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발 하라리 ‘인류 3부작’ 밀리언 스페셜 에디션 - 전3권 인류 3부작 시리즈
유발 하라리 지음, 조현욱.김명주.전병근 옮김 / 김영사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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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고갱 - <우리는 어디에서 왔고? , 우리는 무엇인가? ,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Where Do We Come From? What Are We? Where Are We Going?>

 

 

 

* 우리(호모 사피엔스)는 어떻게 여기까지 왔을까?  

 

 

 

 

 



 



 

만일 누군가, 나에게 인간(호모 사피엔스)이란 어떻게 이 세상에 살게 되었으며 왜 우리 지구 상에는 이렇게나 많은 인간이 존재하고 있는지에 대해 설명하라면 아마 이렇게 답할 것이다.

 

아주 옛날 언젠가 침팬지를 사촌으로 둔 여러 인류의 조상 가운데 지능과 살아가는 능력이 가장 뛰어난 한 종이 군집을 이루어 살게 되면서 현재 우리 인류가 세상에 살게 되었다. 그들은 신체적으로는 동물에 떨어졌으나 도구를 사용하고 서로 언어와 문자로 연합하여 그들의 특별한 능력으로 지구의 주인이 되었고, 이렇게 많은 사람이 살게 되었다.”라고.

 

적어놓고 보니 참으로 두루뭉술하고 하나마나 한 말이다. 시간을 더 들여 뭐 이런저런 책을 참고해서 이것보다 더 많은 단어를 넣어 말할 수 있겠지만 그다지 특별하지도 어떤 통찰이 있는 답변도 내놓지 못하고 말 것이라 스스로 확신할 수 있다.

 

책을 읽고 많은 생각을 해 보았지만 나는 이 책의 내용에 대해서는 그다지 덧붙일 말이 별로 없는 것 같다. 저자가 풀어내는 호모 사피엔스라는 종의 기원과 발전의 역사, 그 작고 보잘것없는 종이 이 세계를 어떻게 정복해 나갔는지에 대한 설명에 대해 그저 고개를 끄덕이는 정도에 불과한 자신을 본다.

 

그렇다면 과연 당신의 답은 어떠한가? 인간은 어떻게 이 지구 상에 나타났으며 현재 어떻게 이 지구의 주인이 되었으며 인간이 그렇게 될 수 있었던 까닭은 무엇인가? 과연 나는 어떤 대답을 들을 수 있을지 조금 많이 궁금하다. 대학에서 인류를 연구하는 학자들이야 당연히 상세한 예를 들어 길고도 유창하게 자신만의 관점에서 답을 할 수 있겠지만 아마 보통의 사람이라면 그리 길지 않을 것 같다. 아침에 눈 떠서 일터에 나가고 휴대폰에 나오는 뉴스를 보고 퇴근하고 저녁을 먹는 평범한 일상에서 그런 질문에 답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게 느껴질지도.

 

이상하게도 한 해 살아가는 날이 늘어가면서 우리는 어떻게 이 지구라는 행성에 살게 되었으며 어떻게 이렇게 모여서 살게 되었는지, 우리 주위의 많은 사물과 여러 사회적인 관계는 어떻게 이루어지게 되었는지 궁금해진다. 점점 이런 생각들이 늘어나는 것은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내가 죽어가고 있다는 것을 더 많이 자각하게 되었거나 행복이나 어떤 삶의 의미 같은 형이상학적인 질문을 던지게 되어서 그런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 책은 우리 인류가 현재 이렇게 살고 있는지에 대해 유발 노아 하라리(Yuval Noah Harari)라는 이스라엘 역사학자에게 질문을 던졌을 때 그의 대답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는 인류 역사를 거시적 관점에서 조망하며 서술한다. 인지 혁명 농업혁명 과학혁명이라는 큰 틀에서 호모 사피엔스가 무엇을 했고, 어떤 관점을 지녔으며, 어떤 방향으로 나가고 있는지 서술하면서 그 큰 세 축을 움직이는 톱니들이 무엇인지 다양한 사례들을 제시하고 그 축과 톱니들이 어떤 작용을 했는지, 그 작용에 따라 호모 사피엔스가 지금까지 살아온 모습을 구체화하여 들려주고 있다.

 

인지 혁명(허구를 만들어내고 집단적으로 상상하며 이로 인해 얻어진 유연한 협력) 농업혁명(수렵에서 농경으로 전화하여 보다 대규모적으로 군집을 이루고 이를 보다 체계화할 상상의 질서를 만들고 문자 체계를 고안한 것) 과학혁명(무지의 인정과 우리 도처에서 무수히 발견할 수 있는 과학적 발견을 통해 우리가 끊임없이 진보할 것이라는 믿음)이라는 큰 주제 안에서 흐르는 다양한 역사적 사실과 그 의미를, 역사학(중세 전쟁사)을 전공한 학자답게 그에 맞는 사례 제시와 그 사건들이 가져온 의미와 영향들에 대해 설득력 있는 흐름을 보여주고 있으며 여기에 덧붙여진 그의 글을 매끄럽게 쓰는 능력(비교, 대조, 당연하게 여길 만한 사고에 대한 보기 좋은 반박)은 이 책이 꽤나 많은 페이지를 갖고 있다는 사실을 잊게 한다. 아마도 이렇게 마무리하면 내가 이 책에 대해 느낀 첫인상은 "매우 좋다."라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사피엔스>의 마지막 문단을 읽은 후 꽤 오랜 후에 다시 이 책을 떠올리면서 문득 내가 어떻게 읽게 되었으며 처음 이 책을 읽었을 때의 느낌을 떠올려보게 되었는데, 이상하게도 책을 읽고 난 후에도 그리 많은 감정을 느낄 수 없었다. 그냥 술술 읽히는 책에서 어떤 특별함을 발견하기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고작 사피엔스라는 종이 다른 동물과의 생존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이, 신뢰와 상호협력에 의한 유연성, 어떤 물질적인 것이 존재하지 않아도 그렇게 생각할 수 있는 이야기에 의한 상상이라는 것 정도. 그리고 조금 더 보태면 조금 의아하고 빈약한 결론처럼 느껴지는 미래에 대한 대비의 필요성.

 

그렇다면 과연 내가 처음 특별한 인상을 받지 못했던 까닭은 무엇일까? 그 원인은 아이러니하게도 이 책의 장점과 통한다. 이 책의 장점은 자신의 주장을 펼치는 데 있어 사용한 다양한 사례의 제시와 그 설명의 다각적 균형에 있다고 생각한다. 인류가 어떻게 그 나약함을 벗었으며 그 이후 함께 살기 시작하면서 어떻게 문명을 이루었고 그 문명 간의 차이점은 무엇이었으며 그 차이점으로 인해 어떤 결과를 가져왔고 현재 어떤 흐름으로 이어져 있는가 하는 점에 대해 검토할 수 있는 많은 면을 광범위하게 다루고 있다. 정치, 경제, 전쟁과 같은 역사적 관점에서, 사피엔스라는 종의 유전자적 관점에서, 과학혁명이라는 관점에서 다양한 시점에서 살펴봄으로써 우리가 우리 스스로에 대해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을 주고 있으며 분명 꽤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지금 나의 책상에는 다시 구입한 똑같은 책이 놓여 있는데 다시 구입하게 된 책 얘기를 더 하기 전, 잠시 내가 그간 인류의 역사 혹은 호모 사피엔스라는 종의 이해라는 점에서 읽었던 책을 몇 개 꺼내봐야겠다.

 

 





  



우선 이 책부터 살펴봐야 할 것 같은데 제레드 다이아몬드는 인류의 문명이 시작과 현재에서 어떻게 차이를 이루는지그 원인이 어디에서 시작하고 왜 그렇게 되었는지에 대한 의문에서 시작한다인류의 역사와 그 발전에 대해 서술하는데 광범위한 인류 문명의 충돌 혹은 접촉에서 어떤 문명이 우위에 서게 되었는지 매우 설득력 있게 풀어놓은 역작으로 그 문제에 대해 접근하는 방식과 그 흐름에 대한 통찰로 이루어져 있다어딘가의 설명에 의하면 유발 하라리는 제레드 다이아몬드의 영향을 받았다고 하는데 내 생각에는 다양하고보편적이며 특이한 상황의 예들에서 모두를 아우를 수 있는 원칙을 도출하고 그에 대한 해답을 제시하는 과정과 그 모습이 특히 그렇게 보인다.  









