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래기계 한 달
빨래기계를 쓴 지 한 달이 지난다. 빨래기계 안 쓰던 때에는 하루에 세 차례씩 빨래를 했지만, 이제 하루에 한 차례만 한다. 빨래기계로 하루에 세 차례 하자니 물이랑 전기가 아깝기도 하지만, 한꺼번에 몰아서 하기로 한다. 한꺼번에 몰아서 빨래를 하자면, 비오는 날에는 꽤 애먹는다. 그러나 이제 둘째가 제법 자랐으니 기저귀 빨래가 몇 장 줄어 이럭저럭 비오는 하루를 보낼 수 있기도 하다.
기계를 빌지만 빨래는 언제나 내 몫이다. 기계를 쓰면 일손을 덜어 다른 데에 더 마음을 기울일 만하지 않겠느냐고 흔히들 말한다. 참말 이와 같은지 나는 하나도 모르겠다. 기계를 쓰기에 내 일손이 더 줄어드는지 안 줄어드는지 외려 느는지 도무지 모르겠다. 다만, 기계를 빌어 빨래를 하니, 내 손발가락 트는 일이 많이 줄어든다. 그렇다고 집일을 하며 물을 적게 만지지 않는다. 힘들거나 고되거나 졸립거나 벅찬 날에는 몇 시간 내리 물을 만지며 집일을 하자니 손끝부터 발끝까지 지릿지릿 저린다. 손가락에 물이 마를 새 없으니, 젖은 손으로 책을 쥘 수도 없다.
그러면 내 손은 왜 물이 마를 새 없을까. 참 마땅하지만, 사람이 빨래만 하며 살겠는가. 밥도 하고 청소도 하고 이것저것 한다. 한 아이는 똥을 누고 한 아이는 무어가 엎지른다. 한 아이를 밥먹이고 한 아이하고 논다. 둘째가 기저귀에 똥을 누든 첫째가 오줌그릇에 똥을 누든 물을 만진다. 개구지게 먹어 옷이며 입이 지저분해진 아이들 입을 씻긴다. 설거지를 한다. 죽을 끓인다. 죽 그릇을 설거지한다. 개수대와 밥상을 닦는다. 밭일을 마치고 손을 씻는다. 이래저래 물을 만진다. 목이 말라 물을 마시고 땀을 훔치려 낯을 씻는다.
빨래기계 한 달을 지내며 생각한다. 기계가 있대서 더 느긋하거나 홀가분하지는 않다. 그러나, 마음은 좀 가볍다. 나 스스로 내 삶을 온갖 일거리로 짓누를 때에는 내가 아무리 빨래를 좋아하거나 즐긴다 하더라도 고단한 굴레가 될밖에 없다고 느낀다. 아이 죽 먹이기도 즐기고, 아이를 무릎에 누여 재우기도 즐기며, 아이하고 노래부르거나 그림그리는 나날을 즐겨야지. 아이하고 걷는 들길을 즐기고, 옆지기가 나무라는 말을 즐기며, 뻑적지근한 등허리와 팔다리를 즐겨야지. (4345.4.28.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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