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살피는 마음

 


  어릴 적에 어머니를 졸라 자전거를 얻은 적 있습니다. 처음에는 이 자전거를 집안에 모셔 놓고 한 주에 한 차례씩 기름을 바르며 바지런히 닦고 손질했습니다. 자전거를 닦고 손질하는 데에 으레 한두 시간쯤 걸렸지만 ‘새 자전거’라는 생각에 알뜰히 건사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때부터인가 갑자기 ‘엠티비’라는 자전거가 나오며, 우리 집보다 돈 좀 되는 아이들이 ‘손잡이 1자’인 자전거를 끕니다. 요즘 눈길로 보자면, 그 자전거는 ‘엠비티’ 아닌 ‘유사 엠티비’요, ‘산타는자전거 흉내를 낸 싸구려 자전거’예요. 동네 다른 아이들은 어느새 ‘손잡이 3자’ 자전거를 버리고 ‘손잡이 1자’로 갈아타면서, 아직 ‘손잡이 3자’인 자전거 타는 아이들을 놀립니다. 동네 아이들이 놀리건 말건 아랑곳할 까닭이 없는데, 나는 동네 아이들 놀림질에 주눅이 들어 그만, 내 새 자전거를 타지 못합니다. 자전거를 타지 못하다 보니 자전거 청소와 손질도 안 하고, 자전거 청소와 손질도 안 하니, 그동안 4층부터 1층까지 들고 내리며 타던 자전거를 1층 문간에 먼지를 먹게 내려놓으며, 끝내 이 자전거를 아끼지 못한 채 멀어집니다.


  중·고등학교 다니며 자전거는 한 번도 못 탑니다. 고등학교 마친 뒤 이태째 되던 해, 내 어버이 집에서 제금나면서 신문사지국에 들어가고, 신문사지국에서 신문자전거를 몰며 신문을 돌립니다. 여러 해 자전거하고 멀어졌다가 다시 자전거하고 만나니 다리가 가볍습니다. 늘 내 옛 자전거를 떠올리면서 자전거를 탑니다. 내 옛 자전거가 어떤 마음이었을까 하고 떠올리며 오늘 타는 자전거를 바라봅니다.


  큰아이가 탈 두발자전거를 장만해 주면서, 이 자전거에 내 옛 자전거 생각이 그림처럼 아련히 떠오릅니다. 사람도 자전거도 집도 밭도 사랑받을 때에 곱습니다. 아이가 즐겁게 타고 놀면 즐겁고 좋은 자전거가 됩니다. 잘 타고 놀다가 다른 놀이를 한다면, 자전거가 햇볕에 바래거나 빗물에 젖지 않게 잘 옮겨 주면 됩니다. 저녁에 해 떨어지기 앞서 두꺼운 덮개를 씌웁니다. 아침에 덮개를 벗겨 마당으로 내놓습니다. 마당으로 내놓고 놀다가 나들이를 나갈 적에는 그늘자리로 옮깁니다. 큰아이한테 얘기합니다. “벼리야, 네 자전거이니까, 네 자전거 예쁘고 예쁘게 탈 수 있도록 햇볕에 바래지 않을 만한 그늘 자리에 옮겨 두렴.” 큰아이는 저녁에 집으로 들어오며 제 자전거를 아버지 자전거 곁에 붙이고 덮개를 씌우곤 하지만, 잊는 날이 더 많습니다. 덮개 씌우기를 잊으면 아이를 불러 아이더러 하라 할 수 있지만, 말없이 제가 합니다. 아이가 할 만하면 아이 스스로 하라 하고, 아이가 잊으면 아직 어리니 조용히 내가 하면 되지요. 아마, 내 어린 날, 내 새 자전거를 내가 손질 안 하고 청소 안 했을 적에 어머니가 나 몰래 손질하고 청소했으리라 생각해요. 어른이고, 어버이이니까요.


  이제 와 돌아보면, ‘내 어린 날 자전거란 무엇인지 나한테 제대로 알려주는 사람 왜 없었을까’ 싶은데, 찬찬히 되짚고 곰곰이 헤아리면, ‘내 둘레에 자전거를 슬기롭게 알려주는 분이 없다면, 나 스스로 책도 찾고 자전거집에도 찾아가며 익히고 배우면 될’ 노릇이었어요. 어린 나는 스스로 찾아서 하는 길을 생각하지 못했어요. 내 마음에 믿음과 사랑이 모자란 탓에 내 첫 자전거는 낡은 쇠붙이가 되었습니다.