내가 앞으로 살면서 미셀 푸코의 <광기의 역사>에서 받은 충격을 능가하는 책을 다시 만날까 싶은데 서구의 역사를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역사로 보는 시선에서 벗어나 이성주의에서 숨죽일 수밖에 없었던 수많은 개별적 존재에 대한 배척과 억압의 역사로 보고 우리가 당연하다고 여겼던 이성과 비이성의 경계에 대한 생각을 따져보게 하는 책이다특이하게도 이 책은 푸코의 시각에서 서양의 역사를 재해석하며 돌아보는매우 주관적인 의견을 담고 있는 책이지만 그 확고한 시각이 오히려 너무나 보편적으로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책이기도 하다또한 과거의 예시에서 미래의 해야 할 것을 반영하는 책이라고도 볼 수 있겠다.







  


<살육과 문명>이라는 책은 서구의 우월적인 측면에서 사례를 뽑고 그 인과관계를 서술하여 비판을 받는 책이다. 그간 동양과 서양의 무력 충돌에서 왜 동양이 패배하게 되었는지 저자가 뽑은 결정적 전투를 예를 들어 설명하고 있다.

 



 


 

 

매트 리들리의 <붉은 여왕>은 인류의 역사에서 우리가 합리적이라고 믿었던, 혹은 이성적이라고 믿었던 수많은 선택과 현재의 결과물들이 과연 그러한가에 대한 반론에서 시작한 책이다. 남녀라는 서로 다른 성에서 과연 그들은 무엇을 하게 되었는지 어떤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현재에 이르게 되었는지에 대해 꽤나 많은 사례들을 제시하며 우리를 설득하고 있다.






 

제임스 프레이저의 <황금가지>는 세계 곳곳에 퍼져 있는 다양한 신화들을 분석하고 그것들이 어떤 유사와 차이를 지니고 있는지, 그리고 그 기저에 어떤 속성이 있는지 분석하면서 다양한 문화권에서 등장하는 종교들이 어떻게 신화와 관련을 갖게 되는지 끝도 없이 서술하고 있다.







 

출간 후 엄청난 반향을 일으킨 책 토마스 쿤의 <과학 혁명의 구조> 이는 지금도 아마 "과학"이라는 학문의 이름과는 걸맞지 않을 것 같은 주장을 담은 책. 그가 말하는 어떤 과학적 혁명은 여러 사례들의 누적이 아닌, 어떤 한 사람의 놀라운, 비정상적인 발견 혹은 통찰에 따른 것이라고 말하며 이런 당시의 시대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을 것 같은 법칙이 먼저 등장하고 이 비정상적인 법칙에 대해 예시를 수집하는 방향으로 흐른다는 것이다. 우리가 어떤 것을 보고, 어떤 것을 누적시켜 법칙으로 정립하는 가는 그 시대에 통용되는 어떤 공통된 의식의 흐름, 패러다임에 의한 것이지 결코 그 자체가 진실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이다. 


 


* *




내가 <사피엔스>를 읽으면서 왜 이런 책들을 떠올렸을까? 왜 굳이 이런 책들을 소개해야 할까? 내가 제시한 이 책들의 공통점은 어떤 하나의 뚜렷한 주제가 있었고 그 주제가 매우 도발적이었으며 주제를 서술하는 관점이 매우 흥미로웠다는 데 있다. 아직도 나는 이 책들을 읽을 때 느껴지던 흥분을 잊을 수 없으며 비록 이 책들의 세부적인 내용은 모두 잊었을지라도 이 책의 저자가 보았던 관점의 눈으로 어느 정도는 세상을 바라보고 있을 것이고 이 책들이 주는 어떤 인상에 의해 역사를 바라보거나 인류를 바라보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또한 언젠가 수정하고 보다 세밀하게 따져보아야 할 일이기도 하지만, 나는 <사피엔스>를 읽으면서 이 책들의 잔상이 조금씩 겹쳐지는 것을 보았다.

 


아무튼 아마도 나는 이 책에서 보다 극적인 요소가 들어 있는 드라마와 꽤 사실적인 서사의 흐름의 연속인 다큐 사이에서, 나는 호모 사피엔스가 과거 그 춥고 어두운 동굴에서 극적으로 현재의 모습으로 탈바꿈하는 어떤 영화 같은 스토리를 은연중에 기대했는지도 모르겠다. 슈테판 츠바이크의 <광기와 우연의 역사>의 그 아주 짧은 순간의 명암처럼 말이다. <사피엔스>는 뛰어난 책이라는 것에는 동의하지만 다시는 볼 것 같지 않은 책. 그렇게 해서 이 책은 중고 책으로 팔려나갔다.

 

. 그러면 나는 왜 다시 <사피엔스>를 구입하였을까? 어떤 모임에 참여하기 위한 표면적 이유가 있지만 그를 넘는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째, 이 책은 위에 간략히 서술한, 내가 떠올린 책들보다 지적 통찰에서, 문장의 수준에서 탁월하지 않을지 모르겠지만 이 책이 지니고 있는 큰 장점인 정치, 경제, 전쟁과 같은 역사적 관점에서, 사피엔스라는 종의 유전자적 관점에서, 과학혁명이라는 관점에서 현재 우리(호모 사피엔스)가 도착한 지점에 대해 잘 알려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둘째, 이 이유가 더 중요한데 우리가 도착한 지점이란 무엇이며 어디에 서 있는가 하는 질문에 대한 답과 앞으로 우리는 어디로 갈 것인가에 대한 방향을 잘 알려줄 것 같은 생각에서였다.

 


책을 읽으면서 유발 하라리가 <사피엔스>에서 500페이지 넘게 호모 사피엔스의 여정을 얘기하다가 갑자기 서둘러 마무리하는 느낌을 받았다. 왜인지 그가 말하는 어떤 긴 설명의 일부분 같다는 생각을 했고, 그 때문에 조금 실망하기도 했다. 이 점은 아마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지 않을까 싶기도 한데, 잔뜩 풍선을 불기 위해 바람을 불다 갑자기 멈춘 느낌이었다.

 

오랜만에 다시 책을 구입한 지금, 왜 그런 느낌을 받았는지 조금은 알 것 같다. <사피엔스><호모 데우스>,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 으로 이어지는 이야기의 출발점이며 과거부터 미래로 이어지는 계단의 일부라고도 할 수 있기에 그 이후 그가 하고 싶었던 말을 더 들어봐야 한다. 따라서 그가 <사피엔스> 이후에 쓴 책을 함께 살펴보는 것이 아마도 이 책을, 이 책의 성격을 보다 잘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다.

 

 



* * *



 


앙리 마티스 <춤>

<La dance>

 

 








 

* 우리(호모 사피엔스)는 앞으로 어디로 가게 될까?

 

 

 

 

 


 

 

 

 

유발 하라리는 이 책의 서문에서 이렇게 말하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사피엔스>에서 나는 인간이 가진 신, 인권, 국가 또는 돈에 대한 집단신화를 믿는 독특한 능력 덕분에 이 행성을 정복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호모 데우스>에서는. 우리의 오래된 신화들이 혁명적인 신기술과 짝을 이루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검토할 것이다. (서문, p.6)

 

책을 읽기 전, 그의 전작 <사피엔스>를 읽고 어렴풋하게나마 결론 내린, 그가 말하는 의도와 핵심주제를 떠올려보아야겠다. 간략히 하자면 두 가지다. 첫째는 인류의 역사는 보다 나아질 가능성을 탐색하며 점진적으로 변화하고 있는데(경제적, 사회시스템적으로 나아지는 것처럼 보이는데) 과연 앞으로 이것을 유지하면서 더 발전할 것인가에 대한 것이고 둘째는 이런 발전이 개인과 타인 그리고 우리 사회의 행복에 어떤 영향을 주는가에 대해 말하고 있다. 다소 모호한 개념인 행복에 다가선다는 것은 쉽지 않다는 첨언과 함께.

