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도 먹을거리도 책도 꿈도 서울로 보내는
사람이 새끼를 낳으면 서울로 보내야 한다고 말한다. 시골마을에서 자라는 아이들 스스로 시골마을에서 초·중·고등학교를 마치고는 시골마을에서 일거리를 찾아 시골마을에서 뿌리를 내려야겠다고 생각하지 않거나 못한다. 시골마을 아이들은 초등학교까지만 시골에서 다니고, 중학교부터는 이웃한 큰도시로 가기 일쑤이다. 곧, 전남 고흥 시골마을 아이들 가운데 적잖은 아이들은 이웃한 큰도시 순천으로 가고, 광주로 가며, 때로는 경기도 수원이나 아예 서울로 간다. 어느 시골집 아이들은 초등학교부터 일찌감치 서울로 간다. 전남 고흥에는 대학교가 없으니 어차피 가르친다면 더 일찍 더 빨리 시골을 벗어나 도시로 가도록 내몰아야 좋다고 여긴다.
시골마을 사람들 거의 모두 이렇게 사람 새끼들 시골을 떠나 도시로 가도록 하니, 우리 네 식구 시골마을로 깊디깊이 보금자리를 찾아 삶터를 옮긴 일을 바라보며 고개를 갸우뚱갸우뚱 알쏭달쏭하다고 여길밖에 없으리라 느낀다. 그런데, 한참 이야기를 하고 나면, 아이들이 시골마을에서 초·중·고등학교를 마칠 때에 나중에 ‘회사에 들어가 일을 하더’라고 한결 일을 잘 하고, 생각이나 말이 또릿또릿하다고 이야기하곤 한다.
시골마을에는 일거리가 없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이 말은 조금도 옳지 않다. 시골마을에서는 꿈을 키울 수 없다고 이야기한다. 그렇지만, 이 말 또한 하나도 맞지 않다. 시골마을에 일거리가 없을 수 없다. 시골마을 일거리 때문에 시골마을뿐 아니라 크고작은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밥을 먹는다. 시골마을 일거리 때문에 사람들이 밥을 먹고 옷을 입으며 집을 짓는다. 시골마을 일거리가 아니라면 사람들 모두 굶어죽거나 헐벗거나 추위에 떨어야 한다. 시골마을이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꿈을 꾸고 사랑을 나누며 믿음을 주고받을 수 있다.
시골마을은 돈벌 구멍이 없다고 말해야 조금 맞을 동 틀릴 동 하다. 그러나, 돈벌 구멍이라고 해 봐야, 크고작은 도시는 공무원 일거리라든지 회사원 일거리가 있다뿐, 사람들 스스로 어버이한테서 받은 고운 목숨을 어여삐 북돋우는 착한 일거리가 참말 있다고 할 만한지 나로서는 잘 모르겠다.
패션디자이너가 좋은 일거리일까, 좋은 꿈일까. 여행가이드가 좋은 일거리일까, 좋은 꿈일까. 물리학자나 화학자가 좋은 일거리일까, 좋은 꿈일까. 대학교수나 스튜디어스가 좋은 일거리일까, 좋은 꿈일까. 버스기사나 기술자나 정비사나 연구원이나 공장 임노동자가 좋은 일거리일까, 좋은 꿈일까. 의사나 검사나 판사나 약사나 간호사나 변호사나 법무사나 회계사가 좋은 일거리일까, 좋은 꿈일까.
시골마을 어르신들 스스로 얼마나 아름다우면서 좋고 어여쁜 일을 하며 살아가는지를 좀처럼 못 느끼는구나 싶다. 시골마을 어르신들 스스로 흙을 만지고 흙을 밟으며 흙을 먹고 마시는 일이 얼마나 사랑스러우며 보람찬가를 제대로 못 느끼는 나머지, 자꾸자꾸 흙에 비료를 치고 풀약을 뿌리며 시멘트나 아스팔트를 깔며 기계를 부리는구나 싶다.
