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끼 드롭스 2
우니타 유미 지음, 양수현 옮김 / 애니북스 / 2008년 3월
평점 :
품절



 밤에는 밖에 못 나가지 싶다
 [만화책 즐겨읽기 136] 우니타 유미, 《토끼 드롭스 (2)》

 


  아이와 함께 살아가는 일을 헤아리지 않는 사람이 아주 많습니다. 온누리 모든 어른은 모두 어린이로 지낸 나날을 거쳐 어른이 되지만, 막상 어른이 된 뒤에 어린이 삶을 아끼거나 헤아리는 마음을 건사하는 사람은 뜻밖에 몹시 적습니다. 곰곰이 살피면, 오늘날 초·중·고등학교에서 어린이 삶을 지키는 일이란 없다고 느낍니다. 초·중·고등학교 교사뿐 아니라, 학교에 아이를 보내는 어버이 또한 어린이 삶을 지키자고 생각하지 못하기 일쑤라고 느낍니다.


  아이가 시험성적 잘 나오도록 이끄는 일은 교육이 아니고 양육도 아닙니다. 아이가 더 높은 학교에 더 높은 성적으로 들어가도록 이끄는 일은 사랑도 아니고 믿음도 아닙니다. 아이한테 시험공부 익히도록 하는 일은 ‘시험공부 길들이기’입니다. 아이한테 삶을 가르칠 때에 비로소 ‘가르침’입니다. 아이가 사랑을 느낄 수 있도록 함께 살아갈 때에 비로소 ‘사랑’입니다.


- “저기, 나 부엌칼 갖고 싶어.” “뭐? 아직 이른데.” “안 일러! 텔레비전 보면 애들도 요리한단 말이야! 어린이 용도 팔아.” “진짜? ……. 넌 요리하는 게 재밌냐?” “응!” “생각해 볼게.” “뭐야∼.” (45∼46쪽)
- “안아 주기 정도야 앞으로도 얼마든지 해 줄게.” (204쪽)

 

 


  면소재지나 읍내에 마실을 나가고 보면, 고작 초등학생밖에 안 된 아이들이 과자나 빵을 먹고는 비닐 껍데기를 뒤에 톡 던집니다. 중학생이나 고등학생도 초콜릿 껍데기이든 무어든 아무렇지 않게 버립니다. 골목이나 빈터에서 몰래 담배를 태우는 푸름이 또한 꽁초를 아무 데나 버립니다. 어쩜, 이 아이들이 이렇게 쓰레기를 버리는가 슬프지만, 이 아이들을 낳고 키우며 가르친다 하는 어른 모두 아무렇게나 쓰레기를 버리겠지요. 둘레에서 함께 살아가는 어른들부터 말과 넋과 삶 모두 아름다이 여미지 못하겠지요.


  아이들이 사투리, 곧 고장말을 쓰는 까닭은 둘레에서 함께 살아가는 어른들이 고장말, 곧 사투리를 쓰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은 사투리(고장말)를 쓰는 사람으로 태어나지 않아요. 둘레 어른들이 말씨를 이끕니다. 아이들이 서울말을 쓰는 까닭은 서울에서 태어났고, 둘레에서 마주하는 어른이 서울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이 거칠게 말하거나 마구잡이로 말하는 까닭은, 아이들 어버이와 둘레 어른과 학교 교사 모두 거칠게 말하거나 마구잡이로 말하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이 사랑스레 말하거나 곱게 말할 줄 안다면, 아이들 어버이와 둘레 어른과 학교 교사 모두 사랑스레 말하거나 곱게 말할 줄 알기 때문이에요.


  학교에서는 딱히 교과서가 있을 까닭이 없습니다. 교과서 없어도 되는 배움터입니다. 교사 모습이 곧바로 교과서이니까요. 어버이 삶이 고스란히 교과서 구실을 하니까요.