 

그가 <사피엔스>에서 진단하는 미래는 분명 인류(호모 사피엔스)에게는 위기 상황이다. 이 상황을 함께 해결하지 못하면 인류는 스스로 만들어낸 것들에 의해 다양한 방법으로 멸종하게 될지 모른다고 경고했다. 먼 훗날 스스로 신이 되려는 인간. 생물학적인 한계를 극복하고 스스로 개체로서 영원불멸을 꿈꾸고 결국 그것을 해내고 말겠지만 그 결론에 인류는 무엇이 되어 도착할 것이며 그 곳에 도달할 인류가 소수가 되어 우리가 끊임없이 걱정했던 디스토피아로 향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걱정을 한다.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를 읽고 난 후 20년도 더 지난 애니메이션 공각기동대(Ghost in the shell)를 떠올렸고, 더 정확하게는 그 이후에 나온, innocence(2004)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런 앞날의 걱정을 하면서 인류의 미래를 예측해보기 위해 인류의 역사와 함께 했던 종교와 과학, 죽음과 행복에 대한 주제로 미래를 조심스레 살펴보고 있다.

 

유발 하라리는 <사피엔스>에서 인지혁명-농업혁명-과학혁명이라는 큰 축으로 우리 인류가 지금까지 걸어온 여정을 크게 조망하여 살펴보았는데 <호모 데우스>에서 다시 한 번 인류가 살아온 길을 세밀히 살펴 그들의 특질과 그들이 살아가면서 어떤 것을 추구하였는지 살펴본다. 그리고 앞으로 그들은 무엇을 할 것이며 그런 결과가 어떻게 흘러갈 것인가를 그려보려 하고 있다. 이를 위해 유발 하라리는 이야기를 총 3부로 나누었다.

 

 

1부에서는 인류와 다른 종의 비교와 인류가 이 지구 내에서 다른 동물들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에 대해 살펴보고, 2부에서는 인류가 만든 세계는 무엇이며 현재 우리의 세계관을 지탱하고 있는 종교의 정체를 파헤치고 인본주의가 가져온 변화와 특징에 대해 얘기한다. 마지막 3부에서는 인류는 앞으로 어떻게 세계에 의미를 부여하며 살 수 있을지, 우리가 지구의 주인이 된 세계에서 다시 밀려나게 될 위협이 될 수 있는 생명공학이라는 거대한 흐름은 무엇이며 어떤 방향을 갖게 될지, 계속 성장하는 경제라는 전제를 토대로 한 자유주의의 위기는 어떻게 올 것인지 진단하며 얘기한다.

 


그는 <호모 데우스>를 쓰면서 다음과 같은 기준과 기본 뼈대를 세웠다.

 

21세기 인류가 불멸, 행복, 신성을 추구할 거라는 예측에 많은 사람이 분노, 소외감, 두려움을 느낄 것이다. 그러니 몇 가지 사항을 명확히 해두는 게 좋겠다.

 

첫째, 이런 일들은 21세기에 개인들이 실제로 할 일이 아니라, 인류가 집단적으로 할 일이다.

 

둘째, 이것은 역사에 대한 예측이지 정치적 선언이 아니다.

 

셋째, 추구하는 것과 획득하는 것은 다르다.

 

넷째, 이 책의 예측은 예언이라기보다 현재 우리 앞에 놓인 선택들에 대해 논의하는 한 가지 방식이라는 것이다. - p. 86

 

 

역사 공부의 목표는 과거라는 손아귀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머리를 이쪽저쪽으로 돌려, 조상들이 상상할 수 없었거나 우리가 상상하기를 원치 않았던 가능성을 알아차릴 수 있다. - p. 92

 

이 모든 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시간을 되짚어 호모 사피엔스가 누구이고, 인본주의는 어떻게 세계를 지배하는 종교가 되었으며, 왜 인본주의의 꿈을 이루려는 시도가 그 꿈을 해체할 수 있는지 조사할 필요가 있다. 바로 이것이 이 책의 기본 얼개이다. - p. 101

 

 

얼핏 보면 지난날 인류는 많은 과오를 저지르면서 살아남았고 이제 영원히 살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는 점에서 영원불멸의 신의 권능을 갖게 되는 문 앞에 서 있다는 점에서 유토피아의 결말이라고 볼 수 있겠지만 조금만 깊게 살펴보면 살아남기 위해 인류 이외의 다른 생명체를 철저히 배제해왔고 앞으로 멈출 수 없는 경제적 성장의 가속화와 부의 집중화로 인해 인류의 계급이 또 다시 나뉠 것이며 비유기체와의 합성을 통해 불멸이 되려는 인류의 욕심에 의한 멸망이라는 결론이라는 점에서는 디스토피아의 세계를 그리고 있다고 보인다.

 







어쩌면 우리는 영화 프로메테우스에서 <엔지니어>라 부르는 오래 전 조상처럼 살아갈지도 모른다.

 

 



* * * * 




처음 이 책을 읽을 때 유발 하라리가 하는 얘기에 고개를 계속 끄덕이면서도 마음 한편에는 의문이 하나 들었다. 그가 과연 유토피아를 향하여 말하고 있는지, 디스토피아를 향하여 말하고 있는지. 이상하게도 분명 그가 예를 든 사례들이나 방향은 디스토피아에 가까운데 텍스트에는 왠지 모를 희망적인 느낌이 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다시 읽으면서 하나 확신한 것은 그는 어쨌든 인류가 더 나은 방법을 찾을 것이며 또 그럴 능력을 지니고 있고, 앞으로 우리가 진지하게 논의하고 노력하면 충분히 새로운 국면에 접어든 드라마를 나쁜 방향으로만 쓰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유발 하라리가 높은 곳에서 바라본 인류의 여정에서 개별적 존재들은 매우 이기적이고, 변덕스럽고, 탐욕스러움을 지닌 것으로 보였을 것 같다. 이런 이기적이고 탐욕스러움 때문에 그들은 앞으로 다가올 과학혁명과 생명공학으로 인해 불행한 최후를 맞이할 운명처럼 보이기도 했을 것이다. 하지만 인류(호모 사피엔스)를 깊게 탐구하면서 그들의 특징을 자세히 살펴보면서 어떤 희망의 지점을 찾게 되었고 그는 우리에게 더 늦기 전, 함께 그 희망의 지점에 다다를 수 있는 지점에 대해 논의해보자고 말한다.

 

분명 그는 이 책에서 인류가 만든 생명공학으로 인해 우리의 근본적 믿음과 사회의 결속 장치인 종교가 해체할 것이고 그간 자유주의를 지탱해온 인본주의의 세계관을 파괴할 것이며 데이터의 흐름과 알고리즘이 그것을 만든 인류를 결국 하등동물로, 그리고 멸종시킬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유발 하라리는 이런 절망적인 전망에 우리를 동참하게 하고 그저 세상의 흐름에 휩쓸려가는 자신의 모습을 보며 모두 불확실하고 위기의 앞날을 고민해 보자는 강한 어조의 제안으로 책을 마무리 한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자. <인류 3부작>을 읽으며 유난히 생각나는 그림이 둘 있다. 고갱의 그림과 마티스의 그림. 고갱의 그림이 과거-현재-미래를 조망하는 그림이라면 마티스의 그림은 현재에 집중하는 만드는 그림이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고갱의 그림은 <사피엔스><호모 데우스>를 연상하게 하고, 마티스의 그림은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를 연상하게 한다.

 


 


 

 

지구의 주인공이 된 호모 사피엔스를 주인공으로 한 책 <사피엔스>2011년에 나왔고 <호모 데우스>2015년에 나왔다. 제목이 말해주듯 생명공학으로 불멸의 존재가 되어가려는 인류에 대한 불안한 시선으로 바라본 시점이 문장 곳곳에 스며들어 있는 책. 어쩌면 <호모 데우스>만을 읽은 사람이라면 유발 하라리가 이 책을 쓴 까닭에 대한 의도에 대한 나의 관점에 동의하지 않을지 모르겠다. 그는 2018년에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 이라는 책을 내놓았고 나는 그 책을 읽고 이런 관점을 하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유발 하라리가 앞으로 또 어떤 전망을 담은 책을 내 놓을지 모르겠지만 그의 책은 광범위한 분야에서 매우 다양한 논의를 가져올 것이고 또 그에 따른 무수한 의미가 만들어질 것이며 세상은 조금씩 수정이 이루어질지도 모른다.





