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잠 삶의 시선 17
송경동 지음 / 삶창(삶이보이는창) / 2011년 9월
평점 :
품절


시쓰기도 힘들고 시읽기도 힘겹고
[시를 노래하는 시 12] 송경동, 《꿀잠》

 


- 책이름 : 꿀잠
- 글 : 송경동
- 펴낸곳 : 삶이보이는창 (2006.3.30.)
- 책값 : 8000원

 


 열흘 남짓 입었는지 보름쯤 입었는지 헷갈리는 두툼한 웃옷을 벗은 엊저녁, 새 웃옷을 꺼내 입지 않고 잠들었는데, 반소매 웃통으로 이불 세 겹 덮어쓰고 자다가 내 옆에서 꼬물거리며 이불을 걷어차는 아이한테 내 이불 씌우다 보니 어느새 내 몸을 가리는 이불이 없더니, 그만 밤새 찬바람 많이 마시며 고단한가 하고 고개를 갸웃갸웃합니다. 아침에 일어나 둘째 똥기저귀를 두 벌 빨래하고 나서는 도무지 몸이 버티지 못하겠구나 싶어 자리에 드러눕습니다. 아이 어머니는 당근을 씻어서 알맞게 썬 다음 물을 짭니다. 이럴 때에 곁에서 두 아이를 건사하거나 함께 놀아야 일이 수월한데, 꿈결인지 잠결인지 아스라한 소리만 듣고는 일어나지 못합니다. 눈을 감고 허리를 폅니다.

 

 두 시간을 들뜬 몸으로 뒤척이다가 일어납니다. 두툼한 겉옷을 입습니다. 아이 둘은 어머니 곁에서 알짱알짱 붙어서 칭얼거립니다. 아이 어머니는 두 아이 칭얼거림을 고스란히 받아내며 아침과 낮 먹을거리를 마련합니다. 거꾸로, 아이 어머니가 드러누운 때, 내가 두 아이 먹을거리를 마련하면서 집안을 쓸고닦는 한편, 아이들 옷가지와 기저귀 빨래하는 몫을 기쁘며 홀가분하게 짊어질 수 있었을까 하고 생각합니다.

 

 짊어지기야 하지요. 날마다 이렇게 살아왔으니까요, 다섯 해째. 그렇지만, 활짝 웃는 얼굴로, 싱그러이 노래하는 목소리로, 이 집일을 거느리면서 아이들하고 사랑꽃을 나누었을까 생각하면, 낯이 화끈거립니다.


.. 손톱 밑에 검은 때가 끼어 있던 손 / 괭이가 박혀 있던 손 ..  (손)


 아버지가 깬 뒤 둘째 아이가 셋째 똥기저귀를 내놓습니다. 둘째를 살짝 안고 한동안 어르다가는 똥기저귀를 빨래합니다. 똥기저귀랑 낮에 눈 오줌기저귀를 빨래하는 사이, 둘째 아이는 넷째 똥기저귀를 내놓습니다. 아이 밑을 씻기고 똥기저귀를 새로 빨래하는 김에 오줌기저귀 두 장을 더 빨래하고, 옆지기 두툼한 겉옷 한 벌 나란히 빨래합니다. 후줄근하게 빨래를 마치고 마당가 후박나무 빨래줄에 넙니다. 새벽에 빨래해서 널어 다 마른 옷가지와 기저귀를 걷습니다. 걷은 옷가지는 갤 틈이 없습니다. 똥을 두 차례 더 눈 둘째는 틀림없이 졸릴 테니까요. 옆지기가 둘째를 어르고 나서 먹을거리 마련하기를 더 하는 동안, 아버지는 둘째를 품에 안습니다. 둘째 가슴을 톡톡 다독이고 노래를 부릅니다. 둘째는 눈을 뜨고 감다 되풀이하다가 스르르 감습니다. 옳지 옳지 이제 나이 제법 먹었으니 꼭 어머니 등짝이 아니더라도 얼마든지 곱게 잘 수 있겠지.