밤하늘 별과 미리내를 밀어내고 전깃불을 밝혀야 문명이나 문화나 발전이나 개발이나 진보가 될까. 낮하늘 구름과 무지개를 몰아내고 자가용을 싱싱 달려야 문명이나 문화나 발전이나 개발이나 진보가 되나. 양복을 차려입고 구두를 또각이며 가죽가방을 한손에 들어야 문명이나 문화나 발전이나 개발이나 진보가 되는가.
사람도 먹을거리도 책도 꿈도 서울로 보내는 마당에, 우리 네 식구는 인천을 떠나 충청북도 멧골자락으로 들어갔다. 멧골자락에서 한 해를 지낸 뒤 큰도시 서울이랑 한참 더 멀어지는 전라남도 시골마을로 들어왔다. 시골마을로 들어온 뒤 어린 두 아이 건사하랴 집일 하랴 여러모로 눈코 뜰 사이 없는 나날이다 보니, 나 또한 좀처럼 흙 밟으며 아이들이랑 못 놀고 만다. 이런 나날이라면, 시골로 온 보람이 무엇 있으랴 싶지만, 보금자리를 찬찬히 손질하고 가다듬느라 몇 달은 이럭저럭 견디자고 생각해 본다. 차근차근 우리 네 식구 일머리와 살림살이를 추스르며 시골마을 흙바람 흙내음 고이 누리자고 생각한다. 아침에 신나게 빨래를 마치고 이모저모 토닥거리고 나서는, 뒤꼍 땅뙈기를 돌보고 흙길 밟는 마실을 즐기자고 생각한다. 풀을 밟고 풀을 뜯고 풀을 먹고 하늘과 구름과 멧등성이와 바다를 바라보고 큰숨 들이마시자고 생각한다.
삶이란 무엇이고, 꿈이란 무엇이며, 사랑이란 무엇일까. 일이란, 돈이란, 사람이란, 삶터란, 집이란, 옷이란, 밥이란, 이야기란 무엇일까.
나는 어린 나날부터 ‘사람은 나면 서울로 보내고, 말은 나면 제주로 보낸다.’ 하고 읊는 말마디가 참 못마땅했다. 사람을 왜 서울로 보내야 하나.
하루하루 자라면서 바라보면, 이 나라에서는 사람만 서울로 보내지 않는다고 느꼈다. 사람을 비롯해 좋다 하는 먹을거리이든, 샘물이든, 종이이든, 물고기이든, 나물이든, 모조리 서울로 보낸다고 느꼈다. 온통 서울로 쏠린다. 무엇이든 서울로 빨려든다. 그러고는, 서울에서는 이 모두를 아무렇게나 휘저어 쓰레기를 만들고는 이 쓰레기를 시골로 ‘내려보낸’다. 서울은 시골에서 받아들인 온갖 열매 알맹이만 살짝 빨아먹고는 찌꺼기를 된통 시골로 ‘내다 버린’다.
나는 어린 나날부터 ‘사람을 서울로 보내면 쓰레기만 만드는 바보를 만든다’고 느꼈다. 나부터 서울에서 아홉 해를 살던 지난날, 서울에서 살아가던 나는 쓰레기를 만들어 버리는 바보로 지냈다고 깨닫는다.
사람은 나면 시골로 보내야 할 뿐 아니라, 사람을 낳은 어버이가 저희 새끼하고 오붓하게 시골에서 보금자리를 틀어야 아름답고 즐거우며 착한 나날을 누릴 수 있다고 느낀다. 아이들은 즐겁게 살아야 하지 않는다. 어른들 또한 즐겁게 살아야 한다. 아이들만 착하게 살아야 하지 않아. 어른들 또한 착하게 살아야지. 아이들만 곱게 살아야 하나. 어른들 또한 곱게 살아야지.
좋은 넋, 좋은 꿈, 좋은 말을 아리따이 어우르는 좋은 삶을 누릴 좋은 사람으로 지내며 좋은 사랑을 빛내야 바야흐로 좋은 글이 태어나고 좋은 그림이 태어나며 좋은 사진·좋은 노래·좋은 춤·좋은 문학이 태어나겠지. (4345.1.25.물.ㅎㄲㅅㄱ)