* * * * * 




<사피엔스>, <호모 데우스>,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은 모두 합하면 1500페이지가 넘는다이 책이 다양한 분야를 넘나들며 인류의 여정을 살펴보는 과정은 마치 추리소설을 읽는 듯한 이야기 같이 느껴지며 앞으로 벌어질 일들을 설명하는 모습은 촘촘한 그물로 짜여진 시나리오를 품고 있는 SF 영화를 보는 것 같은 재미를 준다.

 








<사피엔스> 안쪽에 써있는 문장. "From one Sapiens to another."


나는 여기에 단어를 새로 덧붙여 문장을 다시 만들어보고자 한다. "한 사피엔스가 또 다른 사피엔스에게" 전하는 이야기. 나의 다음 세대, 그리고 그 다음 세대가 어떤 모습을 하고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인류에 대한 이야기를 전할지 궁금하게 하는 문장.


유발 하라리는 긴 이야기를 썼고,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은 그 이야기가 궁금했고, 읽고 상상하고 함께 얘기를 나눈다. 인류가 늘 그래왔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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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9-09-11 04: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유토피아 디스토피아 라는 개념 역시 인간이 만들어놓은 개념이고 보면 그 구분이 과연 있기나 한가, 저는 그런 생각도 해보았답니다.
<황금가지>는 오래전부터 저희 집 책꽂이에 꽂혀서 읽어달라고 애원하고 있는 책이랍니다 ㅠㅠ 감히 엄두를 못내고 있어요.

Nussbaum 2019-09-11 09:11   좋아요 0 | URL
방금 제가 hnine님 페이퍼에 남긴 댓글에 답해주신 내용을 보고 왔습니다. <사피엔스>, <호모 데우스> 모두를 읽으셔서 아마도 저랑 비슷한 생각을 하셨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떤 생각의 공통된 띠가 있을 듯 싶네요.

말씀하신 것처럼 앞으로 펼쳐질 세계는 우리가 그동안 인본주의 패러다임에서 만들어 놓은 다양한 가치와 개념들 모두를 바꾸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유토피아, 디스토피아 또한 모두 너무나도 인류 중심으로 만들어놓은 개념이기에 또 다른 용어로 바뀔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3부작을 읽고 <사피엔스>에서 느낀 부족함을 많이 채울 수 있었는데 유발 하라리가 펼쳐놓은 그간의 인류의 여정과, 앞으로의 계획은 매우 많은 분야를 포괄한다는 점에서 꽤 오랫동안 많은 사람들이 참고할만한 이야기가 될 것 같습니다.

<황금가지> 참 흥미로운 책인데, 두께가 만만치 않은 ㅎ 저는 저 책을 떠올리면서 어릴 때 한참 신화에 빠져살던 때를 그리워했지요.

아직 날이 덥고 습합니다. 그래도 곧 올 가을 준비 잘 하셔요 ^^

2019-09-11 10: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9-11 12: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9-11 13: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9, 길을 가다 잠시 멈춰 서서 본 어느 풍경

어느 기억이 있고 이어진 긴 생각이 있었던 어떤 밤

잠시 멈춤, 그리고 짧은 낮 잠깐

 

그것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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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랑의 엘레지

 

- 비스와바  쉼로브르스카

 

 

모든 것이 내 것이지만, 내 소유는 아니다.

바라보고 있는 동안은 내 것이지만,

기억으로 붙들어 완전한 내 소유로 만들 순 없다.

 

가까스로 떠오른 불완전한 기억,

깊은 땅속에서 애써 끄집어낸,

몸통과 머리를 잘못 맞춘 오래된 여신의 조각상처럼.

 

사모코브에 내리는 비는

멈출 줄 모른다.

 

파리의 정경은

루브르에서 내 손가락이 가리키는 지점까지

가물가물 희미하게 사라져간다.

 

생마르탱의 가로수 길,

그곳의 계단은 갈수록 페이드 아웃.

 

내 기억 속에서 '다리의 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는

고작 다리 한 개와 반쯤 남은 또 다른 다리의 영상.

 

가여운 웁살라에는

무너진 대성당의 잔해.

 

소피아에는 얼굴 없이 몸통만 남은

가여운 무희가 있다.

 

떨어져 나온 얼굴에는 눈이 없고,

떨어져 나온 눈에는 동공이 없다.

결국 떨어져 나온 동공은 고양이의 몫.

 

새롭게 재건된 협곡 위에서

카프카스의 독수리가 날고 있다.

태양의 황금빛은 전혀 사실적이지 않고,

바위는 엉터리 모조품에 불과하다.

 

모든 것이 내 것이지만, 실은 잠시 동안 통째로 빌려온 것이다.

바라보고 있는 동안은 내 것이지만,

기억을 붙들어 완전한 내 소유로 만들 순 없다

 

더 이상 재생도, 복원도 불가능하다.

미세한 섬유질이나 모래알,

물방울이 만들어낸 세밀한 풍경일수록 더한 법.

 

작별을 내포한 환영의 인사는

단 한 번의 눈짓으로 족하다.

 

과잉이건 결핍이건 간에

그저 고개 한번 까닥이면 그만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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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9-08-28 20: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저 이 곡 정말 정말 좋아하는 곡이랍니다.
단, 자주 안들으려고 하는 곡이기도 해요. 마음을 천근 만근 아래로 무너뜨려서요.
아껴서 듣는 곡을 지금 듣고 있습니다.
저 그림은 물론 Nussbaum님이 그리셨을텐데 그림 사이즈가 얼마나 될까요?
정말 멋집니다. 채색 안한것도 그대로 좋고, 파랑과 노랑이 들어간 위의 그림도 좋고요.
쉼보르스카 시 속에 등장하는 도시가 도대체 몇개인가 헤아려봅니다.
상트 페테르부르그에도 다리가 많은가봐요. 저 이번에 다녀온 피츠버그도 다리의 도시라고 불린다던데요.

Nussbaum 2019-08-28 21:35   좋아요 0 | URL
엊그제, 어제 퇴근 후에 그림 그리면서 꽤 많은 음악을 들었는데 하나같이 이 그림의 느낌을 대변하는 음악이 없어서 놀랐습니다. 쉼보르스카의 시는 제가 이 밤풍경을 봤을 때랑 맞아 떨어졌는데 음악을 뭘로 할지 고민하다 결국 이 음악까지 오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음. 이 그림은 도화지 8절에 그렸으니 대략 35x26 센티미터 정도 될까 합니다.

익숙하다고 생각했던 길을 걷다 문득 발견한 풍경. 수채로 그리려다 펜화로 마무리했네요. 마무리하니 펜과 마카로 그린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조금은 차분한 느낌이었고, 어딘가 어둡지만 조금은 밝은 그런 느낌이어서 말이지요. 코팅해서 어딘가 걸어두고 계속 보고 있는데 여전히 늘, 아쉬움이 남지만 그래도 제가 본 풍경의 느낌과 꽤나 일치해서 다행이네요.

얼마 전 가죽으로 된, 꽤 비싼 여권지갑을 구매했습니다. hnine님 여행하신 밤 사진을 보면서 조금은 시간이 걸릴지 모르겠지만 조만간 떠나게 될 어느 곳의 밤풍경을 기대해 봅니다.

그 때는 쉼보르스카와 hnine님의 댓글을 기억하면서 뭔가를 눈에 담겠지요.




그나저나 댓글쓰다 밖에 잠깐 나갔다 왔는데 바람이 참 시원합니다.
이제 가을이라고 불러도 되겠지요? ㅎ

blanca 2019-08-29 08: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Nussbaum님 그림이 나날이 더 좋아지네요. 깊이도 넓이도 다요. 쉼보르스카 시와도 잘 어우러집니다. 가을이 오려고 하니 이렇게 또 한 해가 가는가 싶어 마음이 좀 그렇네요.

Nussbaum 2019-08-29 12:58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blanca님 !