.. 우린 흙 묻은 안전화를 끌며 계단을 서성이다 / 후문을 나서 다시 새벽 작업장으로 간다 ..  (저 하늘 위에 눈물샘자리)


 한창 뛰놀며 이른아침부터 늦은저녁까지 같이 놀자고 부르는 첫째 아이를 한동안 무릎에 누여, 얘, 얘, 아버지는 좀 쉬자, 좀 쉬다가 놀자, 너도 책 좀 읽어 주렴, 아버지도 책 읽으며 살짝 쉬자꾸나, 다리도 쉬고 허리도 쉬며 등도 팔도 쉬자꾸나, 이야기하며 시집을 들춥니다. 만화책도 읽고 사진책도 읽고 그림책도 읽습니다. 아이한테 그림책 글을 읽히며 함께 들추기도 하지만, 이제 아이는 그림책 그림을 혼자 말끄러미 바라보기를 조금 더 좋아합니다. 굳이 어떤 말을 살붙이며 들려주지 않더라도 아이 스스로 생각힘을 북돋웁니다. 

 

 아이한테 그림책을 읽히며 때때로 생각합니다. 내 어버이는 나한테 그림책을 읽힌 적이 있나? 내 어버이는 나한테 만화책을 읽힌 적이 있나? 내 어버이는 나한테 동화책을 읽힌 적이 있나? 내 어버이는 나한테 동시책을 읽힌 적이 있나?

 

 나 어릴 적 살던 집에 책이 아예 없지 않았습니다. 빨간빛 딱따구리 100권 넘는 손바닥책이 있기도 했습니다. 돌이키면, 내 어버이 두 분부터 어린 나날 책을 읽으며 자라지 않았겠구나 싶습니다. 내 어버이 두 분은 도시와 시골에서 어린 나날을 바쁘게 부대겼으리라 생각합니다. 종이로 된 책이 없이 삶을 이었고, 종이로 된 책에 아로새기는 이야기가 없이 둘레 살붙이와 이웃과 동무 사이에서 이야기를 듣고 자랐습니다.


.. 그 술집이 있던 닭장 골목 / 그 골목 밀고 이제는 멋진 아파트가 들어선다는데 / 나는 왜 이리 슬픈가. 집을 잃은 아이처럼 ..  (마지막 술집)


 나는 일곱 살 적 무얼 하며 한 해를 보냈는지 거의 떠올리지 못합니다. 하루나 이틀쯤 가까스로 한두 대목 떠올립니다. 나는 여섯 살 적이나 다섯 살 적이나 네 살 적이나 세 살 적을 거의 하루조차, 한 시간조차 떠올리지 못합니다. 이런 내 넋으로 두 아이와 살아가면서 곰곰이 헤아립니다. 우리 아이들이 한 살일 적에 나는 한 살 나이에 내 어버이하고 어떤 나날을 보냈을까 하고. 우리 아이들이 두 살이고 세 살일 때에 나는 두 살 세 살 나이에 내 어버이하고 어느 곳에서 어떠한 보금자리를 누리며 살았을까 하고.

 

 우리 집 아이들은 스무 살이 되고 서른 살이 되고 나서 저희 한 살 두 살 세 살 네 살 적을 떠올릴 수 있을까요. 우리 집 아이들은 마흔이 되고 쉰이 되어 저희 아이들을 낳아 돌보며 무럭무럭 자라는 예쁜 모습 바라보면서 저희 다섯 살이나 여섯 살 모습을 되새길 수 있을까요. 아이들이 먼 뒷날 되새길 저희 어버이 모습, 곧 오늘 내 모습은 어떠한 이야기 나누는 사람일까요.


.. 하고많은 길 중에 내가 걸은 노동자의 길 ..  (길)


 아이와 살아가는 숱한 어버이들이 ‘아이들 새근새근 자는 모습’이 더없이 예쁘며 사랑스럽다 이야기합니다. 나도 내 아이들 새근새근 잠드는 모습이 그지없이 예쁘며 사랑스럽다고 느낍니다. 이 아이들 자는 얼굴 바라보며 웃음을 흘리고 눈물을 짓습니다. 아이들 살몃 감은 두 눈을 바라보며 시가 절로 튀어나옵니다. 아이들 보드라운 볼을 살살 어루만지면서 시를 절로 노래합니다.