  집에서 어버이가 꾸리는 여느 살림이 아이들한테 교과서입니다. 학교에서 교사가 여느 때에 내뱉는 말마디가 아이들한테 교과서예요. 아이들이 멋을 부리려 한다면, 어버이와 교사가 멋을 부리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이 돈에 눈이 돌아간다거나, 동무를 괴롭힌다거나, 슬프거나 못난 짓을 한다면, 어버이와 교사부터 돈에 눈이 돌아가거나 이웃을 괴롭히거나 슬프거나 못난 짓을 하기 때문이에요.

 

 


- “고맙지만 이거, 나 아무래도 밤에는 밖에 못 나가지 싶다. 아직 여섯 살이거든. 우리 집 애.” “카, 카와치 선배, 혹시 그 후로 한 번도 술자리 못 갔어요?” “응. 아예 밖에 못 나간다니까. 가끔 집에서 혼자 찔끔 마시는 게 다야.” (54쪽)
- ‘또 혼자 낑낑대면서 준비해야 하나. 그나저나 초등학교는 어떻게 하면 들어갈 수 있지? 동사무소 같은 데 가 봐야 하나? 책상은 또 어디서 산담? 초등학생 정도 되면 여자애들은 자기 방 따로 쓰고 그러지 않나?’ (76쪽)
- ‘그러니까 어른이 지켜봐 줘야 하는 거 아닌가요? 혹시 어린애니까 안 좋은 기억도 언젠가 잊어버릴 거라 생각하고 린을 버리고 간 거라면, 나는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마사코 씨 당신을 미워할 겁니다. 최소한 어쩔 수 없는 사정이라도 있었다면 좋겠는데, 하지만 자기 자식을 버릴 만한 사정이란 게 대체 뭐지?’ (122∼123쪽)


  아무리 우악스럽던 사람이라 하더라도 아이를 낳아 함께 살아갈 때부터 몸가짐을 고치기 마련입니다. 제아무리 집 바깥에서 나쁜 짓을 일삼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집으로 돌아와서 아이 앞에 마주설 때에는 한껏 따사로운 얼굴과 말씨와 모습을 보여주려 애쓰기 마련입니다. 어버이가 아이한테 보여주는 모습이 아이한테 낱낱이 스며드니까요. 아이는 제 어버이 사랑부터 받아먹으니까요. 아이는 어버이 사랑과 둘레 이웃 사랑을 나란히 받아먹을 때에 무럭무럭 자라니까요.


  사랑을 못 받아먹는 아이는 다른 모습을 받아먹습니다. 이를테면, 미움을 받아먹을 수 있습니다. 괴롭힘이나 슬픔을 받아먹을 수 있습니다. 짜증이나 골부림을 받아먹을 수 있습니다. 등치기나 시샘을 받아먹을 수 있습니다. 아이가 무엇을 받아먹으며 살아가도록 하는가는, 오로지 어버이한테 달립니다. 여기에, 학교 교사한테 달립니다. 어버이가 슬기롭지 못하다면 학교 교사가 슬기로울 수 있어야 합니다. 학교 교사가 슬기롭지 못하다면 어버이가 슬기롭게 몸과 마음을 추슬러야 합니다.


  둘 모두 어긋날 때에 아이들은 고단합니다. 둘 모두 어긋나기 일쑤인 터라, 오늘날 이 땅 아이들이 자꾸 엇나거나 슬픈 짓을 일삼습니다.


