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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과 책 - 한 사진가와 살아온 14권의 사진책들
박태희 지음 / 안목 / 2011년 12월
평점 :
사진을 담는 책을 읽으면서 살아간다
[찾아 읽는 사진책 58] 박태희, 《사진과 책》(안목,2011)
박태희 님이 쓴 《사진과 책》(안목,2011)을 읽습니다. 아주 느긋하게 읽습니다. 무척 빠르게 읽습니다. 매우 보드라이 읽습니다. 참 애틋하게 읽습니다.
나는 이렇게 사진과 책과 사진책을 말하며 웃음짓는 글을 기다렸습니다. 나는 이처럼 삶과 사람과 사랑을 말하며 눈물짓는 글을 바랐어요.
삶을 짓듯 웃음을 짓습니다. 사랑을 짓듯 눈물을 짓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아이를 짓듯 사람들은 사진으로 책을 짓습니다.
“(사진책 한 권에는) 한 사람의 삶이 통과해야 할 수많은 의미의 생성과 소멸 과정을 고스란히 거울처럼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12쪽).” 하는 이야기처럼, 사진에는 책에는 사진책에는 숱한 삶자락에 찬찬히 깃듭니다. 이론으로 밝힌다든지 비평으로 가름한다든지 역사로 따져야 할 사진도 책도 사진책도 아니에요. 예나 이제나 이 땅에서 오늘을 살아가는 나 스스로 사랑하며 아낄 사진이고 책이며 사진책이에요.
1930년대를 살아가던 사람들은 1930년대에 태어난 사진과 책과 사진책을 사랑하며 받아들입니다. 1950년대를 살아가던 사람들은 1930년대에 태어난 사진과 책과 사진책부터 1950년대에 새로 태어나는 사진과 책과 사진책을 나란히 사랑하며 받아들입니다. 2010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1930년대부터 2010년대에 이르는 동안 나고 지는 숱한 사진과 책과 사진책을 두루 돌아보며 사랑하고 받아들여요.
내 할아버지가 지은 사진을 내가 누립니다. 내 할아버지가 나만 한 나이에 지은 사진을 내가 머잖아 할아버지가 되어 누립니다. 내가 오늘 지은 사진을 내 아이가 머잖아 내 나이가 되어 누립니다. 내 아이가 앞으로 지을 사진을 나는 앞으로 할아버지가 되어 누리겠지요.
“사진기를 집어 들어 셔터를 누를 마음이 생기려면 먼저 대상과 공감해야 한다. 누군가의 사진을 볼 때도 마찬가지다. 사진에 찍힌 것과 바라보는 내가 공감하지 않으면 분명 눈으로 보았지만 얼마 후엔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다(29쪽).” 하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사진과 책》은 박태희 님 삶으로 곰곰이 삭힌 꿈과 사랑과 빛이 무엇인가 하고 밝힙니다.
더 나은 사진이란 없으니까요. 덜 떨어지는 사진이란 없으니까요. 모든 사진은 모든 사람들 삶이자 사랑이고 빛이니까요. 어떠한 사진이든 사진을 빚은 사람들 이야기가 알알이 스며드니까요.
때로는 목소리 드높이는 사진이 태어나고, 때로는 목소리 드높이는 글이 태어납니다. 무엇인가를 바라며 외치는 목소리로 가득한 사진이나 글이 있습니다.
아프니까 외치기 마련입니다. 짓밟히니까 소리치기 마련입니다. 빼앗기니까 울기 마련입니다. 사진은 글은 그림은 목소리가 되고 노래가 되며 춤이 됩니다. 있는 그대로 삶인 사진이고 글이고 그림이지만, 때와 곳에 따라서는 온힘을 쥐어짜내는 피울음이 돼요.
그런데, 피울음 되는 사진이든 노래하는 목소리가 되는 사진이든 꾸밈없이 살아가는 넋이 감도는 사진이든, 언제나 튼튼히 다지는 밑바탕 한 가지 있어요. 바로 사랑이에요.
사랑이 있을 때에 글을 써요. 사랑이 있을 때에 그림을 그려요. 사랑이 있을 때에 사진을 찍어요. 사랑으로 짓는 밥입니다. 사랑으로 짓는 옷입니다. 사랑으로 짓는 집입니다. 곧, 우리 모든 삶은 사랑으로 이루어집니다. 사랑 아닌 무엇으로도 삶을 이루지 못합니다. 내 좋은 옆지기도, 내 애틋한 아이들도, 내 고마운 보금자리도, 내 따사로운 마을도, 내 맑은 하늘과 바람과 물과 흙과 햇살도, 온통 사랑입니다.