  둘레에서 자전거 타는 아이들이나 어른들 있으면, 어떤 자전거를 타는가 하고 물끄러미 바라봅니다. 삶과 하나되는 자전거를 타는 사람을 만나면 반갑기에 사진 한 장 찍고 싶습니다. 삶과 하나되지 못하고 겉멋 내는 자전거 아슬아슬하게 타는 사람을 만나면 고개를 돌립니다. 아이들한테는 ‘어린이 자전거’를 마련해 주어야 하는데, 아이들한테 ‘유사 엠비티’라 하는 겉모습만 ‘산악자전거 흉내를 낸 자전거’를 사 주는 어버이가 너무 많습니다. 아직까지도 아이들은 ‘손잡이 1자’에 ‘변속기어 몇 단’쯤 있어야 ‘뽀대 난다’고 여기는구나 싶은데, 이런 자전거는 잘 망가질 뿐더러, 변속기어 부품이 아주 값싼 것이라 제대로 먹지 않아요. 게다가, 자전거 타기에 익숙하지 않은 아이들은 변속기어 있는 자전거를 타면 안 돼요. 아직 손잡이를 힘주어 꽉 붙잡지 못하는데, 변속기어 만진다며 손을 움직이면 손잡이가 이리저리 돌아가요. 아주 아슬아슬하지요. 아이들은 변속기어 없고 ‘손잡이 3자’인 아늑하고 튼튼한 자전거를 타야 합니다. 여느 때에는 이 자전거를 타고, 아이들 스스로 멧골 오르내리며 자전거를 타고 싶다 할 때에는 다리힘과 팔힘 많이 기르고 나서 ‘진짜 엠비티’를 마련해서 타야 올바릅니다. 그리고, 아이 스스로 제 자전거를 들고 옮길 수 있어야지요. 내 어린 날, 내 자전거를 1층부터 4층까지 들고 옮길 때마다 얼추 20∼30분쯤 걸린 듯싶은데, 어머니가 도와준 적은 없어요. 늘 혼자 땀 뻘뻘 흘리면서 들고 날랐습니다. 4346.4.11.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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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04-11 11:27   좋아요 0 | URL
저는 어릴때 자전거를 타고는 어른이 되어서는 잘 안 탔어요.
작년인가 아는 사람과 그 사람이 여분으로 있다고 빌려 준 미니벨로를 타고 함께 중랑천을 나갔는데, 이 자전거가 처음 1분정도는 잘 나가 신이 났는데 조금 가다간 뻑뻑하게 안나가고 안장도 자꾸 내려앉아 엉덩이를 자꾸 들며 그렇게 애를 쓰고 타다 결국은 그냥 자전거를 질질 끌고 30분을 땡볕을 걸어 집으로 돌아왔어요. 나중에 보니 꼬리뼈도 다 까지고 여하튼, 마음은 자전거를 타고 싶은데 그후론 잘 엄두가 안나요. ^^;;;
그런데 함께살기님의 '자전거와 함께살기'나 글 읽으면 저도 자전거를 즐겁게 잘 타고 싶어요. ^^ (근데 아무리 생각해도 그 자전거가 너무 고물이었던 것 같아요.;;)

숲노래 2013-04-11 13:15   좋아요 0 | URL
안장이 내려앉았다면 안장조임쇠가 풀려서 그럴 테고,
뻑뻑하게 안 나갔다면, 브레이크슈가 바퀴에 달라붙어 그랬으리라 느껴요.
뭔가 끼거나 붙어서 그렇기 때문에,
그걸 손질해야 하는데,
보통 사람들은 그걸 거의 몰라요.
(저도 예전에는 몰랐지만)

안 타고 둔 자전거를 타려면
반드시 자전거집에 가서 손질을 받아야
탈 만하게 된답니다.

에고. 자전거마실 누리는 기쁨을 맛보자면...
참 '자전거라는 장비'가 잘 받쳐 주어야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