이렇게 마실다니는 것처럼 뵙네요. 이젠 밤도 낮도 바람도 햇빛도 다 가을이라는 걸 증명하고 있어서 굳이 가을이라는 말을 꺼내지 않아도 되겠다 생각이 듭니다. 아마 조금 빨리 올 해 나머지가 지나겠지요.

요새 사진기를 하나 사서 그 사진을 보니 디테일도 색감도 좀 더 자세히 볼 수 있어서 좋으네요. 그림은 매일 그리면 참 좋을텐데 그러질 못해서 아쉽기도 합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조금 나아졌다면 아마 디테일이 더 담긴 사진(또는 눈)이 있고 뭐라도 그려보려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며칠 어제 올린 사진하고, 그림, 시가 계속 생각나 무한 반복중입니다.

애써 서로 잘 어울린다고 합리화 중일지도 모르겠어요 ^^
 
[세트] 미술 철학사 1~3 세트 - 전3권 미술 철학사
이광래 지음 / 미메시스 / 2016년 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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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때 국내에 나온 많은 미술관련 도서를 읽어야 했고, 또 그것을 정리해서 머리에 넣어야 할 때가 있었다. 미술사와 미학관련 책이 참 어려웠다. 미술사는 책을 쓴 사람에 따라 시대 구별 및 작가의 평가가 조금씩 달랐기 때문이고 미학은 그 아래에 깔린 철학적 흐름을 알아야 했고, 설명하는 개념들의 이해가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흔히 서양미술사 라고 하는 책들은 대부분 선사시대부터 시작해서 포스트모던까지 이어지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 다양한 양식과 그 양식을 대표하는 작가와 작품, 그리고 그것들이 나오게 된 간단한 사회적 배경을 서술하는 것이 보통이다. 독자는 때론 익숙한 작품, 가끔 그렇지 않은 작품들을 권위 있는, 혹은 권위 있다고 믿는 저자의 친절한 설명대로 그대로 수용한다. 그러나 이런 서술을 읽을 때면, 나는 어떤 유명한 미술관에 들어가 저자의 설명을 듣는 수동적 관람자의 역할을 하고 있지 않는가 하는 반문을 하게 된다.




          




아마도 이 책들은 서양미술사 책 가운데 가장 많이 선택 받는 책일 것이다. 


과연 이 책들이 포스트모던의 경향을 얼마나 잘 설명해 주고 있는지 의문이긴 하지만

각각 나름의 장점을 지닌 서양미술사 책들. 


단순히 서양미술사의 개괄과 흐름을 명료하게 나열해주는 점에서 보면 

잰슨, 이은기, 곰브리치 순으로 추천하고 싶다. 


짧지만 잰슨과 곰브리치 서양미술사의 비교.

https://blog.aladin.co.kr/728246198/6414821




언젠가 뒤샹이 그러했듯 현대에 이르러 아서 단토나 조지 딕키가 제기한 무엇이 예술인가 하는 물음에 대해 강한 물음이 그간 우리가 당연하게 믿어왔던 예술작품과 예술가에 대한 의문을 갖게 하고 있다.

 

"아름다움"이라는 것은 지구상에 존재하는 사람의 수만큼이나 다양한 것이고, 그 아름다운 작품이 과연 어떤 것인지에 대한 정의도 그만큼의 다양하기에 이 문제는 영원히 결론이 나지 않을 것 같다. 이렇게 미의 개별적이고 상대적인 개념을 지니고 예술품을 본다면 그것에 대한 서술 또한 의구심을 갖게 할 것이다.

 

다양한 매체의 혼합과 다양한 사랑의 혼합으로 인해 뚜렷한 양식의 구별이 어려워진 현대미술은 어쩌면 하나로 정의할 수 없는 이런 다양한 미적 개념을 대변하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

 

최근의 미술사를 설명하고 또 그것에 관련된 책들은 이 예술품(편의상 회화, 건축, 조각의 범주에 한정하도록 하자)에 대한 형식적 설명보다는 이 작품을 둘러싼 사회적 배경, 작가가 제작하고자 했던 근원적 물음, 작품의 철학적 가치 등에 대해 더 많이 설명하는 경향을 갖고 있다는 생각이다.


이제 예술품을 바라보는 독자는 작품을 보고 능동적으로 해석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고 그 자신만의 예술적 기준을 보다 날카롭게 다듬어야 할 필요가 있다. 앞서 얘기했듯 날카롭게 다듬는다는 것은 시대와 양식의 보다 명료한 구별, 그 예술품을 둘러싼 시대의 영향관계, 타 문화와의 교류, 사람들의 미적 인식의 변화, 그 시대를 흔든 중요한 사회적 사건 등을 다각적으로 알아본다는 것 등이 되겠는데 미학과 철학, 미술품에 대한 책들은 이런 것이 있겠다. 




           




  


            



처음에 제시한 미학강의는 조금 오래된(2003) 책이고, 다양한 개념들을 정립하는 데는 좋지만 챕터별로 분리된 느낌.

예술과 사상은 보다 쉽고 개괄적이다. 미학산책은 미학자들의 주요 주장에 대해 명료한 설명이 좋다.


움베르트 에코의 책은 미와 추라는 대립적 개념에 대해서 엄청난 도판을 통해  다양한 설명을 들을 수 있으며


설리반의 책은 다양한 동, 서의 교류를 통해 미술품과 그 양식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갖을 수 있다. 

마지막 책은 미술비평의 흐름과 다양한 미술비평론에 대한 명쾌한 개괄을 얻을 수 있다.



제롬 스톨니츠는 예술 작품을 맥락적인상적의도주의적규칙적작품내재적으로 다양하게 비평할 수 있다고 하였다자신이 그 어떤 방법으로 예술품을 보고자 하는지또는 보아 왔는지 점검을 통해 그 예술품에 훨씬 더 깊게 따져보고 싶다면 단순히 미술사적 흐름에 치중한 책보다는 그것의 다양한 분석이 들어 있는 미학 또는 비평이 담긴 책을 접해보는 것이 어떨까 싶다





만일 위의 책을 모두 읽을 시간이 없다면 이 책 하나를 읽어봐도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저자는 서문에서 

"예술이란 무엇이며?", "예술이란 아름다워야 하는가?", "다른 가치는 없는가?" 하는 

질문을 던지며 다양한 미학적 개념을 차분하면서도 알기 쉽게 설명해준다. 

이 서문만 읽어도 서양미술사의 흐름에 대해 간략히 파악이 될만큼 훌륭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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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이제 주인공이 등장할 차례. 주인공이 먼저 등장해야 하지만 상황상 늦게 등장하였다.





이 거대한 책을 지금 리뷰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지난 6개월에 걸쳐 간 두 번 읽고 있는데 애꿎은 포스트잍만 늘어가고,

다시 읽어도 또 다시 알게 되는 것들이 있다.


어쩌면 계속 미루기만 하다 영원히 마음 속에만 묻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어 여기 꺼냈다.


  


이 책은 미술의 역사는 철학의 역사로 설명해야 한다. (<철학을 지참한 미술> 만이 양식의 무의미한 표류와 표현의 자기기만을 끝낼 수 있다는 생각으로 2007년에 출간한 "미술을 철학한다" 에서부터 잉태하였다. 고 저자는 말한다.) 미술을 철학의 흐름으로 다시 풀어보자는 선언으로 무수한 미술품과 미술가들을 분해하여 재정립하는 책이다. 


각 미술가들이 서로 주고 받는 영향관계와 그 시대를 둘러싸고 있는 다양한 사회적 흐름과 철학적 의미를 통해 우리가 갖고 있는 미술품과 미술가들의 허상을 벗겨내고 진정한 모습을 찾아준다. 미술작품의 내재적 형식의 분석 뿐만 아니라 사회 맥락적, 작가의 개인주의적 측면까지도 면밀히 분석하여 매우 입체적인 작품 분석을 시도한다. 


이런 심도 있는 분석과 끈질긴 관찰을 통해 어쩌면 그 작품을 제작한 미술가들도 당시에는 몰랐을 다양한 철학적 개념의 틀로 작가와 작품을 구별지음에 있어 무리가 없고 매우 설득력 있게 다가오며 길고 복잡한 글이지만 그 다양한 의미연합체들이 보다 쉽게 다가온다. 