“그림은 왕이나 귀족, 신화 속의 신들처럼 중요한 사람을 그리고 중요한 사건을 기념했다. 그런데 사진은 그림과는 다르게 익명의 사람을 남겼고 하찮은 것들을 기념했다(54쪽).” 하는 이야기를 곱씹습니다. 그림 가운데에도 ‘대수롭지 않다’는 사람들을 담은 그림이 없지는 않으리라 생각해요. 그러나, 참말 그림은 대장장이 고기잡이 흙일꾼 삶을 찬찬히 담으려 하지 않았어요. 아기한테 젖 물리는 여느 어머니, 부엌에서 불을 때며 솥에 밥을 짓는 할머니, 멧골에서 도끼로 나무를 베고 장작을 패는 아버지, 나물을 뜯거나 캐는 누이, 동생 기저귀를 빨래하는 언니, 짚신을 삼는 형과 같은 여느 자리 여느 삶자락 여느 사람들을 그림으로 담는 일은 아주 드물거나 거의 없어요. 임금이나 사대부를 담는 그림이었습니다. 임금님이 어딘가를 오가는 모습을 담는 그림이었습니다. 궁궐을 담고 성곽을 담는 그림이었지, 여느 흙집과 풀집을 담는 그림이 아니었어요.
그런데 오늘날 한국 사진밭을 돌아볼 때에, 한국 사진쟁이는 얼마나 “하찮은 것들을 기념”하는 사진 자리에 설까요. 얼마나 ‘여느 사람 삶과 삶자락과 사랑을 기리’는 사진 자리에 있나요.
“사진이 보여주는 것은 사진가의 영감으로 이루어진 진실이다(63쪽).” 하는 말은 참 옳다고 느껴요. 사진쟁이가 살아가며 가슴으로 받아들인 꿈과 넋을 사진으로 보여줘요. 글쟁이가 살아가며 가슴으로 아로새긴 꿈과 넋을 글로 들려주겠지요. 노래쟁이가 살아가며 가슴으로 북돋운 꿈과 넋을 노래로 들려주겠지요.
사진은 대단하지 않아요. 글은 대단하지 않아요. 대통령은 대단하지 않아요. 대학교수는 대단하지 않아요. 이리하여, “대통령이 되고 판사가 되고 과학자가 된다고 꿈이 이뤄진 것일까 … 로버트 아담스에게 잃어버린 풍경은 잃어버린 꿈과 같았다(91쪽).” 하는 말처럼, 사진기를 쥔 사람은 사진기로 꿈을 이루는 길을 걸을 때에 즐겁고 아름답습니다. 연필을 쥔 사람은 연필로 사랑을 이루는 나날을 빛낼 때에 즐겁고 아름답습니다.
남한테 보여주는 사진이란 없어요. 나 스스로 내 삶으로 누리는 사진이에요. 남한테 읽히려는 글이란 없어요. 나 스스로 내 삶을 되새기며 즐기는 글이에요.
“잊지 못할 기억을 지닌 모든 이들의 시계는 이렇게 한 순간 멈춰 버릴 수도 있다(144쪽).” 하는 말을 돌아봅니다. “늘 마주하는 일상의 모습에서 ‘난생 처음으로 발견하는’ 아름다움을 담는다는 것은 그 아름다움을 예민하게 발견할 수 있는 눈이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다(156쪽).” 하는 말을 헤아립니다.
내 삶이 있어야 사진이 있습니다. 내 삶이 없으면 사진이 없습니다. 집시들 삶이나 문화를 보여주는 사진이란 없습니다. 집시들과 함께 살아가거나 어깨동무하는 ‘내 삶과 꿈과 이야기’를 보여주는 사진만 있습니다. 철거민 눈물이나 아픔을 보여주는 사진이란 없어요. 철거민들과 함께 살아가거나 스스로 철거민으로 지내는 ‘삶과 이야기’를 보여주는 사진만 있습니다.
사진으로 무엇을 고발할까요. 사진으로 무엇을 외칠까요. 사진으로 무엇을 밝힐까요.
사진은 오로지 ‘내가 살아가는 이야기’입니다. 글은 오직 ‘내가 사랑하는 이야기’입니다. 그림은 그예 ‘내가 숨을 쉬는 하루하루 이야기’입니다.
멀리에도 따로 없고 가까이에도 따로 없는 사진이에요. 커다란 사진감이나 작은 사진감이나 따로 없는 사진이에요. 그러니까, “이 세상에 새로운 것은 아무것도 없다. 문제는 그 스타일이 무엇이든, 그 안에서 표현되는 내용의 결과 질에 달려 있는 것이다(170쪽).” 하는 이야기를 《사진과 책》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사진 기법은 부질없습니다. 사진 장비는 덧없습니다. 사진 갈래는 뜻없습니다. 사진 역사나 사진 계보나 사진 문화나 사진 예술이나 사진 작가나 어느 하나 남달리 돌아볼 만하지 않아요. 오직 하나 사진을 보면 돼요. 오로지 하나 사진에 담는 삶을 보면 돼요. 그예 한 가지 사진에 담는 삶에 감도는 사랑을 느끼며 얼싸안으면 돼요. 사진은 삶에서 태어납니다. 사진은 사랑에서 샘솟습니다. 사진은 사람들 곱고 착한 꿈에서 씨앗을 틉니다. (4345.2.6.달.ㅎㄲㅅㄱ)
― 사진과 책 (박태희 글,안목 펴냄,2011.12.19./25000원)
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