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사랑소리 3
우사미 마키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09년 4월
평점 :
절판
사랑하는 길
[만화책 즐겨읽기 116] 마키 우사미, 《사랑 소리 (3)》
우리 네 식구는 처음부터 시골마을에서 살아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우리 네 식구는 어엿하게 시골사람입니다. 시골마을에 시골집을 얻어 시골살이를 하니까요.
우리한테 흙을 일굴 땅뙈기가 아직 얼마 없을 뿐더러, 아직 우리 손으로 푸성귀를 심고 길러 먹지 못하지만, 즐겁게 시골살이를 합니다. 빈터는 차근차근 갈아엎어 일구면 되고, 씨앗은 날이 차츰 따스해지는 흐름을 살펴 하나하나 심으면 돼요.
해가 기울어 멧등성이 너머로 넘어가는 저녁 무렵부터 온 마을이 조용합니다. 새들 지저귀는 소리는 잠들고, 나뭇가지와 새잎이 바람에 나부끼는 소리는 퍽 고요합니다. 달빛을 받으며 흐르는 구름을 올려다봅니다. 별빛을 먹으며 부는 바람을 뺨으로 느낍니다. 이대로 방문을 살며시 닫고 모두들 이부자리에 들면, 더없이 깜깜하고 더없이 한갓진 꿈나라로 접어듭니다.
우리를 시끄럽게 하는 자동차가 없습니다. 우리를 잠 못 들게 하는 가게들 노랫소리나 불빛이 없습니다.
밤하늘 사이를 삣삣 작은 소리 내며 날아가는 밤새를 느낍니다. 어디에서 어디로 날아가는가 하고 가만히 어림합니다. 봄이 되어 졸졸 소리 구성지게 내며 흐르는 냇물을 느낍니다. 이 냇물은 어느 멧줄기에서 비롯해서 이렇게 논과 논 사이를 흐르는가 하고 어림합니다.
그리 멀지 않은 옛날, 이 시골마을에 젊은이들 넘쳐 아이들 낳고 복닥복닥 얼크러지던 때에는, 저녁나절이 어떠했을까 헤아립니다. 할머니 할아버지 어머니 아버지 나 언니 오빠 형 동생 누나 자그마한 집 자그마한 방에서 보내는 밤이란 어떤 모습 어떤 이야기일까 헤아립니다.
- “왜 자꾸 이런 시간에 나오고 그래.” “그보다 너, 기껏 힘들게 만나러 왔는데 기쁜 표정 좀 지으면 안 돼?” (8쪽)
- “작년엔 별똥별에게 빌 소원이 없었지만 올해는 있어. 소원. 너랑 언제까지나 함께 있게 해 달라고 빌 거야.” (145쪽)
무엇을 꿈꾸는 하루일까요. 무엇을 사랑하는 하루일까요. 시골마을에서는 무엇을 꿈꿀 수 없었기에, 이렇게 도시로 떠나고, 도시에서도 더 큰 도시로 떠나야 할까요. 시골마을에서는 무엇을 사랑할 수 없다고 여겨, 이처럼 도시로 빠져나가고, 더 커다란 도시로 빠져나가야 할까요.
도시에서 일거리 찾아 살림을 꾸리는 사람들은 날마다 무엇을 꿈꾸는지 궁금합니다. 도시에서 보금자리 마련해 아이를 낳아 돌보는 사람들은 날마다 무엇을 사랑하는지 궁금합니다.
꿈은 무엇일까요. 사랑은 무엇일까요. 꿈은 어떻게 이루나요. 사랑은 어떻게 이루나요.
삶은 무엇인가요. 삶은 어떻게 누리나요. 삶을 사랑하는 길이란 어떠한가요. 삶을 즐기는 사랑이란 어떤 모습인가요.
- “대체 이까짓 게 뭐라고, 왜 그런 짓을 해?” “그야 너네 아빠가 사준 소중한 휴대폰이니까. 난 그냥 널 위해서.” “그게 문제가 아니잖아! 하마터면 죽을 수도 있었다고!” “괜찮아. 그렇게 큰일도 아니고. 별로 무섭지도 않았어. 이치고? 우는 거야?” “난 무서웠단 말야. 네가 눈앞에서 사라질까 봐. 네가 없어지는 줄 알고. 너무너무 무서웠어. 근데 어떻게 큰일이 아니라고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거야? 바보, 멍청이. 정말 날 위한다면 다시는 그런 짓 하지 마. 날 위해서, 좀더 자신을 소중히 하란 말야.” (33∼35쪽)
마키 우사미 님 만화책 《사랑 소리》(대원씨아이,2009) 셋째 권을 읽으며 돌이킵니다. 사람이 ‘사람인 나’와 ‘사람인 너’를 사랑하는 길은 어디에서 비롯해 어디로 흐르며 어디에서 이루어지는가를 돌이킵니다.
