헌책방에 있으면 아무 때를 안 탄 빳빳한 새 것이라 하더라도 ‘헌책’이라는 이름이 붙는다. 도서관에 있던 책이건, 새책방에 들어온 지 며칠 안 된 책이건, 헌책방에서 오래 묵은 책이건, 이 책들이 고물상으로 가서 있으면 ‘고물’이 된다. 폐지수집상이나 폐지처리장에 가는 책이라면 ‘폐지’가 된다. 이 책을 누군가 건사해서 집에 들이면 ‘개인 소장 자료’나 ‘서재 장서’가 되겠지.
어느 자리에 있건 모두 같은 책이다. 도서관에 있기에 더 돋보일 까닭 없고, 이름난 학자가 읽어서 서재에 두었으니 더 훌륭할 까닭 없다. 철거를 앞둔 골목집 한쪽에 놓인 책이라면 건축쓰레기와 함께 버려지는 종이쓰레기라고 할 수 있을까? 아니다. 언제나, 어느 자리에서나, 책은 그예 책이다.
그렇지만, 책은 늘 다른 자리에 놓인다. 똑같이 태어난 책 2천 권이나 2만 권이라 하더라도 2천 가지 삶터로 흩어지고, 2만 가지 살림터로 갈린다. 어느 책은 대통령 옆에 놓일 테고, 어느 책은 치과 손님방에 놓일 테며, 어느 책은 북카페 책상에 놓일 테지. 어느 책은 닳고 닳도록 읽힐 테고, 어느 책은 손때 한 번 안 탈 테며, 어느 책은 시골마을 흙이 묻을 테지.
저마다 다른 사람이 읽기에, 책이 있는 자리는 삶이 있는 자리가 된다. 사람들이 저마다 다른 삶을 일구는 자리에 다 다른 책이 깃들면서, 다 다른 이야기를 끌어낸다. 다 다른 이야기는 다 다른 사랑이 된다. 다 다른 사랑은 다 다른 빛이 되고, 다 다른 꿈으로 다시 태어날까. 헌책방 한쪽 무너진 책시렁에 얹힌 책들은 앞으로 어떻게 될까. 4346.7.2.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책 언저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