 

 문득, 거꾸로, 내가 이 아이들만 하던 어린 나날, 내 어버이가 나를 재우면서 내 어버이도 나를 예쁘며 사랑스럽다 여겼을까 궁금합니다. 그러니까, 그무렵 나는 내 어버이를 보며 나를 재우는 어버이 손길이 언제나 포근하면서 따사롭구나 하고 느꼈는지 궁금해요. 왜냐하면, 예쁘며 사랑스레 잠드는 아이들을 무릎에 누여 토닥토닥 하면서 내 손길과 눈길과 마음길과 말길 모두 보드라우면서 따사롭게 바뀌니까요. 잠든 아이처럼, 재우는 어버이가 예쁘리라 생각해요. 잠든 아이처럼, 재우는 어버이가 사랑스럽구나 생각해요.


.. 김씨가 H빔에서 떨어져 죽고 나서야 / 나는 깜짝 놀랐다 / 고작 시급 3천 원에 목메던 그의 몸값이 / 1억이 넘는다니 도대체 이해가 안 됐다 ..  (뒷빽)


 송경동 님 시집 《꿀잠》(삶이보이는창,2006)을 읽으며 곰곰이 헤아립니다. 송경동 님이 틈틈이 적바림한 글줄을 그러모은 《꿀잠》이라는 시집이 태어나기까지, 참말 시쓰기가 힘들었구나 하고 느낍니다. 우리를 힘들게 하는 팍팍한 울타리와 맞서면서, 힘들게 살림을 꾸리는 사람들을 고단하게 내모는 걸림돌과 부딪히면서, 참으로 힘들게 시를 썼구나 하고 느낍니다.

 

 그런데, 이 힘들게 쓴 시를 읽는 사람 또한 힘겹습니다. 아이들과 하루 내내 복닥이며 집안일을 하고 집살림을 꾸리는 어버이도 참으로 버겁습니다.

 

 시를 쓰기 힘든 이 나라이기 때문에, 시를 읽는 사람 또한 힘겨울밖에 없는 이 나라일까요. 시를 쓰면서 힘들게 이맛살 찡그리고 눈물을 흘려야 하는 슬픈 이 나라인 탓에, 시를 읽는 사람까지 뻑적지근해지는 등허리를 토닥이면서 겨우겨우 한 쪽 두 쪽 읽다가 이내 덮고는 똥기저귀를 빨고 오줌기저귀를 갈며 밥을 차리고 비질을 해야 할까요.


.. 세계는 학살을 하며 / 그게 평화라 하고 / 기생을 자유라 하고 / 굴종을 안녕이라 가르치기에 / 오늘부터는 없는 말 / 태어나지 않은 말들만 / 믿기로 했다 ..  (102쪽)


 어머니들은 하루하루 어떤 삶을 누리면서 아이들을 사랑했을까요.

 

 예나 이제나 앞으로나 어머니들은 하루하루 어떤 꿈을 심으면서 어떤 사랑을 누릴까요.

 

 어머니를 옆지기로 둔 아버지들은 날마다 어떤 일과 놀이를 즐기면서 아이들을 마주할까요.

 

 예나 이제나 앞으로나 아버지들은, 어머니를 옆지기로 둔 아버지들은 날마다 어떤 빛을 가슴에 묻으면서 어떤 사랑을 서로서로 빛낼까요.

 

 남녀평등이고 여남평등이고 성평등이고를 떠나, 2010년대를 넘어서는 이즈음에도 집안일을 여자가 할 때에는 아뭇소리 없습니다. 2020년대를 곧 맞이할 텐데, 2030년대나 2040년대가 되더라도 집안일을 남자가 할 때에는 참 얄궂다는 눈길로 바라봅니다. 혼인을 해서 며느리가 되면 시댁 집안일과 제사까지 맡아야 합니다. 혼인을 해서 사위가 되면 친정마실을 하더라도 그저 손을 놓고 책상다리로 밥과 술과 고기를 받아먹기만 합니다.

 

 삶이란 무엇이고 사랑이란 무엇이며 꿈이란 무엇일까요.


.. 농사는 안 허는디요, 소작 허는디요 / 소작이 농사지 뭐여 웃던 사람들도 / 소작이 무신 농사여 하던 사람들도 조용해졌다 / 아낙의 얼굴에 핀 더운 열꽃 ..  (바닷가 야유회)


 노동자 길을 걸어간 송경동 님은 전라남도 보성군 벌교읍에서 태어났다고 합니다. 이제는 벌교하고 한참 멀디먼 서울바닥에서 노동자와 어깨동무하는 길을 걸어갑니다. 거꾸로, 서울에서 노동자 집안에서 태어나 노동자 길을 걷다가, 전남 보성 벌교로 흙일꾼 길을 걷는다든지, 흙일꾼하고 어깨동무하는 길을 걸을 사람은 있는지 궁금합니다.

