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나리 죽이는 시멘트도랑

 


  군청과 도청에서는 해마다 흙도랑 없애고 시멘트도랑 늘린다. 시골 어르신들은 흙도랑이 시멘트도랑으로 바뀌어야 비로소 ‘농업발전’ 되는 듯 여긴다. 논둑을 몽땅 시멘트로 덮어 나락 아닌 다른 풀 아예 자라지도 못하게 하기를 바라는구나 싶기까지 하다.


  흙도랑일 적에는 도랑에서 미꾸라지 잡고 가재 잡으며 미나리를 꺾을 수 있다. 흙도랑일 적에는 개구리 살고 개똥벌레 살며 거미가 살 수 있다. 논에서 여러 목숨붙이 어우러져 살아갈 때하고, 어떠한 목숨붙이도 살아남지 못할 때하고, 나락맛이 같을 수 없다. 온통 시멘트로 둘러싸인 논배미에서 어떤 맛난 나락이 자랄 수 있을까. 빙 둘러 시멘트로 가둔 채 비료와 농약을 쳐대는 논자락에서 어떤 좋은 나락이 클 수 있을까.


  요즈음에도 논도랑에서 미나리 꺾으며 나물맛 즐기는 시골 어르신 있겠지. 그러나, 할매 할배 두 식구 먹을 미나리는 아주 조금이면 된다. 앞으로는 굳이 미나리까지 안 자실는지 모르고, 허리 굽은 판에 미나리까지 꺾으러 다니기 힘드실 수 있다. 이래저래 시골마을 곳곳 흙도랑을 군청과 도청에서 자꾸자꾸 시멘트도랑으로 바꾼다. 군청과 도청은 어마어마한 건설 예산을 들이고, 건설업자는 당신들 스스로 무슨 짓을 하는지 못 깨닫는 채, 시골 들판을 망가뜨린다.


  땅을 사고 싶다. 시골 논과 밭을 사고 싶다. 멧자락을 사고 싶다. 시골 숲과 골짜기를 사고 싶다. 그래서 시골 논밭과 숲과 골짜기 모두 푸른 숨결 그대로 흙내음과 흙맛 감도는 사랑스러운 터로 오래오래 이어갈 수 있도록 보살피고 싶다. 아침에 흙도랑에서 미나리 한 움큼 뜯어 밥상에 올리며 생각한다. 여섯 살 큰아이한테 “자, 이 풀은 미나리야.” “미나리?” “응, 미나리를 먹으면 미나리 풀내음 고루 입안에 퍼지지.” 4346.4.14.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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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04-15 11:29   좋아요 0 | URL
저희 동네에서도 지난해에 아주 오래되고 아름다운 회화나무랑, 오래된 벚나무들을 몽땅 뽑아내고(그 나무들은 이제 어디에 있을까요.)
흙화단도 최소한으로 줄여버리고 시멘트 길들로 다 바꿔 버렸어요.
오래 되어 푸르고 아름다운 나무들이 다 없어져 버리니..참 안타깝고 아쉽더라고요...
왜들 자꾸 그렇게 해야만 하는지...

숲노래 2013-04-15 14:38   좋아요 0 | URL
뽑은 나무들은... 다 땔감으로 판답니다...
한국사람은 나무를 너무 막 다루는데
이 슬픈 버릇이 어디에서 비롯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