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쪽지 2013.6.13.
 : 찔레꽃 진 자리에 밤꽃

 


- 우체국에 가려고 자전거를 달린다. 샛자전거와 수레를 매단 자전거를 마당으로 내려놓을 때에, 누구보다 작은아이가 먼저 알아본다. 작은아이는 수레에 타고 자전거마실을 하면 무척 좋아한다. 작은아이를 바라보며 말한다. “보라야, 수레에 타라고 할 때에 타는 줄 알지? 아직 챙길 짐 있으니 기다리렴.” “응.” 한참 말을 따라하며 배우는 작은아이는 참말 짧게 말한다.

 

- 우체국으로 가기 앞서 우리 도서관에 들러 짐을 내려놓는다. 오늘은 우체국만 다녀올 생각이라 아이들과 함께 도서관에 들르지는 않는다. 큰아이와 작은아이는 큰길에서 아버지를 기다려 준다.

- 우리 마을 할아버지 한 분이 저 앞에서 마주 걸어오는 모습 본다. 꾸벅 인사를 하며 지나친다. 샛자전거에 앉은 큰아이가 문득 “저 사람 혼자 여행하네.” 하고 말한다. 얘야, ‘저 사람’이 아니고 ‘마을 할배’란다. ‘혼자 여행하’시지는 않고, ‘걸어서 천천히 마실 다니신’ 셈이란다.

 

- 동호덕마을 지나 면소재지 접어들 무렵, 상수도 공사하는 데를 본다. 상수도 공사는 아직 안 끝났네. 참 질기게 오래도록 하네. 벌써 몇 달째인가. 얼추 스무 달쯤 된 듯한데, 이 작은 마을 상수도 공사를 아직도 안 끝내고 뭘 할까. 우리가 지나가려는 길을 엉망으로 파헤쳐 놓았기에 휘 돌아가는 길로 접어든다. 공사한다며 파헤쳐 놓은 자리 앞에서 교통정리를 하는 마을 할매가 아이들 보며 알은 체를 한다. 이 더운 날씨에 할매도 참 고단하시겠다.

 

- 우체국에서 책을 부치느라 상자에 담아 싸는 동안, 두 아이는 우체국 앞 계단을 오르고 내리면서 논다. 아이들은 어디이든 놀이터로 삼는다. 아이들은 뛰고 달리면서 논다. 아이들한테는 놀잇감 따로 손에 쥐어 주지 않아도 잘 논다. 아이들은 빈터만 있으면 어디이든 놀이터로 삼는다. 생각해 보면, 나도 우리 아이들만 한 나이였을 어릴 적에 언제나 어디에서 즐겁게 뛰놀았다. 놀이공원에 가야 놀지 않는다. 어떤 놀이터 시설이나 건물이 있어야 하지 않다. 마음을 열고 까르르 웃으면서 뛰고 달리면 모두 놀이가 된다.

 

- 면내 가게에 들러 막걸리 두 병 산다. 큰아이가 “아버지, 나 아이스크림 살래.” 하고 말한다. 먹고 싶니? 음, 오늘은 사 주마. 너 하나 고르고 동생 하나 고르자. 큰아이도 수레에 태운다. 작은아이 큰아이 모두 수레에 앉는다. 큰아이는 샛자전거 붙인 뒤 언제나 샛자전거에만 탔는데, 오늘 모처럼 수레에 동생하고 함께 앉는다. 둘은 수레에 앉아 얼음과자를 먹는다.

 

-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작은아이는 얼음과자 다 먹고는 수레에 머리를 기대고 잠든다. 졸렸구나. 잘 자렴. 얼른 집으로 돌아가서 등허리 펴고 눕게 해 줄게. 신나게 발판을 구른다. 면소재지 언저리 멧자락에서 꼼꼼한 냄새가 풍기기에 무언가 하고 살피니, 아하, 밤꽃이로구나. 밤꽃이네. 찔레꽃이 지면서 유월 여름날 밤꽃이 활짝 피었구나. 얘들아, 알겠니? 밤꽃이란다. 사름벼리 너는 여섯 살이지만, 우리가 시골에서 산 때는 네 동생이 태어난 해부터이니까, 네가 세 살 적부터 시골에서 살며 밤꽃내음 맡았는데 알아볼 수 있겠니?

 

- 모내기 마친 논마다 앙증맞은 자그마한 벼포기 무럭무럭 자란다. 좋은 유월 한낮, 좋은 바람 마시면서 집으로 돌아간다.

 

(최종규 . 2013 - 시골에서 자전거와 함께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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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3-06-13 20:37   좋아요 0 | URL
이글, 참 좋군요. 눈 앞에서 그림이 그려져요.

숲노래 2013-06-14 05:16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걷는 사람들과 자전거 타는 사람들뿐 아니라
자동차 타는 사람들도
날마다 좋은 그림 그리면서
예쁜 이야기 나눌 수 있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