 

 모두들 서울로 가고, 또 서울로 몰리며, 또 서울에서 으싸으싸 하면서 나라를 갈아엎으려 하는지 궁금해요.

 

 바깥에 볼일이 있어 전남 고흥에서 시외버스를 타고 벌교읍을 지날 때면, 벌교시장 그득히 늘어선 꼬막장사 할매와 아지매를 바라보곤 합니다. 참말 사람 많고 저잣거리 넓구나 싶습니다. 벌교라 해 봤자 그리 넓지 않은 터에 넓지 않은 갯벌인데, 이 조그마한 벌교 갯벌에서 온 나라 꼬막구이 꼬막무침을 마련하는가 싶어 고개를 갸우뚱하곤 합니다.

 

 하기는. 한국에서 거두는 쌀이 남아돈대서, 시골마을에서 ‘논을 묵히’면 나라에서 돈을 줍니다(직불보상금). 그런데, 막상 한국에서 흙을 일구는 사람은 거의 모두 할머니 할아버지입니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일구는 논밭으로도 ‘쌀이 남아돈다’지만 나라밖에서 새로운 곡식을 사들이고 자유무역협정을 맺으며 자동차와 손전화를 나라밖으로 팝니다.

 

 노동자는 자동차를 구워먹느라 힘들까요. 노동자는 2012년 1월부터 단돈 1만 원이 된 숫젖소 고기를 구워먹느라 버거울까요. 이 나라 노동자들이 설이나 한가위 때처럼, 모두들 일손을 놓고 고향마을 시골로 가서 두 번 다시 서울로든 인천이로든 대구로든 부산으로든 가지 말고 흙하고 어깨동무하고 살아간다면, 파업 아닌 파업으로 온 나라 크고작은 도시를 꼼짝달싹없이 멈추도록 한다면, 군인도 경찰도 공무원도 몽땅 시골마을 고향집으로 돌아가서 텃밭과 무논하고 소꿉놀이를 하면서 온 나라 공공기관과 청와대와 언론사 모조리 멈추도록 한다면, 깊은 밤에도 서울에서 올려다보는 까만 하늘에 뭇별이 반짝반짝 빛나겠지요.

 

 별을 보기 힘드니 시를 쓰기 힘듭니다. 별을 보기 힘겨우니 시를 읽기 힘겹습니다. (4345.1.29.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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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2012-01-29 22: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충격적인 사건이 아닌 다음에는 아이 때 기억은 떠오르지 않는다고 해요. 철 들기 전의 세월들은 그저 부모님의 몫으로 고스란히 묻혀져 버리는 셈이지요. 사랑의 눈으로 찰칵 찰칵 찍힌 자식들의 어린 시절 사진들은 부모님 가슴팍에 새겨져 있겠지요.
저는...드문드문 네 살 때 기억과 여섯 살 때 기억이 나요. 네 살 땐 사랑하는 내 막내동생이 죽을 뻔했구요.그래서 거짓말처럼 그때 일을 생생하게 기억하지요. 아무 기억이 안 난다는 것은 날마다 무탈하고 행복하게 잘 자랐다는 말이 되기도 합니다. 똥 싸고 오줌 싸며 아버지가 어르고 어머니가 젖 먹이고 그 품안에서 소르르 꽃잠 들었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송경동 시인요, 저랑 동갑 시인인데....읽으면 가슴이 참 아파요)

숲노래 2012-01-29 22:53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즐거이 살았기에 떠올리지 못하기도 하는군요.
그래도, 즐거이 살았기에 떠올릴 수 있으면 더 좋겠어요.

송경동 님이 하루하루 더 즐거이 살아가면서
사람들 가슴을 촉촉히 적시는 좋은 꿈을 꿀 수 있기를,
그러니까, 이 나라가 참으로 아름다우며 빛나는
좋은 나라로 차근차근 거듭날 수 있기를 빌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