- “뭐? 영어학원? 그런 델 다녀? 니네 애 아직 우리 말도 제대로 못 하잖아. 두 살이라고 했었지?” “네, 전혀 못 하죠. 뭐, 저도 마찬가지지만. 마누라가 이상하게 삘 받아서요. 무서울 정도라니깐요. 자기는 우리 나라 책도 매끄럽게 못 읽으면서.” (59쪽)
- “지금은 코우키한테 제 입장만 강요하고 있는 셈이니까, 쉬는 날만큼은 둘만의 시간을 보내고 싶어서, 우선은 장래보다 코우키의 현재를 지켜봐 주고 싶어요.” (65쪽)
- ‘지금의 린과의 시간, 지금 린이 좋아하는 일, 이라. 그래, 장래 일도 중요하지만, 지금 그 녀석에게는 나밖에 없으니까, 그 사실만은 잊지 말자.’ (68∼69쪽)

 

 


  아이들은 모두 하느님으로 태어난다고 했습니다. 오늘날 이 지구별 모든 아이들은 모두 하느님이란 셈입니다. 게다가, 나 또한 하느님으로 태어났어요. 내 옆지기도, 내 이웃도, 내 동무도, 한 마을 누구나, 이 나라 누구라도 하느님으로 태어났어요. 끔찍하다 싶은 정책을 마구 밀어붙이는 정치꾼이라 하더라도 맨 처음에는 하느님으로 태어났습니다. 전쟁무기 끝없이 만들 뿐 아니라 군부대를 더 늘리려 하는 사람 또한 꽃등에는 하느님으로 태어났어요.


  착한 일을 즐기며 참다운 삶을 누리는 어른만 하느님으로 태어나지 않아요. 궂은 일에 허덕이며 미운 짓으로 제 살 갉아먹는 어른 또한 하느님으로 태어났어요.


  다만, 스스로 하느님으로 태어난 줄 잊습니다. 스스로 하느님으로 태어난 기쁨을 맛보지 못합니다. 스스로 하느님으로 태어났으나, 막상 하느님답게 사랑을 꽃피우는 길을 어버이와 교사와 이웃 누구도 열거나 베풀지 못합니다.


  그런데, 내가 어른이 되기까지 내 가슴속 하느님 넋이 살아나지 못했다 하기에, 내 아이 또한 이 아이 가슴속 하느님 넋이 살아나지 못하게끔, 어버이로서 바보짓을 하는 일이란 아름답지 않아요. 내가 어른이 된 오늘날까지 사랑보다 미움을 더 받았다 하더라도, 사랑보다 슬픔을 더 많이 받아먹었다 하더라도, 나는 내 아이한테 사랑을 나누어 주고 싶어요. 나는 내 아이가 사랑을 받아먹으며 무럭무럭 자라기를 빌어요. 내가 틀림없이 받았을 테지만 제대로 되새기지 못하는 사랑도 내 아이가 물려받고, 내가 어렴풋하게 떠올리는 고마운 사랑도 내 아이가 이어받기를 빌어요.

 

 


- “저기, 린 얘기로는 밤에는 당신 집에서 둘이 같이 있었다던데요.” “네.” “그런데 당신은 밤에 외출을 했었다고요?” “아, 제가 말한 밤이란 건 한밤중이에요. 린이 잠들고 난 후에. 그것도 아주 가끔. 소이치 씨가 봐줄 때도 있었고.” “아이만 집에 남겨 놓고 외출하면 법에 저촉되는 나라가 있다는 건 아십니까?” “그, 그건 외국 얘기고, 여긴 일본이잖아요?” “저는 법적인 책임을 묻는 게 아닙니다. 린은 아직도 한밤중에 종종 깨곤 해요.” (160∼161쪽)
- “제 생각에는 남이 멋대로 정해 버리는 게 더 잔인해요. 우선 린 생각을 자세히 들어 보고, 그 다음에 둘이 함께 결정할 겁니다.” (172쪽)


  우니타 유미 님 만화책 《토끼 드롭스》(애니북스,2008) 둘째 권을 읽습니다. 커다란 도시에서 돈을 더 벌어들이는 일에 빠지기만 했을 뿐, 정작 삶도 사랑도 사람도 헤아리지 않고 지내던 서른 살 가까운 사내가 갑작스레 어린이를 하나 떠맡은 나날을 보내며, 참 여러모로 갈팡질팡합니다. 첫째 권 못지않게 이래저래 부딪히고 깨집니다. 그러나, 이렇게 갈팡질팡하면서 그리 버거워 하지 않아요. 갈팡질팡하는 나날이지만 날마다 새롭게 거듭납니다. 늘 갈팡질팡하면서 이제껏 이녁이 제 어버이한테서 얼마나 깊고 너르며 좋은 사랑을 물려받았는가를 깨닫습니다. 이제껏 받은 사랑뿐 아니라, 앞으로 누리고픈 사랑을 ‘갑작스레 떠맡은 아이’가 앞으로 오래오래 누리면서 어여삐 자랄 수 있기를 꿈꿉니다.