언젠가 서양미술사 공부를 하면서 내 나름대로 만든 도표가 있다. 하나는 미술가들에 대한 것이며, 또 하나는 양식의 관계에 대한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다시 한 번 이 도표를 꺼내 보았는데 조금 불투명 하던 것들이 매우 명료해지는 느낌이었다. 











위의 사진들은 시대별 작가의 영향관계/    아래는 양식들의 영향관계









나는 어찌어찌하여 대학이후 서양미술사 수업을 세 번이나 듣게 되었다. 셋 다 모두 시대 순으로 작가와 작품을 나열하고, 그 특징들을 설명하는 수업이었는데 재미없고 지루하기만 했고, 기억에 남는 것도 없었다. 이후 어떤 시험을 위해 다시 서양미술사 책들을 끼고 공부를 했는데 그간 얼마나 내가 단편적인 방식으로 서양미술사를 접했는지 알게 되었고 위의 도표에서 정리한 것처럼 수직적 수평적으로 연결해 봐야 함을 느끼게 되었다. 


기획부터 출판까지 10년이라는 시간. 그 긴 시간을 짐작하게 하는 글의 수준과 양이다. 사적 흐름과 미학적, 철학적, 사회학적 개념을 모두 연결해 그 거대한 시간을 수직적 수평적으로 종횡무진 한다는 엄청나고 무모한 시도였지만 부족한 독자가 보기에는 꽤나 성공적이다. 


다만 이 높은 완성도와 깊이 있는 텍스트와는 별개로, 읽으며 내 스스로 끊임없이 명심하며 읽은 것이지만 반드시 이 책의 리뷰에 덧붙여 얘기하고 싶은 것이 두 가지 있다. 


첫째, 예술가의 내적 충동에 의한 결과물은 꼭, 반드시 필연적으로 그렇게 나와야만 하는 성질이 아닐 수 있다는 것. 그것이 가능한 까닭은 예술은 때로는 사회를 한참이나 앞서며 그것을 설명할 수 있는 단어가 그 시대에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둘째는 개인의 선호도 혹은 다른 미술사 책과 다른, 미술가에 대한 필자의 평가에 대해서도 열린 마음으로 접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점인데 읽는 내내 나의 선호 혹은 평가와 다른 작가들이 나온다.  

매우 많은 시간과 인내심이 필요하겠지만 미술사적 흐름을 미학적, 철학적으로 심도 있게 살펴보고 아름다움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하기에 이 거대한 책은 생각보다 훨씬 더 많은 도움을 줄 것이라는 생각이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의 지점에서 지금까지 이어져온 서양미술사를 다채롭게 조망하기에 이만한 책이 또 있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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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19-08-12 09: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와. 대박 알차다..... 이 글을 말뚝으로 삼아 미술책 읽어나가면 뭐가 되도 될 것 같은 이 든든함..... 미술책이 막 그냥 막 막 읽고 싶어지네요^ㅁ^

Nussbaum 2019-08-12 13:22   좋아요 0 | URL
syo님 안녕하세요. 댓글로는 처음 뵙습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언젠가는 리뷰를 써야지 하다가 어제 밤에 썼네요. 부족하지만 숙제를 결국 하고 제출한 느낌이어서 마음이 좀 상쾌합니니다.

늘 열정적으로 올려주시는 페이퍼 잘 보고 있습니다 :) 들러주셔서 감사해요 !

무식쟁이 2019-08-12 13: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미학과 미술이랑 움베르토에코의 미의 역사, 추의 역사까지 보관함에 넣게되네요. 당장 사보지는 못하겠지만 도서관이나 서점에서 보이면 모르고 지나치지는 않을것같아요. 누스바움님덕에 인연의 책이 좀더 늘어납니다. ^^

Nussbaum 2019-08-12 14:38   좋아요 0 | URL

무식쟁이님 안녕하세요.

보관함에 넣어놓으셨다니 제가 여기에 장점만 주르륵주르륵 늘어 놓은 것 같네요. 보시면 또 제가 얘기한 다른 인상을 받으실지 모르겠어요. 말씀하신대로 서점이나 도서관에서 보이면 한 번 살펴보심 좋을 것 같습니다.

인연의 책이 늘어난다니 참 이거 좋은 말인 것 같아요. 알라딘에 오래 둥지를 틀고 계신 분들은 이런 느낌을 좋아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희선 2019-08-13 02: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늘 보는 책만 봅니다 가끔 다른 것도 봐야 할 텐데 하지만 바로 보고 싶은 걸 보는군요 미술사 미학 잘 모릅니다 전에 한번 곰브리치 《서양미술사》 봤지만 끝까지 못 봤습니다 다 기억하지 못한다 해도 끝까지 한번은 봤다면 좋았을걸... 미술사와 미학이 미술 철학사와도 이어질 듯하네요 제가 이 책을 읽었다면 한번 죽 훑어보기만 했을 듯합니다 두번이나 보다니...


희선

Nussbaum 2019-08-13 02:52   좋아요 1 | URL
이 시간에 서재에 나타나시다니, 아직 잠에 들지 않으셨군요.

음, 위에 본문에 쓰다 만 느낌이 있는데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가 다른 서양미술사 책에 비해 그렇게나 많이 팔려야 하는지 좀 의문스럽긴 합니다. 시대와 화가, 작품에 대해 확실하고 명쾌하게 들리긴 하나, 여전히 제게는 작가의 주장이 너무 강하게 들어가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제발 <예경> 출판사는 책 좀 다시 만들면 안되나 하는 생각도 드는데, 대체 언제까지 이렇게 계속 찍어내려고 하는지. 평을 보면 번역이 좋다고 하는데, 과연 그럴까 하는 생각도 해 봅니다.

음. 말씀하신대로 아마 이 페이퍼는 미술사를 제대로 읽어내려면 미학, 철학, 사회학 등 많은 분야를 함께 공부해야 한다고 제 나름대로 주장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어요. ^^

가을을 준비하고 있을 희선님, 푹 주무시길 바랍니다.
 









사진과 그림 :


몇 해 전 혼자 설악산에 다녀온 적이 있다. 설악산에 가는 버스를 탔는데 몇 정거장을 잘못 간 탓에 입구까지 가는데도 한 시간을 넘게 걸었다.

 

한 겨울의 중심, 차가 한 대도 없던 주차장에서 바라본 설악산의 모습을 사진에 담고, 다시 한 달 후에 그림을 그렸고 액자에 넣었다.

 

숨이 찰 정도로 외롭게 걷다가 어느새 나타난 반가운 모습. 하늘은 더 파랗고, 건물들은 더 따뜻했다. 나무와 숲은 사진보다 훨씬 더 생기 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

 

이렇게 때로는 의도하지 않은 장면이 의도했던 것을 훨씬 뛰어넘는 기억으로 남는다. 사진은 기록으로 그림은 기억으로. 기억과 기억이라는 왜곡의 간격에서 나라는 사람의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을 발견한다.


그 어떤 좋은 책이나 타인의 사진에서 좋은 사진을 발견한다 해도 기억과 왜곡의 간극이 주는 나의 시선과는 바꿀 생각이 없다. 나에게 지금, 사진과 그림은 그런 존재

















구름 : 


구름을 사랑하지만 이 책을 쓴 저자만큼 사랑하는지는 조금 더 생각해보기로 했다. 구름을 너무 사랑하여 결국 책을 쓰게 된 사람.



"오래지 않아 회원들은 내게 일반 독자가 읽을 만한 구름 관련 서적을 추천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래서 찾아보기는 했으나 결국 겉만 번지르르한 이상한 그림책만 있지, 적당한 그림책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리하여 결국 <구름 읽는 책>이 세상에 나오게 된 것이다. 이 책은 구름이 보여주는 별나고 즐거운 온갖 특성들을 안내해주는 길잡이다. '구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회원들이 보내준 사진도 함께 실었다. 이 책은 기상학 교과서가 아니다. 기상에 대해서는 나보다 훨씬 많이 아는 사람들이 쓴 뛰어난 교과서가 이미 많다. 이 책은 그런 교과서들보다 더 진지한 책이다. 


