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집으로 찾아오는 제비
[고흥살이 11] 어떤 집에서 예쁘게 살아갈까
나는 인천에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어린 날 인천에서도 제비와 박쥐를 자주 보았습니다. 동네에서도 학교에서도 어디에서도 제비와 박쥐는 참 흔했습니다. 땅강아지와 사마귀도 흔했고, 개구리와 매미도 흔했습니다. 낮에는 제비처럼 날아다니며 놀고 싶었고, 밤에는 박쥐처럼 날갯짓하며 놀고 싶었습니다.
아파트가 그리 많지 않고 자가용 또한 얼마 있지 않던 예전 인천에는 제비와 박쥐가 사람과 함께 살았습니다. 길마다 자가용이 넘치지 않던 지난날 인천에는 땅강아지와 사마귀가 사람과 같이 살았습니다. 이제 높다란 아파트 우뚝 솟고, 골목마다 자가용이 줄줄이 늘어서는 곳에는 제비가 깃들기 힘듭니다. 박쥐가 매달리기 어렵습니다. 땅강아지도 사마귀도 개구리도 모두 도시에서 쫓겨나거나 도시를 떠납니다. 도시에는 파리와 모기와 바퀴벌레만 남습니다.
2005년에 중국 연길시로 나들이를 다녀올 때에, 연길시 한복판에서 제비들이 춤추는 모습을 보고는 깜짝 놀라며 어릴 적 일이 떠올랐습니다. 제비들이 춤추고 저마다 보금자리를 틀 수 있다면, 이곳은 사람이 살아갈 만하겠구나 생각합니다. 제비가 찾아오지 않는다면 사람이 살아가기 힘들고, 제비가 보금자리를 틀지 못한다면 사람 또한 좋은 보금자리를 오래오래 건사하기 어렵구나 생각합니다.
4월 15일 언저리에 고흥 읍내에서 제비 여러 마리를 보았습니다. 4월 22일 한낮, 아이들 데리고 멧마실 들마실을 하다가 제비떼를 만납니다. 처음에는 몇 마리가 춤추는구나 하고 생각했는데, 아이들과 함께 하늘을 올려다보니 얼추 백∼이백 마리쯤 되는 제비들이 떼를 지어 저마다 춤을 추듯 어울려 날아다닙니다. 봄을 맞이한 들판을 마음대로 가로지르면서 저희 좋은 짝을 찾는 춤사위일까요.
우리 집 처마에는 제비집이 셋 있습니다. 하나는 튼튼하고 둘은 허물어졌습니다. 저 제비떼 가운데 두 마리는 우리 집 처마로도 깃들까 궁금합니다. 지난해 우리 집에서 지낸 제비가 지난일을 떠올린다면 이곳으로 다시 찾아들리라 생각합니다. 이러고서 이튿날 4월 23일, 암수 제비 두 마리가 우리 집 처마 밑으로 뻔질나게 드나듭니다. 둘째 아이 죽을 섬돌에 앉아 먹이며 바라보자니, 제비 두 마리는 입에 흙이랑 지푸라기를 물고 쉴새없이 드나듭니다. 지난해 살던 집을 새로 손질하느라 바쁘군요. 그래, 이렇게 찾아와 주는구나.
봄맞이 제비들은 새벽 다섯 시를 넘을 무렵부터 지저귑니다. 천천히 동이 트는 빛살을 느끼며 하루를 열고, 바쁘고 즐거이 하루를 누리며, 고요하며 한갓지게 하루를 마무리합니다. 제비는 꼭 저희 식구들 깃을 들일 만큼 조그마한 흙집에서 하루를 보냅니다. 가만히 생각하면, 먼먼 옛날부터 사람들은 누구나 흙집을 지었습니다. 나무로 기둥을 세우고 돌로 바닥을 깔며 흙으로 벽을 바르고, 풀로 지붕을 이었습니다. 제비는 흙집 처마에 흙집을 지으며 사람들과 함께 살았습니다.
더 돌이키면, 먼먼 옛날부터 사람들 흙집 풀지붕에는 구렁이가 함께 살았습니다. 생쥐도 풀지붕에서 함께 살았습니다. 박꽃 또한 흙집 풀지붕에 뿌리를 내려 훤한 열매를 맺었습니다.
삶이란 그리 대수롭지 않습니다. 우람하다 싶은 건물을 높디높게 쇠붙이와 시멘트로 올려세워야 비로소 삶이 되지 않습니다. 풀이 자라고 나무가 자라는 밑거름인 흙으로 집을 지어 꾸릴 만한 삶입니다. 풀을 먹고 나무와 어깨동무하며 하루하루 누릴 만한 삶입니다.
삶이란 참 대수롭습니다. 해마다 새로운 풀이 돋습니다. 해마다 새 잎과 새 꽃이 나뭇가지마다 가득합니다. 해마다 싱그러이 피어나는 새봄이요, 해마다 짙푸르게 우거지는 들판입니다. 아이들은 새로 태어나고, 늙은 어버이는 조용히 숨을 거두어 흙으로 돌아갑니다. 사랑스러운 사람들이 새 목숨을 잇습니다. 사랑 누린 사람들이 따사로운 흙 품에 안깁니다. 가만히 돌고 도는 좋은 삶이기에 대수롭습니다. 찬찬히 이어가는 삶이기에 대단합니다. 쓰레기나 빚이나 돈이나 아파트나 자가용 아닌 사랑과 믿음과 꿈과 마음과 생각을 잇는 삶이기에 아름답습니다.
1912년 옛사람과 1512년 옛사람과 1012년 옛사람과 512년 옛사람과 12년 옛사람은 흙집 처마 제비를 어떤 눈길로 바라보며 어떤 삶을 누렸을까 천천히 곱씹습니다. (4345.5.1.불.ㅎㄲㅅ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