내가 고운 사람이라고 느낀다면 네가 고운 사람이라고 느낄까요. 내가 참다운 삶을 즐긴다고 느낀다면 네가 즐길 참다운 삶도 느낄까요. 내가 빛나는 사랑을 아낀다면 네가 아낄 빛나는 사랑을 느낄까요.
- ‘여기 원래 있던 건 엄마 사진? 뜯겨진 자국, 찢어진 페이지. 아파 보여.’ (71쪽)
- ‘아직은 물을 수 없지만, 언젠가 코우키는 꼭 모든 걸 얘기해 줄 거야. 난, 난 그렇게 믿어.’ (154쪽)
아침부터 저녁까지 신나게 뛰어노는 아이 볼이 발갛습니다. 아이 볼을 내 두 손으로 살살 어루만집니다. 땀이 여러 차례 흐르다가 말랐습니다. 아이 낯과 손을 씻깁니다. 하도 신나게 놀아 이제 놀 기운이 거의 다 떨어진 듯한 아이는 자꾸 품에 안기려 하고, 자꾸 무릎에 누우려 합니다. 이 아이를 무릎에 받혀 하늘을 날게 놀리다가, 그림책 몇 권 펼쳐 읽다가, 무릎에 누여 노래를 부르다가, 앞이마를 쓰다듬다가, 문득 머리카락 또한 온통 땀투성이였다가 말랐다고 느낍니다. 곧 곯아떨어질 아이를 일으켜 씻길 수는 없고, 이듬날 아침에 일어나면 씻겨야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래, 아이는 실컷 놀아야 즐거운 하루입니다. 아이가 날마다 이것도 배우고 저것도 익힐 때에 새삼스레 누릴 즐거움이 틀림없이 있을 테지만, 아이는 아이답게 더 뛰고 더 놀며 더 겪어야 한껏 즐거우리라 봅니다.
아버지나 어머니가 뒤꼍 땅뙈기에 밭을 일구려고 괭이질을 하는 곁에서 호미질을 하다가 이윽고 호미를 집어던지고 흙바닥에 퍼질러 앉아 흙놀이를 하는 아이 모습이 어여쁩니다. 누나가 퍼질러 앉은 흙바닥 쪽으로 척척 기어서 다가오며 함께 놀고파 하는 둘째 모습이 귀엽습니다.
딱딱하게 굳은 흙은 괭이로 파고 가래로 고릅니다. 아이들 똥오줌을 모아 거름으로 섞어야지요. 하늘이 내리는 빗방울 선물을 받아 흙이 천천히 살아나도록 북돋아야지요. 네 식구 즐겁게 먹을 푸성귀를 꿈꾸며 온갖 씨앗 골고루 심어야지요. 좋은 햇살과 좋은 물과 좋은 바람 머금으면서 좋은 열매 흐드러지는 좋은 텃밭을 꿈꾸어야지요.
- “그거 알아? 이 고양이도 이치고가 준 거래.” “뭐?” “걱정 안 한다면 거짓말이겠지. 하지만, 코우키가 스스로 이제까지와 다른 사람으로 변하고 싶어한다면, 엄마는 그 두 사람을 예쁘게 지켜봐 줄 생각이야.” (156∼157쪽)
- ‘아, 그렇구나. 나란히 걸을 수 있게, 코우키가 늘 내 보조를 맞춰 줬던 거야.’ (162쪽)
사람으로 태어나 살아가는 보람이라면, 사랑하는 길을 느끼는 나날이리라 생각합니다. 내 사랑을 느끼며 좋고, 네 사랑을 나누며 좋습니다. 밥 한 끼니를 차릴 때에 사랑을 담으며 좋습니다. 밥 한 끼니를 먹을 때에 사랑을 느끼며 좋습니다. 서로 마주앉아 주고받는 이야기에 사랑이 묻어난다면 좋습니다. 사랑스레 풀이 돋고 꽃이 피는 논둑을 걷고 멧길을 걷는 일이 좋습니다. 따스한 바람과 함께 찾아드는 따스한 빗줄기 소리가 좋습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라면 어느 하나라도 언제나 좋겠지요. 나부터 스스로 좋게 느끼고, 곁에서 나란히 좋게 맞아들이겠지요.
아침노을이 반갑습니다. 저녁노을이 고맙습니다. 하얗게 밝는 새날이 즐겁습니다. 까맣게 지는 하루가 아름답습니다. 오늘은 오늘만큼 즐길 사랑이 있습니다. 어제는 어제대로 누린 사랑이 있습니다. 글피에는 글피대로 꿈꿀 사랑이 있습니다. 아이도 어버이도 사랑을 먹습니다. 어린이도 어른도 사랑을 베풉니다. (4345.3.30.쇠.ㅎㄲㅅㄱ)
― 사랑 소리 3 (마키 우사미 글·그림,서수진 옮김,대원씨아이 펴냄,2009.5.15./42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