  참 좋구나, 하고 생각하다가 내 자리를 돌아봅니다. 만화책에 나오는 서른 살 가까운 사내가 보여주는 삶이 좋다고 여긴다면, 나부터 내 삶자리에서 우리 살붙이들하고 어울리는 하루하루를 참말 좋게 여기며 기쁘게 누릴 노릇이로구나 하고 생각합니다. 아이들이 받아먹을 가장 좋은 밥이 무엇인가를 날마다 새로 돌아보고 찬찬히 되새겨야겠다고 느낍니다. 아이들이 받아먹을 가장 좋은 밥이라면, 어버이 또한 즐겁게 받아먹을 좋은 밥이 되겠지요. 아이들이 누릴 가장 좋은 삶이라면, 어버이부터 스스로 누릴 가장 좋은 삶이 될 테지요.


  좋은 길을 걷고 좋은 생각을 하며 좋은 날을 누릴 사람입니다. 좋은 터를 닦고 좋은 마을을 이루며 좋은 살림을 꾸릴 사람입니다.


- ‘이때 이미 난, 린이 독립하고 나면 외로워지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72쪽)
- ‘요 몇 달 간, 내 안에서 소중한 것들의 비율이 완전히 바뀌어 버린 것 같다. 단지 그것뿐이다.’ (82쪽)

 


  어린이와 함께 지내는 나날을 보내야 하는 어른은 이제부터 ‘밤마실’을 못합니다. 동무들과 얼크러져 푹 빠지던 술마시기도 못합니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납니다. 회사일도 줄입니다. 집안일에 더 마음을 쏟습니다. 아이하고 나눌 이야기를 생각하고, 아이가 기쁘게 여길 꿈을 그립니다.


  이 땅 모든 어른이 어린이였다면, 곧 이 땅 모든 어른이 ‘하느님으로 태어난 어린이’였다면, 어른들 둘레에서 무럭무럭 자라나는 ‘하느님으로 태어난 어린이’가 어떤 나라를 누리고 어떤 터전에서 어떤 사랑을 받아먹을 때에 참으로 아름다울까 하고 생각하기를 빕니다. 아이들이 누릴 좋은 삶과 마찬가지로, 어른들부터 누릴 좋은 삶이란 어떤 모습인가 하고 꿈으로 그릴 수 있기를 빕니다.


  꿈을 꾸지 않으면 삶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꿈을 꾸는 삶을 사랑하지 않으면 내 하루가 즐겁지 않습니다. (4345.4.3.불.ㅎㄲㅅㄱ)


― 토끼 드롭스 2 (우니타 유미 글·그림,양수현 옮김,애니북스 펴냄,2008.3.28./8000원)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마녀고양이 2012-04-03 10: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끔 딸아이 입에서 제 말투가 튀어나오는 것을 보면
움찔 놀라기도 하고 재밌기도 하고 큰일났다 싶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된장님의 글 중간에, 현재의 삶에 대한 만족이 아름다와보입니다.
모두 동일하게 살 수는 없지만, 된장님의 강한 의지와 신념이 저는 항상 존경스럽습니다.
건강 챙기셔요, 환절기 감기 무섭다고 하네요.

숲노래 2012-04-04 07:06   좋아요 0 | URL
모두들 좋은 삶 누리면 기쁘겠고,
저도 하루하루 좋은 나날 누려야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