이 책은 아무런 걱정도, 목적도 없이 그저 끊임없이 삶을 긍정하며 즐기는 취미활동인 구름추적에 바치는 찬양이니까." 


개빈 프레터피니 <구름 읽는 책> 서문 중에서. 



이 책을 보며 여름을 좋아해야 할 까닭 1을 추가했다.










맥주 : 


Blanc 1664 / 하이네켄 


여름이 되면 맥주는 보통 다른 계절보다 5-10% 이상 판매가 많아진다고 한다. 


블랑 1664 + 하이네켄 / 보통은 Tika 감자칩과 함께 먹는다. 때로 달걀 후라이와 함께.  



문득 맥주가 가장 맛있는 시간은 입추와 말복 사이 그 어디 즈음이 아닐까 하는 생각.










밤 : 


나는 밤과 새벽 그 어디즈음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가끔 밤마중을 떠난다. 익숙한 길이지만 매일 달라지는 밤의 얼굴이 좋다. 


6월의 설익은 풋내나는 밤냄새도 좋고, 7월의 깊은 습도의 풍성함. 8월, 말복의 그 안타까운 시선도 좋다. 


1월... 2월... 12월까지. 모든 밤은 다르고, 또 그 밤을 모두 사랑한다. 


사랑한다는 것은 알고 싶다는 것에서 출발한다. 밤에서 새벽으로 넘어가는 그 찰나에 대해 더 알고 싶다. 


밤이 정확히 무슨 일을 하는지에 대해서.


 










밤은 무엇을 하는가


기차는 무엇을 하는가


좁은 골목은 무엇을 하는가


물안개 속 강은 무엇을 하는가


물을 건져 올리는 그물


손 닿지 않는 바다와


하늘은 무엇을 하는가



사과는 썩고


피부약은 뚜껑 밖으로 흘러넘치고


내의는 뒤집히고


구두는 떠나가고




어둡던 보관 창고가 


한꺼번에 열려버린 그날




그 밤에 비는 무엇을 하는가 


눈송이들은 무엇을 하는가


기차는 무엇을 하는가


기차를 탄 밤은 무엇을 하는가



나는 무엇을 하고 세상은 무엇을 하는가


세상이 무엇을 할 때 나는 무엇을 하는가


내가 무엇을 할 때 


세상은


밤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는가




김경미 시 <밤, 기차, 그림자>














Sometimes it's hard to be a woman
Giving all your love to just one man.
You'll have bad times
And he'll have good times, 
Doin' things that you don't understand


But if you love him you'll forgive him,
Even though he's hard to understand
And if you love him oh be proud of him,
'Cause after all he's just a man 


Stand by your man,
Give him two arms to cling to,
And something warm to come to 
When nights are cold and lonely
Stand by your man,


And show the world you love him
Keep giving all the love you can
Stand by your man
Stand by your man,


And show the world you love him
Keep giving all the love you can
Stand by your man







88일은 입추. 즐겨 듣는 라디오의 오프닝 멘트는 대략 이랬다


여름의 끝자락. 아직 말복을 앞에 두고, 등장하는 입추.

 

해마다 등장하지만 기적 같은 절기. 반갑고 유쾌하고, 반가운 시 같고 유쾌한 농담같은.

 

기적 같은 일. 다음 계절을 기대할 수 있는 건 얼마나 즐거운 일인가. 여름의 계절에 숨은 그림처럼 숨어 있는 가을을 느껴보는 저녁

 



나는 이 멘트에 조용히 혼자 이렇게 화답했다.



 

반가움과 그리움. 짧고 강렬한 인사 같은 반가움 뒤에 등장하는 시간의 연속.

 

그것들이 쌓여서 만들어지는 또 다른 감정, 그리움

 

강렬함이라는 만남 뒤에는 시간이 필요하고, 만남의 의지가 필요하고, 의지로 인해 생겨나는 의미, 그리고 그 의미의 공통분모.

 

그리움이라는 건 바로 그런 시간이 있음에 만들어지는 것.

 

때로, 그리움은 반가움에서 만들어지는 기적과 같은 것.






아마도 한 낮이 주는 강렬함에 지친 누군가가 이 밤, 나의 시간과 평행을 걷고 있다면 


여름이 주는 기록과 기억에서, 어느 높게 떠가는 유쾌한 구름처럼, 여름에 더 많이 팔린다는 맥주처럼, 이제 살짝 창문을 조심스럽게 넘어오는 가을 바람처럼, 카를라 브루니(carla bruni) 의 목소리 처럼  


그렇게 기분 좋은 밤을 보내며, 함께 여름도 즐거운 인사와 함께 보내주면 좋겠다는 생각. 


사진과 같은 기억이 즐겁고 유쾌한 그림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 


비록 슬픔과 외로움과 자책의 밤을 보내고 있다 할지라도 


잠깐이라도 가을이 오는 기적의 시간을 즐기고 반가워했으면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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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8-11 06: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8-11 12: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수입] 바흐 : 무반주 바이올린 소나타와 파르티타 [180g 3LP] Nathan Milstein - 바흐 무반주 바이올린 소나타와 파르티타 1
바흐 (Johann Sebastian Bach) 작곡, 나탄 밀스타인 (Nathan Mil / DG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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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흐는 바이올린을 단선율적인 악기로 보지 않고 화성적대위법적으로도 사용할 수 있는 악기로 보았다화성적인 시각으로 얘기하자면 샤콘느 등과 같이 쌓여 있는 화음으로 진행하는 것도 있지만 펼침화음으로 진행되는 것도 있다

 

..

 

바흐의 자필악보에서는 소나타와 파르티타가 교대로 배치되어 있다. (..) 어떤 의미로는 비슷한 형태로이면서 아주 음악적으로 엄격한 모습을 하고 있는 소나타에 이어 가장 자유롭고 개방적인 파르티타를 놓음으로써 대비성을 표현하고자 한 것은 아닐까

 

..

 

소나타는 앞서 서술한 것처럼 3곡 모두 이탈리아 교회소나타와 동일한 전형적인 4악장의 악장배치를 하고 있지만완전하게 이탈리아의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가장 특징적인 것은 제2악장을 독일적 분위기인 푸가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그리고 이 악장에 선생하는 제1악장은 독일의 건반음악에서 푸가 앞에 존재하는 이른바 전주곡과 비슷하다그리고 그 뒤에 오는 제3악장과 제4악장은 제2악장이 폴리포닉적인 것에 비해서 호모포닉적인 서법을 사용하고 있다

 

파르티타는 제3번 작품이 류트를 위한 모음곡으로 편곡된 것처럼 원래 모음곡이다모음곡은 주로 춤곡을 나열한 것이지만 바흐가 살고 있던 시대에는 거의 기본적인 모습이 갖추어졌다그것은 '아르망드-쿠랑트-사라방드-지그'와 같은 악장배열이다그러나바흐는 3곡에서 이 패턴을 엄격하게 지키고 있지 않았다

 

 

- 음악세계 <바흐>, 155페이지 발췌

 

 

 

수많은 클래식 바이올린 연주자의 이름들 가운데서 가장 유명한 사람은 야사 하이패츠와 다비드 오이스트라흐일 것이다. 더 선호하는 연주자가 있을지는 몰라도 이 둘을 빼 놓기는 쉽지 않겠다. 이 두 사람이 표현하는 성향은 일견 반대적이기도 해서 오랜 동안 누가 더 우위에 있느냐 하는 논쟁도 많았다.

