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든 동백꽃에 하얀 눈얼음
[고흥살이 6] 마당에서 자라는 나무 한 그루
네 식구 고흥 살림집에는 후박나무와 동백나무와 산초나무가 마당가에서 자랍니다. 이 집에서 예전에 살던 할머니가 심어 돌본 나무들입니다. 산초나무에서 얻은 열매를 빻아서 국에 넣어 먹어 보았습니다. 후박나무가 우람하게 자랐기에, 이 후박나무 듬직한 줄기에 빨래줄을 드리웠습니다. 동백나무를 마당에서 늘 바라보며 언제 얼마나 꽃이 피고 지는가를 느낍니다.
따스한 봄을 맞이하면 흐드러지게 피어날 동백나무 동백꽃이라는데, 지난겨울에 몇 송이가 곱게 봉오리를 펼쳤어요. 12월 1일에 첫 봉오리가 터졌고 12월 9일에 두세 봉오리가 더 펼쳤습니다.
그러나 서너 봉오리까지만 터지고 다른 봉오리는 입을 꼭 다뭅니다. 일찌감치 봉오리를 터뜨린 서너 봉오리는 시든 모습으로 겨울을 납니다. 앙 다문 다른 봉오리는 찬바람과 눈바람을 모두 견딥니다. 바야흐로 아주 포근해지는 날씨에 이들 동백꽃이 한꺼번에 봉오리를 터뜨릴 테지요. 차디찬 눈바람이 아닌 포근한 햇살을 오래오래 누리고 싶기에 한겨울 며칠 따스한 기운이 퍼지더라도 봉오리를 터뜨리지 않으며 꾹 참을 테지요.
따스한 남녘땅입니다. 이곳에서 몇 봉오리는 그만 한겨울 들머리에 꽃을 터뜨려 철을 잊었다는 소리를 듣습니다. 철을 앞서갔다 할 수 있고 철을 아랑곳하지 않았다 할 수 있어요. 우리 살림집뿐 아니라 이웃 살림집 동백나무도 일찍 꽃봉오리 터뜨려 일찍 시든 동백꽃이 있습니다. 길가에서 자라는 동백나무도 이와 매한가지입니다. 일찍 터진 꽃은 일찍 시듭니다. 늦게 터지는 꽃은 늦게 시듭니다.
일찍 터져서 일찍 시들기에 더 못나 보이지 않습니다. 느즈막하게 터진대서 더 어여쁘다고는 느끼지 않습니다. 봄을 피어야 제멋이라 하지만, 한겨울에 피어도 제멋이라고 느껴요. 꽃은 활짝 피어 흐드러질 때에도 멋스럽고, 꽃은 파들파들 시들어 쪼그라들 때에도 멋스럽거든요.
어린이는 어린이대로 아름답습니다. 푸름이는 푸름이대로 싱그럽습니다. 젊은이는 젊은이대로 씩씩합니다. 늙은이는 늙은이대로 슬기롭습니다.
몇 달 일찍 봉오리 터뜨린 동백꽃송이를 날마다 바라보며 생각합니다. 이렇게 시들었으니 잎이 곧 떨어지겠거니 생각합니다. 언제쯤 시든 잎이 흙으로 돌아갈까 생각하며 날마다 들여다보는데, 시든 잎이 좀처럼 떨어지지 않습니다. 시든 잎은 찬바람이랑 눈바람을 고스란히 맞습니다. 어쩌면, 다른 꽃봉오리 활짝 터질 봄에도 이 모습 그대로 있을는지 모르고, 다른 꽃봉오리 활짝 터진 다음 하나둘 지며 쪼그라들 때에도 나란히 쪼그라든 모습으로 있을는지 몰라요.
《지는 꽃도 아름답다》(문영이 씀,달팽이 펴냄,2007)라는 책을 떠올립니다. 일흔 넘은 나이에 글꽃을 피운 할머님 삶을 떠올립니다. 《박정희 할머니의 행복한 육아일기》(박정희 씀,걷는책 펴냄,2011)라는 책을 헤아립니다. 아흔 줄에 접어들었어도 그림꽃을 흐드러지게 피우는 할머님 넋을 헤아립니다. 살결이 쪼글쪼글한 할머님들 삶은 그야말로 쪼글쪼글하다 할 만합니다. 신문이나 방송이나 책이나 학교나 문화나 예술이나 정치나 경제나 한결같이 한껏 젊음을 뽐내는 어린 아가씨 허여멀건 몸매와 얼굴에 눈길을 둡니다. 사내이든 가시내이든 더 어려 보이려 애쓰고, 더 젊어지려고 용씁니다.
나이에 걸맞게 슬기로이 살아가는 길을 걸으려 하지 않습니다. 스무 살에는 스물에 걸맞는 삶길이 있고, 서른 살에는 서른에 걸맞는 삶길이 있으며, 마흔 살에는 마흔에 걸맞는 삶길이 있어요. 쉰 살 삶길은 쉰 자락 걸어온 나날로 이룹니다. 예순 살 삶길은 예순 자락 걸어온 나날로 일구어요. 나이를 더 먹었대서 더 슬기롭지는 않아요. 나이가 어리다고 더 풋풋하거나 싱그럽지도 않아요. 삶은 밥그릇으로 따지지 않으니까요. 삶은 하루하루 얼마나 따순 사랑을 나누며 어깨동무했느냐 하는 꿈날개로 보살피니까요. (4345.2.18.흙.ㅎㄲㅅ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