 

 

만일 세 명으로 범위로 넓혀야 한다면 나는 나탄 밀스타인(Nathan Milstein, 러시아, 1904-1992)을 넣고 싶다처음 밀스타인의 바흐 무반주 바이올린 소나타 & 파르티타 앨범(DG, 1973, ADD)  CD로 들었을 때 프레이즈의 유연성과 소리의 균형성곡마다 보이는 뚜렷한 흐름이 눈앞에 마치 생생하게 펼쳐졌다거의 70세의 녹음이니 수많은 생각과 연주의 깊이가 담긴 음반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그는 주로 EMI DG에서 녹음을 남겼는데 확실한 것은 그가 엄청난 기교의 소유자였지만브람스나 베토벤 등의 협주곡에서 레오니드 코간의 연주를 듣다가 밀스타인의 연주를 들으면 꽤나 심심하게 들리듯 다른 바이올리니스트들에 비해 뭔가 폭발하는 패시지를 보인다거나 넘치는 잔향을 들려주는 모습은 상대적으로 덜하다는 인상을 준다는 점이다. 어쩌면 그 때문에 사람들이 그의 연주를 듣고 확 끌리는 점을 찾지 못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밀스타인의 정갈하고 깔끔하면서도 깊은 맛을 느껴보기에는 이 바흐의 음반이 적격이라는 생각이 들며많은 클래식 음반 감상자들도 인정하는 분위기인 것 같다이 거대한 산과도 같은 곡에서 당당하면서도 거침없다그렇게 당당하게 나가면서도 높고 낮은 소리에서 하나를 버리는 일이 없는 연주로, 바이올린 한 대에서 뿜어 나오는 기운이 매우 부드러우면서도 힘차다.

 

 

내가 온갖 찬사를 다 갖다 붙인 것 같아잠시 펭귄가이드(2008)의 소개를 살펴보자. 참고로 그라모폰가이드(2011) 에서는 왜인지 이 연주를 꼽지 않았는데 (그라모폰에는 레이첼 포저, 기돈 크래머, 빅토리아 뮬로바, 크리스티안 테츨라프, 이작 펄만, 알리나 이브라기모바, 이사벨 파우스트 를 선정) 만일 추천 연주 분석을 위해 밀스타인이 본문에 들어 있다 하더라도 매우 괘씸한 생각마저 든다.

 

 

Milstein's set from the mid-1970's remains among the most satisfying of all versions. Every phrase is beautifully shaped, there is highly developed feeling for line, and these performances have an aristocratic poise and a classical finesse which are very satisfying.

 

 

펭귄가이드에서는 품위 있는 표현과 안정된 연주를 장점으로 내세웠다이와 함께 또 추천한 연주자로는 펄만그뤼미오메뉴힌이다 헨델헨릭 셰링율리아 피셔 등이 있다밀스타인의 연주와 유사한 쪽은 아무래도 그뤼미오헨릭 셰링 일텐데 개인적으로는 그뤼미오는 보다 섬세하고 셰링쪽은 보다 유연하게 다가온다. 어쩌면 선이 굵은 연주이기에 다른 연주자와도 겹치는 부분도 있겟다. 어쨌든 위에 언급한 연주자의 음반들에서는 누구의 연주가 더 뛰어난가라는 질문은 의미가 없으며 그들의 연주의 미묘한 차이점과 특징을 구별하는 것이 훨씬 갚진 일이다.

 

 

각각 곡의 자세한 설명 - 가령 소나타 1번이 모두 4악장으로 되어 있고 3악장은 시칠리아풍이며, 2악장은 푸가의 구성을 엿볼 수 있다 등등.. 의 설명과 그것의 따른 해석은 바흐의 음악그것을 연주하는 연주자의 깊이 있는 해석을 먼저 살펴본 후의 일이다물론 알고 있다면 더 좋겠지만 음악이 주는 다양한 감정을 가슴으로 느끼는 것이 먼저라는 생각이다.

 

 

 

잠시 LP에 대한 설명으로 넘어가보자.

 

나는 이 음반을 대략 15년 전에 CD로 들었다참 많이 들었던 음반으로 바흐 무반주 바이올린 소나타 파르티타 연주를 떠올릴 때 제일 먼저 생각이 난다이번에 LP박스가 고맙게 나와서 조심스레 듣고 있는데 문득 CD LP의 특성에 대해그리고 어떻게 들리는가에 대해 잠시나마 생각해보게 되었다이 둘의 가장 큰 차이는물리적인 차이로 디지털과 아날로그 재생 방식의 차이일 것이다.

 

 

수많은 논쟁을 뒤로하고 내가 확실히 느낀 것은 LP 소리가 조금 더 자연스럽다는 점이다만일 CD LP 소리의 특성에 대해 내게 묻는 사람이 있으면 나는 악기를 가지고 연주를 해본 적이 있는지 반문하겠다악보에는 음표가 있고 쉼표가 있다듣는 사람에게 편안함과 감동을 주려면 음표는 하나하나 모두 각자의 개성을 살리되꽉찬 소리로 들려줘야 하고쉼표는 음표의 여운을 잘 숨겨주면서 분위기를 조성하는 역할을 잘 해줘야 한다.

 

 

그런데 제 아무리 뛰어난 연주자라도 모든 음표의 소리를 동일하게 낼 수는 없으며모든 쉼표를 동일하게 쉴 수는 없다같은 악보를 연주하더라도 각각 그 음표를 미묘하게 다르게 인식하고 다른 개성을 부여한다그날의 분위기연주자의 컨디션곡을 마주했을 때의 느낌 등을 통해 악보에는 적혀 있지 않은 그 무엇을 함께 전해준다음표와 쉼표로 이루어진 곡을 연주했을 때 발생하는 수많은 의미의 연합체들이런 것이 음악의 생명을 부여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개인적인 견해로 같은 장비로 재생했을 때 LP CD의 음질에 못미친다는 생각을 한다음질이란 것은 균등하게 뭔가를 재생한다는 뜻이다판에 소리골을 내어서 재생시키는 LP는 비록 CD에 비해 균등하지 않을 수 있지만 그 약간의 불균형으로 인해 음표와 쉼표로 만드는 의미의 연합체를 조금 더 많이 느낄 수 있게 하는 것 같다. CD를 들었을 때보다 LP를 들었을 때 덜 피곤함을 느낀다는 어느 실험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거라 생각도 든다.

 


 


 





 

 

턴테이블의 플라스틱 덮개를 열고 조심스럽게 LP박스를 열어 음반을 꺼낸다음반을 회전판위에 올려놓고 턴테이블 전원을 켠 후톤암을 조심스럽게 놓는다완전 수동인 턴테이블이어서 음악을 듣고 나면 다시 톤암을 원래 위치에 놓아야 한다. LP를 뒤집거나 바꾸려면 같은 동작을 반복해야 한다유투브에 검색만해도 음악이 쏟아져 나오는 요즘번거롭게 이렇게 음악을 듣고 있다니.  때론 한심스럽다. 


그렇지만 그 동작이 끝나고 턴테이블 위에 올려진 음반이 돌아가고 잠시 후 스피커가 울리면 15년 전에 들었던 밀스타인의 바흐와는 같지만 조금은 다른 음표와 쉼표가 나온다. 음표와 쉼표를 더 풍부하게인간적으로 듣고 있다는 착각을 한다.  그리고 그렇게 나는 바흐를 듣고 있으면서밀스타인과 더 가까이 만나고, 풍부한 감정과 감각을 지닌 인간이라는 자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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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식쟁이 2019-08-03 19: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축 바늘이 LP에 닿는 순간의 그 먼지 부서지는 소리가 이렇게 그리워질지 그때는 미처 몰랐다지요..

Nussbaum 2019-08-04 00:28   좋아요 0 | URL
오늘 라디오를 듣는데, 오프닝 멘트에 이런 말이 나왔습니다.

˝우리가 사는 시대에는 늘 우리가 가진 것에 비해 놀랄만한 것들이 등장하지만 그럴 때마다 우리는 우리가 가진 소중한 것을 지켜내고 더 좋은 것으로 돌아가려는 생각을 갖고 있다.˝

대략 이랬는데, 제게 이말은 과거가 좋았다는 어떤 향수의 의미라 아니라 우리가 생각을 하고 감각이 있는 인간이라는 걸 잊을 때마다 다시 그 인간다운 것으로 돌아간다는 말로 들리더군요.

이 음반 리뷰를 하다가 문득, 음악을 듣는다는 것에 대해 생각을 해 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음악을 들으며 나는 무엇을 얻는가 하는 것도. 그러다보니 이 음반 리뷰가 이렇게 흐르게 된 것 같아요.

어릴 때 회전판위에 뭔가 물건을 올려 놓고 동글동글 돌아가는 걸 마냥 재밌어 하던, 아무것도 모르는 꼬마는 어느새 이렇게 나이를 훌쩍 먹었네요.

처음 뵙겠습니다. 무식쟁이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